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루비아 (4)
높은 랭크의 탐지 스킬.
그리고 심안 특전은, 반경 수십미터를 내 영역으로 만들어 준다.
성벽 바깥에 있는 경비들은 물론 그 안쪽에 있는 녀석들까지 모두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봐도 보이지 않을 인간들까지 파악할 수 있다.
성벽 안쪽에 서 있는 녀석들까지, 전투원의 숫자는 모두 다섯.
존재 자체만 읽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부적인 측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인 강함은 읽힌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나에 비하면 그들 모두는 터무니없이 약하다.
어젯밤 밟아 으스러뜨린 두 명의 사냥꾼보다도 약한 무리.
‘이게. 평범한 인간이라는 거군.’
창칼이 아니라 대포를 장비하고 있어도 나에게 의미 있는 위해를 가할수 없는 존재들이다.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숫자가 얼마나 되건 상관없이 너무 손쉽게 학살할 수 있다.
성문 근처의 두 경비병은 심지어인지 속도조차 무척 느렸다.
“누구. 어? 아니.!”
“아, 아가씨!”
두 경비병이 모두 기겁을 하면서 루비아에게 소리쳤다.
“대, 대체 어쩌시려고요! 여기에 오면 안 되는 거 뻔히 아시면서!”
관리하지 않은 턱수염이 잔뜩 난 뚱뚱한 경비병이 손을 저으며 낮게 소리쳤다.
“무슨 험한 꼴 보려고 이러세요.
빨리! 빨리 다시 도망가세요! 절대다시는 오지 마십시오!”
의외다.
현 영주에게 그리 충성심이 깊지 않은 경비병들인 것 같았다. 곧장 루비아를 포획하려고 하거나, 창을 들이대지 않는다.
그들의 눈빛에 비치는 건 걱정과 공포다.
절반은 루비아에 대한 걱정.
나머지 반은 루비아를 잡지 않고 들여보냈을 때, 자신들이 받게 될 처벌에 대한 공포다.
그녀를 잡아서 영주에게 바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갈등은 눈빛에 비치지 않는다.
‘죽일 필요는 없겠군.’
루비아가 영주가 된다면 얼마든지 그녀에게 협조할 만한 인간들이다.
경비병은, 그저 경비병으로 쓰면 그만이다.
“지나가요.”
루비아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두 명의 경비병은 들고 있던 창을 거꾸로 잡고 길을 막아섰다.
단단한 물푸레나무가 루비아의
복부와 흉부 앞에서 교차됐다.
“저희가 왜 못 들여보내 드리는지 다 아시지 않습니
‘공포.’
[먹이와의 스탯 차이: 절대적]
“히, 히이이익!”
길을 가로막던 경비들이 몇 걸음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 쾅!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 어이쿠!”
“아이고.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확 뒤로
밀려난 경비들은, 다시 일어서지도 못한 채 바르르 몸을 떨었다.
정작 스킬을 쓴 건 은신 스킬로 숨어 있던 나였지만, 경비병들은 루비아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간신히 창이라도 들고 있었던 건, 내가 스킬을 약하게 발동해서다.
“그럼. 지나갈. 게요?”
“예! 예.!”
공포는 아주 편리한 스킬이다.
이게 아니었으면 일일이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해야 했을 것이다.
루비아도 방금 벌어진 사태에 꽤 놀란 것 같았다. 나를 찾겠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울리지 않는 진회색 로브 위로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이 흩날린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안에 있던 세 명의 경비병이 함께 달려 나왔다.
‘공포.’
“히이이익!”
“딸꾹!”
하지만 모두들 공포 스킬 한 방에 흠칫거리며 주춤주춤 뒤로 한참을 물러났다.
“아, 아가씨.!”
투구를 쓴 경비병이 이마에 땀을 흘리고, 이를 빠르게 부딪치면서도 루비아를 저지하려고 했다.
“이게. 무슨.!”
“몸이. 내 몸이 왜 이러지?”
“무슨 위엄이.!”
잔뜩 움츠러든 경비병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떨었다.
