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21화 (121/458)

122화 패치워크 (2)

의문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깨진 조각들과 접촉할 것>

캐빈 애슈턴의 책 마지막에 문장.

‘무슨 뜻일까.,

一 톡톡.

생각에 빠져 팔을 두드렸다.

수려하게 쓰인.

그러나 기괴한 느낌의 문장.

저번 생에는 그 문장을 보고 동화율이 떨어졌다.

세계가 흔들렸다.

분명 나와 관련이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무엇의 조각인지, 어디가 어떻게 깨졌다는 건지.

‘책에 단서도 전혀 없단 말이지.’

그런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의문.

<1/7>

<깨진 조각들과 접촉할 것>이라는 문장 아래에 새로 나타난 숫자.

어쩌다 나타난 건지도 모른다.

분명히 전에는 없었다.

저번에 온 시점과 지금은 한 달 반 정도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 누가 이 문구를 적어 놨다는 건가?

미심쩍었다. 역시 뭘 뜻하는 건지 짐작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세 번째 의문은 동화율.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동화율 이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까지 새롭게 나타났음에도 동화율은 변경되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이미 반영됐다는 걸까?’

해결되는 의문은 없다.

책을 덮었다.

- 툭!

작은 바람이 피어올랐다.

띠링, 소리와 함께 지혜가 51로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지혜라.

예전 같았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을 스탯.

체력, 힘, 민첩에 비해서 전투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검기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스탯으로 활용된다.

검기 출력의 안정성과 지속력에 비례 한다.

올라가는 게 반가울 수밖에 없다.

여태껏 캐빈 애슈턴의 책을 찾아 읽어 온 보람이 있었다.

그런 탓일까.

‘지혜 스탯이 좀 높은 편인가?’

기스-제-라이에게 살해당한 무수한 황실 기사들.

단장인 이사벨까지.

그들의 시체에서 지혜는 흡수되지 않았으니까.

높은 지혜 스탯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검기 사용으로 끝이 아니다.

지혜가 높으면 마법의 위력이 강해지는 것은 상식.

두 명의 마법사에게 스킬을 잔뜩 흡수했다.

언젠가 쓸 날이 올 거다.

아케인 하트가 없어서 사용할 수없다고 하지만.

검기처럼, 언젠가 그것들도 사용방법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혹시.,

품에서 웹슬링거의 홍옥을 꺼냈다.

붉은 보석을 손에 잡은 채로 가만히 어루만졌다.

허공에 흥옥의 상태창이 떴다.

[웹슬링거의 홍옥]

웹슬링거는 오랫동안 인간을 주 먹이로. 통곡과 절규가 축적되어,

붉은 결정結晶이 되었습니다.

‘이걸 아케인 하트 대용으로 쓸 수는 없을까?’

툭.

음울하게 빛나는 녀석을 갈비뼈 안쪽에 가져다 댔다. 심장도 보석도 붉다. 혹시 어떤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리였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다시 홍옥을 집어넣었을 때였다.

- 달각! 달각!

새끼 늑대 해골이 나에게 놀아 달라는 듯이 달려들었다.

- 스스숙. 스스숙.

녀석은 작은 앞발로 나를 긁었다.

뒷다리로 깡총깡총 뛰며 내 팔을 살짝 깨물려 했다. 하지만 점프력 은약했다. 뼈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쇠를 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갑옷을 벗고 팔을 가져다 댔다.

녀석은 입을 크게 벌린 채, 내 팔을 톡톡 깨물어 왔다.

꼬리뼈를 흔드는 모습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책을 협탁에 내려놓고 두개골과 척추를 쓰다듬었다.

녀석도 나도 세계 어딘가에 가파르게 매달려 있다.

바위투성이 언덕에 힘들게 손을 박아 넣고 매달린다. 아래는 아찔하고위는 거칠다.

내가 이 녀석과 다른 건. 조금 더튼튼한 팔을 가졌다는 사실 정도.

녀석은 쓰다듬는 내 손에 달라붙듯엉겨들었다.

덫에 묶인 채 추운 겨울까지 혼자 보내게 두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이걸 가져갈까.

산장 안에서 부드러운 천으로 된 주머니를 하나 챙겼다.

“이제 가자.”

새끼 늑대 해골을 데리고 산장 밖으로 나가, 그라스미어로 향했다.

산장은 산의 정상에 있다.

내려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정도 몸이 적응된 건지, 늑대 해골은 달그락거리며 젖은 땅을 달리기 시작했다.

떨어져 내린 낙엽들이 축축하다.

- 폿! 폿!

녀석이 힘차게 잎들을 밟을 때마다 단풍에서 작은 안개가 피어난다.

