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56화 (156/458)

157화 공동의 적, 내부의 적 (14)

레일리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눈동자는 분명히 흔들렸다.

저런 표정이면 거의 설득된 거나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시오. 내가 후작의 죽음을 꾸민 무리라면. 당신을 그냥 죽이지 않고 이렇게 살려 두겠소?”

레일리는 살짝 미간을 좁힌 채 나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 복장은 뭐지? 진짜 감찰국소속인가?”

“그럴 리가. 황실에 좀 더 가까이 숨어들기 위해 구한 거요. 놈들이 후작을 죽인 뒤 자살로 위장했으니까. 그분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고 싶소.”

되는 대로 녀석을 설득했지만, 어쩐지 이 방법이 분명히 먹혀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좀 알아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는 척해 봤자 캐물으면 곧 곤란해진다.

“그다지. 시간만 낭비하고 있지. 절박한 심정이오. 도와주시오.”

레일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네게 졌다. 하지만 죽는 건 죽는 거고.

“이용당한다면 그보다 못한 꼴을 보는 거지. 한 번 더 확인을 해야겠다.”

그렇게 말한 레일리가 쌍검 가운데한 자루를 던졌다.

“받아라.”

잡기 쉬운 손잡이 쪽이었다.

“어쩌라는 거요?”

“다시 한 번 그분의 검술을 보여 봐라. 그럼 믿어 주겠다. 아까는.

대검을 써서 확신이 서지 않았어.”

‘다시 한 번 보여 보라고?’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게 있었다.

검술.

검술 스킬 레벨 6부터는 모두 다후작에게 흡수했다.

후작이 나를 제압할 때는 워낙 간단히 움직여서 몰랐는데, 녀석이 보기에 내 검에서 확실히 후작의 느낌이 묻어나는 모양이었다.

“좋지.”

나는 칼을 휘둘러 기본기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 굳이 후작의 검술을 떠올리며 따라할 필요도 없었다. 칼을 휘두르며 흘끗흘끗 레일리를 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점점 강해지는 확신이 느껴졌다.

칼을 휘두른 지 삼 분 정도가 지나자 레일리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에게 배운 게 확실하군. 그런 실력에 마법까지 익히다니. 정말 놀라워. 각하에게 그대 같은 친척이 있을 줄이야.”

“당신도 대단했소. 칼만 갖고 싸웠다면 내가 밀렸을 거요.”

“흥. 그런 소린 됐다.”

- 띠링!

[마스커레이드의 지속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서둘러 투구를 쓰자 레일리가 가엾다는 둣 말했다.

“여기저기서 쫓기는 건가. 당신도 고생이 많아.”

한층 더 풀어진 표정이었다. 멋대로 추측하는 녀석이 우스웠지만 굳이 바로잡을 필요는 없었다. 슬쩍 말을 돌렸다.

“아까 그 관. 시체가 없는 것 같던데. 혹시 진짜 시체의 행방을 알 고계시오?”

찔러보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레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 가는 곳은 있지.”

“그걸 어떻게.!”

나를 보며 레일리가 피식 웃었다.

“나도 우연히 알게 됐다.”

녀석은 후작이 언젠가부터 심상치않은 기색을 보였다고 했다.

“그게 언제요?”

“날짜가.

레일리가 말한 시기를 계산했다.

황제 암살.

이사벨의 죽음이 있던 날로부터 이주 정도 뒤였다.

‘한참 동굴에서 박혀 수련하고 있을 때인가.’

2주의 마지막 날.

벽에 등을 붙인 채 칠흑 단검을꼭 쥐고 있던 때가 떠올랐다.

나를 찾아올 후작을 기다리면서,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지체 없이 자살할 준비만 하고 있었다.

며칠을 싱숭생숭한 상태로 더 기다렸지만 후작은 오지 않았다.

마구 뛰어다녀도, 크게 소리쳐도 그의 발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겼다는 걸 직감했었다.

‘이사벨의 시체를 보고. 다른 데칼을 겨눈 거로군.’

레일리가 말을 이었다.

“그 뒤부터 훈련장에도 나타나지 않으시고, 나도 찾질 않으시더군. 불안해서 은근히 뒤를 밟았지.”

“그게 가능하오?”

후작의 뒤를 밟았다는 게 상상이가지 않았다.

녀석이 어깨를 으쑥했다.

“뭐, 금방 걸렸어. 꽤 화내시더군.