“저는 성으로 갈 겁니다. 자리를 되찾을 거예요. 지금이라도 저를 따라오고 싶다면.
루비아는 주저앉은 경비병들은 한 차례 쑥 훑어보고 말했다.
“따라오셔도 좋아요.”
경비병들을 슬쩍 보았다.
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들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마음속으로 웅성거리고 있는 게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경비병들은 루비아를 따라가지 않았다.
스킬을 풀자, 그제야 창백한 안색으로 땅을 짚고 쌕팩거리면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녀가 내성을 향해 걸었다.
토너먼트에 참가한 후.
에라스트를 걷는 건 두 번째.
루비아를 탈출시킨 녀석들을 처형하기 위해서인지, 거리 한복판에 처형대가 설치되어 있다.
처형은 고상한 취향이다. 타인의 죽음으로 자신의 불안을 덮는다.
인간과 잘 어울린다.
처형대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레이 루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루비아가 얼마 걷지도 않았을 때.
‘벌써 나타나는군.’
비릿한 살기가 느껴졌다.
화살통을 등 뒤에 맨 쥐 수염의 남자가 루비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시위에 화살이 매겨진다.
화살은 루비아의 가슴팍을 겨누다가 그 아래로 천천히 내려간다.
겨냥하는 곳은 종아리.
시위가 팽팽하게 뒤로 당겨졌다.
- 팟!
수십 미터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은밀히 사수의 뒤로 돌아갔다.
메겨진 화살을 바로 손으로 잡자, 물소 힘줄로 꼬아 만든 활시위가 텅빈 공간에서 파르르 떨렸다.
- 뚜둑.
그대로 목을 틀어 죽여 버린다.
누군가에게 살을 쏘려고 했으면 제목이 틀어지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한다.
조용히 거리 구석에 시체를 놓고 루비아의 주변 수십 미터를 다시 훌었다.
한 번에 모아서 싹 죽이는 것도 좋겠지만, 하나씩 사냥해 나가는 즐거움도 있다.
살의는 감지하기 어렵지 않다.
거리의 사람들은 대부분 루비아의 등장에 깜짝깜짝 놀라며, 숨어서 지내실 일이지 어쩌려고 왔냐는 반응이었다.
나는 공포 스킬을 조금씩 발휘해인간들을 루비아에게서 물러나게 만든다. 그들은 불가사의한 위엄이 루비아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편하겠지.’
이 도시를 통치해야 하는 인간은 물론 루비아지, 내가 아니다. 나는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게 좋다.
그림자 사이사이로 몸을 숨기며 은밀히 그녀를 따라갔다.
내성이 보일 정도로 걸어갔을 때, 갑자기 짧은 소리를 내지르며 발을 접질려 주저앉는 시녀가 보였다.
장을 보려는 듯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밖으로 나오던 시녀였다.
스킬을 쓴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루비아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아는 사이인 듯했다.
“카나트!”
“아, 아가씨.!”
시녀는 입을 딱 벌리고 루비아를 바라보더니 소리쳤다.
“도망가세요! 지금은 잠깐 밖에 나갔지만. 다들 곧 돌아올 거란말이에요!”
“어디 갔는데?”
- 저벅.
탐지 영역 바깥쪽.
스무 명 정도의 인간이 천천히 말을 몰고 들어오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주칠 수도 있었겠군.’
모두 방금 지나친 정문으로부터 들어오는 무리다.
비릿하다.
그들의 온몸에서 진한 퀴퀴함과 비릿함이 풍겨 온다.
폭력의 냄새가 난다. 강자를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검증하는 폭력이 아니다.
약하고 잡아 뜯기 쉬운 먹잇감만 철저히 찾아다니는 폭력의 냄새.
한 녀석은 목에 화살에 꽂혀 죽은 암사슴을 둘러메고 있다.
다른 한 놈은 잡은 령 몇 마리를 철사로 꿰어 말안장에 걸어 놓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영주와, 그 옆의 두 놈은 목에 뱀이 그려져 있었다.
저게 없는 자들은 정보가 없다. 있는 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를 뽑아낼 수 없다.
