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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59화 (159/458)

160화 공동의 적, 내부의 적 (17)

수도를 무사히 나가려면.

처음 빠져나왔던 주점.

그곳 같은 비밀 통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나는 흙바닥에 누웠다.

얇은 얼음이 서린 것처럼 차가운 하늘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하나씩 정리했다.

일단 수도 외곽 지역에 머무른다.

본격적으로 추격이 붙는 것 같으면 주점에 가지 않는다.

나에게 몰려올 폭풍을 나냐우나 레나에게 던지고 싶지는 않다.

5일 정도면 어떨까.

그 후에도 아무 일이 없으면 주점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레나의 임명식에도 늦지 않도록 참석할 수 있고.’

나냐우에게 도움을 청해 수도를 탈출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련에 힘쓰는 게 좋겠지.

되도록 마법은 쓰지 않고서.

흡수한 스킬을 닷새간 산속에서 천천히 다듬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이리저리 사용해 보니 스킬들이 익숙해졌다.

‘검기.’

- 우우우우!

칼이 날카롭게 울었다.

푸른 기운이 검을 보호하고 날에 얇게 맺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절삭력과 폭발력이 높아진 것은 물론 공격 범위 자체를 l?cm 정도 길게 만들 수 있다.

검기의 길이는 물론 의지에 따라 조절이 가능.

얼핏 크지 않은 차이처럼 보이나,

치열하게 리치를 재던 상대를 쉽게 바보로 만들 수 있는 효과다.

공격 반경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10cm 깊게 들어오는 검.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 피릿!

검기劍技의 소양도 한층 향상된 상태.

선의 궤적이 훨씬 깔끔해졌다.

심안心眼 특성이 붙은 고랭크의 탐지 스킬로 주위를 돌아봤다.

작은 짐승과 벌레들의 기척.

자세한 지형지물까지 언제나처럼 한 번에 파악된다.

추적은 붙지 않는 것 같았다.

- 팟!

내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 산의 정상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삼십 분 정도 험지를 달리자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이제 더 위로 올라갈 곳이 없다.

가장 높은 장소 중 하나.

꼬물꼬물 작게 움직이는 인간들이 점처럼 보였지만, 여기서 조차 수도자체는 작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넓음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생각에 잠기기 좋아, 발견한 뒤로 하루에 한 번은 올라가고 있다.

주위를 슬쩍 훑어보다 다시 서북쪽을 바라봤다.

동서남북으로 수천 미터의 면적.

넉넉히 수백 채의 건물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넓이가, 짙은 안개에 가려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저긴 항상 저렇단 말이지.’

황궁이 있는 곳.

낯익은 풍경이었다.

짙은 구름과 안개는 마치 고정된 것처럼 그곳에 머물렀다.

바람에도 휩쓸리지 않고 그곳에 꿋꿋이 버티고 있다.

안을 들여다보려는 일체의 시도를 거부하는 것처럼.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황궁!

저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이미 마왕이라도 안에 들어앉아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럼 왜 지금 당장 인간을 짓밟고 세계를 변혁하지 않을까?

확실한 건.

지금 내 힘으로 달려들었다가는,

초입에도 진입하지 못하고 굉장히 심한 꼴을 당할 거라는 사실이다.

죽고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아무 의미 없이 한 번의 삶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전쟁이 벌어지는 양상은자세히 한번 관찰해야 한다.

정상에 서서 곰곰이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적이 없었다.

몸을 빼앗길 위기.

포위당해 죽을 위기.

정체불명의<뱀>에 으스러져 죽을 위기를 기이하게 넘겼다.

그만큼 얻은 정보량이 지금까지의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늘에 떠 있는 푸른 구름을 보며다짐했다.

‘계속 꿋꿋이 살아남자!’

하루라도 더 사는 게 남는 거다.

은신을 유지한 상태로 오솔길을 타고 산을 내려갔다.

레일리를 죽인 <뱀>이 생각나서아직도 등 뒤가 서늘했다.

혹시 지금도 내 뒤에 숨어 있는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사냥을 즐긴다면.

레일리를 그렇게 단번에 죽이지는 않았을 거다.

빼곡히 잇닿은 겨울나무들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한층 더 올라간 스킬의 영향인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길가의 나뭇잎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레나의 지부가 있는, 제1 가닛 거리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건물 앞에 몰려 서 있는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모두 내가 나왔던 주점 앞에서 있었다.

나냐우 파의 T&T 지부.

‘.대체 무슨?’

한순간 긴장했지만.

몰려 있는 여자들은 아무리 봐도 전투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두 분, 제니엘 님-!”

안에서 들려오는 종업원의 호명.

“와! 우리가 들어갈 차례야!”

귀한 집에서 자랐을 것 같은 여성 두 명이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였나.

