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No Sugar in My Coffin (6)
= 루-륨이 있는 곳을 안다고! 내가 안내하마!
놈의 말에 경계심부터 들었다.
[못 믿겠군. 바닷속에 잠기기 싫어서 별소릴 다 하는 거 같은데.]
= 나를 왜 못 믿어! 마력 회로를 아무나 새길 줄 아느냐? 명계의 장막을 누가 뚫을 수 있겠느냐?
=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내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마.
아이작은 무척 절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실력을 못 믿는 게 아니지. 다른 게 문제라서.]
놈은 챈들러 가문의 골수를 대대로 빨아먹고, 챈들러 부자의 꿈을 조작해서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
그리고 무덤가에서는 단 한 톨의 거리낌도 없이 내 영혼을 봉인시키려고 했다. 못 믿는 게 당연하다.
= 뭐? 야, 내 인성이 어때서? 나만 한 참인성이 없거든?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정작 나는 그런 단어는 꺼내지도 않는데, 아무래도 다른 데서 무수히 들어 본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인성이 라.,
그 단어를 가만히 곱씹고 있을 때였다.
“스승님? 혹시 주술사랑 대화하고 계시나요?”
레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놀라운 눈치였다.
어정쩡하게 침묵하고 있는 걸 보고 단번에 알아첸 모양이었다.
“아, 미안.”
“아니에요.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혹시 불이 필요하시면.?”
레나가 예메라의 촛대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에 전부 감싸 쥐어지는 작은 크기다.
달빛이 은촛대의 뾰족한 침 끝에 이슬처럼 맺혔다.
“붙일까요?”
그때 였다.
= 어이! 저년도 내 말을 들을 수있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 줄까?
아이작이 내게 말을 걸었다.
약간 의아했다. 놈이 보여 준 역량을 생각하면 그것 자체는 크게 놀랍지 않다. 하지만 놈이 앞장서 손을 내미는 게 신선했다.
[웬일로?]
= 기본적인 신뢰 관계를 좀 형성하자고. 그래야 앞으로 문제가 덜 발생하지 않겠냐? 부탁이니까. 서로 진심으로 대하자고. 다짜고짜 불부터 붙이려고 하지 말고. 응?
[음.]
= 제발 좀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래야 말도 잘 나올 거 아니야?
나는 레나를 잠시 제지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 네가 의식을 집중해서아이작은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나를 소통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꼭 필요한 거냐?]
= 그래! 반드시 네가 끼어야 돼.
그러니 내가 널 해치겠냐? 아무리 멍청하다지만 생각이란 걸 좀 해 보도록 해라. 네가 없으면. 나는 영원히 여기 갇혀 있어야 된다고.
[.으음.]
나는 레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요. 연결해 주세요. 그럼 제가 직접 물어볼게요.”
나는 둘의 정신을 연결했다.
= 들리느냐?
“스승님? 얘예요?”
= 쥐방울만한 년이 무엄하구나. 남부 열두 도시의 지배자, 벨’호멧 아이작이 이 몸이니라.
“지금은 스물네 갠데. 되게 옛날분이네. 제대로 도움이 될까요?”
= ???이런 싸가지 없는 게!
어쨌건 레나가 아이작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확인된 셈이다.
“뭐, 그래도 유명한 분이시니까.”
= 으흠. 그렇다. 내 이름은 들어보았느냐? 뭘 모르고 무례하게 군 행동은 괘씹하나,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해 주마.
레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다짜고짜 심문부터 들어갔다.
“루-륨을 구할 수 있는 곳을 안다고 하셨죠?”
= 그렇다.
“그 전에, 일단 알고 있는 던전 정보들부터 쭉 불어 보세요.”
= 던전. 정보를 원하느냐? 루-륨이 있는 곳부터.
“일단 던전부터. 편하게 해 줄 때잘합시다. 서로 힘들어지지 말고.”
‘왜 내가 무섭지?’
결빙 마법도 쓰지 않았는데 근처공기에 살얼음이 끼는 것 같았다.
레나는 아이작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몰아쳤다.
“던전 랭크, 위치, 함정, 출현 몬스터, 보상.”
= .어쩌라고?
“하나라도 거짓이 들어가거나, 진실이 빠지면 바로 달굽니다. 뭔가 조금이라도 수상하게 느껴져도 바로 달궈요.”
“불어 보세요.”