새삼 네크론과 싸우는 일이 지난하게 느껴졌다.
- 저벅.
목에 뱀이 그려진, 사슬 갑옷을 입은 남자가 앞쪽으로 나왔다.
“이야. 이거, 소식 듣고 와 보니 정말이네?”
공포 스킬에 한차례 주춤해 있던 군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처형장이 설치되어 있는 사거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흑, 아가씨. 어떡해요.!”
- 다그닥. 다그닥.
영주와 주변 무리가 루비아를 포위하듯 말을 몰았다.
말을 모는 모습이 한참 어설프다.
비교 대상이 떠올라 그런 건지도 모른다.
이사벨 백작이 지휘하는 근위대가 말을 몰던 모습이 저들과 겹쳐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기스-제-라이의 군단에 속절없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근위기사 둘정도로도 저 스물은 어렵지 않게 도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홉수할 정수가 있을 리 만무.
“레이. 커크.!”
루비아가 드물게 분노에 가득 찬표정으로 현 영주를 노려봤다.
“허허. 삼촌한테 말버릇 한번고약하구나.”
“쓰레기 같은 네놈을, 어떻게든 선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노력했던 우리 아버지를 죽여?”
“하하하하.
어렸을 때는 미형美形이었을 걸로 추정되지만, 살아온 세월에 의해 잔뜩 망가진 얼굴의 영주가 크게 웃었다.
- 촤륵!
옆에 있는 남자가 채찍으로 장갑낀 손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매달까요?”
“기왕 제 발로 찾아왔는데, 일단 무슨 소릴 하나 보자고.”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다시 온 거지? 보낸 애들이 그렇게까지 멍청한 것들은 아닌데 말이야.”
잠시 고민하던 영주가 루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하! 살아남았을 리가 없으니.
재는 내 조카가 아니네?”
“그럼 뭡니까?”
“뭐긴, 탈주 노예 같은 거겠지.”
말을 타고 주위를 둘러싼 인간들스무 명이 깔깔대며 웃었다.
하나같이 과장되게, 자신들에게 둘러싸인 루비아를 겁주려는 듯이 웃었다.
“그럼 영주님이 쓰실 겁니까?”
“글쎄. 너무 닮아서 신경 쓰이니얼굴 한쪽만 살짝 밀어 볼까?”
주먹을 꽉 쥔 채, 분노로 상기된표정을 하고 있는 루비아가 살짝 입을 벙긋거린다.
‘뭐라고 하는 거지?’
입 모양을 읽는다.
<계시죠?>
라고 하고 있는 것 같다.
스물이나 되는 인마人馬에 둘러싸여 버리자 루비아도 꽤 압박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사실, 루비아가 혹시 저들에게 할 말이라도 있을까 싶었는데.
지나치게 무신경했던 거 같다.
‘칼을 쓸 것도 없고.’
바닥에 있는 돌을 잡고, 그대로 던져 버린다.
- 펑!
날아간 돌이 폭발을 일으키며 두남자의 배를 그대로 뚫어 버린다.
내장과 피가 꽃처럼 뿌려진다.
“어? 어어?”
내가 던지는 돌이 빛살처럼 빨리 날아가기에,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영주와 그 무리는 돌처럼 굳어 있었다.
공정한 거래다.
스킬은 아예 쓰지도 않았다. 그런 데도 루비아를 둘러싸려던 놈들은 공포에 질려 새파랗게 움츠러들어있었다.
돌은 충분히 바닥에 떨어져 있고 얼마든지 주울 수 있다.
- 펑!
무기를 잡고 어딘가를 겨누려는 두명의 어깨를 터트린다.
분리된 팔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린다.
둔탁한 금속 소리가 몇 번씩 반복되며 거리에 울려 퍼진다.
투석 스킬 따위는 없다.
그냥 순수한 민첩과 힘에 의해, 빠르게 날아간 돌이 인간을 분쇄할뿐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오른다.
피와 뇌수, 내장을 뒤집어쓴 채 눈을 부릅뜬 남자들은 아직도 내가 어디있는지 알지 못한다.
“으, 으어어어.!”
