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77화 (177/458)

178화 루비아 (3)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본 채 6시간 정도가 흘렀다.

물이라도 받아 올까 했지만 잠든 그녀는 나를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곤란하군.’

스탯창을 바라본다. 보이는 근력수치는 10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떨쳐낼 수가 없다. 특별한 스킬이라도 가졌는지 모른다.

그냥 그녀의 숨이 몇 번 섞였을 뿐인데, 동굴 안의 공기가 어느새나른하고 몽롱해진다.

“으응. 으으응.

조금 더 기다리자, 그녀가 작게 신음소리를 냈다.

“깨어났나.”

루비아가 두 눈을 손으로 가볍게 문지른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나를 보며 천천히 젖은 입술을 연다.

“꿈이.

잠꼬대 묻은 목소리가 느슨하게 입밖으로 흘러내린다.

“꿈은 아니지.”

끼어들었다.

“흐끅!”

짧은 신음이 루비아의 가날픈 목안에 걸렸다. 그녀는 가볍게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그거. 제가 할 말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뜬다. 놀라서 달아오른 체온이 느껴진다.

“신기하다.

루비아는 내 쪽으로 천천히 몸을 기대 오며 물었다.

“정말 제 소환에 응하신 거죠?”

“그래.”

루비아가 잠시 우물쭈물거리더니, 결국 말을 꺼낸다.

“이 근처에 있는 다른 강한 네크로 멘서가 해골님을 소환한 건 아닐까요? 정말 저예요? 확인해 보지 않으셔도 괜찮으실까요?”

터무니없이 강한 네크로멘서라면 분명히 있다.

‘기스-제-라이.’

세계선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면, 3개월 후에는<메마른 지하묘지>에서 그녀를 볼 수 있게 된다.

황제 암살을 준비하는 그녀를.

‘꼭 해 줘야 할 말이 있는데.’

전해야 할 말이 있다. 찾아가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 루비아에게 집중하고 싶다.

“확실하다. 그대가 나를 일으켰다.

계약은 성립되었지. 끊고 싶은가?”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그녀가 좌우로 고개를 젓는다.

“그럼. 영혼 같은 걸 드리면. 되는 건가요? 아니면.

“영혼?”

“너무 강한 분을 소환했잖아요!

어, 그러니까.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르면.!”

흥미로운 주장이다.

“어, 그게. 제 영혼 같은 게 쓸모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니까. 뭐라도 드려야 될지.

“아니, 마음에 드는데.”

“마음에. 드세요? 제 영혼이?”

- 달그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루비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좋은 표정이라도 지어 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런 건 무리다. 루비아는 눈을 꼭감았다.

“그럼. 가져, 가져. 가세요!”

웃음이 나왔다.

물론 영혼은 받지 못한다.

아이작 같은 주술사는 어떻게 쓸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인간의 영혼 같은 건 받을 줄도 쓸줄도 모른다.

이마에 제 영혼이 담겨 있기라도 한 듯 루비아가 얼굴을 내밀었다.

- 스륵.

하얀 손가락뼈를 뻗었다. 이마에 닿는다. 손끝에서 닿아 오는 미열이 천천히 안쪽까지 전해진다.

어쩌면 이것을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을지도 모른다.

“가져갔다.”

“.아.”

짧은 탄식을 뱉고,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곧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죠?”

“내가?”

“네. 손에서 불을 일으키셨잖아요!

마법사시죠?”

“게다가. 음.

“이야기하지 그러나.”

루비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무겁단 말이에요!”

≪.<?, ,

“저. 완전. 무겁다고요. 절안고 엄청 빠르게 달리셨잖아요!”

물론 들면서 무게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지금까지 반복된 삶 동안 그녀가 무겁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깃털보다 가볍던데?”

루비아가 풋, 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허리를 꺾었다.

“말도 안 돼!”

“든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무겁고 싶은 거라면 좀 더 노력해살을 찌워야겠군.”

“흠.!”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움찔거렸다. 가만히 루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날 일으킨 목적은 뭐지?”

처음부터 다 아는 척 이야기하는것도 좋지만, 모르는 척 받아넘기는것도 나쁘지 않다.

“하고 싶은 거라도 있나?”

루비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주먹을 꼭 쥐었다.

“성을. 다시 되찾고 싶어요.”

‘변했군.’

예전의 루비아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엠버에 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인은.

자기가 일으킨 해골이 생각보다 훨씬더 강하다는 것.

그 사실이, 그녀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루비아는 나에게 다시 사정을 자세히 털어놓으며 말했다.

“영주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냥 구해 주고 싶어요. 저를 도와 주려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요.

너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어요. 저는 그들을 다 버리고 도망쳤고요.”

“.될까요?”

물론 성 탈환 자체에 문제는 전혀없다.

‘너무 쉽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할 때조차도, 에라스트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나보다 강한 존재는 없었다.

별거 없는 남부의 소도시.

성문을 차고 들어가거나, 성벽을 훌쩍 뛰어넘어도 된다.

현 영주와 몇 안 되는 추종자들을 죽이면 간단히 끝나는 일.

다만.

걸리는 건 황실.

