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82화 (182/458)

183화 루비아 (8)

“케윽!”

창날은 영주의 가랑이를 꿰뚫고 내장을 관통했다.

- 파삭!

그리고 얇은 종이를 찢는 것처럼 두개골을 깨뜨렸다.

단단한 천장에 박힌 창이 바르르떨렸다. 영주는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죽었다.

창날이 관통한 충격인지 흐물흐물거리는 그의 안구가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더러운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작게 폭발을 일으켰다.

제대로 뱉어지지도 못한 비명 소리가 핏줄기와 함께 입 밖으로 울컥 새어나왔다.

- 스숫!

영주를 꿰뚫고 천장까지 박혔던 긴창날이 다시 땅으로 들어갔다.

꼬치처럼 들려 올라갔던 커크의 몸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도 짧은 순간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공격이 들어온방향도 기괴했다.

‘땅 아래에서.!’

서큐버스님의 서재에서 읽은 지식이 떠올랐다.

바트라(지행술).

지하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바로 그술법임에 분명하다.

아예 땅 아래로 숨어 이동한다.

탁월한 은밀성은 말할 것도 없다.

정상급의 암살자와 도둑들 가운데 이 술법을 익히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읽은 바 있다.

‘숙련도가 올라가면. 땅 위보다아래에서 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던데.

희귀한 술법이다.

마왕군을 따라다니면서도 한 번도 이런 걸 쓰는 자들은 본 적 없다.

그런 고급 술법을 이런 시골 도시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탐지.’

역시나 스킬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창날이 발아래에서 뚫고 나올수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천장을 딛고 거꾸로 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집중하며 다음 공격에 대비했다.

언제 어디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땅에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른다.

하지만.

다음 공격은 없었다.

대신 딛고 선 바닥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기껏 자리에 앉혀 줬더니 말이야. 이거 참. 무능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는 다리 사이 정중앙에서 울렸다. 위치는 확실했다.

‘선수를 친다.’

상대는 지금 분명 방심하고 있다.

바트라(지행술)를 쓰는 술법사의 빈틈을 두 번 다시 노리기는 절대쉽지 않으리라.

손에 쥔 장검이 검기를 내뿜으며 울었다. 대처 방법은 명확하다.

‘격발.’

- 파삭!

화염으로 타오르는 칼날을 그대로 단단히 얼어붙은 바닥에 박았다.

말파스의 인장이 남느니 어쩌니 하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내성에서 주워 온 장검이 진흥 섬광을 발하면서 바닥에 깊숙이 박혀타올랐다.

‘질풍. 격발의 플레어!’

이를 악물었다. 단단한 땅에 박아넣은 칼을 상하좌우로 네 번 강하게 휘둘렀다.

바람과 불꽃이 서로의 몸을 휘감으며 푸른 검기 위에서 폭발했다.

- 파사사삭! 화르르르!

얼어붙은 바닥이 폭발하면서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칼끝에 걸리는 느낌이 좋았다.

‘죽었겠지.’

바닥에 있던 술법사는 온몸이 불타올라 죽었을 게 분명하다.

서큐버스님의 서재에서 읽은 책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었다.

지행술을 쓰는 상대는. 바닥을 불태워 상대한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올랐다.

‘.레벨 업인가?’

하지만 레벨 업은커녕 경험치를 얻었다는 메시지조차 뜨지 않았다.

상대는 죽지 않았다.

대신.

[주의! 무기 내구도가 5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 파삭.

한 번 사용한 장검이 눈에 띄게 상해 있었다. 칼끝부터 자루 쪽까지 이가 군데군데 빠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검기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칼로 무리한 짓을 한 결과였다.

‘.이런.’

급하게 주위를 둘러봐도 쓸 만한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에라스트보다 먼저 그라스미어에 한 번 들렀어야 했나?’

그라스미어의 대검을 가져오지 않았던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창고의 위치도 알고, 문은 그냥검기로 찢어 버리면 그만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럭저럭 쓸 만한 명검이라도 에라스트 내성에서 잘챙겨 왔어야 했다.

너무 여유로웠다.

벤슨 프레쳐와 석궁잡이를 너무간단히 짓이겨 놓은 바람에 긴장이 지나치게 풀렸다.

