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31화 (131/458)

132화 패치워크 (12)

“벌레들만 지나다니던 길입니다.”

챈들러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현 그라스미어의 영주인 백작.

그가<포옹>당한 이후, 아무도 이길을 다시 걷지 않았다.

제물로 바쳐질 가주家主 혼자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반원의 석조로된 회랑은 무척 길고 음산했다.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챈들러가 든 횃불이 타올랐다. 그러나 석벽 틈마다 스며든 어둠은 지워지지 않았다.

작은 횃불이 지나간 자리 뒤에는 곧질 척한 어둠이 다시 가득 채워졌다.

한참 동안 멎어 있던 오랜 공기가뼈 사이사이를 흘러간다.

“후우-.”

레나가 작게 숨을 쉬었다.

- 달각.

밤톨이도 조심스럽게 걸었다.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녀석은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어쩔 수 없었다. 혼자 놓고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복도의 경사는 부드럽다.

하지만 분명히 빙빙 돌아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내려갈수록 조금씩 더 차가워졌다.

복도 끝에는 불길하고 숨겨진 것이,

희미한 유령의 흔적이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았다.

“여기는 아무도 안 오나?”

“그렇습니다. 챈들러 가문의 피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복도로 들어올 마음 자체를 먹지 못합니다.

그게 바로 주술이고, 결계입니다.”

밸’호멧 아이작.

가짜 주술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기분 나쁜 곳이군.’

복도 양쪽에는 열 걸음 간격으로 횃대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불이 붙은 횃대는 단 하나도 없었다.

햇불은 챈들러가 들고 있는 것뿐.

나선형으로 돌아 내려가는 회랑 양옆의 횃대들은, 바싹 빨아 먹히기라도 한 듯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챈들러가 들고 간 불빛에 생겨난 그림자도 앙상했다. 몸체보다 큰 그림자가 벽을 타고 불길하게 울렁였다.

돌고 도는 복도는 몇 킬로미터나 이어지는 것 같았다.

툭.

챈들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유독 새까만 횃대 앞에 섰다.

“여기입니다.”

그가 새까만 햇대를 손으로 잡고 옆으로 돌렸다. 끼기기긱,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무로 만든 게 아니군.”

“그렇습니다. 비밀 통로 손잡이지요.”

“깊어도 너무 깊은데요. 아무도 못 찾았던 게 이해가 되네요.”

레나가 작게 속삭였다.

- 쿠구구구구궁I석판이 천천히 움직였다. 저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드러났다. 딱 한사람 정도가 들어갈 만한 크기다.

“먼저 가겠습니다.”

챈들러가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마치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선형 입니다.”

모두 그를 따라갔다. 발자국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탐지.’

어디에도 트랩은 없었다. 서너 번을 돌아 내려갔다. 벽 없이 넓게 트인 공간이 나왔다.

“이리 오십시오.”

잠시 계단을 내려갔다.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까마귀 발톱 모양의 손잡이에서 질척한 핏빛 광채가 홀러나왔다.

‘불길하군.’

“결계입니다. 잠시 멈춰 주십시오.”

챈들러는 문 왼쪽 아래를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매끈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보였다.

거대한 까마귀가, 날개 달린 천사들의 눈을 쪼아 먹는 조각이었다.

‘말파스를. 기리는 모습인가.’

챈들러가 준비한 유리병을 열었다.

병에 담긴 자신의 피를 까마귀의 부리 부분에 천천히 부었다.

한 병을 다 부었을 때였다.

까마귀의 두 눈에서 은은한 핏빛기운이 감돌았다.

[네가 바친. 제물을. 받는다.]

피를 한껏 마신 까마귀 부리에서 음침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챈들러는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이제 됐습니다.”

수백 년 전 남부를 지배하던 대주술사 벨’호멧 아이작.

그가 남은 힘을 전부 소모해서 친 결계가 제물의 출입을 허용했다.

- 쿠구구구구구구구.!

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지금까지와 비교되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졌다.

