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69화 (169/458)

170화 매듭 (10)

‘역시 아이작 이야기겠지?’

이것까지 털어놓아도 될지 잠시 고민했지만, 레나가 챈들러를 믿을 만한 인간이라고 한 게 떠올랐다.

인간 전반, 특히 남자에게 평가가 혹독한 그녀의 말이라면 분명 틀림없을 것이다.

‘동생도 맡기는 인간이니.’

“그야, 그때 네가 상대하던 건 다른 녀석이었으니까.”

나는 사실 그대로 말했다. 챈들러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다른. 녀석이었다니, 그게 무슨말씀이십니까?”

“너도 아는 자였다고.”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야기를 들은 천들러의 눈이 커지며 연달아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아니. 어떻게. 그런.! 세상에.! 그럴 수가.!”

아이작과 있었던 이야기를 적당히 다듬어 챈들러에게 들려주었다.

대체로 사실을 말했지만, 진명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저희를 도와주시려다 그런 고생까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살짝 이상한 것 같긴 했지만, 곧떠나셔서 금방 잊어버리고 있었죠.

정말 놀라운 일뿐이로군요. 그 주술사가.

“그러니 그 계약서 같은 건 이제잊어버려도 된다. 내가 만들어 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까.”

마음대로 계약서를 파기한다고

레나에게 한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아이작이 멋대로 끼친 민폐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챈들러는 단호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계약은 계약입니다. 받은 게 있는데 어떻게 그냥지나갑니까. 게다가 끔찍한 고초까지 겪으셨는데!”

“내가 쓴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당시 그라스미어의 영주는, 영주 자신의 의사로 한 계약입니다.”

“.네가 이러는 걸 알면, 부친이 무척 싫어할 것 같은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 버리고 온천 여행 가셨는데요, 뭘.”

“부디, 언제든 계약상의 내용을 자유롭게 요청해 주십시오.”

그가 단호하게 말을 끝냈다.

- 띠링!

챈들러의 머리 위에 호감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좀 부담스러운데.

눈빛에 신뢰와 애정이 한층 더

진하게 느껴졌다.

더 상대하기도 애매해 슬쩍 말을 돌렸다.

“그런데 크리스티나는?”

그의 호위인 크리스티나가 눈에 띄지 않았다.

“아, 이쪽으로 오십시오.”

챈들러가 나를 안내했다.

“하루하루 다르게 실력이 훌쩍 느는 게, 제 호위로만 묶어 놓기는 역시 아까운 인재더군요.”

광화 가스를 마시고 각성 상태를 경험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요즘 훈련을 맡아 주고 있습니다.”

“훈련을?”

“예.”

챈들러는 나를 영주 집무실로 안내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

연병장이 한눈에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장소다.

“저기입니다.”

챈들러가 아래를 가리켰다.

익숙한 모습의 여자가 서른 명

정도의 병사를 훈련시키고 있었다.

- 까앙!

한 명 한 명과 전부 칼을 부딪쳐 가며 진형과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었다. 병사들의 눈에서 하나같이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진다.

“저건 또 뭐지? 죄라도 지었나.”

크리스티나의 팔다리에 매달린

쇳덩이 네 개가 보였다.

두꺼운 쇳덩이가 수갑처럼 발목팔목에 매달려 있었다.

챈들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무게추입니다. 병사들을 교육하면서, 자기도 훈련해야 한다고 항상 매달고 다니더군요.”

“흐음.

“활쏘기를 연습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매달고 다닙니다.”

“열심이군.”

“지금 만나 보시겠습니까? 오신 걸 알면, 당장 저걸 벗어던지고 대련을 신청할 겁니다.”

“아니. 그건 좀 무서운데.”

“하하핫.

병사들은 다들 전쟁이 얼마 안 남은 걸 인식하는 듯 적극적으로 훈련하고 있었다.

마왕군의 일선에서 부딪쳤던, 억지로 징집된 소모용 병사들과는 눈빛과 기세부터 완전히 다르다.

‘저 인간 여자도. 잘 녹아들어 살고있군.’

에라스트에서 험한 꼴을 당하던 모습이 더 이상 겹치지 않았다.

위에서 가만히 훈련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옆에서 챈들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글쎄.”

“오래간만에 뵈니. 뭐라도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없다고 하려다, 문득 슬라임에게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혹시 이 칼을 한번 녹여 볼 수 없을까.”

“제련製鍊을 원하시는 겁니까?”