몇 번씩 반복해서 마주한 것들을 간단히 짓이겼다고 해서, 그 뒤에 벌어질 전혀 다른 상황까지 무심코가볍게 생각해 버린 것이다.

내 실수였다.

커크를 고문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아무 칼이나 주워 온스스로에게 넌더리가 났다.

‘이런.’

하지만 바닥에 박아 넣은 불꽃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건 아니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닥에 살짝 그을린 흰색 가면이 던져졌다.

가면 양옆으로는 장난처럼 검은 사슴뿔이 그려 넣어져 있었다.

- 人/、、/、、/、、,、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그와 비슷한 하얀 가면을 쓴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면 아래로는 어둠을 두른 것처럼 무언가 흩날리는 느낌만 있었다. 그녀의 등장과 함께 감옥안을 흐릿하게 밝히던 횃불들이 일제히 꺼졌다.

- 스스숫.

좌우 앞뒤로 비슷한 가면 다섯이 더 나타났다.

육 대 일. 만만해 보이는 자는 단하나도 없다.

애초에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 똑. 똑.

정면에 나타난 여자의 발밑으로는 레이 커크의 것으로 보이는 탁한 핏방울이 아래로 떨어진다. 이들의 정체는 물을 것도 없다.

‘.유령.’

황실의 유령들.

첫 생애에서는 아예 그 존재조차 몰랐던 집단.

서큐버스님에게도 전혀 들은 바가 없고, 어디서 읽은 것조차 없었다.

그들이 뭘 하는 집단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황제를 위해 모두를 감시하면서, 거리낌 없이 모두를 살해한다는 것정도를 짐작할 뿐.

표면상 황제를 호위하는 ‘근위대’

보다 훨씬 강한 자들이 바로 이들유령이 다.

명예나 긍지, 존중 따위는 완전히 시궁창에 처박고, 가장 위험하고 음험한 임무에 투입되는 강자들.

결코 쉽게 접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열 번이나 회귀한 뒤에야 처음으로 이들과 칼을 맞댔다.

무려 레안드로 후작을 사칭했다는 오해를 사고 나서야 이들의 가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도.

언젠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이라고.? 여기서 바로?’

에라스트.

남부의 작은 도시다.

그 어떤 특산품도, 눈여겨볼 만한 요소도 전혀 없다.

대체 왜?

황실 근위대 기사단장급의 실력을 가진<유령>들이 이 허름한 도시에 나타나는가.

황실에 어떤 반기도 들지 않았다.

축출된 레이 커크가 유령이 당장 출동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도 절대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쓰레기처럼 간단히 죽여 버렸을 리가 없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보잘것없는 도시에.!’

하지만 깊이 생각할 틈은 없다.

포위망이 조금씩 좁아진다. 싸우면 패배할 거다. 내 앞에 선 유령이 양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으음.>

그녀가 흰 가면을 좌우로 조금씩 기울인다. 세 조각으로 갈라진 자국자체가 문양으로 새겨진 기이한 가면이었다.

<이상하네. 언제 우리를 본 적이있나?>

“무슨 소리지.”

싸우면 곧 죽는다. 승산은 없다.

무기도 엉망이다. 사실 전에 썼던 대검을 들고 온다고 해도 여기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굳이 칼을 부딪칠 필요도 없다.

단언컨대.

이들을 그라스미어에서 마주쳤던 자들보다 윗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라도 정보를 알아내고 죽는 편이 낫지.’

저들이 달려들지 않는데 공격할필요는 없다.

<확실히. 별로 놀라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주위에 선 하얀색 가면들으로부터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황실 비역에 적혀 있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니, 황당한데요.>

<국장 후보자들을 승급 전 반드시이런 시골에 근무시키는 방침이, 솔직히 무슨 저질 농담인가 싶었습니다만.>

<진짜 뭐가 나오긴 나왔네요.>

<사르디아 주간에는 특히 더 잘살펴 보라더 니 . 어 제부터 잖아요.>

‘황실의. 비역? 국장 후보자?’

저들은 마치 나를 실험체 보듯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조금 알아듣게 말해주겠나?”

하지만 무시 일변도.

여섯 명의 유령은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각자 방위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뚫을 공간은. 없었다.