“제가 아는 거랑 다르네요. 거긴불 함정인데, 제단에 향유를 바치라고요? 뜨거운 거 좋아하세요?”
- 화?르르!
= 힉, 끄, 끄이이익, 으아아아악!
말이! 말이 잠깐 잘못! 으아아악!
“에이, 참아야죠. 300살이나 드시고 뭘 그렇게 아파하세요?”
달궈진 금속 메달이 부들부들 떨어댔다.
애처로운 광경이었다. 직접 말이 통하게 되면, 말이 통하는 영혼에게 심한 짓은 못 하지 않을까 생각한내가 바보였다.
처음에는.
던전 정보부터 물어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부터 차근차근 질문한다.
거짓이 나오면 곧바로 예메라의 촛대를 사용해 혼을 구워 버린다.
나중에 질문할 중요한 부분에서,
거짓말을 못 하게 하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닌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기엔 너무 즐거워 보였다.
레나는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메달을 세심하게 달궈 갔다.
‘내가 다 괴롭군.
아이작이 내뱉는 비명이 그녀에게는 숙련된 테너의 훌륭한 독창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레나는 최상의 흡족함을 느끼는 음악회의 관객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생에도 절대 적으로 돌리면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심한 거 아닐까? 그만하는 게 어떨지.
레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tt ㅇ ”
■표.
그녀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이 메달에 잠겨서 저 바다아래 가라앉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이 녀석이 담긴 메달이 천 개쯤 있었으면 좋겠어요.”
“.천 개나?”
“네. 지금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망가뜨릴까 봐 너무 신경 쓰여요.”
온몸에 오싹한 한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슬슬 정리됐네요.”
레나가 뭔가를 꼼꼼히 표시한 지도를 보며 말했다. 루-륨이 숨겨져 있다는 놈의 교단 위치까지 전부 받아= 으윽흑. 끄흑억윽. 흑흑.
“음. 그렇군.”
사실 정리됐는지 안 됐는지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투명한 태양빛이묘지 곳곳을 비쳤다.
“햇빛이 참 화사하네요.”
“???맞아. 화사해.”
밤새 아이작의 비명을 듣고 있자니,
레나의 말에 토를 달면 안 될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라도 수작을 부릴까 봐 유심히관찰했지만, 아이작은 이미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녀석이 역살을 맞은 주술, 영혼봉인은 가진 능력까지 전부 봉인하는 술법인 모양이었다.
아이작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그냥 소멸이나 시키지 그랬냐.]
= 흑흑. 흑. 끄흑?
“스승님?”
“아, 그래.”
“정보는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제 선에서 검증이 어려운 게 많아요. 저. 원장님께 도움을 요청해야겠어요.”
“.원장이라고?”
서늘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네. 제가 도움을 받았던 분이에요.
보육원 원장으로 가장한 T&T 간부분이죠.”
“정체가 어떻게 되지?”
“그게. 어. 음. 놀래켜 드리려고 했는데.
레나가 잠시 머뭇거렸다.
“슬라임 인가?”
잘 정리된 그녀의 눈썹이 위로 치켜져 올라갔다. 한 손을 가슴에 얹으며 자세를 딱딱하게 굳혔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슬라임에게 너도, 나도 온몸이 녹아서 죽었다고 말해 봐야 믿을 리는 없었다.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됐지. 그쪽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꼭 놈을 통해서 검중을 해야 되는 건가?”
슬라임은 T&T 이너 서클의 멤버다.
녀석이 연관되면 푸르손의 추종자들이 우리를 구속하려 들 확률이 매우 높았다. 꺼림칙했다.
‘회유하려고 하겠지. 거절한다면.
이너 서클의 간부들이 직접 우리를 살해할 거다. 그들과 연관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간접적으로 어딘가에서 사찰이 들어오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레나는 내가 허투루 하는 소리가아니라는 걸 즉시 알아챈 듯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가능해요. 공식적인 루트가있거든요. 엠버의 본부랑 통하는 루트요. 하지만 그쪽으로 가려면 좀 멀어요. 수도까지 가야 되거든요.
원장님 쪽이. 확실하긴 한데.”
선택해야 했다.
슬라임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하지만 아이작이 끝내 거짓 정보를 뱉었을 가능성도.
슬라임과의 접촉이 의외로 뒤탈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양쪽 모두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수도까지 가기는 너무 멀었다. 나는 레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원장님이 확실히 꺼림칙하신 거죠?
그럼 그 선택지는 없앨게요.”
