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매듭 (15)
[위기회피(B)가 발동합니다!]
허공에 반투명한 상태창이 떴다.
역시 지금이 위기.
임의로 발동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저절로 펜던트에 빛이 들어왔다.
펜던트가 시키는 대로만 이행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잠시, 포근한 안도감에 젖었다.
하지만 저번과 달리 그 밑에 아무해결책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해결책을 모색 중.]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뭐라고?’
[다시 탐색합니다.]
- 파직.! 파지직.!
펜던트에 불꽃이 튀었다.
[올바르지 않은 탐색.]
[회피가 불가능합니다. 지원되지 않는 수준의 위기이거나, 해결책이 전무합니다.]
[새로운 경로로 탐색 시도.]
[새로운 경로로.]
[새로운.]
[시스템 과부하.]
- 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펜던트가 바스러졌다.
- 스르록.
작은 조각이 되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깨어진 부스러기들이 통로 바닥에 붙었다. 부서진 조각들은 더 이상빛을 내지 않았다. 아무런 충고도 해 주지 않았다.
신음이 말이 되어 새어 나왔다.
“이게. 무슨.
잘게 조각난 부스러기들의 단면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마치 내가 그렇게 부서진다는 걸 조금 앞서 보여 주는 듯했다.
이해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예측하지 못했을 뿐이다.
펜던트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내가 펜던트에 걸었던 기대가 지나치게 컸다.
혹은 닥친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
조각조각 부서진 펜던트에 대한 집착을 끊어 냈다.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빠르게 남은 선택지를 검토했다.
선택은 결국 두 가지.
첫 번째는 결계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결계는 내 생각보다 훨씬 오래, 어쩌면 반영구적으로 버텨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흘끗 봐도 여기는 마왕 말파스와 관련된 결계.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어쩌면 마왕 강림 때까지라도 버텨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어떻게든 안쪽 석문의
비밀을 연구해 보자.
펜던트가 괜히 깨진 건 아닐 터.
상황이 나아질 희망은 무척 낮고, 증원된 적들이 안으로 밀고 들어올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두 번째는.
돌격.
밖을 지키고 있는 가면들의 합공에는, 뼈가 전부 회복된 지금이라 해도 승산이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데리고 간다는 각오로 돌격해야 한다.
포획된 후, 연구용으로 해체당해실험 대상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 달그락.
품속 깊이 넣은 기스-제-라이의 단검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가면들과의 전투에서 사용한 뒤, 아직 글자 하나가 남았다.
여차할 경우 두개골에 박아 넣고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안쪽을 어떻게든 뚫어 볼 것인가.
위험을 감수하고 돌격할 것인가.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뭘 하려고 해도.
가면들의 동향을 알아야 한다.
- 팟!
일단 몸을 튕겨서, 빠르게 통로 입구로 가려고 할 때였다.
- 콰앙!
사방의 공기가 폭발했다.
땅이 흔들리며 엄청난 진동이 터져나갔다. 몸이 위로 붕 뜨는 것 같았다.
통로 바닥 전체가 크게 울렸는지, 돌가루와 흙먼지가 바닥에서 튀어뽀얗게 날았다.
‘지진인가? 아니.
- 우우우응!
나는 반사적으로 검기를 최대한 발현시켜 입구를 겨냥했다.
결계 침입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호호. 여기랍니다. 왜 엉뚱한 곳만 보고 계실까아?”
- 스르록.
잘못된 것은.
방향.
칼을 겨눈 그 자세로 천천히 뒤로 돌았다.
- 파직.! 파지지직.!
“이 소녀는, 서운해 버려요.?
기괴하게 애교를 부리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굵은 목소리에 억지로 비음 섞인 가성을 낸 어투.
석문이 있는 곳.
처음 굉음이 울린 곳이지만, 설마그쪽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먼지 사이로 드러나는 상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귀 옆에서부터 입술 위, 턱 아래까지 모두 뒤덮고 있는 빳빳하고 두꺼운턱수염.
어깨까지 오는 긴 새까만 머리.
길게 붙여 위로 올린 속눈썹.
잔털까지 전부 다듬은 눈썹에다, 입술은 피로 칠한 듯 붉다.
남자가 콧김을 불었다. 양쪽 코에 모두 꿘! 커다란 비취 코걸이가 바람에 쓸려 달각거렸다.
