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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70화 (170/458)

171화 매듭 (11)

이런 일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

허술하게 대처하다간 언제 어디서 칼날이 날아을지 모른다. 부족한 관찰은 죽음을 낳는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지.’

조언을 줄 레나도 없다. 펜던트의 발동 시간도 한참 남았다.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짙게 뻗은 밤에 그림자를 숨기고, 적막해진 거리를 걸었다.

그라스미어의 밤은 조용했다.

간간이 횃불을 들고 순찰 도는

녀석들만 있을 뿐.

수마에 반쯤 잠긴 병사들은 숨은 그림자를 눈앞에서 놓친다.

첫 번째 목표.

날 검문하려 하던 병사들은 지금어디서 뭘 하고 있는가.

확인을 위해 성문으로 가는 길.

무언가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챈들러와 걸어오며, 그가 설명한 커다란 천막.

차갑게 내려앉는 달빛 아래, 유독빛나는 흰 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흰 천막 주위로, 무장한 용병들이 긴 창을 들고 차분히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다.

졸고 있는 녀석은 없다.

문제는.

‘느껴지지. 않아?’

천막 안쪽은 뭔가에 막힌 것처럼 기척이 닿지 않는다.

탐지 스킬을 써 봐도 간헐적으로 들리고 느껴질 뿐.

위험한 냄새.

더불어 익숙한 냄새가 난다.

용병들은 두셋이 한 조를 이루어규칙적으로 주위를 순찰하고 있다.

놈들의 음직임에서 엄격한 훈련을 거친 티가 났다.

조직적이다.

‘어디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별의 창병들.

챈들러는 그들이 엄격한 규율, 충실한 계약 이행으로 높은 평판을 가졌다고 했다.

소문과, 덧붙여지는 의견들.

후작의 죽음이 황당하게 왜곡되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았다.

평판이라는 건 누가 만드는 걸까?

어쩌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조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챈들러가 좀 안일한 게 아닐까?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쳤다.

‘이럴 때가 아니지.’

라인버그 남작이 어딜 가서 보고하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잡념을 떨치고 발걸음을 재촉해 곧성문에 도착했다.

경비대의 모습을 살폈다. 하지만 경비대가 전부 다 바뀌어 있었다.

내성에 있는 사이에 이미 교대를 마친 것 같았다.

‘역시 바뀐 건가? 일단은 여기서 기다려 봐야겠군.’

거리를 무작정 헤매도 답은 없다.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얼어 죽겠네. 얼어 죽겠어.

밤 경비조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 납치해 심문이라도 해 볼까싶었지만, 챈들러의 입장이라는 게있다.

병사들에게 질문을 하려면 입을 막기 위해 죽여 버릴 수밖에 없다.

챈들러에게 사고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도 있다. 말썽 같은 건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서서히 날이 밝았다.

다행히 익숙한 얼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나오겠지?’

밖에서 나를 둘러싸던 녀석들의 얼굴이 하나씩 확인됐다.

보병과 기병 둘이 어제처럼 다시 성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곧 비어 있는 자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장 중요한 자리.

‘.안 나와?’

라인버그 남작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이 싸늘히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간 거지? 누구에게?’

기다리던 경비병들이 교대하러 온녀석들에게 물었다.

“남작님은?”

“오늘 중요한 일 있다고 하셨어.

내일이나 모레쯤 오신대.”

“아예 밖으로 나가신 건 아니고?”

“아닐걸? 자세한 건 나도 몰라.”

‘중요한. 일?’

하필 이때 놈이 사라졌다. 나에 대한 보고일 확률이 높다.

<상관>의 결정이 내려지면 무언가 움직임이 나올 터.

‘.어쩌지.’

안타깝게도 힌트는 없다.

그라스미어 거리를 돌면서, 일단무작정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반나절 넘게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

탐지 스킬로 기척은 감지할 수 있지만, 누가 누군지 다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잡히는 건 대략적인 크기 정도.

도시 가운데 자리 잡은, 가장 큰선술집<피곤한 도끼>로 갔다.

동서쪽으로 한참을 가지 않는 한.

녀석이 근무하던 곳에서 술을 마시려면 이곳이 최적. 라인버그가 잘아는 장소일 확률이 높다.

술집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봐서 나쁠 건 없다.

- 끼익.

문을 열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주문 받겠습니다.”

이제는 슬쩍 은화 한 닢을 손에 쥐어 주는 것도 익숙하다.

“용돈이나 하시오.”

손안의 단단한 감촉을 확인한 종업원이 입을 떡 벌리고 말했다.

“어이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쟁을 앞두고도 돈은 통하는 것같다. 아니, 전쟁을 앞두었기에 더통하는 건지도 모른다.