“감정사에게 들었다. 안에 특수한 금속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더군.”

“금속 이름이.

“프리모. 파이트랬나.”

“프리모파이트. 들어 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야금은 별로 아는 게 없으니, 수석 대장장이를 지금 불러 보겠습니다.”

“수석 대장장이?”

“예. 드워프에게 직접 사사받은 툴즈라는 분이 계셨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그 동생이 성안에서 무기 제작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홈. 프리모파이트가 얼마나 제련하기 힘든데.”

한창 작업하다 나타난 듯, 얼굴이 붉게 그을린 백발의 대장장이는 내쪽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말했다.

“영주님, 감정이 확실한 겁니까?

그. 칼 안에 뭐가 들었는지, 말은 누구나 막 할 수 있고 그런데.”

‘이자가 수석 대장장이.?’

영주인 챈들러 앞인데도 노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라스미어가 무기의 도시인 탓일까.

대장장이의 지위가 다른 곳보다 높은것 같았다.

“감정은 확실하다.”

내가 끼어들었다.

“흥. 웬 귀족 나리.”

노인이 가볍게 코웃음을 뱉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그셔츠 아래 드러나는 팔꿈치 아래는 제국 특작부대 병사들보다 훨씬 더두꺼운 노인이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시면 해야죠.

해야 되는데, 이게 참.

노인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프리모파이트는 쇠보다 훨씬 더무겁다던데, 저겁니까?”

- 툭.

나는 별말 없이 칼을 벽에 기대놓았다.

“별로 무겁단 생각은 안 했는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내 쪽을 곱지 않은 눈으로 흘끗보던 대장장이가 손잡이를 잡고 이마에 꿈틀 핏줄을 세웠다.

“어이쿠.!”

근육이 빼곡히 붙어 있는 노인의 손목이 흔들렸다.

그가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은 채 간신히 균형을 잡고 끙끙댔다.

- 쿵!

곧 다시 칼을 바닥에 놓았다.

“이걸 한 손으로 다루다니.

칼의 무게를 느끼고 뭔가 생각이 달라졌는지, 퉁명스럽던 노인은 조금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감탄과 승부욕이 섞인 표정으로 날보던 노인이 곧 챈들러를 향해 말했다.

“뭐.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겠습니다. 기대는 마십시오.

돌아가신 툴즈 형님이라면 모를까, 전 다뤄 본 적도 없는 금속이라.”

“넉넉히 기다려 드리죠.”

“만져는 보겠습니다.”

노인은 그동안 쓰시라며 칼 한

자루를 넘겼다.

그리고 조수 두 명과 끙끙대며

대검을 들고 사라졌다.

“.될까?”

“뭐, 모르겠습니다. 저 칼을 만든 3대 영주님이 워낙 전설적인 분이라서.

저야, 그동안이라도 은공을 붙잡아둘 수 있어 기뽑니다.”

챈들러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레나 있을 때는 못 이러더니.’

호감도가 너무 오른 게 아닐까?

너무 가까이 오는 것 같아 슬쩍떨어지며 물었다.

“저번에 갔던. 주술사의 무덤말인데. 다시 가 볼 수 있을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 저벅.

반원의 석조로 된 회랑을 그대로 따라 걸었다.

아이작이 사라진 탓일까.

통로는 예전처럼 좁고 어둡지만, 석벽 틈마다 스며들었던 음산함은 한결 걷힌 것 같았다.

‘주술사가 갇히면서 결계도 함께 사라졌나.’

주술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

그저 짐작해 볼 뿐.

한참을 걸었다.

- 끼기기각

챈들러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까만 횃대를 움직였다. 계단이 드러나고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까마귀.

천사의 눈을 쪼아 먹는 까마귀는 물론 마왕 말파스.

내 몸에 빙의해 여길 빠져나올

때까지만 해도. 아이작은 즐거운심정이었을 거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은 전혀모른 채.

<조슈아.! 내 조슈아가.!>

<이럴. 어떻게 이럴 수가.!>

<내 후예들은. 마지막 숨소리하나까지 푸르손에게 바쳐진 거다.>

아이작의 절규가 떠오른다.

마왕들 사이의 분쟁.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면, 그 분쟁을 이용해 이득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반복한다고 해도. 무작정아이작을 만날 수는 없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놈을 이용하려다, 내가 뒤통수를 맞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다. 가자.”

문은 열린 채 그대로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부순 강철 골렘도 치워지지 않았다.

