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패치워크 (10)
“별로 그런 건 아닌데.
챈들러와 크리스티나는 연습용 검으로 완전히 깔끔하게 뚫린 철판을 바라보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봉으로 철판을 뚫는 것 정도는 연습용 검으로도 간단하다.
‘검기도 안 썼는데.’
내려앉은 정적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들 묘하게 들뜬 표정이었다.
“연습 시작하지. 뚫린 곳을 노려라.”
옆에서 그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뭘 가르치는 입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색했다. 하지만 가슴 안쪽이 살랑거리는 것 같은 기분도 있었다.
그때 였다.
- 띠링!
[검술 교육 Lv.2를 활성화합니다!]
검술 교육. 기스-제-라이에게 살해당한 근위대에게 흡수한 스킬이다.
흡수한 녀석들 가운데 근위대 교관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황실 근위대를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적어도 교관급 기사가 아니면 초록색 빛을 뿜어내지 않았을 테니까.
[피교육자의-]
[약점 교정 방향이 당신에게 확인됩니다.]
[집중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이해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일반 스킬의 습득 속도가 상승합니다.]
[교육이 성공적일 경우, 피교육자의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랜덤으로올라갑니다.]
교육 스킬의 효과는 무척 뛰어났다. 내게 버프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녀석들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 주는 스킬이었다. 하지만전반적으로 무척 효과가 좋았다.
“손목. 그렇게 돌리는 게 아니다.
반대쪽으로. 몸 전체를 실어서 쳐.”
약점이 단순한 약점으로 보이는 게아니었다.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가중점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나와 챈들러의 자세에서 부족한 부분을 고쳐 줬다.
다음은 레나가 골렘을 공격하는 모습을 봐줄 차례였다.
- 퍼격!
모형 표적에 연습용 칼이 정확히 박혀 들어갔다.
“너는. 됐다. 그냥 그렇게 해.”
“흐응.
그녀가 조금 뾰루퉁한 표정이다.
- 찡.
나는 날 없는 연습용 칼로 그녀의 칼을 툭 치며 말했다.
“잘하고 있으니까.”
내가 다른 사람의 자세를 봐주는동안, 그녀는 곁눈질을 하더니 처음에 갖고 있던 허점을 이미 없애고 있었다.
‘이 정도였나?’
예측했던 대로다.
회귀를 거듭하며, 재능과 호감도가올라가는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 달그락.
고개를 흔들었다. 기묘한 일이지만당장 알 수 있는 건 없다. 일단 눈앞의 의뢰 해결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의 훈련 으로세 사람의 실력은 꽤 향상되었다.
“히압!”
챈들러가 왼발을 앞으로 딛고, 강한 기합을 내지르며 양손으로 쥔 칼을 강하게 내리쳤다. 골렘 팔의 너덜너덜한 타격 부위가 때맞춰 부서졌다.
- 쩌엉!
주저앉은 골렘의 목을 녀석의 칼이 시원하게 날아갔다.
수천 차례 타격으로 걸레짝이 된 부분이라 떨어져 나가기 직전이었다.
잘려진 골렘의 목이 요란하게 바닥을 굴러다녔다.
“차앗!”
내가 처음 보여 줬던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레나는 물론, 크리스티나도 이제 골렘의 타격 부위는 전부 익힌 것 같았다.
여기서 더 해 봐야 효과는 없다.
- 저벅.
나는 골렘이 쓰러진 장소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막 칼을 휘둘렀던 챈들러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제 날 공격해라. 골렘은 가만히 맞아 줄 리가 없으니.”
레나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챈들러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툭.
나는 몸의 몇 군데를 연습용 칼로가르켰다. 지금껏 세 인간이 연습한골렘의 약점과 같은 곳이다.
“훈련을 시작하지. 여기 한 번이라도 닿으면 오늘 훈련은 종료다.”
일주일이 지났다.
“끄으으윽.!”
언제나와 같이.
눈을 반쯤 뒤집은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챔들러가 보였다.
최대한 부상을 입지 않게 쳐냈는데도 녀석이 가장 적극적인 탓에 누적되는 데미지가 가장 컸다.
“많이 발전했군.”
“하지만. 스승님을 한 번도 못 쳤는걸요.”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그랬습니다.”
“끄으윽. 끄으으으.
챈들러는 퉁퉁 부은 한쪽 뺨을 손으로 가리며 말도 못 하고 끙끙거렸다.
“뭐. 이 정도면 됐다.”
다들 핀 부분을 어떻게 쳐야 하는지는 감은 잡은 것 같았다. 재능이 떨어지는 녀석은 없었다.