거대한 두 개의 흉근 아래는 은색코르셋이 받쳐져 있고, 그 아래는 반투명한 실크 드레스와 굽 높은 금색구두를 신었다.
신장은 1미터 90센티 정도.
제압당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그 인간의 외모때문은 아니었다.
순수하게.
사방의 공기가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았다.
상대를 공격해야겠다는, 도주해야 겠다는 판단조차도 순간 내려지지 않았다.
“아이 차암. 눈을 못 떼시네에.
계속 그렇게 보시면 부끄러워요?”
상대가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 잘그락.
상대의 허리에 걸린 아홉 가면이, 과장된 엉덩이의 움직임에 따라서 잘그락거렸다.
은빛 가면, 검은 가면, 하얀 가면, 보라색 가면.
가면의 공통점은 한 가지.
그 모두 하얀 뇌수와 새빨간 피에 질척하게 젖어 있다는 것.
‘설마.
가면들의 모습이 전부 익숙하다.
단 한 가지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는 이미 결계를 뚫고 왔다. 어떤 기척도 없이.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가면들을 전부 살해했다.
어떤 소음도 없이.
저자야말로 가면들이 두려워하며 말하던<그분>임에 틀림없었다.
승산 따위 조금도 없다.
가면들이 모두 순순히 그 자리에 서서 목숨을 헌납한 게 아니라면, 내가 도망칠 수 있는 확률도 없다.
펜던트가 단번에 깨졌다는 사실이 납득될 정도.
이런 상대에게서 어떻게 도망친다는 말인가? 나는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남자가 굵은 팔뚝을 쓰다듬으며 멋대로 지껄였다.
“흐잉. 그래도 기뻐요.”
“해골에게도 통하는 매력이라니.
흐응. 나, 정말 치명적인 거예요?”
“조금 더 가까이 와요. 가까이.
- 휘우우.
반쯤 벗은 근육질의 남자는 붉은 입술에 두꺼운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내 쪽으로 흩뿌리며 윙크했다.
작게 바람이 불었다.
뽀얗게 떠 있는 돌먼지는 어느새완전히 걷혀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누구지?’
<깎아>지른 듯한 이목구비.
하지만 따져 보면 분명한 미남이라고 불릴 만한 외모.
다만 얼굴을 뒤덮은 것은 분장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화장이며, 장신구들이었다.
“있잖아요.
- 콰앙!
그는 왼쪽 팔꿈치로 보석액이 흐르는 석문을 가볍게 쳤다.
- 우수수!
내가 칠 때는 흠집도 나지 않던 석문 표면에서 돌가루가 연달아떨어져 나왔다.
“이 문은, 어떻게 여는 걸까요오?
아이. 알려 주세요.”
두렵다.
눈앞의 상대는 도무지 측정할 수 없이 강하다.
기세를 내뿜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
상대는 자신의 투기閱氣를 억지로 짓누르다시피 감추고 있었다.
‘끝인가.
궁금증이라도 풀어 볼 심산으로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이 결계를 뚫은 거냐?”
“네? 흐흐흥. 약한 결계는, 강한 결계에 잡아먹혀 버려요.”
남자는 천천히 양손을 들었다.
그리고 흩뿌리듯 가볍게 흔들었다.
- 짤랑.
- 짤랑, 짤랑-
팔찌의 알알에서 어울리지 않는 묘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놋쇠 방울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같기도 했고, 얇은 장신구 수십 개가 만드는 울림 같기도 했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저를 두르고 있는 건 다섯 겹의 결 계 예요.”
“.뭐라고?”
나는 깜짝 놀랐다.
움직이는 누군가를 대상으로 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아이작, 이 녀석.
결계 전문가인 주제에 이런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니.
상대가 눈을 살짝 떴다.
“첫 번째, 기척차단. 여기까지 온것도 못 느끼셨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다른. 가면들도 비슷한 결계를 두르고 있는 거냐?”
“에이. 비교도 안 되게 형편없는 열화판들이죠. 저는 명품이구요.”
‘<열화판>들에게도 당해서 기척을 못 느꼈다는 건가.’
자괴감을 느끼는 사이, 상대가 씩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결계, 자기강요. 세계를 멋대로 변경해도, 소녀에게는 안먹힌답니다. 저어, 누가 뭐래도 제주관이 뚜렷하거든요?”