목적지까지는 금방이었다.

‘저긴가.’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성이 내려다보였다.

‘유블람보다 훨씬 더 크고. 이중구조로 되어 있군.’

첫 번째와 두 번째 성벽 사이에는 수십 미터의 거리.

해자도 훨씬 깊고 넓다.

레안드로 후작이라도 맨손으로 간단히 부술 수는 없을 듯하다.

‘아니, 성은 원래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게 아니니까.’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 냈다.

이상한 기준은 머릿속에서 얼른 떨쳐 버리고 싶었다.

달리고 있는 늑대를 안아 들었다.

인간들의 눈에 보인다면 곤란하다.

산장에서 챙긴 커다란 주머니를 벌렸다.

“움직이지 말고 있어.”

[호감도가 20 이상입니다!]

[의사 전달의 성공률이 높습니다!]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기가 알아서 안으로 쏙 들어갔다.

공간은 넉넉하다.

잠시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곧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탐지.’

[스킬을 활성화합니다!]

인간의 도시에 가까워진다.

세계를 지배하는 종족, 인간들은 대부분 나의 적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꼼꼼하게 탐지하며 산 아래로 내달리고 있을 때. 앞쪽에서 인간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산적인가?’

열댓 명 정도였다.

갑옷 입은 기사에게, 지레  꽤 많은 숫자다.

오히려 벗겨 먹을 갑옷이 있다고 좋아할 거다.

안쪽의 내용물은 고문하거나 구워먹거나 할 테지.

‘조금 귀찮아지려나.’

자세히 동향을 파악한다.

놈들은 산 아래 턱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늦춘 채 인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들리는 목소리는 전부 남자였다.

탐지 스킬 덕분에 또렷이 들린다.

“어휴, 저번에 왔을 때도 저런 놈들 때문에 시간을 끌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놈들입니까?”

“그래요. 또 쫓겨나네. 전쟁이 진짜 벌어지긴 할 건가 봅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떡하죠.”

“자넨 직업이 뭔가?”

“전 카즈아린 전문 요리사예요.”

“카즈아린?”

“내장에 독이 있는 물고기예요. 그 주위 살이 제일 맛있는데, 내장을안 터트리게 조심하면서 주변 살을잘 발라내야 해요.

대화가 잠시 이어졌다.

앞쪽에 모여 있는 인간들이 산적이 아닌 건 확실한 듯했다.

다양한 직업의 인간 여행자들이다.

원래 알던 사이는 아닌 듯했다.

‘마주쳐도 상관없겠군.’

- 저벅.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녀석들에게 접근했다. 대화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다.

“누구. 시오?”

열댓 명의 인간이 내 쪽을 동시에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쪽도 그라스미어로 오신 거요?”

초록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붙임성 좋게 물었다.

특이하게도 검은색 단발머리에, 깔끔한 외모지만 왠지 눈빛이 깊은 남자였다.

서른 후반에서 마흔 중반 정도.

하지만 남자의 눈빛은 마치 아이 같은 반짝이는 총기를 띠고 있다.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생생히 살아있는 눈빛이다.

“뭐, 일단은.”

“그러셨군. 하지만.

초록색 로브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못 들어가실 거요.

저기 한번 보시겠소?”

남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시야가성 쪽으로 뻥 뚫려 있는 위치였다.

여기 모여 있는 이유가 있었다.

‘잘 보이는군.’

그라스미어 성에서 따로 길게 빠져나온 성문 쪽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장소.

“저들은.?”

성문 앞.

장검과 쇠뇌로 무장한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는 마흔 정도.

텅 빈 수레 다섯이 그들의 옆에 놓여 있었다.

‘뭔가 실어 가려는 건가?’

“무기를 사러 온 무리들이요. 요즘 들어 더욱 많아졌지.”

초록 로브의 남자가 내 생각을 읽은 듯 말을 이어 갔다.

“저자가 보이시오? 근처 도시의 영주나, 뭐 장수 정도일 거요.”

남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말을 탄기사가 있었다.

“그런가.

잘 세공된 갑옷을 입은 기사는, 말위에서 그라스미어의 경비병에게 역정을 내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나는 여행자 무리에게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앉았다.

‘집중.’

‘탐지.’

집중 스킬은 탐지 스킬과 사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좋다. 범위와 정확도가 증폭되는 느낌이다.

굳이 곁의 남자에게 말을 전해들을 필요는 없다.

직접 들으면 된다.

성문 앞.

수백 미터는 떨어진 곳의 대화였지만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독점 계약은 맺지 않습니다.”

“독점이 아니라니까!”

“지금 요구하시는 분량의 무기를 공급하려면, 몇 개월 동안 그걸 위해서만 대장간이 돌아가야 합니다.”

