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패치워크 (3)
“저, 저게 대체 뭡니까?”
모여 있던 인간들이 옹성거렸다.
“석궁. 아닌가?”
“석궁이 무슨 저렇게 커! 발리스타보다 열 배는 큰 거 같은데!”
“저걸 누가 당겨?”
“여기까지 날아오는 건 아니겠지?”
수백 미터가 떨어져 있는데도 뒤로몇 걸음을 물러나는 인간도 있었다.
곁에서 초록 로브를 입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그라스미어의<메신저>라오.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놈들을 위한폭력적인 전령이지. 자세히 말하자면 ‘기계’라는 건데.
초록 로브의 남자는 내게 사근사근한 말투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때 였다.
[기계공학 Lv.3!]
[기계 분석을 자동 발동합니다!]
성벽 위에 나타난 거대한 기계.
<메신저>의 구조와 작동 원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 쿠르르르.!
레버가, 사슬톱니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 콰지지직!
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발사된 거대한 철기 둥이 성벽 아래에 놓여 있던 수레 세 대를 동시에 부쉈다.
조작자는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지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수레 바로 근처에 있는 녀석들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바닥을 몇 바퀴씩 구르기도 했다.
‘으음.’
준비 순간부터 발사 순간까지.
응력이 가해지는 지점이 보였다.
가속과 탄성이 또렷이 보였다.
“기능적이지 못한 운용이군.
실로 그러했다.
설계는 잘 되어 있는데, 운용 측면에서 지적해야 할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저런 식으로 쓰면 수명이 너무 짧아질 텐데.”
“뭐, 뭐라고?”
초록 로브의 남자가 펄쩍 뛰었다.
“이보시오! 저 구조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시오?”
“별건 없지 않나?”
나는 대략적으로 기초적인 작동 원리를 설명했다.
성벽 위의 기계는 크기만 컸지 구조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수녀에게 흡수한 기계공학 Lv.3 정도로도 전부 분석이 가능한 수준.
아주 기초적인 것만 설명했는 데도 남자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깊은 감탄을 내뱉었다.
“크으. 이거 정말 대단하신 분을 만났구려! 기계를 아는 기사라니 !”
기계공학 Lv.3.
직관적으로도, 그다지 높은 레벨은 아니다.
하지만 남자의 얼굴은 정말 놀라운 대상을 보는 표정이었다.
“.대단한 건가?”
내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히 대단하지! 이거 참. 날 놀리시는 거 아니오?”
“그런 건 아닌데.”
“크홈. 저런 걸 한눈에 보고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특히 제국에서?”
“저 무기를 쓰고 있는 녀석들도 방금 말씀하신 정도로는 모를 거요.
애초에 저 녀석은 자유 연합에서 제련 기술을 전수해 줘서 고맙다고 그라스미어에 선물한 거니까.”
“예전에는 교류가 자유로웠나?”
“으음? 예전에는.
초록 로브의 남자는 제국과 연합의 역사에 대해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적당히 홀려들으며 앞을 바라봤다.
부서진 수레를 놓아두고 뒤로 물러가는 병사들이 보였다.
말 위에 탄 기사는 뒤로 물러가면서도 잡스러운 소리를 계속해 댔다.
전쟁터에서 함께할 텐데,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시끄럽게 떠들었다.
물론 그라스미어 녀석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애초에 ‘무기’를 가진 쪽이 어딘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꾸 짖어 대는군.”
“어이쿠, 나 말씀이오? 듣기 싫으시다면 언제든 물러나겠소만.
“아니. 저놈.”
가도를 통해 말을 몰아가는 기사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옆에서 말을 걸던 남자의 눈이 한층 더 휘둥그래졌다.
“저 거리에서. 들리시는. 거요?”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눈빛을 한층 더 깊게 빛냈다. 그리곤 바로초록색 로브에 깊숙이 손을 넣었다.
- 번쩍!
비가 개인 뒤 나타난 햇빛을 받아금빛 명함이 번쩍였다.
“.받아 주시면 영광이겠소. 나는진네이 유베라고 하오. 진네이 가문의 가주를 맡고 있소.”
이번에는 내가 놀랄 차례였다.
“.뭐라고? 당신이 그자인가?”