[<검술 교육>스킬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상승했습니다!]
[교육이 성공적으로 진행됩니다!]
[대성공!]
[레나의 검술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검술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검술 Lv.4 ->Lv.5]
[레나의 호감도가 9 상승했습니다.]
[호감도 상한: 60]
[현재 호감도: 43]
[피교육자 랭크 상승 특전! 당신의 검술 숙련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나까지 영향을 받는 건가?’
그녀 외의 두 사람의 검술 숙련도와 호감도 역시 가파르게 올라갔다.
[첸들러의 검술 숙련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검술 숙련도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챈들러는 당신에게 검술을 배웠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첸들러는 그 사실을 당당히 알리고 다닐 것입니다. 챈들러가 검술로 명성을 떨칠 경우, 당신의 평판이지속적으로 추가 상승합니다.]
계가 누군 줄 알고?’
그때 였다.
“영주님이 찾으십니다.”
집사가 찾아왔다.
실제 나이보다 서른 살은 더 들어보였던 영주는, 그 사이 얼굴이 더욱 파리해져 있었다.
“아버지.
챈들러는 매일 밤 부친의 상태를 확인하는 둣,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몸이 무너지는군.’
나는 영주에게 물었다.
“주술사를 죽인다면, 당신도 죽는 거 아닌가?”
“충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버려둬도 어차피 오래가진 못할 몸입니다. 모험이라도 해 보고 싶습니다.”
“.으음.”
이 인간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성공을 바란다. 의뢰가 성공한다고 해도,
실패한다고 해도 어차피 오래 살아남지 못할 인간이지만.
챈들러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처음부터 이미 늦어 있었다.
“일찍 왔다면 당신이 살았을까?”
“허헛, 이미 지나간 시간을 어떻게 돌릴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되돌아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영주가 천천히 말을 열었다.
“수련에 방해가 될까 봐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느껴지더군요.”
그가 나를 부른 목적은 간단했다.
영주는 고분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던전 입구까지는 제 아들이 안내해 드릴 겁니다. 녀석도 그곳까지 가는 길은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안쪽에서부터 인데 .
그가 숨을 골랐다.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길은 하나밖에 없고, 빙빙 돌아 내려가면 커다란 홀이 있습니다. 별도로 문을 열고 가야 합니다. 안쪽에 주술사가 잠들어 있고, 전당 주변은 여덟 기의 강철 골렘이 감싸고 있지요.”
“끝인가?”
“끝입니다. 하지만 사실 주술사에게 도전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그동안 벨’호멧 아이작에게도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첫 번째라고?”
“예. 사슬을 끊어 내려는 첫 번째 시도입니다.”
“어째서?”
“대대로 도시가 잘 발전했으니, 주술사와 연결되어 있는 게. 정말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주들의 생명으로 도시가 번성한다고 믿었지요.”
그라스미어.
대대로 노예임을 자각하는 영주가통치하는 도시.
영주들은 실체 없는 축복을 믿었다.
지하에 누운 주술사의 축복 덕분에 도시가 발전했다는 거짓 암시에 빠져 제 생명력을 빨려 왔다.
물론 그런 축복 따위 있을 리 없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화로 불을 지핀 아이들.
어떻게 두드려야 더 나은 품질의 철을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제대로 날을 세울수 있는지 고민해 온 대장장이.
사욕을 부르지 않고, 도시의 발전에 힘을 쏟은 그라스미어의 영주들.
그게 축복이다.
저주는 그저 저주다.
주술사를 죽이고, 노예라는 자각에서 벗어난 챈들러 형빈이 영주가 된다면 이 도시는 무언가 달라질까?
- 달그락.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 버렸다.
의미는 없는 일이다.
선정이건 폭정이건, 어차피 10년후에는 전부 쓸려 나갈 테니까.
“언제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지금 가도 상관없다.”
기본적인 수련은 마쳤다.
시간을 끈다고 특별히 전력이 늘어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먼저 약속드린<전당>을열어 드리겠습니다.”
영주는 아들에게 열쇠 하나를 건네주었다. 챈들러 형빈은 열쇠를 공손히 받아 들었다.
“문을 여는 방법은 알고 있겠지?”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챈들러가 앞장서서안내를 시작했다.
우리는 첸들러의 안내를 받아 성지 하로 들어갔다.
- 달각! 달각!
[‘밤톨이’가 관심을 요구합니다!]
[관심을 주지 않을 경우-]
[주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높은 확률로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매우 낮은 확률로 자율 랭크가 상승합니다.]
수련 기간 동안 자신에게 관심이 너무 부족했다는 둣, 밤톨이가 내주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지금 가는 통로에는 경비병도 시녀도 없어서 별 상관은 없었다.
