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30화 (130/458)

131화 패치워크 (11)

핸드캐논에는 화약 대신 마력액을넣는 양과 방법이 적혀 있다.

커다란 구경과 길다란 포신이 강한 파괴력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마력액을 사용한다. 그 외에 다른 건 알기 어려웠다. 기계공학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었지만 마찬가지.

‘쓸 줄만 알면, 골렘을 상대로 이만한 무기가 없을 거 같은데.’

마력 액은 없다. 그러나 골렘의 작동원이 바로 마력액. 한 기를 사냥하고, 마력액을 채운 뒤 다시 사냥한다면 효율이 좋을 것 같았다.

‘어쨌건 지금은 사용이 어렵고.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갔다. 탱크와 연결된 화염방사기가 보인다.

“안에 든 액체를 발사하고, 1초 후에 발화되게 만든 병기입니다. 저 도아는 병기지요.”

“그런가.”

“병기 자체는 상용화가 가능합니다만. 발화 액이 문제입니다.”

“<그라스미어의 불>말인가?”

챈들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우리끼리는 불이 아니라 분노라고 부릅니다. 대장장이의 분노라고 말이죠. 장인이 평생 한 병을 뽑아내기 힘든 물건인데. 사실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자기만 아는 곳에 꼭꼭 숨겨 둔다는군요.”

문득 유블람의 대장간 노인에게 속은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말씀해 주십시오.”

“저걸 방어하는 가루는 없나?”

챈들러가 갸웃한 표정을 했다.

“그런 물질은 없습니다. 단순히 감각을 죽이는 거라면 몰라도.”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뜨거움을 잊는다는 건 위험합니다. 그 가루는 철저히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요.”

‘역시 그런 거였나.’

나는 다시 무기를 둘러봤다.

이걸 안쪽에서 사용하는 건 무리다.

밀폐된 공간에 화염을 뿜으면 내부가 불타고 모두 죽기 딱 좋다.

강철 골렘들이 녹기 전에, 첸들러와 레나, 크리스티나가 활활 불타서 하얀 뼛가루가 될 거다.

“전장에서는 어떤가?”

“역시 무립니다. 재료도 구하기 어려운 데다, 이런 걸 들고 있다간 저격수의 집중 타깃이 될 테니까요.

몇 걸음 나가기도 전에 완전히 고슴도치가 되겠죠. 난전 중에 사용하면아군까지 새까맣게 타 버릴 거고.”

“으음.”

핸드 캐논은 사용법을 모른다. 화염방사기는 지하에서 무리다.

“.일단 계속 둘러보지.”

“예!”

넓은 안쪽을 계속 둘러봤다.

병기 류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골동품 따위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재질을 알 수 없는 특이한 돌덩이도 있었고, 옛 시대의 금화가 담긴 상자도 있었다.

크리스탈로 정교하게 조각된 여신의 조각상이나 백금으로 만들어진 촛대 같은 것들은 아무렇게나 고물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거, 버리기 아까운 건 정말 그냥 다 여기 쑤셔 박아 놨는데?’

- 달각! 달각!

밤톨이가 주위를 맴돌다 어딘가로 달려갔다. 바라보니 레나가 서 있는 곳이었다.

‘멀리도 들어갔군.’

레나는 혼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벌써 수첩에 무언가를 빼곡하게 적어나가고 있다.

그녀를 흘끗하며 나도 좀 더 안쪽으로 향했다.

프레스 장치를 사용해 위력을 분출하는 무기가 많았는데, 검기를 쓸수 있는 수준에서는 흥미와 의외성외에 큰 의미는 없는 것들이었다.

‘레나 정도만 되도 쓸 만하겠군.’

그래도 그냥 나가긴 아쉬웠다.

야광주의 빛이 비치지 않는 곳까지 도착했을 때였다.

‘이게. 뭐지?,

커다란 <칼자루>하나가 돌 벽에 박혀 있었다.

- 덤석.

칼자루를 잡았다. 손에 찰싹 감기는 느낌이 마음에 든다.

안에 무언가 길게 박혀 있는 게분 명했다.

칼자루는 맞지만 특이하게 생긴 녀석이다. 길이만 40cm가 넘는다. 두 손으로 잡아도 한참 여유가 남는다.

