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91화 (191/458)

192화 오래된 친구 (8)

생각에 빠져 있는 나에게 영주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저 무례한.

건방진 태도에 경비들이 긴장하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영주를 바라본다.

“쿨럭.

역시 무척 힘들어 보인다. 밤마다 생명력을 빨아 먹히는 녀석과 밀고 당기는 대화는 무리다.

“내가 다 설명하지.”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 번이야기했다.

챈들러 가문이 대대로 아이작의 노예로 살아가며, 매일 밤<계시>를 공유하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지하의 무덤이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까지 전부 말하자 영주는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감히 의심할 여지가 없구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얼굴에는 약간 고민하는 기색이 남아 있다.

아무래도 첫 번째 만남.

확신을 줄 게 필요하다.

나는 양손을 들었다.

‘격발.’

- 화르르!

[마법 장전]

[더블 캐스팅]

‘뇌격.’

- 파지직!

“마, 마법사!”

“진짜 마법사라고.?”

“양손에 불과 번개라니.

- 스르릉!

경비들이 일제히 칼을 빼들었다.

“그만! 어리석은 짓들 하지 말고 모두 물러가라!”

“영주님!”

현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데 이어마법까지 보였다.

빠른 선택을 도와준 거다.

“무릎 꿇고 사자를 받들겠습니다.

불민한 저희가 무엇을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때 였다.

- 띠링!

익숙한 효과음이 울리면서 허공에 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강제 활성화]

[고분 속의 주술사 - 챈들러 가문의

저쥐

격동의 세월, 남부를 지배하던

대주술사 벨’호멧 아이작은 챈들러가문을 대대로 노예로 삼았습니다.

아이작은 단단한 결계를 치고, 반쯤죽은 상태에서 가주들의 생명력을 빨아먹으며 생존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은 이 모든 사실을 전부 알고 있네요?

악랄한 주술사 벨’호멧 아이작을 퇴치하십시오!

모든 사정을 아는 당신에게, 영주는 두려움과 경외감을 품고 있습니다.

- 퀘스트를 승낙할 경우: 이미 강제로 퀘스트를 시작하셨습니다.

- 퀘스트를 성공할 경우: 챈들러가문 전원의 당신에 대한 공포심과 복종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제국남부에서 평판이 크게 상승합니다.

챈들러 가문에서 특별한 보상을.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

[당신은, 이미 이 퀘스트를 강제로 시작했습니다.]

나는 살짝 올라오는 어지럼증을 억누르며 퀘스트 내용을 확인했다.

우스꽝스러운 어조 말고는 상태창내용이 바뀐 건 별로 없다.

예전과 비슷하다.

상태창을 아래로 치우고, 영주를 보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무덤에 가려면 피를 뽑아야지.”

지하 결계를 돌파하려면 영주 직계의 피가 필요하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결계를 때려부술지 없을지는 모른다.

위풍당당 내려가 놓고 못 부쉈다간망신살이 뻗치는 데다, 불필요한 의심을 살지도 모른다.

“준비해서 내일 보자고.”

영주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부축을 받아 물러갔다.

녀석의 몸 상태도 좋지 않다.

피 뽑는 데 하루 정도 여유는 줄생각이다. 서두르면 오히려 저쪽의 확신이 줄어든다.

‘꿈도 꾸게 만들어야 되고.’

영주의 눈을 통해 이 상황을 접한 아이작은, 지금쯤 나를 만나 보고 싶어 몸이 달아 있으리라.

어떻게든 나를 아래로 내려보낼

‘계시’를 영주에게 주겠지.

귀빈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식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 두었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밤새 혼자 방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두 번째 방문.

레나와 함께 있던 바로 그 방.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게, 잔뜩 음식을 입안에 넣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날 어떻게 대접할지 몰라 쩔쩔매던 시녀의 모습도 어른거린다.