“적당히 만들면 되지 않나? 이미 만들어 놓은 것도 많을 거고!”

“적당히 장사하는 가게는 저희 도시에 없습니다. 물건들은 대부분 만드는 즉시 팔려 나갑니다. 다 예약되어 있거든요.”

비슷한 대화의 반복.

기사는 값을 잘 쳐주겠다는데 왜 팔지 않느냐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팔 굵기가 소나무만 한 그라스미어의 경비병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 책임자를 불러와! 내가 누군지 아는 거야!”

“제가 책임자입니다.”

답 없는 대화가 지겨워질 때쯤.

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요하지 않으시는구려. 저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글쎄.”

어깨를 으쓱했다. 다 들을 수 있는데 딱히 궁금할 이유는 없었다.

“소란스런 상황에서 궁금하지 않다면 보통 두 가지지.”

남자는 저 혼자 말을 이어 갔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든 제 몸 하나는 감당할 자신이 있다거나, 이미다 알고 있는 거요.”

”어느 쪽이든 관심이 가는 분이시군. 필시 고명한 기사실 터.”

‘어지간히 붙임성이 좋군.’

옆에서 줄곧 무시했는데 계속 말을 걸어오는 근성.

‘장사꾼인가?’

성문의 소란은 아직 좀 더 이어질 것 같았다. 나는 남자를 슬쩍 훌어보고 물었다.

“그라스미어에서. 자기들 무기를안 팔겠다는 건가?”

“그렇소.”

남자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 질문이 반가운 듯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밝아진 얼굴 표정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제 슬슬. 전쟁이라오.”

“영주들이 징집 명령을 받았지.”

“그래서?”

“자기 군대를 그라스미어의 강철로 무장시키고 싶어 하는 거요.”

남자는 다시 성문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억지까지 써 가면서 물건을 받아 내려고 하는 거지.”

그를 슬쩍 바라봤다. 전쟁에 별다른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 같은 묵묵한 표정이다.

“그라스미어의 강철은. 고분 속의 악마, 아니 영혼들이 전승해 주었다고 평가될 정도의 제조 술이니까!”

초록 로브를 입은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악마라고?”

못 들어본 이야기였다.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하핫, 이런 얘기를 좋아하시는구려! 물론 해 드리지.”

- 달각!

주머니 안에 있던 늑대 해골이 갑자기 꼼지락거리며 살짝 움직였다.

‘너도 듣겠다는 거냐?’

슬쩍 주머니를 양팔로 가렸다. 남자는 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듯 말을 이어 갔다.

“크흠! 한때 남부를 지배하던 주술사가 있었소. 제국과 연합이 갈라질 때의. 어지러운 시절이었지.”

“그는 자기가 묻힐 무덤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건축가와 대장장이들을 불러 모았소.”

의문이 들었다.

“???대장장이는 왜?”

“무덤을 지켜 줄 강철 골 렘들을 만들기 위해서요.”

‘그럼, 던전이 됐겠군.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지하에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어디인지 모르게 정령들을 풀어 땅을 다졌다고 전해지오.”

“정확한 위치는?”

“모르오. 아무도 모르지.”

맥이 탁 풀렸다.

“그냥 전설 아닌가.”

“으흠.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요. 그때 모인 대장장이의 후손들이, 그라스미어를 무기의 도시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후손이라니. 본인들은 어쩌고?”

“주술사가 저주를 걸었다고 하오.

골 렘을 만든 대장장이들의 혼을 빼앗아서, 고분 안의 강철 골렘들에 넣어 버린 거지. 영원히 무덤을 수선하라고.

“???으음.”

“믿거나 말거나 아니겠소. 골렘에 갇힌 영혼들이 후손의 꿈에 나와 기술을 전승해 줬다나 뭐라나. 나야 주술사도 마법사도 아니라 이러쿵저러쿵 못 하겠소만.”

언젠가 서큐버스님에게, 골렘은 그 몸을 제작한 자와 싱크로가 가장 잘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래전 대장장이들의 영혼이 봉인된 골렘 던전.

정말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 걸까?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초록 로브의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이쿠, 이야기가 너무 샜군.”

“하나라도 더 받겠다고 저렇게 시위를 벌이는 놈들이 있지만, 멍청한 짓이지. 왜냐하면.

- 쿠르르르릉.!

그라스미어의 외성 성벽 위로 거대한 기계가 나타났다.

- 쿠르르. 쿠르르르‘

탐지 스킬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그 웅장한 굉음은 한참 떨어진 여기까지 분명히 들려왔다.

곁에 있던 초록 로브의 남자가 씩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부리나케 도망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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