- 푸스스!

살짝 힘을 주자 바깥으로 먼지가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아, 기사님!”

가까이 있던 첸들러가 내가 칼자루를 잡은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고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건. 칼입니다만, 지금은 사용이 어렵습니다. 뽑으실 수 없습니다.”

“뽑을 수 없다고?”

“예. 장인이셨던 3대 영주께서, 검기를 불어넣지 않으면 칼이 안 뽑히는 기술을 개발하셨습니다. 검기를쓸 수 없는 녀석은 칼도 쓰지 마라,

뭐 이런 건데. 워낙 터무니없는 짓이라 곧 폐기됐습니다.”

“불어넣으라고?”

“예? 아, 네.?”

‘검기.’

[검기 Lv.l을 활성화합니다.]

- 우우우응.

벽에 박혀 있던 칼이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다. 단단히 박힌 석벽 안에서 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 어.?”

챈들러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크리스티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레나는 혼자서 저 안쪽 멀리 들어간 탓에 여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아직 한 번에 뽑히지는 않는다.

잠들어 있는 칼을 일깨우는 시간이필요한 것 같았다.

덜컥거리던 녀석이 서서히 힘을 풀고 내게 몸을 맡긴다.

[경고!]

[스킬: 검기 Lv.l의 남은 출력이2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이 정도면 됐나.’

- 스르릉!

나는 긴 칼날을 천천히 석벽에서 뽑아냈다.

- 우우우응<

[잔여 출력: 15%]

칼을 느릿하게 감상했다.

전체 길이는 2미터에 가까웠다.

날은 제대로 세워져 있지만 칼의 가운데가 너무 두꺼웠다.

[잔여 출력: 13%]

무게를 조금 더 가볍게 하려는 건지, 검신 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몇 개가 뚫려 있었다.

‘특이한 디자인이군.

그 사이를 내가 활성화한 검기가 은은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끌려 검신 전체에 검기를 계속 유지했다.

[잔여 출력: 8%]

검집이란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커다란 녀석이다. 무겁고, 튼튼하다.

- 부응!

2미터가 넘는 칼을 앞으로 휘둘렀다. 강한 풍압이 주위를 쓸어 갔다.

챈들러의 머리카락이 뒤로 확 흩날렸다.

[잔여 출력: 3%]

“뭐, 괜찮아 보이는데.”

들고 다니면서 쓰기는 아주 괜찮을 것 같았다. 골렘 같은 커다란 녀석들을 잡기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챈들러가 예를 갖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검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동안결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헛소리지?”

“그게. 사령술에 이끌려 무덤에서 일어나셨는데도, 이렇게 오래 검기를 유지하실 정도라면 생전에는 검주셨던 게 분명합니다!”

곁에서 크리스티나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달그락.

나는 어깨를 들었다 내렸다.

“그런 착각은 거절하지.”

[잔여 출력: ?%.]

[검기가 강제로 해제됩니다.]

검신에 은은히 감돌고 있던 기운이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실력에 겸손까지.!”

“이 경지가, 순수한. 수련의. 결과라는 말씀이십니까?”

소란이 느껴졌는지, 레나가 저 멀리서 이쪽을 흘끗 바라봤다.

“소란을 피울 필요는.

“아. 비밀이신 겁니까? 알겠습니다! 철저히 지키겠습니다!”

챈들러가 호들갑을 떨었다. 크리스티나도 곁에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 소릴 해도 안 먹히겠군.’

“난 돌아가지.”

크리스티나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벌써 끝내십니까?”

“그래. 이거면 됐다.”

나는 크리스티나를 바라봤다.

수련을 시키면서 녀석과도 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투구도 제대로 벗지 못하고 있던 녀석이다. 스스럼없이 물어 오는 모습을 보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저길 봐라.”

손가락으로 까마득한 안쪽을 멀리 가리켰다. 커다란 배낭을 구해, 안에서 이것저것 주워 담고 있는 레나가보였다.

“대신 다 털어 가는 인간이 있으니까. 나는 이 정도면 됐다.”

어차피 의뢰를 마치면,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는 장소다.