틀림없이 내가 나왔던 곳인데.

그 천편일률적인 느낌의 주점이 이렇게까지 변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앞쪽에는 이름을 적는 곳까지 있었다.

제니 엘이라는 이름에 줄이 그어졌다.

그 아래로도 대기자가 빼곡하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분홍빛 뺨의 여자가 들어갈 때, 슬쩍 옆에 붙어나도 가게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예전 단계였으면 위험했을 상황.

하지만 은신 능력이 올라서인지,점원도 손님도 코앞에 있는 나를 간파해 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웬만한 도시는, 성문만 활짝 열려있다면 슬쩍 들어가면 될 것 같다.

굳이 마스커레이드 스킬을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막 가게로 들어섰을 때였다.

“야옹.”

“냐- 아옹.”

“냐아아옹?”

‘뭐지.?’

당황한 채 서서, 주위에 가득한고양이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가게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곳곳에 고양이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손님에게 내미는 메뉴판도 술 대신 차와 도수 없는 칵테일 종류로 채워져 있었다.

“고양이 간식 하나 주세요!”

“손님, 오늘 고양이들이 먹을 간식은 다 팔았답니다.”

“흐- 에. 너무 아쉬운걸.”

“제니엘! 걱정하지 마! 여기 아이들은 간식 안 줘도 달려오거든.”

그 말대로였다.

복슬복슬한 고양이들은 처음 보는 인간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다가가 찡긋 눈인사를 했다.

“나, 나한테 막 다가왔어!”

‘뭐 하는 곳이지.

가게 안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인간들과, 느긋한 태도로 그들과 놀아 주는 고양이들로 가득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한 동물.

저렇게 서슴없이 인간에게 안기는 모습은 낯선 것이었다.

주 고객층은 달라졌지만, 저번에 왔을 때에 비해 손님 숫자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고양이. 주점.?’

‘아니, 술을 안 파니 카페라고 해야 하나.’

나냐우와 함께 만난 사루니안처럼 묘족强族인가 싶었지만, 그자들이 이렇게 흔할 리가 없다.

몇 번을 봐도 평범한 고양이들.

몸을 숨긴 채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 덜컥.

다시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들어온 여자에게 종업원이 재빨리 다가섰다.

“오셨습니까.”

여자가 종업원에게 물었다.

“리본 찾는 손님은?”

“오늘은 없었습니다. 방울 장사만호황이네요.”

“그래.”

들어온 여자는 레나.

종업원과 대화하는 그녀의 태도는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암구호인가? 벌써 잘 적응했군.’

내가 사라져 줘서 잘 살고 있나싶었지만, 얼굴 한편에 서려 있는 수심이 마음에 걸렸다.

뭔가 신경 쓰는 게 있는 눈치다.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그녀를 슬쩍 따라갔다.

레나조차 내가 따라붙는 걸 눈치 못 채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언가에 신경을 빼앗기고 있는 탓인지도 모르지만.

은신 스킬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무척 확실한 증거다.

- 드르륵.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열렸다.

처음 내가 들어온, 비밀 통로와 연결된 장소는 아니다.

지부장이 따로 쓰는 공간인 것 같았다.

함께 들어간 종업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사항은 알아봤는데. 본부장이나 ‘스위퍼’급은 지금 다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역시 그렇구나.”

“가장 빨리 도와줄 수 있는 스위퍼는 린-렌 자매입니다만, 그래도 삼 주는 기다려야 합니다.”

“알았어. 나가 봐.”

종업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밖으로 나가려던 종업원이 잠시 멈칫하고 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냥 직접도움을 요청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본부장인 사루니 안 님이라도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실 텐데.

“안 돼. 개인적인 일이잖아. 다들 바쁜 걸 아는데 그럴 수 없어.”

“하지만 동생분을 그렇게 걱정하시면서.!”

‘그 아이 때문인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자 짐작 가는바가 있었다.

레나의 하나뿐인 여동생은 유블람 근처 보육원에서 자라고 있다.

지부장이 되고, 자리를 잡은 뒤에 함께 살 계획이라고 말했던 동생.

그 아이는 슬라임의 보호 아래서자라고 있다.

나냐우 파에 몸담은 레나의 입장에서는 불안한 게 당연하다.

데리고 올 필요가 있다.

여동생의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내가 너무 무신경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레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미안함이 밀려왔다.

잠시 부하와 동생 이야기를 하던 레나가 짧게 대답했다.

“.혼자 있게 해 줘.”

“알겠습니다.”

종업원은 살짝 목례한 뒤 밖으로 사라졌다.

- 탁.

문이 닫혔다.

“후우.

레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횃불이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반영하는 듯했다.

나는 그녀 앞에 나타나 물었다.

“그거, 내가 하면 안 될까?”

- 덜커덩!

레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스승.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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