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매듭 (3)
[지역 오염원을 처리하셨습니다.]
[해당 지역의 정화 프로세스가
시작됩니다.]
[원래 숲으로 복구될 경우, 숲의 정령이 당신에게 기본 호감도를 가지게 됩니다.]
[당신의 기여에 따라 복구 예상시간이 달라지며, 숲의 정령에게 더높은 호감도를 획득할 수 있게 됩니다.]
[현재 생태계 복구 예상 시간:
51년 1이일 14시간.]
‘오염 지역. 처리?’
수도를 떠나기 전.
나냐우가 내게 해 줬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원래 이 장소는 숲이었다.
사형수들을 죽인 뒤에 버리는 곳이었는데, 시체가 쌓여 썩으면서 늪으로 변하고 악령이 생겨났다.
‘한가해지면 숲이나 키워 볼까.’
아주 한가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오염된 토양과 식생을 내가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허공에 뜬 메시지처럼 5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게 분명하다.
어쨌건 지금 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늪지대에서 살아가는 악어와 흡혈모기떼들을, ‘복구’된 숲에 새롭게 생겨날 짐승들보다 낮게 평가할까닭도 없다.
‘으음.’
부서진<늪의 악령>의 시체를 보고 있자니, 곧 허공에 원래 떠야 할 상태창이 뜬다.
[용사 포인트를 산정합니다!]
[C트리플 플러스 랭크 인카운터 클리어:
205포인트]
[난이도 가산: 820포인트]
[1025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늪의 악령>을 쓰러트리고 얻은 정확한 용사 포인트가 확인된다.
[상점 이용 권한을 산출합니다.]
[권한이 상승했습니다!]
[보상 선택 풀 확대!]
[상급 견습생 (Apprentice High)으로 이용 권한이 인정됩니다.]
- 다음 등급까지: 1,968/2,048
[제시되는 세 가지 보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주십시오.]
[주의하세요! 견습 단계를 지나면, 당신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합니다.]
[능력 스캔 중.]
[플레이어 스캔 중.]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고? 언제뭘 보호해 주기라도 했다는 건가?’
어쨌거나, 단번에 승급했다.
용사 포인트를 조금만 더 모으면 견습 단계를 지날 것 같다.
C트리플 플러스 급 보스를 간단히 처리해
버릴 정도니 뭐로든 ‘견습’ 취급을 받는 게 우습기는 하다.
허공에 뜨는 창을 쪽 훑어본다.
[선택을 시작합니다.]
[사용 가능한 포인트가 최초로
1,000을 초과했습니다.]
[레어 보상이 개방됩니다!]
1. 암흑 저항
- 당신은 그물 같은 암흑 속에서도 빛을 붙들 수 있습니다. 암暗 속성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60 상승합니다.
2. 늪지대 적응
- 단 한 번도 높에 빠지지 않고 늪지대의 인카운터 보스를 처리했습니다.
늪지대에서의 이동 패널티가 75%감소됩니다.
3. 악령 제압(Rare)
- 형태를 가진 악령을 처음으로 제압했습니다. 세계의 또 다른 악령들을 잠재우거나 갈가리 찢어 버리십시오. 당신의 공격이 영체에게
1.3%의 유효 데미지를 안깁니다.
‘호오.
전반적으로 보상이 상당히 세다.
거미굴에서 웹슬링거를 처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수치 자체에서 큰 차이가 난다.
늪지대 패널티 감소,
암흑 속성 저항.
모두 높은 수치고, 옵션 자체가 무시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늪지대 적응을 선택한다면, 많은 자들이 기피하는 장소를 역으로 최적의 전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암흑 저항을 선택한다면, 언제 어디서 부딪힐지도 모를 마왕의 수하들과 한층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답은 둘 다아니다. 나는 3번을 선택했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악령 제압(Rare) 획득!]
[모든 종류의 공격이 영체에게도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됩니다.]
- 공격력의 1.3%가 적용됩니다.
- 경우에 따라, 속성 공격의 경우 추가적인 타격이 가능합니다.
제령 制靈.
지금까지 쌓아 왔던 능력들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영들이 어느 정도로 공격을 버틸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적용되는 수치는 몹시 미미하다.
그래도 이 특전을 선택한 이유가있다.
‘아이작.’
그 녀석 때문이다. 놈이 처음 내몸에 달려들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더러운 기분이다.
