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33화 (133/458)

134화 패치워크 (14)

거짓말처럼 석벽 전체가 움직였다.

“스승님! 앞이요!”

레나의 외침을 듣고 앞을 바라봤다. 앞뒤 통로가 동시에 막히고 있었다.

- 팟!

몸을 솟구쳐 앞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석벽이 움직이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 쿠르르르르.I눈앞에서 한 치의 틈도 없이 석벽이 닫혀 버렸다. 움직이는 건 앞뒤통로만이 아니었다. 양쪽 석벽 전체가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 퍼벅!

- 퍼버벅!

- 퍼버버벅.!

사방에서 무수한 호리병이 바닥에 쏟아지며 깨지기 시작했다.

- 화아아악!

깨진 호리병에서 솟아 나온 연기가 통로를 자욱이 메웠다.

뒤에 떨어져 있던 녀석들을 살펴봤다. 하지만 자욱한 연기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부술까?’

이 무덤을 다 때려 부수면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며칠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챈들러도 레나도 죽어 버리면 여기 온 목적 자체가 희미해진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럴 수는 없지.!’

살아남아야 한다. 살려야 한다. 죽더라도 이 장소에 대해 하나라도 더알아내고 죽어야 했다.

이런 함정에 대해 알려 주지 않은 영주에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사실 녀석도 반항해 본 적이 없는데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챈들러 가문은 대대로 악몽에 순종해 왔던 것이다.

‘곤란하군.’

나는 자욱이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단순히 연기로 끝날 리는 없다.

이 자체로 독연毒煙이거나.

목숨을 노리는 놈들이라도 어딘가에서 나타날 게 분명했다.

연기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 부응!

거대한 양손 검이 빠른 속도로 내게 내리쳐 왔다.

한 손으로 칼을 들어 곧바로 쳐냈다. 하지만 손아귀에 제법 충격이 있었다.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나야했다.

‘매복인가?’

*“나는■나?는.99크리스티나였다. 말을 더듬고 있었다. 일단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피어오른 연기는, 적어도 한번 들이쉬면 곧바로 절명하는 독연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곧 의문이 들었다.

‘이 정도로 강했나?’

연습 때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속도고 힘이었다. 방금의 검격은 챈들러보다 빨랐고, 녹슨 골렘보다 강했다.

- 피릿!

파공음이 다르다. 크리스티나는 두개골을 넘어 바닥까지 쪼갤 둣 강하게 양손검을 휘둘렀다.

- 까앙!

두 손으로 대검의 칼자루를 잡고 튕겨 냈다.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진 양손검의 강력한 풍압에 하얀 연기가 흩어졌다.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광화.?’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섬껏한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우람한 팔 근육은 우툴두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채 얼굴에 힘줄이 달리고 있었다.

‘생소한 표정이지만. 어울리는지도.’

그녀의 공격은 계속 날카로워졌다.

단순한 힘만이 아니라 속도와 검의 센스까지도 놀라웠다.

- 피리릭!

강하게 휘두르는 양손검에 기술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 껑!

부딪친 뒤 비스듬히 칼을 기울여공격을 흘려 내더니, 한 걸음 다가오며 손잡이 끝 폼멜 부위로 나를 가격하려 들었다.

폼멜을 손으로 쳐내자 칼자루의 긴 가드로 연달아 두개골을 찍어 왔다.

“제법인데?”

픽 소리가 울릴 정도로 발로 강하게 정강이를 걷어차자 그제야 크리스티나는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아파서 물러났다기보다, 힘에 뒤로 떠밀린 느낌이었다.

“의식이 없나?”

“세상의. 악을. 처단하겠다.

크리스티나는 의미 모를 소리를 웅얼거리곤, 줄줄이 붉은 안광을 홀리며 다시 내게 덤벼들었다.

무심한 성격의 아버지가 보내 준 검술 교습소에 여자라고는 크리스티나 혼자였다.

함께 배우는 다른 남자아이들은 무척 서툴렀다. 힘도 약하고 몸도 약했다.

대련이라도 붙으면 다치지 않게 신경 써 주어야 했다. 크리스티나는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휘두르는 거, 가르쳐 줄까?>

<흥! 오우거 주제에. 얘들아! 가자!>

<에이! 냄새나!>

허수아비도 제대로 때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호의는 언제나 거절당했다. 집에서도 상황은 낫지 않았다.

<발이 아파요.>

<그래도 이런 신발을 신으셔야 해요.

참다 보면 발도 길들여진다니까요?>

옷은 불편했다. 거들은 숨이 막혔다. 신발은 발가락을 잔뜩 구부리지 않으면 신을 수 없었다.

<어휴. 내 팔자야. 인형 같은 아가씨면 좀 좋아? 아가씨가 예뻐야 입힐 보람이 있는데.>

<어떡하니. 불쌍하다. 키가 너무 커서 맞는 옷도 없다며?>

<뭐, 그래도 얌전하긴 해서 괜찮아.>

<차라리 남자 옷을 입혀 볼래?>

<사실 남자 옷도 맞는 게 별로 없을 거야. 호호호.!>

눈도 귀도 쓸데없이 예민했다. 방에 있어도 시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칼을 버릴 수는 없었다. 혼자 휘둘렀다. 혼자 책을 읽었다.

