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오래된 친구 (13)
아이작의 인도를 받아 전당 내부를 걸어갔다.
원래 크기의 대포는 대검과 함께
들고 있기 걸리적거렸지만,
아이작이 시키는 대로 하자 크게 줄어든 ‘저격기’는 훨씬 더 들기가 간단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줄인 거지?”
- 큭큭. 감은 잡히느나? 의외로 잡는 자세가 괜찮구나.
기계공학 스킬이 발동하며, 무기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나름대로 기계공학 지식이 있어서.
- 호오? 제국 쪽에서 공학 지식이 있는 녀석들은 거의 없다시피 한데 말이야. 역시 애슈턴과 관련 있는 놈이라 특별한 건가?
기계공학.
코드네임 별빛청여우, 가면을 쓴수녀에게 흡수한 스킬이다.
<물질투과>의 권능으로 레안드로 후작의 심장에 깊이 갈고리를 박아넣었던 수녀.
잊으래야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내게 남겼다.
지금 그녀는 어디 있을까?
분명 기스-제-라이의 황제 살해를 입회한다고 했었는데.
<이 암살의 입회인으로서.)<레드 플레이크 전체가, 이 계약을 증명하고 집행한다.>
만나 보고 싶은 존재다.
활공滑空 가능한 거대 쇠풍뎅이와, 크라켄 뱃속에서, 갈고리로 목을 숙그어 자살한 최후 모습이 떠오른다.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냐?
전 여친 생각이라도 해?
“수녀 생각이다.”
- 수녀? 클클. 수녀들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 쾌락을 깨우쳐 주면 앙앙거리며 몸을 비트는 수녀들이 얼마나 또‘
아이작의 질펀한 헛소리를 어떤 방면으로든 전환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물건은 기계공학으로 작동하는 거냐?”
- 흠. 아니다. 이건 기계공학으로 작동하는 물건이 아니야.
“그럼 뭐지?”
- 바로. 마도 공학이다.
“마도. 공학?”
- 느긋하게 가르쳐 주도록 하마.
연합 내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분야지.
“ ?.W
.?
- 어흠흠. 왜 별 반응이 없느냐?
어서 매달리지 않고?
“나를 써먹으려면 어차피 가르쳐 줘야 되는 거겠지.”
녀석에게 최대한 많은 걸 얻어 내야 겠지만, 매달린다고 더 주는 녀석이 아닌 건 분명히 알고 있다.
- 기껏 가르쳐 준다는데 저 싸가지 하고는. 앞으로 걷기나 해라.
“또 뭘 가져가겠다는 거지?”
-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느니라.
우아한 내가 이런 무식한 쇳덩이에 들어가 있으니 정말 짜증이 나서.
왼쪽. 어. 쭉 가서. 여기다.
아이작의 말에 그 자리에 멈췄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와 쇠 부스러기 같은 것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예전에 레나와 함께 왔을 때 전혀신경 쓰지 않고 지나친 지점.
- 부스러기 치워 봐라.
굳이 녀석에게 토를 달지 않았다.
투두둑, 하며 바닥의 부스러기들이 한쪽으로 쓸려 나갔다.
- 으음. 저기다. 틈에 칼을 꽂아.
하지만 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잠시 멈칫하자 아이작이 큭큭거리며 말을 이었다.
- 시커먼 부분 보이지? 거기에다꽂아. 그게 틈이니까.
- 투둑.
녀석의 말대로였다.
거의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칼은 바닥의 까만 부분으로 쑥 들어갔다.
심안心眼 특전으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틈.
“이제 옆으로 돌리면 되나-
- 감 좋은데? 그대로.
돌바닥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 쿠궁. 쿠궁. 쿠궁. 쿠르르,
바닥 깊은 곳 어디선가 묘한 울림
소리가 들리더니,
- 그그그긍!
평방 2미터 정도의 바닥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어휴. 먼지 좀 봐.
저 멀리 있는 루비아는 묘하게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 뭘 놀라? 어차피 재한테는 소리안 들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차폐결계가 작동하거든.
- 쿵!
3미터쯤 내려간 바닥이 멈춰 섰고, 눈앞에 작은 공간이 펼쳐졌다.
아이작은 눈앞의 까마귀 조각상을 보고 말했다.
- 목덜미를 잡고 마력을 넣어라.
“무슨 마력을?”
- 아무거나 상관없다.
크기 약 50cm 정도의 까마귀 조각목덜미를 잡았다. 딱딱한 크리스탈표피가 느껴졌다.
까만 철사 같은 것들로 몸이 칭칭감겨져 있었다.
아이작은 재촉하지도 않았다.
대신 뭔가 자랑하는 듯한 태도로 내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금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마법 장전]
[더블 캐스팅]
[격발 Lv.2 & 질풍 Lv.l을 혼합사용합니다!]
[숙련도가 매우 낮습니다.]
[마력 소모량이 300% 상승.]
[너울거리는 불꽃.]
[격발의 플레어 Lv.l 발동!]
- 화르르!
새까맣게 칠해져 있던 몸에 바람과 불의 기운이 휘감겼다.
새의 두 눈에 서서히 붉은 물이 들었다.
수많은 세월이 묻어 있는 것처럼 수십 겹으로 칠해져 있지만, 결코탁하지 않은 깊고 붉은 빛이었다.