안쪽은 꽤나 밝았다.

‘무덤이라기보다는. 신전에 가깝군.’

대주술사 아이작.

그는 말파스의 권속일 터.

이곳은 원래부터 신전으로 기획되었는지도 모른다.

[벨’호멧 아이작의 전당]

[던전 랭크: B마이너]

[적정 레벨: 81-90]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레벨의 던전입니다.]

[적정 클리어 인원: 1인]

반투명한 메시지가 떴다.

‘던전 취급이군.’

한데 적정 클리어 인원이 1인.

지금까지는 모두 적정 클리어 인원이 많은 경우만 보아 왔다.

갸웃했지만 물어볼 상대는 없다.

주위를 돌아봤다. 허공을 홀어보는자는 아무도 없다. 인간이라고 모두 이런 창이 보이는 게 아니다.

더욱 확실해진다.

“밤톨아, 년 이리 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자루에 담아 놓았다.

“움직이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교감 성공! 밤톨이가 당신의 뜻을 이해합니다.]

K뼈의 군주>의 숙련도가 약간 올라갑니다.]

- 터벅.

크리스티나가 들어가고 나까지 안으로 완전히 몸을 들였다.

“.대단하네요.”

“직접 보니 더 위압적입니다.”

수 미터가 넘는 사방의 조각들은 돌이 아니라 황동으로 제작되어 있었다. 벽과 기둥들도 이야기를 들은 대로 황동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마왕 말파스는 까마귀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모두 금으로 칠할 수는 없었기에 황동으로 타협을 본 것 같았다.

- 저벅.

통로를 지나자 더욱 넓은 원형 공간이 펼쳐졌다. 수백 명의 인간이 여유롭게 서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백작의 이야기대로다.

“골렘들은. 저기 있습니다.”

챈들러가 앞을 가리켰다.

거대한 황동색 골렘 여섯 기가 사방에 큰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는 순간.

골렘 한 마리가 앞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가슴에 새겨진 까마귀 조각상에서 소리가 울렸다.

[제단에는. 오직 한 명의 제물만. 불순물은 진입할 수 없다.]

‘적정 인원이 그 소리였나.’

챈들러 한 명이라면 골렘이 막아서지 않는다. 어쩌면 혼자 안쪽까지간 뒤, 주술사를 죽이고 돌아오면 끝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주술사를 살해할 경우 골렘이 통제를 잃은 가능성이 있으니까.

챈들러가 나를 바라봤다.

“선택해야 합니다.”

이야기한 대로다. 그 혼자 들어가서 주술사부터 처리하거나, 아니면 차례대로 다 부수고 들어가거나.

나는 골렘을 바라봤다.

[기계공학 Lv.3을 사용 중입니다!]

[탐지 Lv.5.]

[집중 Lv.2.]

_ 쿵.

- 쿠구궁.

천천히 다가오는 녀석의 동작 반경과 패턴이 한 번 확인됐다.

약점 부위가 읽혔다. 팔과 다리의 핀이 공격해 달라는 둣 그대로 보인다. 설계도를 확인한 터라 한층 더쉽게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쉽겠는데?’

부수는 쪽이 편하다.

이 정도면 쉽다.

“부순다. 셋이 오른쪽 하나씩. 내가왼쪽 셋을 상대한다.”

나는 왼쪽 셋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이었다.

대답을 들으며 앞으로 몸을 튕겼다.

‘질주.,

- 팟!

가속이 걸린 몸으로 뛰어올라, 곧장 골렘의 팔에 칼을 찔렀다.

- 까강!

‘약한데?’

황동 도금이 벗겨진다.

진회색 강철의 산화된 피막被膜이 칼질 한 번에 뜯겨져 나갔다.

‘녹슬었군.’

- 쿠궁!

다른 골렘 두 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짓쳐 온다. 가볍게 뛰어 옆으로 피했다.

- 끼긱! 끼기긱!