그녀는 책과 칼의 세계에 살았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다른 인간들을 대하는 게 더욱 힘들어졌다.

<약자를 보호하고 네 스스로 그들의 옹호자가 되어라.>

<불의와 악에 반대하며.>

검은 안개가.

어두운 흑막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칼을 들었다.

.,

머릿속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처음 기사도 소설을 읽었을 때만큼 달콤한 목소리였다.

죽여야 했다.

정의가 실현된다.

거대한 양손검을 머리 위로 든 채,잠시 응크려 자세를 낮춘 크리스티나가 몸을 솟구치며 칼을 내리쳤다.

눈동자는 만월의 라이칸스로프처럼완전히 붉게 풀려 있었고 몸은 잠재력을 다 폭발시키는 듯 빠르고 강하게 움직였다.

‘이게 폭주 상태라는 건가? 평소에 얼마나 자신을 억누르고 지내면.!’

수련 과정에서 본 크리스티나가 아니었다. 적어도 두 배는 빠르고 강했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낼 수 있는 힘과 속도에 강한 제약을 두는 게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공격력이다.

- 까앙!

챈들러보다 훨씬 더 강하다.

에라스트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고 끝날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칼과 칼이 맞부딪쳐 불을 뿜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을 어울리다 문득정신을 차렸다.

이 인간 여자와의 대련을 놀이처럼 즐기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오래 끄는 건 곤란해.’

레나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 부우옹!

다시 한 번 칼이 내리쳐졌다.

- 끼기기기긱!

왼쪽 팔꿈치로 검신을 슬쩍 받치며 왼쪽 아래로 대검을 흘려 냈다. 대검이 바닥을 때릴 때 왼팔을 뻗었다.

L득!

크리스티나의 손목을 휘감듯이 꺾자 관절 꺾이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그녀는 근력으로 반항하려 했다. 손목을 옆구리에 끼어 제압한 채, 대검 손잡이 끝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세게 내리쳤다.

- 픽!

크리스티나가 정신을 잃고 몸을 축늘어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앵콜 쇼라도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다.

‘.곤란하군.’

움직임을 보아 얼마 후면 깨어날 것 같았다. 달리 묶을 만한 것도 없었다.

크리스티나의 손목을 꺾은 채 옆구리에 끼고 있을 때였다.

- 껑!

자욱한 연기 저편에서 다시 한 번 칼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레나다!’

서둘러야 했다.

- 타다다닥!

크리스티나를 멀리 떠밀어 놓고 곧장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갔다.

기합과 함께 강한 금속음이 들렸다. 칼부림이다. 하나는 레나고, 하나는 첸들러일 확률이 높다.

‘연기 때문인가.’

둘 다 크리스티나처럼 미쳐 있을 거다. 나와 달리 그들은 한순간도 숨을 들이쉬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 부응!

검면으로 일으키는 풍압에 자욱한 흰 연기가 헤쳐졌다.

보이는 광경은 독특했다.

‘.까마귀?’

음산한 컨셉의 가면무도회라도 참석한 것처럼 긴 부리의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자가 있었다.

분장 시간이 부족했는지 팔다리나 몸은 덮지 않고 얼굴과 목 부분만 새까만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챈들러와 까마귀 가면은 서로 칼을 겨누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 스쳐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까마귀 가면이 한층 더 지쳐 보였다.

‘레나. 가 맞는 건가?’

- 피리릭.!

까마귀 가면은 커팅 레이피어를 겨눈 채 챈들러를 아래위로 교란시키고 있었다. 칼은 그녀의 것이 맞다.

하지만 커다란 까마귀 가면의 의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혹시 연기가, 그녀를 말파스의 권속으로 변화시켜 버린 걸까?

- 파르르.!

까마귀가 쥔, 레이피어의 잔상이 빠르게 흔들렸다.

- 부응!

챈들러가 몸을 숙이며 칼을 강하게 올려쳤다. 까마귀는 레이피어로 챈들러의 도刀를 아래로 휘감듯 누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 피리리릭!

빠른 스냅에 레이피어의 칼끝이 어지럽게 원을 그렸다. 잔상을 만들던레이피어가 한 점으로 모아지며 챈들러의 다리를 찔러 갔다.

‘급소를 피했다.’

분명히 의도적인 행동이다. 크리스티나처럼 광화된 모습이 아니었다.

- 쨍!

챈들러는 레이피어를 통째로 쳐내며, 까마귀의 목을 깊숙이 베어 내려 했다.

레이피어 손잡이로 도를 막아 낸 까마귀가 세 걸음을 튕기듯 물러났다. 그리고 소리쳤다.

[스승님! 관전만 하시기예요?]

목소리가 둔탁하게 울린다. 하지만 누구인지 알기엔 충분하다.

“레나?”