날아가고 터지는 동료의 신체들사이에서 그들의 얼굴은 번갈아서 하얗고 파랗게 질려 갔다.
“어, 어, 어디야!”
덜덜 떨면서 아직도 무기를 들고 어딘가를 겨낭하려는 자들이 있다.
무기를 내려놓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내려놓게 만들면 그만이다.
‘돌 던지는 것도 재미있군.
- 퍽!
“끼! 끼아아아아!”
정확하게 손목을 맞췄다.
돌도 던지면 던질수록 정확도가 향상되는 것 같다.
손목 위쪽만 남은 자가 말 위에서 피를 뿌리며 묘한 춤을 춘다.
분수처럼 피를 뿜는 팔을 상하로, 좌우로 흔들어 댄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물론 그런 움직임이 나에게 별
감흥은 주지 못한다.
“히끅! 끄, 끅?”
경박한 딸꾹질과 함께, 거리에서 지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거들먹거리며 사냥터에서 돌아와, 루비아를 둘러싸며 얼굴 피부를 반쯤벗겨 낸 뒤 노예로 삼겠다던 현 영주의 다리 사이가 축축해졌다.
- 히히히힝!
지린 건 한 놈이 아닌 것 같았다.
- 다그닥! 다그닥!
불쾌하다는 둣, 말들은 남자들을 바닥에 떨구고 멀리 도망쳤다.
오줌을 지린 놈들 가운데, 고삐를 제대로 쥘 정신이 남은 자는 물론 한 명도 없다.
그들 모두가 머리를 땅에 처박고 벌벌 떨고 있다.
지금 그들에게 누가 영주냐고 물어보면, 모두 시키는 대로 대답할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성문의 경비병 같은 자들이라면 모를까.
루비아가 지배하는 에라스트에, 저런것들을 남겨 둘 이유는 전혀 없었다.
- 펑!
엎드려 있는 놈 하나의 어깨를 다시 돌로 부쉈다.
“끄아아아악!”
어깨가 부서진 남자가 뒹굴뒹굴구르며 바닥에 피를 칠한다.
흘끗 루비아를 바라봤다.
후들거리는 티 하나 내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는 당신의 활약에 대단히 전율하고 있습니다.]
[‘전율의 연속’을 획득합니다.]
[마스터의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 모든 스랫이 10% 상승합니다.]
[루비아의 호감도 상한이 40으로 상승했습니다!]
‘호오.’
[스탯 10% 상승이 적용됩니다!]
미묘하게 달라진 기분이었다.
뭘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그녀와 함께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특전을 받아 버렸다.
에라스트에 올 가치는 충분했다.
“내, 내 팔.! 내 파알.!”
“다리, 다리가 없어!”
남자들의 시끄러운 비명 소리가 내감상을 방해한다.
나는 시끄럽게 외치며 바닥에서 뒹구는 인간들을 내려다본다.
“살려 주세요! 사, 살려 주세요!”
에라스트 영주.
루비아 살해를 청부했던 그녀의 삼촌은 시체들 사이에 숨는다.
배 밖으로 내장이 질질 빠져나온시체들을 질질 그러모아서 덜덜떨면서 그 사이에 숨었다.
‘공포.’
나는 내장이 흘러내리는 시체들사이에 숨은 영주에게 돌을 던지는 대신 스킬을 발동한다.
[대상과의 스탯 차이: 절대적.]
스킬을 집중한다. 그가 벌레처럼 버둥거린다. 수도 사육장에서 길러지던 애벌레들이 떠올랐다.
어떤 인간은 벌레에 먹혀 버리고, 어떤 벌레들은 인간을 흉내 낸다.
그렇게 태어나서 사방에 분변과 구정물을 튀기며 살아간다.
물론 사육장에 꿈틀대고 있을 애벌레들도, 인간들도, 뼈밖에 없는 나역시 다를 건 없다.
모두 서로라는 붉은 잿물에 몸을 담그고 갉고 갉아 대며 살아간다.
그냥 지금 이 순간만은, 내가 이장소에서 좀 많이 강할 뿐이다.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