인간 수백 명이 여유롭게 설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원형 공간에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

“공간 활용은 안 하나?”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습니까. 내성지하 전체와, 그곳에 묻힌 모든 물품의 권한을 양도한다고요.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챈들러가 말한 대로다.

사실 여기에 들른 목적은 옛 추억회상 따위가 아니다.

- 그곳에 묻힌 모든 물품의 권한.

아이작이 쓴 계약서의 일부.

이 장소에 녀석이 무언가를 숨겨놓았을 확률이 높다.

보물 같은 것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혹시 아이작의 약점 따위를 잡을 부장품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내야한다.

두 번째 만남에 대비하기 위해.

‘탐지.’

[탐지 Lv.6을 사용.]

[심안心眼(C플러스)이 적용됩니다!]

예전보다 한 단계 오른 탐지 스킬로 사방을 훑었다.

스킬 등급이 상승하며 얻은 특전.

지형지물과 함정까지 모두 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주술사의 무덤에서는 어떤 수상한 물체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아니야. 나가자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밖으로 가지고 나갈 만한 물건이 라면. 그때 가지고 갔겠지?’

아이작은 나에게 빙의를 성공하고 빈손으로 나갔다.

계약서를 쓴 뒤에도 다시 무덤에 돌아오지 않았다.

을 되찾은 후에, 무덤에 있는

물건을 챙길 생각이었거나.’

더 가능성 높은 쪽은-

을 되찾지 않으면. 챙길 수도

없는 무언가가 여기 있는 걸까?’

당장은 풀기 곤란한 의문을 접어두고 밖으로 나섰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고 싶은 게 딱 하나있습니다.”

“뭐지?”

“혹시, 저희가 제작 중인 병기들을 한번 보아 주시겠습니까?”

“보여 준다면야.

‘그런 걸 뭐 부탁까지 하지?’

의문을 안고 녀석을 따라갔다.

녀석이 나를 안내한 곳은 거대한 창고였는데, 매서운 눈빛의 경비가 빼곡했다.

물론 챈들러는 가볍게 통과.

- 끼이이익.

거대한 문이 열렸다.

‘여기가 무기창인가.

사방으로 100여 미터의 공터.

눈앞에는 약 4미터 정도의 투창병기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제작이 전부 종료된 건 아닌지, 사다리를 댄 인간이 여럿 붙어 곳곳을 조이고 두드리고 있었다.

병기들을 보는 순간.

‘왜 데려왔는지 알겠군.’

[기계공학 Lv.3!]

[기계 분석을 자동 발동합니다!]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더 강한

관통을 줄지, 내구성을 향상시킬지 한눈에 들어왔다.

“저. 어떠십니까?”

녀석이 슬쩍 바라는 대로, 적당히 병기들의 허점을 지적해 줬다.

기능에 대한 지적이 끝났을 때, 묘하게 느껴지는 부분을 물었다.

“투창이 2미터 정도로군. 대인용이 라기엔 너무 크고, 공성용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날카로운데? 차라리 트레뷰셋을 쓰지 그런가.”

“그게 말입니다.

챈들러가 작게 말했다.

“연합의 <파일럿>들을 상대하기 위한 병기입니다.”

“파일럿.?”

분명 들어 본 적 있는 단어.

머릿속에서 그 단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챔들러의 설명이 좀 더 빨랐다.

“자유 연합의 기사들, 특히 제국국경 쪽의 병사들은 말보다 거대 철인鐵人에 타고 움직인다는군요.”

“사실 탄다고 할지, 착용한다고 해야 할지 조금은 애매한 크기죠. 그들을 꿰기 위한 무기입니다.”

“?"그럴듯하군.”

“보통의 <철인>이 4미터를 약간넘으니까요. 최대한 잘 뚫고 들어가게 창을 설계했습니다.”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이 인간남자도 제국 쪽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입장인 것이다.

“으음. 내 무기를 점검하는 데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이런, 실례가 많았습니다. 오늘 가르침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련이 가능할지 어떨지 아는 건 하루면 충분할 겁니다.”

“.그럼 내일 보자고.”

나는 첸들러와 헤어진 뒤 슬쩍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그놈들. 그대로 포기할까?’

내 투구를 벗기려 했던 제국군.

‘라인버그 남작이랬나.’

공포 스킬로 쫓아 보내긴 했지만, 아직도 나를 수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놈들의 동향을 확인해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