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49화 (149/458)

150화 공동의 적, 내부의 적 (7)

- 콰과과광!!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폭탄 다섯 개를 넓은 검면으로 쳐냈다.

폭탄은 주위의 무성한 수풀 위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하지만 무리는 날렵하게 몸을 빼내옷에 불이 좀 붙은 걸 제외하고는 다친 자는 없어 보였다.

- 피벅! 피비벅!

휘파람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

사방에서 동시에 수십 발의 독침이 날아들었다.

‘결빙.’

칼 전체보다 넓은 범위가 얼어붙으면서 독침들이 모두 근처에 오지 못하고 떨어졌다.

레나는 방독면을 쓴 채, 배낭을 비워내다시피 하며 사방에 폭탄을 뿌려 댔다.

- 푸슈슈슛!

폭탄을 피해 몸을 솟구친 자들에게는 연달아 화살 세례를 먹였다.

“콜록! 콜록.!”

다섯 명 정도의 어쌔신이 가스에중독되어 쿨럭 거리거나 화살에 스쳐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남은 놈들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품에서 주 무기로 보이는 커다란 전투 표창을 꺼냈다.

살과 뼈가 아니라 쇠도 뜯어낼 수있을 것처럼 흉측하게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하하. 하하하.

간신히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포위를 뚫었다.

갑옷은 반 이상 날아가 있었고, 그사이로 들어온 무기에 갈비뼈 두엇이 부러진 채였다.

그나마 그라스미어의 3대 영주가 만들었다던 대검만은 멀껑했다.

하지만 허공에 뜬 반투명한 창이 표시하는 내 체력은 이미 30% 대로 떨어져 있었다.

레나도 몸 곳곳에서 피를 홀리고 있었다.

협곡은 절반도 돌파하지 못했다.

앞으로 가지 말고 레나의 말대로 뒤로 도망쳤어야 했나 싶었다.

도저히 포위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네 번째로 나타난 건 굵고 거대한마상용 창과 커다란 방패를 지닌 세 명의 오크였다.

이마와 턱이 툭 튀어나온 그들은 인간보다 다섯 배는 발달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오크. 이들까지 푸르손의 세력이었단 말인가? 다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나는, 불흉터 족장 아툴루그!”

“밤헛바닥 최고 전사 고모쿠가 너를 상대한다.”

“돌외침의 마지막 전사 로그둘! 오크를 노예로 만든 아이작의 후예를 여기서 죽이겠다!”

‘정말 골 때리는군.’

[야, 이 새끼야.]

하지만 아이작은 끝까지 대답이 없었다.

세 오크전사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집중.’

- 까앙!

칼을 휘둘러 정교하게 찔러 오는 긴 창을 쳐냈다.

그러나 한 명의 창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으랴아아아앗!”

또 다른 녀석이 3미터가 넘는 마상돌격용 창을 세차게 찔러 왔다.

- 퍼걱!

이미 반쯤 뚫린 갑옷을 자루까지 철로 된 장창이 깔끔하게 뚫었다.

오크는 내 어깨를 꿴 창을 밀어붙여서 나를 허공에 매달았다.

- 철컥! 철컥!

레나가 화살을 쏘려 했지만 이미몸 안에 장착된 화살은 다 떨어진 뒤였다.

밤톨이도 전투에 휘말려 몸이 반쯤 불에 그을려 있었다.

- 달그락!

어깨를 뚫은 창을 잡아채 빼앗은 뒤, 앞으로 강하게 던졌다.

[투창 Lv.l을 발동합니다!]

- 쎄애앵!

창은 빠르고 강하게 날아갔다.

세 명의 오크전사는 창을 방패로 막아 냈다.

기술보다는 힘으로 던져진 창은 비스듬히 세워진 방패에 튕겨졌다. 허공으로 멀리 날아갈 뿐이었다.

‘망했군.’

굳이 탐지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눈앞의 오크들도 단숨에 돌파하긴 틀려먹은 것 같았다.

온몸에 부상을 입은 채, 힘겹게 숨을 쉬는 레나를 바라봤다.

후작이 썼던 것 같은 엘 릭서는 물론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슬라임에게 녹아 죽을 때보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레나에게 잠시 시간을 벌어 주기위해 놈들에게 물었다.

“네놈들은 회유도 안 하는 거냐?

푸르손의 각인을 새기라는 말 같은건 이번에 안 하는 거냐?”

하지만 오크전사들은 그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개소리를.

“순수한 녀석이라면 몰라도, 이미깊이 물든 이교도와 협상은 없다.”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라!”

마왕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강림하기 전부터 분열이라니.’

푸르손처럼 제국 쪽에 성공적으로 세력을 심어 놓은 녀석들은, 아예자기 라인으로 인간계를 다 채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래서 망하는 건가?’

그때 였다.

- 퍽!

가장 왼쪽에 서 있던 오크전사의머리가 투구 째로 터져 나갔다.

- 화악!