“허헛.”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
단단한 턱. 굳은 입술. 깊게 잔주름이 진 눈가. 숫자에 밝을 듯한, 총기로 빛나는 눈이 보였다.
진네이 가문.
에라스트 토너먼트 대회에서, 날 대리로 내세웠던 가문이다.
<현 진네이 가문의 가주는 기사도 따위엔 전혀 관심도 없고, 피혁 장사에만 집중한다고 합니다.>
슬라임이 했던 말을 회상했다.
‘돈만 보는 자, 라고 했었나.’
이번에는 내가 그 의뢰를 받지 않았다. 남자가 누구에게 토너먼트를 맡겼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 기억은 전생의 기억.
얘기해 봐야 수상한 눈길만 받을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미행하면서 자길 조사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날 알아주시는 거요?”
“이곳저곳에서 이야기 나오던데.
가주가 꽤나 장사 수완이 좋다고.”
왠지 반가워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수행도 없이 다니시는군.”
남자가 쑥스러운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별 대단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지만. 섞여 들어가야 보이는 세상이라는 게 있소이다.”
;정체를 밝혀도 되는 거요?”
“그쪽 분에게는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신분을 밝히고 싶소.”
“왜?”
“꼭 잡고 싶기 때문이지. 아! 오해는 말아 주시오. 그 명함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오.”
남자는 묻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만 내 쪽에서는 좀 더 진실한 시작을 위해서 다 밝히는.!”
그때 였다.
“이제 갑시다! 피혁 장사 아저씨!
안 가세요?”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께 돌아봤다.
카즈아린 내장을 발라낼 요리 칼을 사려고 그라스미어로 왔다는 인간 청년이 말하고 있었다.
“에 가네! 곧 가! 먼저 가게!”
진네이 유베가 대답했다. 그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손 떨어지겠네. 명함. 받아 주지 않겠나?”
나는 그의 손에서 금빛 명함을 받아 들었다. 이름이 새겨진 금빛 명함 밑에 새까만 카드가 한 장 더 들어 있었다.
카드를 뒤집었다.
아래에는 한 개의 오각별과 함께 하얀 글씨가 쓰여 있었다.
[흔들리는 세상, 당신을 위한 철제침대를 마련하세요!]
카드를 손으로 더듬었다. 오톨도톨한 재질이 무척 특이했다.
“이건. 뭐요?”
“뭐, 내가 속한 길드의 소개장이오.
고객의 바람을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는 훌륭한 상인들의 모임이지.”
“비싸고 좋은 것부터 해서, 돈으로 못 사는 물건을 구하려 하시거나,운송 서비스를 원하실 때 큰 도움이될 거요. 모아 두셔서 나쁠 건 절대 없을 카드지.”
“모아 둔다고?”
“별 하나로는 효력이 없어서. 거기 있는 별 다섯 개를 모으시면, 그때부터 우리 고객이 되실 수 있소.”
머릿속에 문득 스쳐 가는 게 있었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인간도 파나? 살인은?”
진네이 유베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우리보다 잘하는 자들이 많아서. 아, 나만 해도 정보 길드에 맡기는 게 많소.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는 거지.”
‘네크론 쪽은 아니로군.’
“일단 받아 두지.”
나는 카드를 받아서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진네이 유베라는 남자는 내게 제법 호의적이었다.
토너먼트 의뢰 상금도 어김없이 제대로 지급했다. 장난을 칠 만한 장사꾼은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이런 단체가, 카드가 있는 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럼 내려가시겠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네이 유베는 내 곁에 붙었다.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아 가며, 근처 도시들의 분위기와 시장을 보러왔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라스미어는 자주 다녀가는 것 같았다.
어느새 경비병이 검문을 하고 있는 장소까지 도착했다.
아까 봤던 인간들 중에는 이미 검문을 받고 성안으로 들어간 자들도 있었다.
성벽은 아직 거대한 석궁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은 상태 그대로다.
‘거참, 살벌하군 그래.’
“출입 목적은?”
“건축가입니다! 좋은 건축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
“흠. 들어가시오.”
팔 굵기가 어마어마한 경비병은 별절차 없이 요리사와, 건축가와, 행상인들을 들여보냈다.
내 차례가 됐을 때였다.
“왜 답답하게 여기서도 쓰고 계셔?
