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패치워크 (13)
해제한 산성 검기를 다시 일으킨다.
- 파사사삭! 치이이익!
- 콰직! 콰직! 콰직!
수백 년 동안 한자리에 서, 강제로 주술사를 지켜 왔다는 골렘. 대장장이들의 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골렘.
녀석의 목 부분을 노렸다.
여기를 따고, 마력액인 루-름을 흡수하면 싸움은 끝이다.
一 파갓!
검기가 도는 칼을 목 깊숙이 박았다. 피막이 깨져 나갔다. 정확한 포인트에 칼날이 들어갔다.
- 끼긱! 끼이익!
목을 지렛대처럼 들어 올린다.
- 퍽!
작동을 멈춘 골렘이 술 취한 것처럼 잠시 휘청거리다가,
- 쿠구궁.
바닥에 쓰러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오른다. 빼곡하다. 웹슬링거 때보다 더 많은 레벨이 오르는 듯했다.
여기도 던전이고, ‘접근조차 할 수없다’고 설명되는 장소다. 이 정도레벨이 오르는 건 자연스럽다. 별다른 고민 없이 전부 지혜에 투자했다.
‘골렘이라.
실제로 부딪쳐 보니 힘도, 속도도 내 쪽이 압도한다. 검기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현명하다.
지혜가 7 올랐다.
쓰러트린 녀석의 머리에서 마력액이 흐른다. 준비한 병에 담는다.
고블린 심장에서 혈석을 착취하던 인간들과 정확히 같은 행동이다.
이게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변명의 여지도, 변명의 의지도 없다.
동력이 다 빠진 골렘의 잔해가 자못 음산하다.
나는 모른다.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당을 지켜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수백 년 동안 가만히 서 있었는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조건에만 반응하는 기계일 수도 있다. 주술사 벨’호멧 아이작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켜 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외면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들을 파괴하고 약탈한다.
내 행동에는 한 꺼풀의 위선도 없다.
어쨌거나.
- 부우응!
짓쳐 오는 골렘의 주먹에 맞아 부서질 생각도 전혀 없다.
교차되는 두 발의 주먹 아래로 몸을 숙였다. 강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덩치는 거대하지만, 결국 합이 맞지 않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전술 Lv.l이 활성화됩니다!]
‘이러면 어떨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놈들의 주위를 빙빙 돌며 신경을 건드렸다.
- 부우옹!
삐걱거리는 골렘들이 거세게 주먹을 휘둘렀다. 두 골렘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주먹을 유도했다.
- 휘릭.
놈들이 힘을 주는 그 순간에 슬쩍 아래로 빠져 돌았다.
- 까가강!
- 쿵!
서로 주먹을 날린 두 기의 녹슨 골렘이 뒤로 쓰러진다.
[전술 스킬의 숙련도가 미세하게 올라갔습니다!]
‘이 스킬도 쓸 만하군.’
두 녀석의 처리도 간단했다. 곧바로 뛰어들어 목을 분리했다. 쓰러진골렘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력액도 다 담아냈다. 두 번 다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게. 루-름이라는 건가?’
투명한 병에 담긴, 찰랑거리는 은빛 액체를 바라봤다. 레나에게 전해줄 물건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기이한 은빛 액체는 1.2L라고 새겨진 부분까지 찰랑거리고 있었다.
‘지부장은 되겠군.’
세 사람도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큰 위기 없이 골렘 한 기를 처리하는 중이다. 하지만 집중한 탓인지 내 싸움은 지켜보지 못한 것같았다.
위기에 처하면 도와주려 했지만,
다들 녹슨 골렘 한 기 정도는 그럭저력 처리하고 있었다.
- 까앙!
크리스티나가 골렘의 주먹을 대검으로 쳐냈다. 뒤로 네 발자국 물러나긴 했지만, 저런 식으로라도 힘겨루기가 되는 게 제법.
- 까가강!
챈들러가 핀 부위에 칼을 박는다.
- 철컥!
- 퍼억!
레나가 프레스 장치를 이용해, 주저앉은 골렘의 목을 따 버린다.
‘제일 빠르군.’
그녀가 숨을 몰아쉰다. 이마에 땀이 흥건하다. 여유로운 싸옴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미 무너진 골렘 세 구 근처에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레나가 눈만 끔백이다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설마 벌써. 끝내신 건가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는 바닥에 무너진 녹슨 골렘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쩌엉!
어느새 크리스티나와 챈들러는 2 : 2로 싸우고 있었다.
합격 형태로 싸움이 전환되자 호흡이 맞는 둘이 꽤 유리해졌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지지부진한 건 마찬가지다.
- 피이이이익!
산 속성의 검기를 일으킨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돌아보니,
곁에 있던 레나의 몸이 굳으며 눈이 커다래져 있었다.
“스승님.r이미 칼이 부식되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봤을 터다.
‘이건 좀 색다른가?’
나는 칼을 바라봤다. 연푸른 검기자체가 연기를 내며 부식되며, 기묘한 오오 라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게. 대체.!”
[잔여 출력 35%.]
미안하지만 대꾸할 시간은 없었다.
검기에 산 속성까지 불어 넣으면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여 주지만, 그만큼 유지력이 약해진다.
[참격 Lv.l을 발동합니다!]
한 번에 남은 출력이 흑 줄어든다.
- 치지지지지직!
일단 칼부터 박고 봐야 한다.
크리스티나가 상대하는 골렘의 왼쪽다리 핀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 퍼적!
아직 한 번에 베어 내는 건 무리다. 하지만 거대한 칼날이 핀 부위에 깊숙이 박혔다.
- 쿵.
녀석이 주저앉았다.
부피는 내 열 배.
무게는 스무 배가 되는 거대한 골렘이 칼질 한 번에 간단히 무너진다.