“.그래 보이는군.”
남자는 붉게 칠한 입술을 안으로 살짝 말았다. 쾌락이 흐르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머지는. 더 친해지면 알려 드려요. 그러니, 여기 문 여는 법 좀가르쳐 주실까요?”
- 위이이이이잉.!
반투명한 은빛 기운이 상대의 손주위로 강렬히 휘몰아쳤다.
검기劍氣라고 불러야 할까.
손가락에서 직접 뽑아낸 기운은, 아예 굳건히 유형화되어 있었다.
- 스롱!
기운은 점차 압착되어 갔다.
아주 얇은 침 모양이 되어 남자의 금빛 손톱 끝에 머물렀다.
‘설마. 레안드로 후작을 이자가 죽인 건가?’
후작의 몸에 난 상처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운.
‘말을 더 시켜야겠어.’
어떻게든 놈에게 정보를 얻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말해 주지.”
기대감 탓일까. 짙은 화장에 덮여있는 남자의 눈썹이 아래위로 들썩이고 있었다.
“어머. 정말 아시는 거예요?”
그는 굵은 손가락을 조물거리며 또각또각 내 쪽으로 조금씩 가까이 걸어왔다.
‘신경 쓰이는군.
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물론. 말파스의 회로를 네 몸에 새겨 넣어라. 일단 회로가 생긴 후, 특정 패턴에 따라서 힘을 쏟아부으면된다. 그 패턴은.
물론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이다.
진실이 뭔지 알 게 뭐란 말인가.
회로를 새기고 시간을 끌면 내가 놈에게서 얻는 정보가 늘어난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 또각.
힐 소리가 칼날처럼 울려 퍼졌다.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저. 거짓말 싫어하는데.
“무슨 소리지? 네 의문에 성심껏대답해 주고 있는데.”
무거운 공기가 갈비뼈 안에 들어차는것 같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대답했다.
- 짤랑!
“세 번째 결계.
남자가 겹겹이 채워진 팔찌들을 다시 한 번 가볍게 흔들었다.
“진위변별眞僞辨別
“≪????.r
“저, 황실 정보기관의 수장이어요.
슬프지만 거짓말 정도는, 간단히 구별할 수 있는걸요.
‘역시.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가파르게 스쳐 갔다.
밖에서 본 가면들은 황실 기관의 일원들. 그라스미어의 영주를, 외모복제의 애벌래로 교체하려 한 것 역시 황실의 음모.
네크론 놈들이 관리하던, 애벌레사육장 역시 한 번에 연결된다.
고깃덩어리로 변해 있던 후작도 이놈의 손을 빌린 황실의 짓.
문득, <달리아크>의 정보는 정말 정확하구나 하는 꽤 실없는 감상이 떠올랐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직감하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네가 후작을 죽였나?”
_ 툭.
의외였다,
후작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는 걸음을 멈췄다.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연극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지요. 소녀가, 그를 후작 위位에 추천했으니까요.”
그의 기이한 자칭自稱에는 관심도 생기지 않았다.
‘후작 추천이라고.?’
머리가 멍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귀중한 추천권을 사용했는데.
소녀가 그이를 추천할 때는, 사이좋게 이 세계를 가지자는 거였죠! 연합도, 엠버도 모두 짓밟아서 엉덩이 아래두자는 거였는데.
- 아드득.
남자는 이를 꽉 깨물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눈에 보일 정도의 살기가 뿜어졌다.
“골반도 없고 머리 큰 년 하나뒈졌다고 일을. 망쳐요?”
이사벨을 말하는 건가 싶었다.
“아아. 어떻게. 이럴 수가.
발정이 나려면 그냥 나한테 나지.
생일 선물도 못 사 줬는데.!”
그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추천권.!’
흡수한 제국 예법에 따르면, 누군가를 후작으로 추천할 수 있는 건 오직 공작公爲뿐이다.
영공전하令公殿下로 불리며, 최대셋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작위.
그중 하나가 내 앞에 있다.
한참 슬픔에 젖어 있던 남자가 날바라보며 말했다.
“제 입장이 너무 곤란해졌어요. 이런하찮은 것까지 직접 처리해야 할 만큼. 문 여는 법, 사실 전혀 모르시죠? 아이. 모르시네.”
남자는 석문을 아쉬운 듯 훑었다.