황실이 내세운 놈을 잘라 내고 새영주를 앉힌다고?

황실의<유령>들과 직접 싸워 본입장에서, 그들의 강함은 충분히 알고있다.

결국 뒷감당이 문제다.

하지만.

‘영주가 힘이 없다고 했던가.

밤새도록 두 남자를 고문하면서 들은 바로는 그러하다.

새로 영주가 된 루비아의 삼촌은 지독한 무능함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듯했다.

위험부담은. 어쩌면 생각보다 적을지도.’

결국 누가 영주건.

얌전히 황실에 협조하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애초에 그렇다.

황실이 자신을 확실히 뒷받침해 줬던 거라면.

지금의 에라스트 영주가, 자신의 조카딸인 루비아에게 위협을 느낄이유는 조금도 없다.

내쳐질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루비아를 살해하려고 한 것은.

‘영주가 되어도 괜찮을지도.

에라스트 공략.

의외로 위험하지 않을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퀘스트까지 있다.

[루비아를 에라스트 영주로 등극시키십시오!]

[통치 레벨을 10까지 올리세요!]

[보상: ???]

나는 그녀의 상태창을 다시 한 번불러내, 퀘스트를 확인한다.

보상이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도전할 이유로는 몹시 충분하다.

그녀가 물기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애처롭게 호소한다.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처형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구해.

주고 싶어요.”

“어떤 인간들이 갇혀 있지?”

“일단은.

“가지.”

“정말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건 없다.

루비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에라스트에서도 핵심적인 인물들은 루비아를 지지하다 옥에 갇혔다.

그들을 풀어 줘 일을 하게 하고, 현 영주가 데리고 온 인신매매단패거리만 정리하면 일은 깔끔하게 끝날 것 같았다.

‘너무 쉬운 거 아닌지.’

그런 의심이 들 정도다. 레나보다훨씬 높은 등급의 퀘스트가 이렇게 쉬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어쩌면, s급 퀘스트 정도는 이제나에게 쉬운 일이 된 건 아닐까?

“그럼 제가 할 일은.

나는 루비아를 보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냥 걸어.”

“걸으. 라구요?”

“그래.”

“그냥 걸어요?”

“네 자리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걸어가.”

“어.

그녀가 가는 길.

그 앞의 장애물은 내가 모두 전부 치우면 된다.

지독히도 쏟아지던 호우가 언제그랬냐는 듯이 멈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햇볕이 내리쬐고, 그 사이로 사뿐사뿐 루비아가 걷는다.

‘입구 쪽으로 다시 나와 보는 건 처음이군.

“아.

수많은 빗방울 자국이 찍힌 산길위에 루비아가 멍하니 서 있다.

동굴을 벗어나서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무언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새다.

“성으로 가. 네 자리로.”

“.네!”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

“어! 해골님이 안 보여요!”

“.옆에 있어.”

“신기하다. 그치만 보고 싶으면 어떡하죠?”

“우와앗!”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계속 옆에 있을 테니까.”

나는 다시 슬쩍 모습을 감췄다.

“와아. 없어졌다.!”

[서번트 시스템]

[루비아는 당신이 놀라울 정도로 신출귀몰하다고 생각합니 다.]

[칭호: ‘보이지 않는’을 획득.]

[마스터를 위해 싸울 때, 당신의 은신 능력이 30% 상승합니다.]

‘이건.!’

서번트 시스템의 재등장.

‘30%가 상승한다고?’

터무니없게 여겨질 정도의 증폭.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하나의 혜택만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아 온 힘에, 이런 게 몇 개만 겹쳐진다면 어떤 결과를 낳게될까?

내가 그녀의 <서번트>로서 계속활동한다면.

‘과연.’

혼자 움직일 때와 비교할 수 없는 효율로 강해지게 될 것이다.

단, 그 강함은<마스터>를 위해 싸울때라는 조건이 붙고 있지만.

루비아 곁에 있기만 하면 대부분그 조건은 충족될 터.

“저, 걷고 있어요. 옆에 계시는거죠?”

툭.

루비아가 밟을 만한 돌부리들을 치우며 생각에 잠겼다.

힘이 필요한 일은 내가 은밀하게 전부 처리해 주고, 그녀가 황실에 거역하지 않게 조언한다면.

적어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쩌면 마왕이 강림하기 전까지도.

간단하고 평화롭게 에라스트에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뭐, 좋지.’

어젯밤 쏟아진 비 때문인지, 탐지 스킬에는 헤매는 인간 여행자 하나잡히지 않았다.

루비아가 지나갈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 주며 산길을 약 1시간 정도 내려갔을 때였다.

‘저긴가.’

두 번째로 보는 에라스트 성문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도시.

꽤 침울한 낯빛의 경비병 둘이, 의자에 걸터앉아 건성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심지어 그 성문은 제대로 꽉 닫혀있지도 않다.

‘엉망이군.’

영주 쪽에서도 두 놈이 죽은 건전혀 모르고 있을 시간.

‘모조리 죽이기보다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제 입술을 다물고 걷는 루비아를 바라봤다.

그녀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자만 골라살해한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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