“잠시만. 좀 둘러보지.”

“어이쿠! 예, 모쪼록 편하게. 룸까지 잠시 열어 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둘러보십시오!!”

- 드르륵! 드르륵!

종업원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름을 열었다.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뭐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없어! 닫으슈!”

“예이!”

종업원은 나를 커다란 술집의 2층, 3층까지 안내했다. 하지만 어떤 곳에도 라인버그 남작은 없었다.

“원하는 걸 찾으셨는지요.?”

“.없군.”

적당히 수고비로 은화 한 닢을 더쥐어 주었다.

“아이고! 평생 복 받으십시오!”

종업원의 허리가 바닥까지 숙여졌다.

곧장 문을 닫고 돌아 나가려 할 때였다.

“거. 레안드로 후작 말인데.”

익숙한 이름이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들렸다.

‘레안드로!? 그 인간 말인가?’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키 크고 뚱뚱한 남자와 앙상하게 마른 남자 둘이 앉아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마른 남자가 재촉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턱수염이 귀까지 돋아난 뚱뚱한 남자가 말을 이었다.

“죽기 전에 유블람에서 그 난리를 피웠다질 않아? 경비대를 싹 잡아죽이고, 영주를 확 갈아엎는다고 하면서. 그게 말이 될까?”

마른 남자가 고개를 신경질적으로 끄덕였다.

“당연히 말이 되지. 마약 살포에다인신매매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야 그렇지. 그러니, 내 말은.

이게. 가능한가 싶어서.”

“뭐? 무슨 소리야?”

“내 매형이 사령부 행정병이잖아.

이건 사실 비밀도 아닌데. 그게.

유블람에서 난리가 날 때, 후작은 저 서북쪽 끝에서. 임무 중이었다고 하더라고.”

열어 가던 손잡이를 놓았다. 발은 이미 안으로 돌아섰다.

“저희 가게가. 나가려다가도 다시 들어오게 되는 곳이지요! 헤햇!”

종업원이 내 눈치를 보다가 근처자리를 하나 치우고 의자를 했다.

쥐어 준 팁이 넉넉한 탓인지 주문으로 귀찮게 하지 않았다.

아예 의자에 앉아서 두 남자의

대화에 정신을 집중했다.

“임무?”

“응. 서리 바실리스크를 잡는 임무를 맡고 있었대. 이상하지?”

바실리 스크.

마왕군에서 본 적 있는 녀석들.

길이만 무려 삼십 미터에 달하는 흉악무도한 마물이다.

‘지금도 출현하는 건가.’

하지만 바다에서 크라켄을 잡은 레안드로 놈이라면 충분히 요리할만한 상대.

북방의 바실리스크 살해 임무를 놈이 받은 것도 이상하지 않다.

- 탁.

깡마른 남자가 술잔을 내려놓고 인상을 찡그렸다.

“대륙 서북쪽 끝과 동남쪽? 그럼뭐가 진짜야. 한 사람이 두 군데 있을 수 없잖아?”

“그러니까 말이지. 진짜 후작은 안죽었다는 소문이 있어. 유령을 봤다는 소리도 있다니까!”

‘.젠장.’

테이블 아래로, 발이라도 살짝 구르고 싶었다.

전부 내 이야기다.

평범한 인간 두 명이 내가 벌인짓을 술자리에서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 남쪽에 있던 게 진짜겠군.

그 후작은 유블람 행정관들이 분명확인했다며?”

“그래. 얘기들 하잖아. 회청색 머리칼에. 검기를 썼었다고.”

“살아 있는데 숨기는구만. 나타난유령이 진짜 레안드로 후작이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까지 어떻게 소문이 난 걸까.

수습이 절대 불가능할 지경인 건 분명하다. 절벽으로 떨어진 소년 탓을 할 것도 없다.

이번 생의 초반에, 후작 흉내를 낼때부터 이미 모든 일이 꼬였다.

<제국 대상조大上造 바티엔느 폰레안드로가 명한다.>

<유블람 영주에게 전해라. 자살할이틀의 여유를 주겠다.>

그때는 좋았다.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힘.

새로 얻은 스킬들.

인간의 법률을 으르렁거리며 루비아의 직접적, 간접적 원수들을 처참하게 살해했다.

죽음의 공포, 쫓기는 공포를 진득하게 느끼게 해 줬다.

내 힘이 이 정도라는 생각에 꽤 즐거운 마음까지 들었다.

소년을 구출한 뒤 마스커레이드로 모습을 보일 때에는 하찮은 우월감을 만끽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행동은.