투구 벗어 주시오.”
‘마스커레이드.’
- 철컥.
변장한 얼굴을 드러냈다. 경비병이손에 든 종이를 숙숙 넘겨봤다.
“흐음. 수배 서에 있는 얼굴은 아니군. 출입 목적은?”
나는 스킬 사용으로 거의 다 망가진 철검을 보여 주었다.
“이런 걸 사러 왔소.”
경비병은 기가 차다는 둣 혀를 쯧쯧 차며 솥뚜껑만 한 손을 내저었다.
“어휴. 도대체 칼을 뭘 어떻게 쓰면 그렇게 되나? 응? 통과!”
내 뒤에 있던 진네이 유베도 물론무사 통과였다.
- 끼이이익. 쿵.
바깥쪽의 성문이 다시 닫혔다.
‘50미터.’
성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걸어 안쪽성문에 도달하기까지의 거리.
무언가 갑갑한 느낌이 든다.
대충 들여보냈던 바깥 성문과 달리, 안쪽 성문에서는 조금 더 철저한 검문이 행해졌다.
“신분증을 보여 주시오. 가방 안을 보여 주시오. 통과.”
여러 명의 경비가 한 명씩 행인을 검사했다.
‘신분증은 없는데. 이거 곤란하군.’
진네이 유베라는 녀석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까?
‘벌써부터 신세를 지기는 싫은데.’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레나를 만나야 한다.
신분증이 없느니 어쩌니 옥신각신을 한다면, 10분은 금세 지나 버리고 마스커레이드가 풀린다.
전부 베고 도망가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레나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통과! 다음은.
한 명씩 줄어드는 줄에 서서 초조해하고 있을 때.
가장 안쪽에 수그리고 앉아 있던 남자가 경비들 사이로 다가왔다.
“아, 감독관님!”
경비병들이 그에게 인사했다.
“잠깐만. 거기 서 있는 기사, 투구한번 써 보게.”
‘벗는 게 아니라 쓰라고?’
갸웃했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품에 안은 투구를 머리에 썼다.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낡은 갑옷. 체형도 맞고. 묘사와 일자도 정확하군. 여기 이분은 통과시켜! 내가 보장한다!”
“아, 앱! 그러죠!”
경비병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몰라 주춤하고 있을 때였다.
감독관이 다가와 낮게 말했다.
“<먼 숲 엘프>여관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분이 있습니다.”
“먼. 숲. 엘프?”
“그곳까지 가는 약도입니다.”
감독관은 무언가 결연한 눈빛으로,
삐뜰빼뜰하게 그린 도시 지도를 나에게 건넸다.
“이렇게 해서 사거리에서 쭉 왼쪽으로 가시면. 이해되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핫. 다행이군요. 저는 감독관 네그리아누였습니다. ”
마치 제 이름을 기억해 달라는 듯한 말투였다.
누가 날 기다린다는 건지 캐어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자세히 들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누구지? 레나인가?’
기다릴 만한 인간이라면 레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경비병에게 듣는다는 건 기이하다.
‘뭐, 가 보면 알겠지.’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예, 저는 행상인입니다만.
뒤에서 가명을 대는 진네이 유베의목소리가 들려왔다.
- 깡! 깡! 깡!
도시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잠시 멍해졌다.
입구에서부터 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무척 요란했다.
이틀, 사흘 떨어진 도시인 유블람이나 에라스트보다 인구도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이거 얼마요?”
“예약한 물건 받으러 왔습니다!”
“저희 여관으로 오세요?!”
여행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무리도 있었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발하군.,
도시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살아 있다.
인간의 문명이 집약된 곳.
이런 걸 도시라고 부르는구나 싶어 아찔하게 풍경에 취해 있을 때였다.
“허허. 혹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호의를 좀 사 보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쳐 버렸군.”
뒤에서 진네이 유베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의도한 상황은 아니다. 녀석을 다 믿을 순 없으니 내막을 말하지는 않았다.
저번 생에서 나를 토너먼트에 대신 내보냈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나는 사거리 쪽, <붐비는 선인장>
에 묵을 생각이오. 혹 필요한 게 생기거나, 내키신다면 언제든 들러서‘바토 시마’를 찾아 주시오.”