나를 놓치고 방향 전환에 실패한 골렘의 관절이 삐걱거린다. 스스로의 무게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백 년을 움직이지 않았다더니.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졌다.

아무도 지하에 잠든 주술사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있지도 않은 축복에 고개를 조아렸다.

강철 수호자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키워 가고 있었다.

결국.

참고만 있으면 모른다.

싸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럴듯한 황색 도금을 벗겨 보려면 직접 칼을 들어야 한다.

위압적인 누런 칠.

그 안에 자리 잡은 건.

제 무게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삐걱거리는 유물뿐이 었다.

내구도 테스트는 이걸로 끝이다.

녀석들은 모두, 강철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부식되어 있었다.

‘검기.’

[검기 Lv.l 최대출력.]

우우응!

대검이 떨리기 시작했다. 검신에 난 커다란 구멍 사이사이로 실처럼 흐르는 얇은 기운이 서로 엉겨 댔다.

[검기 Lv.l을 활성화합니다!]

[잔여 출력.3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이라면 훨씬 간단히 공략할 방법이 있다. 굳이, 비정상적으로 튼튼해 보이는 이 칼을 골라 든 이유가 있다.

[산성酸性 Lv.5를 발동합니다!]

- 파지이이이이익!

푸른 검기에 투명한 기운이 섞이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절삭력을 가진 검기에 물질을 녹여 버리는 산성이 덧씌워진다.

산酸 속성은 세월을 가속한다.

이미 부식될 대로 부식된.

수백 년 전의 강철 골렘들에게.

최후의 종말을 고하는 조합이다.

- 파사사삭! 치이이익!

철을 부식시키는 기운이 검기를 통해 활활 솟아올랐다. 하지만 칼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렸다. 예전에 주운 낡은 철검처럼 부식되는 기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검기 사용자만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칼. 절삭력은 검기가 해결할 테니, 무슨 짓을 해도 괜찮도록 튼튼하게만 버텨 달라는 느낌의 대검.

- 부우응!

처음 싸웠던 골렘이 주먹을 내려찍는다. 안타까울 정도로 느리다. 한발 옆으로 피한 뒤 왼팔의 핀에 칼을 박았다.

- 퍼벅!

녹슨 핀 주위에 칼이 박혀 들어갔다. 도금이 날아간다.

- 퍼벅!

붉게 산화된 피막이 부서진다.

- 퍼버버벅!

핀이 깨져 버린다.

지하 습기에 오래 방치되어 녹슨 데다, 강력한 산성 검기가 포인트를 제대로 뚫고 들어온다. 당연한 결과다.

‘빠질까.’

패턴과 공격 반경, 속도까지 이미머릿속에 생생히 담아 왔다. 놈이 반격할 때가 됐다.

뒤로 훌쩍 뛰어 피했다.

- 부우응!

골렘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파트너와 엇박자로 한층 더느린 춤을 추는 모양새다.

‘한 번. 두 번 더 찔러도 됐겠군.’

- 콰과과광!

골렘이 휘두른 주먹이 땅에 맞았다. 느리지만 주먹은 강력하다. 맞으면 한 번에 생명력이 흑 깎일 것같다.

굉장한 파괴력.

평범한 인간들은, 주먹 한 방에 즙이 되어 버릴 힘이다.

물론 맞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다른 녀석들에게도 회피를 최우선으로 하라고 교육을 끝내 놨다. 세녀석을 흘끗 바라봤다.

다들 시작은 좋다.

- 부우응!

뒤에서 다른 골렘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놈의 팔위에 가볍게 올라탔다. 수녀에게 흡수한 체술이 자연스럽게 발동된다.

- 타다닷!

팔위를 가볍게 달려 어깨 위에섰다. 바닥에서부터 4미터가 넘는 위치에 있는 목이 눈앞에 보인다.

다른 녀석들에게는 기둥이 되는 두 다리를 무너뜨리고, 팔을 무너뜨리고, 천천히 해체하라고 교육했다. 하지만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면 된다?

‘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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