- 또각!
굽 높은 구두가 바닥을 울렸다.
“뭐어, 쉬운 쪽부터 가야죠오.”
‘젠장.!’
죽이려는 걸까? 아니면 납치?
나는 펼치지도 않은 기세에 눌려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공작이면 뭐가 어떻단 말인가?
황실 비밀기관의 수장이 뭐가 어떻단말인가?
- 딱딱.
이를 위아래로 부딪쳤다.
갑옷은 반쯤 허물어져 버렸지만, 몸은 전부 복구한 상태.
지킬 것은 없어도.
싸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시 한 번 검기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기회는 단 한 번뿐.
‘격발.’
- 화르르!
화기火氣가 솟아올랐다.
‘산성.’
- 치이익!
부식의 오라가 검 전체에 스몄다.
‘질풍.’ ‘뇌격.’
바람과 번개의 기운까지 대검에 전부 불어넣었다.
wrc n: ㄹ
?II~?
뚜투루루 뚜뚜ㅡ
‘질주!’
코걸이를 들썩이며 오는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공격을 하고 죽고 싶었다.
- 파아앗!
온갖 기운이 타오르는 검을, 놈의 코앞에서 정면으로 휘둘렀다.
‘일도양단.’
“어머머, 너무 잡스러워.”
- 쾅!
칼자루를 잡은 몸이 빠르게 위로 튕겨져 나갔다.
- 퍽!
5미터가 넘는 통로 천장에 몸이 거세게 부딪혔다가 다시 초라하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양 손목모두 절반 이상 금이 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대검은 겨우 깨지지는 않았으나, 칼날 쪽에 주먹 모양으로 아예 푹들어간 자국이 있었다.
“무리, 무리예요.”
그는 바람과 산성과 불꽃과 번개사이를 마치 봄바람처럼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대검으로 대체 월 하고 싶었던 건가요? 베기에 집중하셔야죠.”
머리털 하나, 치렁치렁 늘어진 옷하나 그을리지 않았다.
꾸준히 수련해 왔다.
이 정도면 적어도 한 방은 먹일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담한 결과.
그렇게 수준이 떨어졌던 걸까?
남자가 몸을 꼬고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되도록 검기劍氣 하나에 집중해 보세요, 해골 씨.”
- 또각.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후작 때와 같이 온몸이 묶인 채 달그락거릴 생각은 없다.
- 콰직!
나는 억지로 단검을 꺼내 머리에 박았다.
- 츠릇! 츠르르르.I
마지막 하나 남은 글자벌레가, 내머리에 생긴 균열을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안심했다.
이제 끝이다.
아니.
다시 시작이다.
- 또각.
“흐으응.
걸어오던 놈이 어깨를 으쪽했다.
후작과 달리, 남자는 의외로 쉽게 내 죽음을 허용하는 것 같았다.
스륵.
남자의 굵은 손가락이 내 갈비뼈사이로 깊이 들어왔다.
마치 없는 감각이라도 만들어 낼것처럼 척추를 스으윽 주물거리며
희롱하던 손이-
- 바스스.
약간의 힘을 줬다.
뼈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어차피 쓰레기시니까, 뭐.
쓰레기.
빛나는 풀 플레이트를 걸친.
용사의 시종이 날 짓밟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런 쓰레기가!>
아직 나는 여기에 있다.
실패만을 연거푸 쌓아 나간 채로, 마왕이나 용사 따위와는 까마득한 저 아래 멀리 떨어져 있다.
눈앞의 남자-
정체 모를 제국 공작公詩을 보고 말했다.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응? 무슨 헛소리. 어? 어라.!”
놈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놀라 부릅떠진 짙은 화장의 눈.
몹시 길었던 이번 생에서.
기괴한 인간의 손아귀에 쥐어진 내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 위이이이잉! 위이잉!
- 우르르롱! 광!
하늘에서 진동이 울린다.
- 번쩍! 번쩍!
벼락이 연거푸 친다. 새까만 하늘이 밝아진다.
- 우지끈!
- 투두두두두두!
파헤치고 뜯겨진 것들이 캄캄한 허공을 날아다닌다.
“망자亡者여!”
- 쏴아아아아.
“망자여! 콜록, 콜록.”
‘.격발.’
一 화르르!
“이러면 좀 따듯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