칼끝에서 타오르는 검기가 치지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검신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맴돈다.
부서진 강철의 단면에 내 모습이 어지럽게 비친다.
멈추지 않고 그대로 칼을 꽂아 목을 따 냈다. 녹슨 목이 따지며 마력액이 흘러내렸다. 골렘이 동작을 멈췄다.
크리스티나는 다섯 발자국 뒤로 물러난 채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살짝 겁먹은 표정이 바닥을 흐르는 은빛 마력액에 비춰진다. 레나에게 이야기를 들은 대로다. 루-름은 땅에 흡수되지 않고 표면 위를 그저 흐른다.
“아.!”
레나는 탄식을 내지르면서도 재빨리 달려가 은빛 마력액을 병에 담았다.
- 까강!
챈들러를 공격하는 녀석의 팔을 향해 칼을 꽂았다. 막이 뜯어졌다. 덧댄 판이 깨지고 강철 핀이 어긋났다.
- 피릿!
몸에 회전을 걸어, 정강이 핀 부위에 칼끝을 강하게 찔러 넣는다.
- 퍼벅!
골렘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졌다.
목 틈새에 정확히 칼을 꽂고 들어올렸다.
- 카앙!
골렘의 움직임이 멈추며 마력액이홀러나온다.
- 쿵!
몸이 쓰러지며 나도 다시 바닥에 착지한다. 하나씩 돌아보진 않았지만, 크리스티나와 레나, 첸들러 모두 침착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등 뒤에서 그들의 경악이 느껴진다.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떠올랐다. 문득 레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스승님.”
“말해라.”
“저희는. 이러면 왜 온 걸까요.?”
“혼자서. 다.
‘좀 과했나.’
레나가 처리한 한 기를 제외하면전부 내가 해체했다.
기껏 잡으러 온 녀석들에게 너무 훼방을 놓은 건지도 모른다.
“아, 미안하군.”
“아뇨! 그게 아니라. 저희가 너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아서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레나의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보고 싶다는 생각.
제멋대로인 기준으로 만들어진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
세계가 ‘예정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방금도. 그냥 내가 경험치를 다 먹으려고 한 건데.’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빼곡하다.
‘상태창.’
[Lv.39(173)]
[체력: 61](new!)
[힘: 73]
[민첩: 71]
[지혜: 61](new!)
다섯 마리의 골렘을 잡은 결과로 레벨은 총 21이 올라갔다. 지혜와,
수행 중 잔뜩 깎인 체력에 주로 분배 했다.
주위를 둘러본다.
모두 숨을 거칠게 내쉬며 칼을 땅에 짚었다. 모두 피로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가져온 폭탄들도 쓰지 않은 채.
던전을 지키는 골렘 여섯 기를 모두 처리해 냈다.
생각보다도 쉽다. 그만큼 내가 강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 저벅.
몸을 돌렸다.
자루에 담아 꼭 묶어 놓았던 밤톨이를 안아 들고 몇 번 쓰다듬었다. 녀석이 마구 달각거리며 입을 열었다.
[밤톨이가 싸우고 싶어 합니다!]
“년 안 돼. 너무 위험해.”
- 달각! 달각!
밤톨이가 작은 앞발을 들어 올렸다. 가볍고 여리다. 살과 털이 있을때는, 이 앞발도 지금보다는 두툼했겠지.
녀석을 바라보며 레나가 말했다.
“같이 걸어가도 되지 않을까요? 골램은 다 처리했으니까요. 자루에만 있으면 답답하긴 할 텐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품에 밤톨이를 안고 챈들러에게 물었다.
“방어는, 이게 끝인가?”
챈들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에게 듣기로는 그렇습니다.
저 앞으로 건너가면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나옵니다.”
“아무것도 없는 장소?”
“예. 넓은 홀입니다. 그곳을 지나면 주술사가<껍질>속에 가사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지하 무덤은 차가웠다.
그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혔던 땀은 이미 날아가 있었다.
“죽일 준비는 된 거겠지?”
“그렇습니다.”
첸들러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제 가슴 안쪽주머니를 잠시 더듬었다.
‘뭘 가져 왔나?’
잠깐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레나는 골렘들에게서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마력액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가 갖고 있는 유리병도, 내가갖고 있는 유리병에도 모두 1L를넘는 은빛 액체가 찰랑거렸다.
“생각보다 많군. 네 할 일은 이제 끝난 건가?”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수백 년 동안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었던 탓에, 루-륨을 소모할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한 눈빛을 띠고 있다.
‘다시 올라가라고 할까?’
그녀는 용건이 끝났다. 위로 올라가도 좋다. 하지만 이야기해 봤자듣지 않을 거다. 생각에 빠져 있는사이에, 곁에서 챈들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시겠습니까?”
“그러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안쪽으로 옮겼다.
‘이번 생은. 너무 잘 풀리는데.’
인간의 내성內域. 그것도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까지 들어오다니, 처음의 삶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달그락거리는 해골병사는 성 근처에만 가도 두개골이 부서져야 하는 것 아닌가?
대도시.
나를 적대하는 인간들로 가득 찬 곳.
그것도 가장 내밀하고 폐쇄된 곳을안내를 받아 걸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당연한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완전한 외부자다.
이걸 챈들러 가문의 약점으로 잡고 협박할 입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골칫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을 만한 무력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음. 오히려 약간 싸게 일해 주는 건지도 모르겠군.’
후작 같은 괴물을 제외한다면.
나는 인간이 철저히 지배하는 이세계에서도, 자리를 억지로 비집고 앉을 수 있을 만큼 강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렇게 속으로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던 순간이었다.
- 쿠르르르르 !
- 쿠구구궁! 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