뭐라도 하겠다며 먼지 하나 없이 갑옷을 반들반들 닦아 놓았었는데, 어디로 휴가라도 받아 놀러 간 건지 보이지 않는다.

연무장에서의 기억들도 떠올랐다.

커다란 골렘 모형을 놓고 챈들러와 크리스티나를 지도했다.

근위대에게 흡수했던 검술 교육스킬을 처음으로 써 봤다.

하지만.

‘전부 혼자만의 기억이지.’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대화를 나눴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추억하는 건 오로지 나 하나뿐.

발목 한쪽이, 아래부터 차갑게 젖어오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기도 전.

집사와 시녀와 함께 찾아온 영주는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꿈>은 잘 꿨나?”

“역시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선조들의 전당을 열어라. 챙겨야 할 게 있다.”

“예!”

어제 곧장 전당 문을 열어 달라고 했으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열어 준다.

[검기 Lv.3을 활성화합니다.]

- 우우우옹!

“어. 어.?”

“세상에.

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간단하게 칼을 석벽에서 뽑아낸 뒤, 지하의 긴 통로를 다시 걸어갔다.

옆에서 수행하는 집사는 꿈이라도 꾸는 표정이다.

통로 한쪽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목이 반쯤 잘려 너덜거리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도 한 가닥 하는 녀석이다.

유령들에게도 칠흑의 스틸레토를 휘두르려 시도했던 솜씨니까.

챈들러도, 크리스티나도 없는 이도시에서는 최강의 실력자겠지.

“걱정하지 마라. 너희 영주 부자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 끼기긱.

- 쿠구구구궁.

나는 챈들러가 열었던 비밀 통로를 그대로 작동시켰다.

집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것까지. 전부 아시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나 혼자 간다. 먼저올라가 있도록.”

“아, 알겠습니다.!”

시커떻게 입을 벌린 계단을 따라아래로 내려갔다.

- 풍.

질척한 핏빛 광채가 흐르는 까마귀조각 앞에 서서 유리병을 땄다.

한 병을 다 붓자 까마귀의 입에서 음침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가 바친. 제물을. 받는다.]

- 쿠구구구구구구구.!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전부 똑같은 반응이다.

- 부응!

나는 앞으로 펼쳐진 넓은 복도를 걸어가며 이리저리 칼을 휘둘렀다.

[벨’호멧 아이작의 전당]

[던전 랭크: B마이너]

[적정 레벨: 81-90]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레벨의 던전입니다.]

[적정 클리어 인원: 1인]

‘적정 인원은 무슨 의미지.

저번 생과 달리 지금은 나 혼자.

뭐가 달라질까?

함정이 발동되지 않을까?

솔직히 함정이 발동된다고 해도, 무덤 자체를 다 부수면서라도 혼자 뚫고 나올 자신도 있다.

궁금한 건.

아이작을 봉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번 생에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안떴다는 점.

‘아예. 놈의 영靈을 완전히 소멸시켜야 했던 건가?’

하지만 의지는 둘째치고라도 그럴방법을 모른다.

나는 터벅터벅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친구들.”

거대한 황동 골렘 여섯이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서 있을 거야?”

“오랜만이야. 인사 좀 하지?”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기껏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들어온 게 허탈해질 지경.

[기계공학 Lv.3을 사용 중입니다!]

[개체 탐지.]

고장 난 건 아니다. 그대로 골렘들사이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작이 통제하는 골렘일까?

따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 되는 경험치 때문에 굳이 부술 필요는 없다.

“가는데 뒤에서 공격하고 그러진마라. 괜히 귀찮으니까.”

육중하게 날뛰면서 나를 공격했던 골렘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녀석들을 뒤로하고 안쪽 복도로 계속들어갔다.

통로가 끝날 때까지 골렘도 양쪽석벽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으음.

홀 중앙.

구형의 일그러진 조각 앞에 다시 한 번 섰다.

‘아이작의 석관.