무리해서 담을 필요는 없다.

“레나가 끝나면 불러라.”

“알겠습니다!”

억지로 떼어 놓긴 했지만, 입구에서 아직도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는 챈들러에게 통보했다.

방에서 느긋이 기다리고 있었던 건 결과적으로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레나가 첫 번째 탐색을 끝내는 데는, 무려 일곱 시간이 더 걸렸으니까.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갔다.

챈들러는 나를 볼 때마다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레나의 신경을 긁는 듯했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챈들러와 거리를 둔 탓에 심하지는 않았다.

특사가 묵는 방에서, 시녀들이 저녁 식사를 날랐다.

“내일이군.”

“맞아요.”

- 툭.

로즈마리 솔트를 뿌린 양갈비 접시를 레나 쪽으로 밀어 놓았다.

내 앞에 음식은 없다.

시녀들도 이제 내가 식사하지 않는 것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뭐든 익숙해진다.

나는 조금 초조해 보이는 레나를 바라봤다. 저런 모습은 익숙하지 않다. 오늘따라 별로 식욕이 없어 보인다.

“무슨 일이지?”

“우리, 충분히 대비한 걸까요?”

“뭐가 부족했나?”

“글쎄요. 왠지 모르게 불안해요.”

“불안하면 나 혼자 가든지. 그게 나야 편하기는 할 텐데.”

일부러 그녀를 훈련시켰다.

챈들러는 의뢰 당사자다. 대대로주술사의 노예로 살아왔다. 죽일 기회를 줘야 한다. 크리스티나는 어쨌거나 녀석의 호위다.

레나까지 데려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키워 주기 위해서. 본인이 불안하다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으음.’

문득 불길한 느낌이 든다.

‘비슷한 상황이. 세 번째인가?’

레나는 감이 좋다.

후작이 찾아오기 전 동굴 안에 남아 있을 때도, 푸르손의 추종자들을 찾아갈 때에도 그녀는 내게 몇 번이나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고작 한 성의 지하 던전에서 별다른 일이 있을까 생각할 때였다. 레나의 눈이 의심스러운 빛을 띄었다.

“스승님, 설마.

“설마?”

“저를 빼고 챈들러랑 가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죠.”

그녀의 눈썹이 안쪽으로 날카롭게 모아졌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사망 플래그다.

챈들러 남작의 사망 플래그.

녀석의 죽음에 두 번 연달아 책임이 생기는 건 곤란하다.

“으흠! 그런 건 아니지.”

“저랑 같이 가요. 죽어도 같이 죽는 거니까 괜찮아요.”

시녀들이 식기를 다 치우고 물러갔다. 레나는 내 손가락 마디를 천천히 만지작거리며 차분히 숨을 골랐다.

날카롭게 세워졌던 그녀의 눈썹이,

다시 느슨하게 풀어졌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모두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챈들러의 결의 가대단했다.

레나는 짐을 간추렸는지 좀 더 작아진 배낭을 떴다. 다리와 가슴에 뭔가를 차고 있었다.

‘대단한 준비성이군.’

나는 그리 긴장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력은 이쪽이 압도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쪽이 압도적이다.

가사 상태에 빠진 주술사와 몇 기의 강철 골렘. 유일한 문제는 함께 가는 녀석들의 안전이다.

하지만 반경과 동작 패턴은 대충 다 연습시켜 줬다. 살아남기는 할거다.

백작은 물론, 그 심복인 집사와 시녀들까지 우리를 정성껏 마중했다.

“정말 갑옷은 없으셔도 되겠습니까? 혹시 몰라서 다시 맞췄습니다만.

집사가 고급스럽게 빛나는 풀 플레이트 메일 한 벌을 보여 주며 물었다.

“이걸로 충분하다.”

거절했다. 루비아가 샀던 40로티짜리 갑옷을 적당히 걸쳤다.

어차피 맞을 일은 없다.

골렘들에게 공격을 허용할 정도라면, 애초에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오겠다는 백작을 만류했다.

백작과 손을 꼭 잡고 작별을 나눈 챈들러가 아래로 우리를 안내했다.

- 저벅.

어둡고 좁은 복도에 작은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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