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76화 (176/458)

177화 루비아 (2)

- 툭.

나는 놈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걸었다.

“뭐야. 더 안 찾아봐?”

- 치이이이익!

“히갸아아악!”

크라켄의 산酸이 갑옷을 태우고, 옷을 태우고, 살을 태운다.

피는 흘러내리지 않는다.

지글지글 끓어오르고는, 신경과 함께 엉망으로 뭉쳐진다.

놈들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깨를 잡고 누르는 힘에 조금도 저항하지 못한다.

“끼힉! 히이익!”

첫 생애에서는 아예 놈들의 뒤로

접근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다섯 번째 생애에서도 사투 끝에 간신히 이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쓸 필요조차 없다.

그 가운데 하나로도 쉽게 모두를 늘러 버릴 수 있다.

- 치지지지직!

두 놈은 인간 중에 상위 10%에는 가볍게 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숙련된 사냥꾼들.

손발이 맞는다.

웬만한 것들은 어렵지 않게 잡아유린하겠지.

하지만.

그저 아래로 누르는 내 손놀림에, 뼈가 으스러지며 다리가 땅 아래로 천천히 처박히고 있다.

- 꾸두둑! 꾸두두둑!

어떤 특별한 스킬도.

마법도 전혀 필요가 없다.

그냥 순수한 힘 스탯으로 누르면 이렇게 된다.

“끄아아아아아!”

“끄흑! 흐흐흑! 끄흐흐흐.!”

‘슬슬 그만둬야 하나.’

여기서 더 했다가 둘 모두 쇼크로 바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몸을 가진 한 여자 대신.

손에서 강산强酸을 뿜는 딱딱한 해골이 나타났다.

그들의 다리뼈를 부수며 단단한 땅아래로 처박는다.

그것만으로 심장이 멎을 상황.

거기에 더해, 과격한 출혈은 내의도보다 빠른 죽음을 부른다.

“뭘 해야 하지.

솔직히 별로 물어볼 건 없다.

네크론 신사회에 대해 물어볼까?

이 두 놈은 목덜미에 작은 뱀조차 그려져 있지 않은 하부 인원.

가진 정보라고 해 봐야 의미 없는 수준일 게 분명하다.

마왕들에 대해서는?

아예 기대할 필요조차 없다.

아무것도 모를 거다.

“전혀 모르겠지?”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물론.

“끄흑! 끄흐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뭐,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알아요! 압니다! 끄아아아악!”

“히익! 끼힉! 끼히헉!”

뭘 안다는 걸까.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봐.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좀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르지.”

나는 아무렇게나 말하며 두 놈을 천천히 짓밟는다.

- 꾸드드. 꾸드득.!

동적인 명상을 하는 것처럼 집중해서 두 인간의 몸을 아주 천천히 발로 밟아 으깬다.

“끄헉! 꺽! 히끄극!”

고민하고, 정리할 게 많은 밤이다.

그럴 때는 이런 반복 작업이 꽤나유용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연달아 메시지가 떠오른다.

두 남자는 쓸 만한 정보도 하나주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아는 게 없어서다.

비가 둘의 피와 뇌수를 아래로 홀려보낸다.

다음번부터는 이런 식으로 시간 써주기도 아까울 것들.

그래도 놈들을 천천히 으깨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일단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 덥석.

무덤 앞에 놓인, 앞으로 엎어진 비석윗부분을 손으로 잡았다.

느릿하게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새겨져 있는 게. 그러면 내 이름인가?’

아이작이 요란을 떨며.

내 진명을 개방해야 한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함정이었지만 의문은 남는다.

비석이 사라진 뒤.

놈이 주술을 펼칠 때 벌어진 일.

내 진명을 주술로 묶으려던 아이작은 오히려 자기가 무언가에 당해 묶여버렸다.

‘이해가 안 됐단 말이지.’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내 정체가 궁금해졌었다.

그때는 비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지만.

지금이라면.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대체 뭐라고 적혀 있을까?

일단 이름만 알아낸다면, ‘등불’ 달리아크에서 정보를 살 수 있다.

T&T 같은 곳에 그 이름의 정체를 의뢰해 볼 수도 있다.

‘.물론<정보>로 취급될 정도로 유의미한 이름이어 야겠지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느긋하게 비석을 내 쪽으로 돌렸을 때였다.

긴장이 탁 풀렸다.

[######]

비석에는.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다.