후작을 죽인 황실의 심기를 몹시거슬리게 했을 것이다.

낭만적인 자살.

혹은 엠버와 연합의 암살.

기껏 조성한 두 겹의 소문이<후작의 유령>이라는 존재 때문에 초점을 잃고 흐릿해진다.

- 후작의 유령이 남부를 배회한다!

황실이 만들어 내지도 않았으며, 통제할 수도 없는.

<후작은 살아 있다!>라는 소문은 <후작은 왜 죽었는가?>를 완전히 묻어 버린다.

수도에서.

황실이 엮인 비밀 사육장을 전혀건드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처음부터 놈들에게 노려질 처지였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망할.’

一 끼익!

몸을 뻘 때다. 선술집 문을 열고 나가 내성을 향했다.

‘그래도 칼은 찾고. 챈들러에게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해야겠군.’

곧 떠난다고 말하기 위해 내성에 도착했을 때.

집무실 쪽에서 소란스런 언쟁이 들려왔다.

“전시에 그라스미어의 대장장이를 모두 징발해 주십시오. 병기를 수리하면서 전진해야 하니까요.”

“우리 장인들 전체를 다 전선에 내보내라는 거야? 자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챈들러는 불쾌한 심기를 조금도 감추지 않고 단호히 반박했다.

하지만 상대도 물러서지 않았다.

“황실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도시의 치안 권한 말씀인데.!”

‘라인버그?’

한참을 쫓았는데, 그야말로 등잔밑이 어두웠다.

바로 여기로 온 걸까.

아니면 황실의 명령을 전하러 왔다고 했으니, 이미 윗선과 접촉을 끝냈다는 뜻일지도.

나에 대해 보고를 끝냈을까.

‘흐음.

한참 앵무새처럼 떠들던 녀석이 떠났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타나 안으로 걸어갔다.

“은공! 오셨군요! 한참 나타나지 않으셔서 걱정했습니다.”

“내 걱정은 됐다. 너야말로 곤란해보이던데?”

물론 가장 위기에 처한 건 나.

하지만 챈들러 정도에게는 허세도 한번 부려 보고 싶다.

“다 보신 겁니까? 어휴.

챈들러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가 축 쳐져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예상 밖이었다.

“라인버그 남작, 원래 저런 사람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저런 사람이 아니라고?”

“예. 인망 두럽고, 줏대 있는 기병지휘관이었습니다. 근처에 주둔하면서 유사시 그라스미어를 보호해 주는 역할이었죠.”

“그런가.”

“예. 아버지와도 꽤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황실 꼭두각시로 변해 버렸죠. 사람이 아예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아예 바뀌었다고.

그 말을 잠시 곱씹던 나는 챈들러에게 충고를 건넸다.

“어쨌건, 황실 명령에 정면으로 어깃장이라니 위험한 거 아닌가?”

전쟁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무참하게 살해당했다는, 루비아의 부친이 떠올랐다.

하지만 챈들러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그라스미어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제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몇 대째 이어져 온 가문인데요.”

‘게다가 이 정도면 많이 맞춰 주고 있는 겁니다.’라며 챈들러가 말을 이어 갔다.

“외동인 데다 친척도 없습니다.

저를 찍어 내도, 자리 대체할 인간못 찾을 겁니다.”

상당한 자신감이다.

에라스트의 전 영주, 레이 백작에게는 쓰레기 남동생이라는 대체제가 있었다.

청부업자 둘을 보내어 루비아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대체재’가.

하지만 챈들러는 아무도 없다.

게다가 도시 내에서 가문에 대한 평판은 가히 압도적.

얼핏 들어 보면 그의 말에 일리가 느껴진다. 상식선에서라면.

‘하지만. 황실이 과연 그렇게 생각대로 굴러가 줄까?’

놈들은 검주인 레안드로 후작을 깔끔하게 살해했다.

마왕과 결탁하고 있다는 심증까지 수도 곳곳에서 찾았다.

챈들러의 예단 따위, 가볍게 짓부수는 집단일 게 분명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지 챈들러가 나를 보고 물었다.

“짚이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글쎄.

하지만 뭔가 확실한 증거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튼 조심하라고.”

뻔한 당부였다. 그러나 정말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사육장의 벌레 이야기를 뭐라고 해야할까?

레안드로 후작이 죽은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하지?

‘.후우.’

그대로 떠나려 했지만, 왠지 그냥두고 가기가 영 불안했다.

‘이거라도 작동됐으면 뭔가 좀 더안심일 텐데.’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손으로 살짝 쥐었다. 여전히 어둡게 빛이 죽어 있다.

[다음 발동까지: 49:41:35.]

구까지 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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