검고 단단한 부리가 서서히 숨을 쉬듯 구부러졌다.
- 크하하하.
대검이 부르르 떨었다. 칼에 있던 무언가가 혼불처럼 까마귀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 파드드득!
몸에 칭칭 감겨 있던 검은 철사가 풀려났다. 십여 겹의 얇은 크리스탈표피가 일제히 펴지며 날개가 되어 파드득거렸다.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강한 날개바람이 활개 쳐 나왔다.
<들리느냐? 이제부터 이 벨’호멧아이작은 여기 깃들겠느니라.>
50cm 정도의 크기로 움츠러들어있던 까마귀 인형은.
양 날개 길이가 단번에 1미터를 훌쩍 넘는 크기로 변해서 나를 향해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새까만 크리스탈 깃털 수백 개가, 몸을 확인하듯이 동시에 부드럽게 움직였다.
아이작에게 감탄해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분명 장관이었다.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이게 무슨 인형이냐고 질문이라도 던져 보려던 순간이었다.
- 추록.
밤처럼 검은 칠흑으로 화려하게 펼쳐졌던 날개가 추욱 늘어지면서 쭈그러들었다.
- 아이고. 힘들어라*
다시 처음의 작은 크기로 돌아간인형으로부터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의 웅장한 울림과는 한층대비되는 목소리다.
“.뭐냐?”
왜 갑자기 크기가 줄어든 거냐는 질문이다.
- 이게 고급스러운 대신에 효율이 조금 안 좋아서. 계속해서 마력 충전을 해 줘야 하거든.
“마력 충전?”
어찐지 어감이 별로다.
- 원래 루-름으로 작동하는 거다.
방금 같은 식으로 하면 계속해서 충전이 필요하지.
“.귀찮군.”
작은 까마귀 인형이 파드득거리며 날아다녔다.
일단 비행은 가뿐한 모양이다.
아까 같은 위엄은 없었지만.
- 걱정할 거 없다. 내 교단에 가서 루-름을 챙기면 되는 일이니까.
교단.
나는 이미 아이작에게, 제 교단이 모두 몰살당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교단에 관한 이야기를하는 아이작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린다.
그곳에 간다면, 녀석은 살해당한 제 신도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루-륨을 얻으면 아까같이 화려한 모습을 계속 보여 줄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 이제 올라가라. 바깥에서 쓸모있는 것들을 좀 더 챙겨야 된다.
- 쿠구구구구.
아이작이 가리키는 부분을 칼로 누르자 석판이 위로 올라갔다.
- 자, 다음은. 그거.
녀석이 다음으로 챙기라고 한 건 특이하게 생긴 반지였다.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는데, 링 부분은 다른 반지와 비슷하지만 몸통 부분이 컸다.
그리고 안쪽에는 기이한 문자열이 적힌 바늘 두 개가, 내 움직임에 따라좌우로 살짝 살짝 흔들렸다.
“이게 뭐지?”
- 길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봐도 너는 잘 모를 테니까 그냥 나한테 물어보면 된다.
움직임을 멈추자 두 개의 바늘은 각자 서로 다른 곳을 가리켰다.
내 의문을 미리 읽은 걸까.
- 망가진 거 아니야. 평범한 나침바늘과 비교하면 아주 곤란해.
다음으로 아이작은 팔찌 하나를 나에게 착용하게 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절대 못보고 지나칠 것 같은 평범한 흑색팔찌 였다.
끼게 뭐지?”
꽤 쓸 만한 물건이다.
“아무 기능도 없어 보이는데.
나는 팔찌를 몇 번 두드렸다.
둔탁한 감각만 와 닿을 뿐이었다.
- 후후. 팔찌에 검기를 불어넣어보거라.
검기를?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녀석의 말을 따랐다.
그 순간이었다.
- 좌르록!
“호오.
팔찌에서 칼날이 솟아 나왔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었지만, 촘촘하게 솟아난 칼날들에게서 흥건한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던지는 건가?”
한눈에 봐도 날리기 좋게 생긴
팔찌 였다.
- 잘 아는군. 적의 생명줄을 끊고 다시 돌아오는 데 특화되어 있는 물건이지. 연습해 보지 그러냐?
“나중에.”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루비아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잘알지도 못하는 걸 던지면서 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 이제 저 상자를 열어라.
녀석은 대검 칼자루 위에 앉아서, 가져갈 것들을 부리로 가리켰다.
거기서 나온 건 길고 치렁치렁한 목걸이 였다.
“이건 어떤 기능이지?”
- 목걸이다.
“음. 마력을 불어넣으면 되나.’
- 그냥 목걸이라니까? 안 예쁘냐?
흑옥으로 만들었어. 최저로 쳐도 100세이론이 넘는 물건이라고.
문득, 레나가 들으면 좋아할 만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녀였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까마귀 부리에서 목걸이를 낚아채가지 않았을까.
아예 자기가 먼저 집어 갔을지도.
레나는 잘 살고 있을까.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을 일부러억누르고, 외면하고 있었다.
나와 얽히지 않는 게 레나에게는 훨씬 안전할 것이다.
어디 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괜히 알아보려고 했다간 또다시 피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알아보더라도.
나중에 천천히. 주위 환경이 다안정되었을 때 알아보도록 하자.
“해골님!”
루비아의 목소리가 나를 상념에서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