? 쏴_아_아_아아 ?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

돌 가운데 전면부가 거칠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건.

훼손되지 않은 중간중간 부분을 면밀히 살폈다.

- 달그락.

손으로 더듬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글자는 도무지 쓰여 있지 않다.

마치 훼손되기 전에도.

이 비석에는 원래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

이중의 장막帳幕.

긴장이 사라진 자리를, 더 짙은 의문이 메운다.

누가 훼손할 걸까?

아무것도 없는 비석을 왜 처음에 이름이 있었던 것처럼 가장했을까.

누가? 왜?

조금도 짐작 가는 바는 없다.

묘비의 훼손은 최근에 이뤄진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흔적이다.

‘이름을 알아내는 건. 실패로군.’

하지만 비석을 잘 보관해 두면, 혹시나중에라도 정체를 확인하게 될지 모른다.

- 퍽!

비석을 내 무덤 안쪽 깊숙이 꽂아넣고, 대충 흙으로 덮었다.

어차피 이 위치는 기억한다.

꾹꾹 흙을 다져서 비석을 묻어 놓은 뒤, 밟아 죽인 두 놈의 시체를 꼼꼼히 뒤졌다.

- 짤그랑.

74로티.

별 의미는 없는 금액.

많은 시간을 레나와 함께한 영향인지도 모른다.

지갑과 신분증을 빼앗았다.

예전에 봤던 장부를 빼앗았다.

‘노예 장부.’

이미 확인한 장부.

하지만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장부를 다시 펼쳤다.

페이지마다 글자가 빼곡하다.

왼쪽 상단에는 여자의 이름.

옆에는 A, B 같은 등급과 함께

가격이 적혀 있다.

하지만.

‘역시. 빠져 있어.’

장부가 변해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 몇 번을 거듭해서 뒤져도 발견되지 않는다.

<레나, A등급, 10세이론.>

그 문구가 없었다.

‘세계선이 달라져서인가? 그녀는 그러면 어디 있는 거지?’

<납골당》게 들어오지 않을지도, 아예T&T 남부 지부에 없을지도 모른다.

<잠시 떠나도,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확신이 생겼으니까요.>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 라도.>

<제가 조금씩 변한다면. 길드의 핵심인 채로가 더 좋을 테니까.>

<다음 생에는 스승님을 도와드릴위치에 있지 않을까요?>

물론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나’라는 이름이 이 장부에 적혀있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상당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번 생의 ‘레나’는 저런 부류들에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수도의 T&T 지부를 뒤져 볼까?

레나와 접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된다고 해도.

몇 번째 생에 걸친 기억을 갖고 있는 나와 달리 레나는 아무것도 모를터다.

완전히 낯선 존재.

어쩌면 적敵.

찾는 건 둘째치더라도.

그녀의 삶에 함부로 난입하는 게 몹시 망설여진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는 T&T에서

무척 잘 지내고 있었다.

‘그 세계선이 이어진다면.

오히려 내 접근이 큰 민폐가 될 가능성이 높겠지.

나중에 천천히 고민하자.

밑으로 작게 내려 뒀던 상태창을 다시 하나씩 열어 보기 시작했다.

일단 스탯창부터 시작이다.

[Lv.6(189)]

[체력: 71]

[힘: 82]

[민첩: 74]

[지혜: 63]

[잔여 포인트: 5]

다시 레벨 1부터 시작이다.

초기인 만큼 레벨은 금방 오르고, 스탯도 쉽게 쌓인다.

방금 두 인간을 죽여 오른 스탯은 전부 힘에 투자했다.

- 띠링! - 띠링! - 띠링.!

[힘이 올랐습니다!]

[힘이.]

방금 전처럼, 벌레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압도적 완력을 행사하는 건 그 자체로 꽤 저열한 쾌감을 준다.

물론, 그 이유만으로 힘 스탯에 투자한 것은 아니다.

75 이하의 스탯은 다른 녀석들에게서 빨아들일 수 있다.

80이 넘어가서, 흡수가 안 되는 힘스탯에 투자하는 게 효율적인 일이다.

나는 다음 상태창을 본다.

[1 차 봉인 해제.]

[전직이 해제되었습니다.]

‘봉인 해제.

전직이 해제되었다는 말을 곰곰이 생각한다.

열 번이 넘게 시간선을 반복하며, 지금껏 쌓아 온 레벨은 190 이상.