레나는 지도 두 군데를 손으로 짚어갔다. 현재 있는 묘지에서 서남쪽에 있는 한 지점과 수도였다.
“수도까지는 북쪽으로 14일.”
“아이작이 말한 교단까지는 서쪽으로 이틀 걸려요.”
“수도에서 정보를 검증받고, 다시교단으로 가면. 비스듬하게 15일정도 걸리겠죠.”
“비밀교단이니까, 수도 본부에서정보를 갖고 있다는 보장도 없고요.”
“동선이 너무 비효율적이군.”
“네. 확실히.”
“교단을 바로 찾아보자.”
마차는 서부를 향해 달렸다.
아이작이 가르쳐 준 최면을 사용하자 뒤쪽에서 말 세 마리가 나란히 우리를 따라 달렸다.
최면 스킬과 암시 스킬.
두 가지는 안타깝게도 아이작과 함께 전부 빠져나가 있었다.
다른 귀속 스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녀석이 가르쳐 주는 대로 손을 움직이자, 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암시에 빠뜨릴 수 있었다.
= 어떠냐.? 쓸 만하지?
[시끄러우니까 부를 때만 말해.]
!
하루씩 녀석들을 교대해 가며 꼬박사흘을 달렸다. 사흘 정도는 가뿐하다는 듯 말들은 피곤한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광활한 서부 사막지대에 조금씩 가까워져인지, 겨울이 가까워져인지공기가 조금씩 메마르기 시작했다.
예정된 전쟁이 가까워지는 탓인지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들른 서남부의 작은 마을에서는 낙타를 팔고 있었다. 교단은 제법 외진 곳에 있었다.
“사막 쪽으로 가십니까? 여기서 더서쪽으로 가면 낙타 값이 오를 텐데, 말들은 슬슬 정리하시고 낙타로 갈아타십시오.”
“아니요. 이제 남쪽으로 갈 거니까 괜찮아요.”
“그러십니까? 그쪽은 정글인데.
정글 탐험용 넓적칼 한번 보시겠습니까? 있으면 참 좋은데 없으면 정말 아쉽거든요.
아이작이 말한 교단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에는 상인 꿈나무가 하나 자라고 있었다.
가격도 제법 양심적이었고, 사막이나 정글로 가는 여행자들이 혹할 만한 물건들도 구해 놓고 있었다.
레나는 돈을 넉넉히 쳐서 계산해주었다.
“물건도, 가격도 마음에 드네요. 잔돈은 필요 없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거래였어요. 아가씨 이름이 어떻게 되죠?”
“테레지아 마커라고 합니다. 다시뵙겠습니다, 손님!”
스무 살 정도나 되었을까.
머리를 뒤로 묶은 금발의 여성이고 개를 숙이며 우리를 마중했다.
왠지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느낌의 인간이었다.
그녀의 마중을 뒤로하고, 우리는마을 남쪽의 정글로 향했다.
두 시간 정도를 말을 타고 갔을 때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람이 사는 것 같은 기색은 없었다.
[탐지 Lv.5가 활성 상태입니다!]
[스킬 효율 1,000% 증가!]
[현재 체력 기준, 0.0021%의 체력이 소모됩니다.]
마을을 떠날 때부터 탐지 스킬을 켜고 있었다.
고문으로 얻은 정보라고 해도.
아이작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건 당연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면 분명 교단이 있다고 하질 않았나?”
아이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놈과 계속 정신이 이어진 탓일까.
본의 아니게도, 어느 정도 녀석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녀석에게서 낯선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걱정? 뭘. 불안해하고 있지?’
그때 였다.
“스승님?”
주위를 천천히 훌으며 나아가던 레나가 한쪽을 가리켰다.
반쯤 불에 타고 반은 부서진 돌 토템이 보였다.
위로 2미터 정도 높게 솟은 부엉이 모양의 토템이었다.
목에 매달린 인간들의 뼈가 시커떻게 그을려 있었다.
- 히히힘!
토템을 본 말들이 두려워하며 뒷걸음질 쳤다.
말들을 뒤쪽 공터에 묶어 놓았다.
“걷자.”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길이 좁아져서 걸어야 할 참이었다.
그 뒤로 한참을 더 걸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한 건가?’
역시 좋은 말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이작에게 슬슬 따지려고 할 때였다.
- 부르르!
메달이 크게 떨렸다.
= .멈춰라.
아이작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어둡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 나는. 너에게 거짓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