하지만 오히려 날 걱정하는 눈빛이셔서. 도저히 거기서 그만둘 수가 없었지. 대신 좀 거리를 뒀고.”

“그러던 중 갑자기 사라지셨어. 어디서인지 알고 있겠지?”

<등불>달리아크에서 본 두루마기에는 후작이 반역을 일으키다가 살해당했다고 쓰여 있었다.

“황궁에서?”

“당연하지.”

그가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근처에 잠복하며 밖으로 나오는 녀석들을 하나씩 따라다녔고, 오늘 새벽에 수상해 보이는 무리를 발견했다고 했다.

걸리진 않았지만. 쉽게 따라잡기 힘들 정도의 녀석들이었어. 관을 메고 가더군. 위치는 파악해 놨어. 교외의 무슨 사육장 같더군. 그분을 갈아서. 닭이나 돼지 모이로 만들게 분명하다.”

파드득.

나는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후작이 닭 모이로 갈려 버리면 정수 흡수가 불가능해진다. 기껏 레일리에게 접촉한 게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셈이었다.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군. 정체를 의심해서 미안하다.”

곧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일리의 호감도가 2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기 멋대로 생각하는 타입이군.’

물론 나한테는 나쁠 게 없었다.

“아니오. 그럼 갑시다! 유해는.

어디에 있는 거요?”

“미안한데, 한 시간만 기다려 줘.”

레일리는 표효하는 사자가 새겨진 푸른 갑옷을 두드렸다.

“이걸 벗고 올 테니까.”

“.뭐라고?”

- 팟!

녀석은 잡을 사이도 없이 곧바로 사라졌다.

나를 살살 유인하던 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은신 상태에서 기습당했으면.

차가운 긴장감이 새삼 척추를 타고올라왔다.

갑자기 마법을 사용해서 레일리를교란했지만,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쨌건 마냥 녀석을 기다릴 수밖에없었다. 어차피 후작의 유해에 대해단서를 잡을 수 있는 건 이 녀석밖에 없다.

두 시간이 지났다. 날이 서서히 저물고 있을 때였다.

“어이.”

레일리의 목소리였다. 돌아보니 새까만 무복을 입은 녀석이 돌담 위에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단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제 나는 푸른 사자가 아니야. 뭘하든 기사단과는 상관없지.”

사직辭職.

제국 대표 기사단의 자리를 간단히 내팽개치고 온 것이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어? 가기 전에 한 가지 묻지.”

“.뭐요?”

“죽을 각오는 되어 있나?”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레나 임명식은 참가해야 되는데.’

나는 펜던트를 잡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발휘된다는 펜던트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 은은한 빛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뭐.

문제가 있으면 이게 경고하겠지.

나는 레일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쑥했다.

“음. 이미 해골이라.”

“으하하하하!”

레일리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쾌활하게 웃었다.

- 띠링!

- 기사 레일리의 호감도가 4 올라갔습니다!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냥 간단히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아무래도 내가 유쾌한 능담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의 대화를 무척 좋아하나보군.

다음에 또 만나면 써먹어야 되겠다고 기억하며,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는 녀석을 따라갔다.

우리는 수도 외곽의 산으로 깊이 들어갔다. 주위 풍경은 점점 을씨년스러 워 졌다.

적막한 오솔길을 겨울바람이 한층더 으스스하게 만들었고, 나무들은 병든 듯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산길을 한참 더 깊이 들어가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

“수도에 있던 것과 비슷하군.”

“그래. 황실에서 운영하는 거야. 산 구석에 있는 축사畜舍에 마력등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커다란 건물과 울타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레일리는 잠시 숨 고르듯걸음을 멈췄다.

“슬슬 하나씩 재껴야겠군.”

고개를 끄덕였다. 산으로 들어설 때부터 탐지 스킬을 활성화하고 있었다. 곳곳에 매복하고 있는 자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모두 피해 왔다. 하지만저 앞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경비가 촘촘했다.

칼을 고쳐 쥐며 불빛에 조금씩 더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나는 잠시 말을 망설였다.

“저 벌레들은 다 뭐지?”

사방에서 풀숲을 헤치고 무언가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레일리도 느낀 듯 몹시 긴장한 표정이었다.

벌레? 뱀?

수십 수백이 아니었다.

가볍게 수천 단위를 넘어섰다.

[냉기 폭풍 Lv.l을 장전합니다!]

- 우우우응.!