유리병 안에 담긴 피를 알 곳곳의 틈새에 다시 죽 부었다.

- 쿠르르르.!

[이 사기꾼 새끼가.!]

석관 안에서 격정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아이작.”

一 끼긱. 끼기긱.!

알의 틈이 벌어진다.

[감히 나한테 아는 척을 하느냐?

네놈은 대체 누구냐?]

“기다려 봐.’

- 퍼걱!

석관 틈새 사이로 대검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격발. 질풍.’

- 화르르르!

석관 안에서 가사 상태로 봉인된주술사의 몸이 활활 타오른다.

‘몸 자체가 봉인 같단 말이지.

“이제 나와 봐.”

[황당한 놈! 일단 몸을 펫어 주마!]

- 펑!

새까만 연기가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덮쳐들었다.

[빙의에 저항합니다!]

[정신 저항 스킬이 없습니다. 지혜수치에 따라 저항 확률과 범위가 결정됩니다.]

[<암시되는 세계의 운명>이 발동합니다. 150 이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경우<공포><절망><망각>에 빠집니다.]

[지혜가 너무 낮습니다.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봐도 황당한 능력이다.

일정 이상의 지혜를 지닌 자들은 반항하지 못하게 저주에 당한다.

나처럼 지혜가 낮으면?

당연히 원래 저항하지 못한다.

하지만.

- 띠링!

[이미 한차례 극복한 빙의입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는 저번 생부터 점차적으로 저항이 가능했다.

손가락 끝이 묘하다.

통제력이 조금씩 되돌아온다.

“으하하하. 뭔가 싶었거늘 역시 별것도 없구나. 한 번에 빼앗기지 않았느. 어.?”

아이작의 웃음소리가 잦아든다.

‘잘되냐?’

놈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 까딱.

가운멧손가락부터 움직이다가, 점점통제 범위를 넓혀 간다.

확실히 한 번 되찾아 본 몸이라그런 걸까.

저번보다 훨씬 더 제어가 쉽다.

물론 당장은 무리고, 손목쯤에서 통제가 끝난다.

“너, 너는 대체 무슨.! 이, 이런말도 안 되는.

하지만 벌써 놀라면 곤란하지.

아이작이 곧 패닉에 빠져 투구와 갑옷을 내던져 버리고, 내 뼈다귀를 마구 더듬는다.

“대체. 이 몸에 새겨진 회로들은뭐냐! 아케인 하트를 대체하는.

세기말 천재의 고유회로인데.!”

놈이 살았던 때가 세기말이었나.

아닌 거 같은데.

어쨌거나 아이작이 따지는 소리가 지나치게 시끄럽다. 입에 집중해서 힘을 줬다.

몸 전체의 통제권은 아직 놈에게 있지만, 부분 부분에 집중하면 이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읍.! 이런 개. 읍.!”

놈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속으로 말해. 아무도 없는 데서 떠들면 너무 미친 거 같잖아?’

- 이건 말도 안 돼.! 아무에게도 가르쳐 준 적 없는 내 회로에 나만 새길 수 있는 마왕의 인장까지.!

넌 대체. 어떤 존재지?

놈은 한참 머리를 감싸고 말도 안되는 사실 앞에 끙끙거린다.

그런 녀석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꾸준히 통제권 회복을 시도했다.

다음 차례.

이제 놈은 내 진명眞明을 알아낸답시고 무덤 위치를 물어볼 거다.

알려 주면 기괴한 주술을 쓰다가 자기가 거꾸로 봉인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참.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던 녀석의 태도가 한순간에 변했다.

‘뭐? 뭐가 궁금한데?’

- 지금 나를 어떻게 유도하려고하는 거지?

‘뭘 유도해?’

뜨끔하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 다짜고짜 여기 들어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확실히 나에 대해 뭔가 잔뜩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무서울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그는 어떻게든 내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협조하도록 하지. 그러니 말이야, 우리 오늘 친해지자.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