어떤 꿈을 띄우고 있었을지 이제알 수 없게 된, 뜨거운 뇌수가 두개골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툴.!”

옆에 선 고모쿠라는 오크전사의 허파가 크게 한 번 들썩였다. 그게 그의 마지막 호흡이었다.

- 퍽!

강한 회전이 걸려 있는 무언가가그의 머리를 멀리 날려 버렸다. 철제 투구와 단단한 오크의 두개골이 연한 두부처럼 뭉개졌다.

뜨겁게 뛰던 오크의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대체 어디서 날아오는 공격인지 파악할 여유조차 없었다.

마지막 남은 오크전사 로그 둘은 탁월한 반사 신경으로 방패를 머리 위에 들어 올렸다.

- 까강!

하지만 강렬한 금속음이 터지며,

강철 방패 윗부분이 폭발하듯 흔적 없이 날아갔다.

재차 공격이 이어졌다.

방패를 들었던 오크전사 로그둘의머리가 터져 날아갔다.

방패에 공격에 가해졌을 때 처음으로 각도가 읽혔다.

왼쪽 위.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누군가가회색 로브를 날리며 가파른 절벽을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곡예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말할 틈도 없었다.

회색 로브는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소진시키며 빠르게 다가왔다.

- 끼이이이익!

뒤쪽이 둘로 길게 갈라진, 앞 날 길이만 1미터가 넘는 낫이 절벽을 긁는 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졌다.

가만히 침묵하고 있던 아이작에게 오랜만에 어떤 기색이 느껴졌다.

무언가 꽉 뭉친 괴로운 기색이다.

[뭐야, 아는 거 있냐?]

대답은 없었다.

순식간에 절벽을 달려온 회색 로브는 20여 미터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 내 앞에 착지했다.

그리고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며‘낫’자루에 장착된 거대한 손잡이를 뒤로 잡아당겼다.

- 철컥! 핑그르르!

가운데가 텅 빈 원통이 두꺼운 낫날 뒤쪽으로 튕겨져 나왔다.

허공에 떠오른, 길이 20cm 정도의 은빛 원통을 손으로 잡아 주머니에 넣은 회색 로브가 입을 열었다.

“이름은 나냐우. 트로핀 나냐우다.”

허스키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회색 후드 안쪽으로 백색에 가까운 긴 은발이 비쳐 왔다.

목소리 자체는 젊었지만, 억양에는어딘가 오래된 느낌이 묻어났다.

“너는.!”

한눈에 여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달리아크의 주점에서 내게 계산을 떠넘긴 인간이었다.

감사하게 될 거라는 짧은 쪽지.

쪽지에 적혀 있던 글씨가 낯익었던 이유가 있었다.

워낙 터무니없어서 곧바로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트로핀 나냐우, 여기에 길드 규칙을 남긴다.>

<단, 루-륨 1L를 가져오는 자는??.>

T&T의 옛 룰북에 장난처럼 적혀있던 글씨와 같았기 때문이다.

놀라는 내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평화로운 남부가 아니야.

넋 놓고 산책할 만한 곳은 아니지.”

“지금까지 나를 쫓아왔던 거냐?”

“트로핀 나냐우라면. 설마.!”

레나가 곁에서 나직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떨리는 그 목소리에 나도 나냐우가 누군지 뒤늦게 떠올릴 수 있었다.

“T&T의. 창립자 나냐우?”

“돌보진 않았지만 만든 건 맞지.

해골, 새싹, 빨리 따라와. 난 대량학살에 별로 소질 없거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회색 후드가 정말 나냐우인지, 이포위망을 어떻게 뚫는다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아니면 여기서 죽는다.

- 팟!

나냐우의 움직임은 환영처럼 보일정도로 빨랐다.

‘질주’

나는 레나와 밤톨이를 한꺼번에 안아 든 채 나냐우의 뒤를 쫓았다.

- 철컥.

나냐우는 달리며 또다시 낫 손잡이를 가로로 잡아당겼다.

낫자루에 90도로 꺾인 손잡이가 뒤로 젖혀지며, 허공에 또다시 은빛원통이 튀어 올랐다.

“앞쪽에 또 불나방이 달려드는군.”

- 푸슛!

낫의 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빛 섬광이 쏘아졌다.

“주화走火. 관통.”

- 화■르르!

한참 먼 길 앞쪽 수풀에서 크게 불이 붙었다.

‘뭔가 맞아서. 죽은 건가?’

나냐우는 불이 붙은 수풀 근처에 가기도 전, 갑자기 커다란 바위와 나무 사이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바위 아래 그늘로 들어갔다.

순간 웬 엉뚱한 짓인가 싶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곧 하나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결계인가요?”

“우리 새싹, 기본은 되어 있는데?”

나냐우가 여유 있게 대꾸했다.

- 구구구구.!

바위 아래가 조금씩 움직이면서,

직경 1미터 정도의 지하로 통하는 구멍이 생겨났다.

“시간 없어. 들어와. 지옥행 땅굴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아이작에게 결계를 배운 이후.