‘하지만 계속 해골병사였지.’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다.

별 의문 없이 받아들였다.

직업적인 혜택 따위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 삶을.

하지만.

다른 무언가로 바1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봉인이라니.’

내가 계속 해골병사에 머무르도록막히고 있었다는 이야기일까?

기억이.

정신이 찢어질 것 같다.

어떤 악의가 느껴진다.

<세계>가 나를.

[동화율이 떨어집니다.]

[72.7%.]

- ^|-?]-?|-?]-.I

내리는 빗줄기 하나하나에서 기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척추 사이사이를 두드리는 물방울이 무언가를 떠올리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아무것도 떠오르는 건 없다.

실마리 하나 잡히는 건 없다.

- 달그락.

머리에 흐르는 건 빗물을 흔들어털어 냈다.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을 거듭할수록.

마왕군의 최전선에서 움직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이 세^!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음험하고 터무니없는 곳임이 알게 된다.

저번 생에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떠올렸다.

아이작과 망가진 교단.

트로핀 나냐우와 T&T의 분열.

살해당한 레안드로 후작.

애벌레 사육장.

황실의 유령들.

그라스미어의 비밀 통로.

정체 모를 제국 공작.

‘그놈은 대체 누구였을까?’

자신를 소녀라고 하던 인간 수컷.

유령들의 수장이라는 것 외에는, 뭐 하는 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일단.

마왕과 황실에 관련된 무리들은 최대한 만나지 말아야 한다.

비를 쏟으며 산을 가린 어둠처럼, 이 세계를 마왕들과 황실이 가리고 있으니까.

- 팟!

나는 두 구의 시체를 아무렇게나멀리 던져 버리고, 루비아가 기다리는 동굴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저.

루비아의 갈색 눈동자에 졸음이 잔뜩묻어 있다.

‘너무 늦었군.’

두 남자를 천천히 밟아 죽이는 데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썼다.

이미 슬슬 동이 틀 시간이다.

“저. 안 움직였어요. 여기에서 가만히. 기다렸어요!”

루비아는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듯한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졸음에 취한 건지.

아니면 호감도에 취한 건지.

나에 대한 의문과 경계심이라고는 보여 주지 않는다.

그 태도에 어찐지 맥이 조금 풀려버렸다. 루비아가 이미 흐물거리는 눈을 다시 뜨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그게.!”

- 풀썩.

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한쪽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루비아의 몸을 받쳤다.

어떻게든 지켜 주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은 부드러운 몸이 한쪽 팔에 감긴다.

‘격발.’

물기를 털어 내고, 불길로 말린 모피를 그녀의 아래에 깔았다.

‘.예전보다 오래 버렸군.’

처음 함께 동굴에 왔을 때는 두시간을 걷다가 쓰러져 잠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올 때까지 밤새도록 버틴 것이다.

체력의 영향인지, 높은 호감도의 영향인지는 모른다.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다.

곤하게 잠든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입술 끝에 따듯한 숨이 잠시 머물다 흩어진다.

내가 아니면 쉬어지지 못했을 숨.

‘.오늘 밤 정도는.’

푹 쉬게 해도 될 거다.

하얀 손가락 뼈 사이사이 감겨든 풍성한 갈색 머리카락을 본다.

지독히도 오랜만에 보는 광경에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잠든 그녀의 상태창을 다시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름: 레이 루비아]

[체력-9 힘-7 민첩-8 지혜-14]

지독히 약하다.

내가 없다면, 그녀가 두 사냥꾼의 협공에서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목 졸리고, 뜯어 먹히고, 짓밟히고 난자당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물론 약하고 악한 것들은 세상을 가득 메울 만큼 많다. 먹고 먹히고 살해하고 살해당한다.

그들을 모두 돌아볼 여유 따위가 나에게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나를 무덤에서 일으켰다.

말을 걸고, 눈송이를 뭉쳐 던졌다.

꽃을 건넸다.

갑옷을 선물하려다 살해당했다.

그리고는, 수회의 회귀 끝에 다시 만나 내 팔에 잠들어 있다.

‘세 번의 삶 정도는. 이 여자를 위해서 살아도 되겠지.’

꽃에 한 번, 눈송이에 한 번.

건네받지 못했던 갑옷에 한 번.

나는 빠르게 계산을 끝내 버린다.

누가 봐도 정확하다. 홈잡을 구석따위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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