새로 얻은 이 특전이 어느 정도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빙의 같은 영적인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첫걸음 정도는 되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일단 혼자서 레어 등급의 특전이다.
암흑 저항과 지형 적응은 차차
얻어 나갈 확률도 높아 보이니까.
특전을 선택하고 나니 반투명한 푸른상태창이 사라진다.
남은 건, 인카운터 보스의 커다란잔해뿐.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이리저리살핀다. 역시 눈길을 끌며 까맣게 빛나는 뭔가가 있다.
다가가 손으로 잡는다. 젤리처럼 끈적거리는 물건이다. 가지고 있는 루-륨 공병에 넣기 적당한 크기.
[<사형수의 원념 (Rare)>을 획득하셨습니다!]
참회하지 않는 죄인들의 원념이 액화된 물체입니다.
예메라의 교단에 가져가실 경우, 정화의 증거로 사용해서 교단과 친밀도를 올리실 수 있습니다.
퀘스트 아이템인가.
물론 예메라의 교단과 친밀도를 올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친밀도를 올리기는커녕.
그 반경 수십 킬로미터 안으로
다가가기도 싫다.
참회의 여신 예메라의 사제들.
놈들은 내 정체를 알아채는 대로, <정화>시키기 위해서 달궈진 쇠로 내리칠 게 분명하니까.
‘그 용도로는. 기각.’
아이템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무언가의 제작 재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이 필요하다.
‘슬라임에게 감정을 부탁할 수도 없고.’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머릿속에 잠시 스쳐 간다.
당분간 보관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잡다한 아이템이 많이 떨어졌다.
<살인자의 참수 도끼>, <길 잃은 자의 비수>, <고통으로 얼룩진 어깨갑옷>같은 것들이 나왔다.
지금 쓰는 무기에 비하면 모두 잡템에 불과하다. 하지만 레나가 생각난 탓일까. 모두 습관적으로 챙겨버렸다.
‘.가다가 버려야겠군.’
51년 후에 숲으로 복구된다는 늪지대를 벗어나는 데는 다시 세 시간이 걸렸다.
눈앞에 황무지가 펼쳐졌다.
깜깜한 밤의 황무지를 걷는다. 황무지에는 살아 있는 것들이 적고, 나는 편안해진다.
황무지에는 침략과 약탈이 없다. 냄새와 욕망이 없다. 황무지는 깨끗하다.
파리한 새벽이 동쪽에서 조금씩 스며든다. 새벽이 밝아 오는 시간에 인간들의 도로를 찾았다. 표지판에 아만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아만.
고위 정보상과 암살자들의 임시 평화지대, ‘등불’ 달리아크가 있는 도시.
후작의 죽음에 대한 정보도 그곳에서 얻었다.
무엇보다, 캐빈 애슈턴.
자꾸 신경 쓰이는 그 이름과 엮여있는 곳이라고 추측된다.
애슈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자, 달리아크의 중개인은 더 들으려고도 않고 단번에 없다고 잘라 냈으니까.
결국 힘이 부족한 게 문제다.
황실 비밀 서고로 다짜고짜 쳐들어가는 것도, 달리아크에서 애슈턴에 대한 정보를 억지로 빼내는 것도 지금 수준에서는 불가능하다.
‘아직 한참 멀었어.’
나는 이 거대한 판 앞에서 한없는 무력함을 느꼈다.
제국 4대 검주인 레안드로 후작도 당했다. 그의 시체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몇 번씩 죽으면서 연달아 기연을 얻어 왔지만, 이 판에 끼어들기에 나는 아직도 터무니없이 약하다.
강해져야 할 이유들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생겨난다.
지도와 주위를 번갈아 보며 계속길을 걸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인적이 드문 산으로 접어들었다.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눈 쌓일 준비를 하는 듯 가시처럼 앙상히 마른, 나무 사이로 비치는 겨울 햇빛이 차갑다.
간밤에 얼어붙은 흙이 발에 밟혀서걱거린다.
아직 얼어붙지 않은 계곡물이 졸졸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계곡물 소리에 섞여 인간의 처절한 비명 소리도 울린다.
눈을 뽑는다고 윽박지르는 소리, 즐겁게 킥킥거리는 소리, 온몸을 구타하는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산길 한쪽에서 인간 셋이 하나를 사냥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나는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탐지 스킬은 비활성화.
하지만 그 상태로도 멀리 놈들의 존재는 세세히 감지된다.
비명은 높게 거듭되다 잦아들었다.