대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우리를 노리고 오는 거라면 칼질만으로 해볼 수 없다. 그 순간이었다.

“숨죽여! 최대한!”

레일리가 급하게 속삭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확신에 찬 녀석의 태도에 마법을 해제했다.

[냉기 폭풍을 해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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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마리 뱀이 수풀을 헤치는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져만 왔다. 산전체가 뱀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一 스스스스!

거대한 뱀의 무리가 사그락대는 소리가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

백 미터.

오십.

삼십.

- 스르르르르르르!

채 이십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거대한 공명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살짝 방향을 틀어 산 아래로 내려갔다.

십여 분이 지난 뒤에야 레일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폈다.

“흐아아아.

나는 녀석을 바라보고 물었다.

“방금 뭐였지?”

레일리의 대답은 간결했다.

“지금 나랑 장난.

“수도에 온 지 얼마 안 됐지?”

레일리가 내 말을 끊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뱀을 조심해라.”

“밑도 끝도 없는 소리군.”

“조각, 그림, 장식. 문신. 실제 뱀은 더.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그 말을 듣자 퍼뜩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나는 직접 입에 그 단어를 올렸다.

“.네크론을 말하나?”

고블린을 죽여 혈석을 채취하던,

네크론의 감독관이 기억났다.

조직의 비밀을 캐물었을 때.

목에 새겨진 검은 얼룩이 뱀으로 변해 그를 물어 죽였다.

얼굴이 새까닿게 질려 죽어 가던 놈의 단말마가 생생히 떠올랐다.

두 시간 전까지 푸른 사자 기사단이었던 남자는 허스키한 음색으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다 알면서 왜 물어봤어? 이제 가자고.”

- 팟!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훌쩍 앞으로 튀어 나간 뒤였다.

‘다음에 물어봐야겠군.’

기이하게도, 수천 마리 뱀 군단이산을 휩쓸고 간 뒤 감시하는 무리들도 그 뒤를 따라 산을 내려간 것같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절호의 기회.

‘질주!’

후작의 시체가 있다면 어디에 섞여있어도 쉽게 찾는다.

레일리에 앞서, 몸을 날려 사육장 쪽으로 뛰어들었다.

- 픽!

커다란 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였다.

“이건.!”

사육장 안쪽의 광경은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안에서 길러지는 건 닭이나 돼지가 아니었다.

바닥에 깔린 건 특이하게 생긴 애벌레들이었다.

길이는 10cm 정도.

앞에는 뭐든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밋밋한 주둥이가 크게 뚫렸고,

몸통에서는 막 생긴 듯한 작은 팔다리가 한 쌍씩 돋아나고 있었다.

벌레들은 작은 발로 땅을 디디고,

앙증맞은 손으로 인간들을 꽉 잡고 꼭꼭 씹어 먹고 있었다.

- 츄르릅.

밋밋한 주둥이에서 연녹색 점액이 흘렀다. 빼곡하게 이빨이 돋아나 있었다.

‘팔다리는 인간처럼 생겼군. 먹이를 닮아 가는 건가?’

사육장 몇 군데를 돌아봐도 모두마찬가지였다.

사료는 모두 인간의 시체.

뼈만 남기고 근막과 인대는 모두 발라 먹는지, 사육장 한구석에는 다먹히고 새하얗게 된 녀석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욱!”

뒤늦게 온 레일리가 급히 밖으로 나가 구토를 했다.

추적자 레일리.

생각보다 여린 녀석이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여기다!’

곧 은은한 초록빛이 밖으로 비치는 창고를 발견했다.

구토하는 레일리를 놓아두고 문을 뜯어냈다. 서늘한 기운이 뜯어낸 문밖으로 확 퍼져 나왔다.

안쪽에는 수십 명의 인간이 고기 바늘에 꿰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가장 바깥쪽에 후작이 매달려 있었다.

심장과 목이 깨끗하게 관통당한 채죽어 있었다.

한눈에 봐도 검상劍傷.

‘이런 강자를. 이렇게 깔끔하게?’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뭘 하는 장소인지는 몰라도.

절대 외부에 공개하면 안 될 곳인건 누가 봐도 뻔하다.

그 사이 벌써 갑옷에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냉동 창고 한가운데 있는 후작의 시체에 곧바로 손을 뻗었다.

‘정수 흡수.’

- 우우우우응!

다시 한 번, 강렬한 초록빛이 나에게 서서히 흘러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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