<지침에 따라 제거하겠습니다.>

<그러면 시작할까요?>

- 스릉.

여섯 개의 무기가 동시에 나를 향해노려졌다.

가볍게 공기를 울리는 금속성의 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질주.’

스킬을 지금 사용해야 했다.

이들을 상대로 질주의 활성 시간만큼버틸 확률은 희박하다.

하지만 효과가 멈춰지는 바로 그순간, 결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올 것은 더욱 명백하다.

[20분 동안 400%의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다음 사용까지 50 : 00]

[24시간 내 사용 가능 횟수 2/3]

- 부응!

왼쪽에 선 가면이 두 손으로 잡은 커다란 칼을 크게 휘둘렀다.

- 팟!

질주가 아니었다면 절대 피하지 못했을 강하고 빠른 공격이었다.

바닥이 부서지며 돌과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돌덩이를 피해 고개를 돌린 쪽에서 은색 창이 날아왔다.

‘흡착.’

뻗어 오는 창을 손으로 잡아챘다.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속도도 힘도 아니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건틀렛이 창에 쓸리듯이 터져 나갔다.

<어어?>

하지만 잡힌 걸로 충분하다.

‘결빙.’

‘이중영창.

‘뇌격.’

- 파지직!

푸르게 얼어붙은 창을 통해 샛노란번개가 뻗어 나갔다.

“크흑!”

상대는 몸을 움찔거리면서 목소리를 뱉었다. 창을 잡은 손에 힘이 조금느슨해졌다.

一 피릭!

바로 그 순간 몸을 회전하며 창을 빼앗았다. 창을 거꾸로 들어 원주인을 찌르려 할 때였다.

<어딜.>

세 자루의 칼이 동시에 나를 향해내리쳐졌다.

- 까앙!

두 자루는 간신히 막아 냈다. 발로 딛고 선 곳이 움푹 패일 정도로 힘겹게 막아 냈을 때, 세 번째 칼이 날아들었다.

마지막으로 휘둘러진 칼에는 강한 회전력이 걸려 있었다.

- 콰직!

창을 잡고 있는 양손의 건틀렛이 충격에 완전히 으스러졌다. 새하얀뼈가 건틀렛 바깥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둘러싼 유령들은 하얀 뼈를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조급할 건 없다는 둣 더이상 휘몰아쳐 오지는 않았다.

애초에 전력 차이는 명백하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공격을 그대로 받아 낸 충격인지 하체 갑옷곳곳이 우그러져 있었다.

‘.이것마저 안 맞는군.’

희망은 없다.

도움 따위도 바랄 수 없다.

루비아가 사는 세계.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감옥에 갇혀 있던, 루비아를 도와주려는 자들은 이런 이면衰面 세계에 사는 인간들이 아니다.

그자들이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수준의 싸움.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 다음.

아니면 다음 생에서라도.

간신히 균형을 잡으며 벽에 붙어주위를 돌아봤다.

방금의 것도 단순한 동시 공격이 아니다. 분명 오랜 기간에 걸쳐 호흡을 맞춘 합격술合擊術. 빈틈을 노릴 희망 따위는 없다.

“유령들이냐? 날 언제부터 따라온거지?”

<호오. 역시 우리를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얘 뭐야?>

<비역의 지침에 따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살해하라고 했습니다.>

<흐으.>

살아 나갈 틈은 없다.

하지만 정보를 얻을 틈은 보인다.

“레이 커크를. 영주로 만들었던게 너희들이냐?”

하지만 말 대신 칼이 날아왔다.

- 까앙!

저지하는 사이 회전력이 담긴 창날이 투구를 터트리려는 것처럼 날아들었다.

흡착을 무시하고 창날이 그대로 팔을 꿰뚫었다.

‘이자가 우두머리인가.’

가운데 서 있는, 기괴하게 갈라진 가면을 쓴 여자의 창술은 차원이 달랐다.

뼈 사이에 박힌 창날이 차갑다.

시간이 없다.

나만 죽는 게 아니다.

이들이 루비아에게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죽더라도 버티고 버티면서 최대한 많은 걸 알아내고 죽어야 한다.

저번 생에 날 죽인, 유령이 몹시두려워하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건드리지 마라. 공작 각하의.

특명을 수행하는 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