아무도 구해 주러 오지 않는다는 걸, 비명은 상대를 쾌감에 차게 만들 뿐이라는 걸 깨달은 걸까.
소년은 살해당하지는 않았다.
묶인 채로 끌려가고 있다.
‘노예사냥인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적당히 그들을 지나쳤다.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움찔거리던 인간 셋은 내가 별말 없이 지나치자 안도한 것 같다. 그들을 지나 계속발걸음을 떼려 할 때였다.
- 파밧!
소년이 빠르게 내 뒤에 숨었다.
목과 팔다리가 묶인 상태에서도, 단번에 구르듯 내 뒤에 몸을 숨긴것이다.
세 인간이 나를 보고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감행한 도박이다.
“도와주세요!”
세 남자가 나를 보고 다시 몸을 긴장시킨다.
나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 물었다.
“내가 왜?”
당연하게 구출을 요구하는 태도가 약간의 호기심을 일으킨다.
“도와, 도와주세요!”
질문에 답하는 대신, 목에 밧줄이 걸린 소년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한다.
“이들은 악당이에요! 노예사냥꾼이 란 말이에요!”
물론 그것도 대답은 되지 않는다.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대로 지나가지 않는 나를 보고 세 인간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못이 촘촘히 박힌 쇠몽둥이를 든, 검은 머리칼의 남자가 옆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저거 별로 좋은 갑옷 아니야.
칼이 무식하게 커서 쫄았는데, 속이 텅 빈 허세용인 거 같아.”
“확실하오?”
“내가 이 짓 하기 전에 대장장이 견습했다니까.”
빠르게 상의를 끝낸 사냥꾼 대표가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한숨을 푸욱내쉬며 말한다.
“하아. 씨. 거, 우리 장사하는 중이니까 빨리 가던 길 가지?”
“우리는 네크론 신사회라고.”
“네크론인가.”
여기가, 잡템을 버리기 꽤 적당한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래! 일 크게 만들기 싫으면.
- 퍼걱!
배낭에서 ‘살인자의 참수 도끼’를 꺼내 던졌다.
뚱뚱한 놈의 배를 뻥 뚫고 날아간도끼는 저 멀리 날아가 나무그루를 뚫고 땅에 박힌다.
“이러면 일이 커진 건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어 ‘고통으로 얼룩진 어깨 갑옷’을 꺼냈다. 한숨을 쉬며 위협하던 놈의 어깨를 단번에 짓뭉개 버렸다.
뼈와 살이 뒤섞여 피와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강철 견갑은 아예 놈의 오른팔을 날려 버리고 폐 부위에 깊이 박혔다.
아무런 기술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힘 스랫은 이 정도의 능력을 발휘한다.
견갑과 함께 데구루루 굴러가며, 비명도 못 지를 고통에 꺽꺽거리는 놈에게서 흘끗 고개를 돌렸다.
하나 남았다.
“히, 그1, 끄아, 히익.
덜덜 떨며 뒷걸음치며, 어디로 도망칠지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놈의 발목에 ‘길 잃은 자의 비수’를 던졌다.
잘린 발목에서 피가 뿜어진다.
사방이 고통으로 시끄럽다가, 곧잦아든다. 아까 소년의 비명이 잦아들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망했군.’
셋 다 쇼크로 금세 죽어 버렸다.
한동안 규격 외의 것들만 상대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약하다.
길을 지체한 데다가, 이런 식이면 얻는 것도 하나 없다.
살려 뒀으면 하다못해 근처 네크론신사회에 대한 정보라도 고문으로들을 수 있었을 텐데, 충동적으로 짓이겨 버린 거다.
늪의 악령에게 얻었던 세 잡템은 역시 수거하지 않기로 했다.
닦고 쓸 가치도 없어 보인다.
혹시나 쓸 게 있나 싶어서 대충시체를 뒤졌다.
붉은색 신분증 세 장이 나왔다.
‘역시 네크론이군.’
사칭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무래기다.
어디서 죽어 자빠져도 누가 찾기는 할까 싶었는데, 그중 한 놈의 품에 꽤 두꺼운 수첩이 들어 있다.
‘이 수첩은. 익숙한 느낌인데.’
수첩에는 페이지마다 왼쪽 상단에 인간의 이름이 적혀 있고, A, B 같은 등급과 함께 가격이 적혀 있다.
문득 특이한 문장이 눈에 띈다.
<레나, 탈주 중.>
<현상금 10세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