우연인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그 실체를 접하고 있었다.

한 꺼풀만 벗기면 세계에 이렇게 비밀스러운 장소가 많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알던 세계가 극히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점점 깊이 깨달아 가고 있었다.

땅굴은 몹시 깊었다.

나냐우는 가볍게 몸을 아래로 던졌지만, 나는 사다리를 타고 조금 더천천히 내려갔다.

아래로 갈수록 점점 더 넓어지고빛이 들어왔다.

툭.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호오.”

작은 탄성이 울려 퍼졌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인간 남자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에 맴도는 음울한 기운이 취향이아니더라도, 충분히 전형적인 미남이라고 불릴 만한 인간이었다.

“푸르손의 추종자들에게 쫓기던 게이 녀석들입니까?”

이미 내려와 있던 나냐우가 고개를끄덕였다.

비밀 공간에 내려온 것 같은데도여전히 로브를 뒤집어쓴 채였다.

“그래.”

짧게 대답한 나냐우는 단풍잎 모양시럽 병에 빨대를 꽂았다.

그리고 쪽, 하고 빨아냈다. 괴이한 광경이었다.

“새싹. 인가요?”

흑발 남자의 반대편에서 전형적인마법사 로브를 입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손을 들어 레나를 가리켰다.

눈과 입가에 검은 점이 찍혀 있는 마법사는 멍한 표정으로 살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냐우가 다시 긍정했다.

“오염되지 않은, 아주 미래가 기대되는 새싹이지. 잘 키우는 건 우리몫이라구.”

“치료. 할게요.”

여자가 손에 든 떡갈나무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

말릴 겨를도 없었다.

나무 지팡이에서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어두운 곳을 밝히고, 거친곳을 곱게 만들고, 눈 덮인 나무에새 잎눈을 퇴우는 바람이었다.

레나의 숨소리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상처와 입가에서 피가 몇었다.

다친 근육이 거짓말처럼 재생되고새살이 돋아났다.

찢어진 옷과 핏자국이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부상을 당했다는 것도 몰랐을 것 같았다.

“마법인가요?”

레나도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놀라서 눈을 크게 부릅떴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보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해골 친구, 언데드를 치료하는 마법은 나한테 없는걸.”

찢어진 갑옷 사이로 하얀 뼈가 드러났지만, 마주한 셋 중에 놀라는 자는 아무도 없다.

마법사가 큰 눈을 한 번 껌백였다.

악의 섞인 조롱은 아닌 듯했다.

“.걱정하지 마라.”

[골격변용骨格變容을 사용합니다!]

- 우둑! 우두둑!

충격에 어그러진 몸의 뼈 곳곳이 스스로를 조금씩 맞춰 가기 시작했다.

<뼈의 군주>에 내재된 부가 스킬이었다.

후작에게 잡혀 탈출하려 할 때, 꽤숙련도를 많이 올렸다.

자기 뼈를 조금씩 맞추는 것 정도는 문제없었다.

- 우두두둑!

당장 체력이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조금 더 나은 꼴을 보여 줄 수 있었다.

나냐우가 나와 레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응급처치는 된 모양이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너희는 뭐가 불만이라서 푸르손의 제단마다깽판을 놓고 다닌 거지?”

나냐우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녀는 세 오크전사의 머리를 간단히 날려 버렸다.

이유는 몰라도 놈들과 적대적인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나?’

푸르손의 제단을 날려 버린 일에 무척 곤란해 하는 듯한 어조였다.

나는 녀석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안 되는 건가? 푸르손의 제단을 망치면?”

미형의 흑발 남자가 피식 웃으며 끼어들었다.

“안 될 리가. 절대로 되지. 하지만 우리가 했어야 해. 네가 어설프게 건드려서 저것들 독만 바짝 오르게만들었잖아.”

툭.

뒤에 선 마법사가 흑발 남자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페르산, 그 입 닥치세요. 시조가 말하는데 괜히 끼어들지 말고요.”

“그래! 알았다고.”

흑발 남자가 살짝 투덜거리며 어깨를 으쑥했다.

그 사이, 기운을 차린 레나가 회색로브를 보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하지만.

당신이 정말 트로핀 나냐우인가요?

그분은 300년 전의 사람인데요?”

나냐우는 회색 로브를 벗었다.

“우리 새싹이가 질문하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네.”

나냐우의 긴 은발이 로브에서 바깥으로 흘러내렸다.

은발 끝에서는 연한 보라색 그라데이션이 묘한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살짝 멍한 느낌의 터키색 눈동자를 깜빡이며, 트로핀 나냐우가 하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 칼로 손끝을 살짝 찔렀다.

“어.

- 또손끝에서 뿌려진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핏방울은 바닥에 홉수되지 않았다. 흘렀다.

땅이 자신을 받아 주지 않는다는 듯 계속 흐르고 흘렀다.

나냐우의 핏방울은.

내 회로에 흐르는 것보다 진하고 찬란한 은빛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