나는 녀석을 안아 들고 쓰다듬었다.
[밤톨이의 주인은 당신입니다.]
[누구보다도, 당신의 관심이 아이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물론 쓸모는 전혀 없는 녀석이다.
하지만 일단 일으킨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돌봐 줄 필요가 있다.
곧 지하 복도 끝에 새까만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철?’
거대한 문엔 열쇠 구멍이 두 개있었다.
一 끼릭.
챈들러는 특이하게 생긴 열쇠 두개를 천천히 안에 넣었다.
- 끼긱. 끼긱. 끼기긱.
안쪽의 복잡한 굴곡을 열쇠가 하나씩 탁탁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성의 소리가 이어졌다.
“이제 열겠습니다.”
“그러지.”
수련 기간 이후, 챈들러는 나를 스승으로 섬기겠다며 아홉 번의 절을 하려고 했다.
<이런 가르침을 아무렇게나 받을 수는 없지! 내 감히 구배지례九拜之禮를 올리고 정식으로 제자가 되겠소!>
<.정중히 거절하지.>
물론 거절했다. 나야 별로 상관없었지만, 챈들러를 노려보는 레나의 눈빛에서 서늘한 살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챈들러의 태도는 조금 바뀐 듯했다.
- 끼기기기긱.!
나란히 뚫린 두 구멍에 전부 열쇠를 넣은 챈들러가 동시에 열쇠를 돌렸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여기가 바로, <전당>입니다.”
- 저벅.
안으로 한 발을 디뎠다.
“.넓군.”
“무슨 신전. 같은데요?”
<전당>은 무척 넓었다.
입구에 서 있어도, 한눈에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수련했던 연무장의 몇 배는 되는 넓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원래 넓은 동굴이었다고 합니다. 확장 공사를 해서 창고로 쓴 것이지요.”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둘러봤다.
레나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가. 선조들의 전당?”
레나가 중얼거렸다.
“그렇소이다. 사실 실험적인 작품이 많지. 뭐가 있는지는 아버지도,
나도 제대로 모르오.”
“얘기로 듣던 거랑은 좀 다르네요.”
“어떤 얘기를 들으셨길래?”
“온갖 아티팩트가 가득하다던데요.
역시 소문을 믿을 게 못 되나?”
“하핫. 명품이긴 한데, 양산이나 활용은 좀 어려워 보이는 것들을 주로 넣는다오. 천천히 둘러보시오. 원하는 건 뭐든 가져가시고.”
“기꺼이 그러죠.”
레나와 챈들러의 대화를 홀려들으며 앞으로 나아가 걸었다.
그라스미어 지하.
선조들의 전당.
투명한 유리로 된 반짝이는 전시대 같은 건 없었다.
보석도 없었고, 장식도 없었다. 심지어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무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들이 자리를 널따랗게 차지하고 놓여 있었다. 뒤에서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은 어디 있습니까?”
“아, 이리로. 대검류는 안쪽에 많다.”
챈들러가 크리스티나를 안내했다.
크리스티나가 가는 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녀가 날이 넓은 투핸디드소드를 쥐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보였다.
‘역시, 대검은 힘이지.’
그녀에게 어울리는 무기였다.
나는 안쪽을 천천히 돌아봤다. 커다란 상자에 담긴 것들도 많았는데,
일부러 떼어 놓았는지 주로 뚜껑이 없는 게 많았다.
“담아 둘 때. 아무래도 어디 선물할 생각은 아니었나 보군.”
“상용화는 안 되어도, 최고 장인이 실험적으로 만든 물건들입니다. 다른 데 넘기긴 위험한 것들이죠.”
"기술 유출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한참 이것저것을 돌아보다가, 나는 상자 안에 놓인 커다란 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뭐지?”
“그게.
챈들러가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도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게 아니니 당연하다.
그저 키만 나눠서 보관하고 있다가, 무언가 독특한데 감당하기는 어려운 게 생산되면 여기 가져다 놓는 것 같았다.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손을 내저었다. 공학스킬만으로 전부 원리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다른 스킬이 필요한 것같았다.
‘휴대용 대포 같긴 한데.
길이는 160cm 정도. 슬쩍 들어 봤다. 특수 재질의 철로 만들어졌는지,
들어 보니 무게는 사람 한 명 정도만큼은 됐다. 상자 바닥을 보니 설명서가 있었다.
천천히 설명서를 읽었다.
[기계공학 Lv.3을 활성화합니다!]
화약을 넣고, 폭발시키는 구조는 아니었다.
‘마력액을 사용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