바토 시마는 녀석이 경비병에게 댄 가명이다.
“뭐. 나중에.”
어깨를 으족했다. 놈의 가명은 흘려버렸다. 지금은 레나를 만나는 게 급했다.
- 저벅.
한 걸음 발을 디뎠다. 일단 생각을 좀 해 봐야 했다.
혹시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게 누군가의 함정은 아닐까?
후작 같은 녀석이 나를 옴짝 달싹 못 하게 감금하기 위한 덫은 아닐까?
하지만 그럴 확률은 극히 낮았다.
녀석은 산에서 나를 잡아서 끌고 가면 그만이다.
다른 누군가 함정을 판다면, 아까 성문과 성문 사이에서 나를 잡았으면 그만이다.
‘피해 의식인가.
아무래도 저번 생에 당한 탓에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힌 것 같았다.
‘.내 쪽에서 레나를 먼저 찾을까?
아니면<먼 숲 엘프>에 가 볼까?’
레나를 찾는다고 해도, 어디서 만날 건지도 정하지 않은 것이다.
여관만 해도 하나둘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무작정 도시의 뒷골목을 향해 들어갔다.
<먼 숲 엘프>와 반대되는 쪽.
그때 였다.
- 타다다다닥!
열 서넛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달려왔다.
허리에 단검 두 자루를 찬 소녀의발걸음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생각해 보니 녀석은 성문 근처에서계속 날 보고 있었던 듯했다.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 홀려 넘겼지만 분명히 그러했다.
“어이! 기사님! 반대편이야!”
짧은 머리 소녀는 내게 소리친 뒤,
편지를 꽂아 넣고는 골목으로 다시 사라졌다.
- 타다다다닥!
여간 날쌘 속도가 아니었다.
평범한 인간들은 편지가 아니라 칼을 찔러 넣었더라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빨랐다.
‘.뭐지?’
날쌘 소녀가 건넨 편지에는 딱 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먼 숲 엘프 여관으로 오세요!>
‘질주.’
‘탐지.’
‘은신.’
- 쌩!
“어, 뭐, 뭐였어 방금?”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사라진 소녀를 쫓았다.
5레벨의 스킬 세 가지를 한꺼번에 사용했다.
제법 민첩한 인간 아이라고 해도절대 놓칠 만한 수준은 아니다.
- 덥석.
그 사이 3층 난간에 올라가, 몸을그늘에 숨기고 휘파람을 불고 있는 소녀의 뒷덜미를 잡았다.
“치, 침입.!”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귀찮아진다.
무심결에 녀석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공포.’
[공포 Lv.l 스킬을 사용합니다!]
[대상: 단일]
[체력이 0.17% 소모됩니다.]
[당신과 먹이 사이의 스탯 차이:
절대적.]
“후, 후으, 히.
- 털썩.
민첩했던 소녀는 그 자리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아, 아, 아.
전신에서 식은땀이 솟아났다.
안색이 완전히 새하얘지며 입술이 파랗게 질렸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신경이, 근육이 날뛰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발작에 가까운 증상이었다.
‘이런. 공포 해제.’
조금만 더 지속했다간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
“으. 으. 아아.”
소녀는 그 뒤로도 말 한 마디 잇지못하고 한참을 떨었다.
‘.이 정도였나?’
엉겁결에 쓰긴 했지만, 지금까지공포 스킬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위력을 몰랐다.
‘고작 1레벨인데.’
나는 짧은 머리 소녀의 눈앞에 편지를 들이대고 물었다.
“.미안하다. 그런데 이 편지, 혹시 이렇게 생긴 여자가 보낸 거냐?”
레나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소녀는 눈을 꼭 감고 대답하지 않았다.
- 딱딱 딱딱.
대신 세차게 이를 부딪치면서도,
허리에 찬 단검으로 천천히 손을 가져가려는 것 같았다.
물론 진정되지 않은 손끝은 허공에서 마구 떨리기만 했다.
“아,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녀는 행동과 분위기로 답변을 충분히 대신하고 있었다.
- 훌쩍!
나는 솟구쳐 올라갔던 난간에서 다시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감독관이 설명해 준<먼 숲 엘프>
쪽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 땅! 땅! 땅!
망치 소리가 요란한 그라스미어의 뒷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레나는,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