[겨우 이거 하나 썼다고. 저를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다시 한 번 둔탁한 반향이 일어났다. 가면을 써도 알면 가면을 왜 쓰는 거냐는 물음을 할 여유는 없었다.

- 깡!

챈들러가 다시 까마귀 가면을 날카롭게 베어 갔기 때문이다.

나는 대검으로 강하게 챈들러의 칼아랫부분을 쳤다.

거대한 칼이 정확히 가드 위를 치자 챈들러는 충격에 주저앉았지만,

곧 이를 악물고 나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눈은 꽃씨가 터진 듯 붉게 물들었다. 크리스티나와 같은 현상이다.

- 휙!

빠르게 들어오는 사선 베기를 한 번 막아 냈지만, 챈들러는 튕겨진 반동을 이용해 칼을 270도 뒤집어 아래에서 위로 팔을 베어 왔다.

홈잡을 데 없는 정석적인 기술이다.

웬만큼 민첩한 녀석이라고 해도, 팔한쪽이 깊게 베어지거나 뒤로 아예 주저앉아 자세가 무너져야 한다. 물론, 나는 그냥 대검을 살짝 내린다.

‘흡착.’

- 철컥!

날아오는 칼날이 살짝 내린 대검에 그대로 붙어 버린다.

- 픽!

칼을 쥔 챈들러를 흑 당긴 뒤 그대로 걷어찼다. 깔끔하게 먹힌 발차기에 챈들러가 도를 놓치고 몸이 붕떠서 날아간다.

- 털썩!

하지만 쉽게 기절해 주지 않는다.

녀석은 바닥에 뒤로 쓰러지고도 움찔거리며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무슨 꿈이라도 꾸는 건지, 녀석이 날 누구로 착각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다.

伴우.]

곁에 선 까마귀 가면에서 긴 한숨이 울려 퍼졌다.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작은 폭탄이 쥐어져 있었다.

[의뢰인을 날려 버릴 뻔했네요. 전당 사용권이랑 같이.]

“으음.”

싸움은 그녀가 불리했다.

여차하면 챈들러를 폭사시켜 버릴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챈들러와 싸우는 자는 당연히 레나일 수밖에 없었다. 하필 말파스의 신전에서 까마귀 가면을 쓰고 있는 탓에 경계심을 가져 버렸다.

툭.

까마귀 부리를 손으로 잡았다. 손에 까슬까슬한 질감이 느껴졌다.

“신기한 가면이군.”

길다란 부리 안에 뭔가 잔뜩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읍.! 읍읍.!]

가면을 쓴 레나가 손을 내저었다.

“응?”

[거기. 읍! 숨 쉬는 데예요!]

부리가 응응거리며 울렸다.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갔다.

[파하. ? ? 파하.]

“이게. 대체 뭐지?”

[방독면이에요. 세상은 악취로 가득하고 인간은 점점 더 늘어만 나는데, 이런 거 하나쯤은 갖고 다녀야죠.<전당>에서 주웠어요. 뭐가 탁,

터지자마자 바로 썼죠.]

“그런 게 있었나.”

그녀가 일곱 시간 동안<전당>을뒤진 게 헛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쉽게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봐야 귀찮다고 갖고 오지도 않았겠지만.]

이 연기를 마시고 챈들러도, 크리스티나도 눈이 붉어지며 날 공격했다. 레나도 저 가면이 없었으면 그들처럼 변했을 거다. 나는 바닥에서 꿈틀대는 팬들러를 보며 말했다.

“저 녀석에게. 좀 밀리던데? 광화 탓인가.”

[으옷.! 방독면을 쓰고 있으니까 그렇죠! 이런 건 그냥 쓰고만 있어도 답답하다고요. 전투력이 확 떨어져요.]

레나가 양팔을 앞으로 뻗어, 굳게주먹을 말아 쥐고는 바르르 떨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진다니까요!]

어서 납득하지 않으면 손안에 쥔 폭탄으로 챈들러를 날려 버릴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군.

나는 적당히 납득하기로 했다.

[그래도 방호 효과는 좋아요. 잠시 만요. 일단 묶어 놔야겠어요.]

그녀는 폭탄의 도화선을 정리했다.

가방에 손을 넣어 커다란 원판을 꺼냈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저것도<전당Hㅣ서 챙겨 온 걸까?

- 끼긱. 끼기긱.

원판 한쪽에서는 새까만 쇠줄이 끊임없이 나왔다. 레나는 칠흑의 쇠줄로 챈들러의 손목 발목을 꼼꼼히 꽉꽉 묶어 갔다.

포박이 능숙하다. 작업이 여유로운지, 긴 까마귀 부리에서 레나의 목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나온다.

[이 연기, 꿈에 빠지게 만드는 연기 같아요. 챈들러 저 인간, 엄마가 어쩌고 하면서 절 공격하던데요.]

“으음.”

[크리스티나는요?]

“저쪽에.”

첸들러를 다 묶은 레나가, 크리스티나도 꼼꼼히 관절을 꺾어 포박해가며 말했다.

[그런데. 밤톨이 못 보셨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