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오래된 친구 (14)
“이건 어때요?”
루비아는 은색 펜던트를 슬며시 들어보이며 물었다.
살짝 굳어 있는 루비아가 무척
귀엽다.
마음에 들었는데, 내가 별로라고 말하기라도 할까 봐 걱정된 걸까.
“괜찮은데. 어울리는군.”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별다른 장식은 없지만, 우아한 곡선이 그녀에게 딱 맞는다.
자신과 어울리는 물건을 고르는 센스도 뛰어난 것 같다.
“예뻐 보이는데.”
“그렇죠.
루비아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칼자루에 앉아 힘없이 푹 수그리고 있던 아이작이 말을 걸었다.
- 가지고 싶다는 말이잖아, 멍청아.
이미 들어올 때 갖고 싶은 건 전부 다 가지라고 이야기했다.
저런 거 하나를 가지고 또 고민할줄은 전혀 몰랐는데.
- 재가 너 눈치 보고 있거든?
나는 루비아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해 줬다.
“챙겨 가지 그러나.”
“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루비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른 마음에 드는 건 없나?”
“괜찮아요! 이거 하나로 충분해요.
그런데.
“뭐지?”
루비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칼자루에 앉은 아이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 까마귀 인형은 장신구 거치대같은 거예요?”
≪흐 , ’
하긴 과하게 치렁치렁하긴 하다.
웃기다고 생각될 정도로.
-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뭐?
장신구 거치대?
루비아는 까마귀 인형이 파닥거리며 나는 모습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다.
“어. 그게. 아까 그 칼에 있던 영혼이다.”
“정말요? 그 유명한 아이작 님이 여기 들어가신 거구나!”
- 저것 좀 봐라. 말투가 왜 나를 놀리는 거 같느냐?
‘오해다.’
“다시 연결해 줄까?”
- 싫어. 하지 마. 저런 하룻강아지와 나를 엮지 마라. 우아하게 가만히 있고 싶느니라.
아이작은 단칼에 거절했고.
“음. 힘드신 거 아니었어요?”
루비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든 연결하고 싶으면 말해.”
“네! 감사해요. 그런데 혹시 이거움직이기도 하나요?”
루비아가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 파드득!
까마귀 인형이 기겁을 하며 위로 솟아올랐다.
- 놀랐잖아1 이 무엄한 것이 감히.!
잔뜩 날개를 벌리고서 위협하려는 자세는 취했지만.
고작 30cm 정도의 크기라 전혀
위협적이지 못하다.
- 파득! 파득!
- 이 아이작을 감히 장난감 만지듯다루느냐!
녀석의 반응이 의외였다.
아까는 수녀들이 어쩌고 하면서 질펀한 척하지 않았나?
나름대로 거칠어 보이려고 위장음담패설 따위를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원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거나.
아니면 여자를 꺼리는지도 모르겠다.
“잘 난다. 신기하네요! 인형이 이렇게 날아다니는 걸 보니 무슨원리인지 궁금하네요.”
루비아의 눈이 반짝인다.
루-륨을 충전하지 않은 상태라도 아이작이 날아다니는 건 문제없어 보인다.
그냥 마력액을 충전해 주지 말까?
아까 같은 모습이면 멋지긴 한데, 위협적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도 나름 괜찮을지도.
- 파드득!
아이작은 어느새 5미터 높이까지 날아올라 루비아의 손길을 회피했다.
“아, 높이 올라가 버렸다. 장신구를 줄줄 감고도 잘 날고 있네요.”
- 흥. 건드리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해라. 한데 애송이 주제에. 감각은 제법이로군.
‘감각?’
- 너 말고. 저 아이 말이다. 물건을 제법 잘 골랐어.
루비아가 고른 물건은 하나뿐이다.
조심스레 들고 있는 은빛 목걸이를 바라봤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한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걸기는 싫은 건가?”
“아니요! 너무 예쁜데 제가 그냥막 사용하기가 미안해서요.”
“한번 걸어 봐.”
“넷. 맵!”
그녀가 막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쇄골과 쇄골 사이 옴폭 파인 곳.
섬세하게 구부러진 은빛 펜던트가 처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마법이 걸린 목걸이다. 가벼운정도로 존재감을 지워 주는 마법에 불과하지만. 부담 없이 쓰기에는좋지.
가진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지워 주는 목걸이.
내 주의를 돌릴 정도는 아니지만, 무언가 그녀의 기척이 어렴풋해진 느낌은 든다.
- 혹시라도 벳어서 네가 쓸 생각은 하지 말라고. 네 은신 능력이 훨씬더 좋으니까.
물론 그럴 일은 없다. 목걸이를 건 루비아는 아이작을 흘끗흘끗 쳐다보며 내 옆에 머물러 있었다.
‘더 챙길 건 없나?’
- 꼴사납게 곁에 딱 붙어 있는 꼴하고는. 흥. 어차피 많이 가져가려해도 별로 담을 데도 없느니라.
그 말대로다. 길다란 ‘저격기’와 대검을 들고 있으니 손에 남는 공간이 없었다.
까마귀 인형 목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장신구들을 흘끗 바라봤다.
넣을 공간이라.
머드캐시의 주머니가 생각났다.
홉고블린 직스키세스 붐텅을 구해주며 들었던, 고블린 마법사 머드캐시의 주머니.
금화가 무한정으로 들어간다고
했지만, 정말 금화만 무한정으로 들어가는 걸까.
동부산맥에 있다는 그 녀석의 주머니가 있다면, 여기 있는 것들도 좀더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 더 떠오르는 것도 있다.
기스-제-라이가 죽었을 때.
그녀의 유해를 넣어 둔 아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남들에게는 그 공간이 보이는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건지 확인하지 못했던 그 공간.
머드캐시라는 마법사의 주머니는 그것과 비슷한 성격일까.
“저. 해골님?”
루비아의 목소리가 나를 잡념에서 일깨웠다.
“괜찮으세요?”
- 달그락.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기억이 조금 과도하게 쌓여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일단 아이작 말대로 교단부터 간다.
아이작에게 교단이 망한 걸 확인시켜 준 뒤에 생각해 봐도 충분하겠지.
당장 급한 건 눈앞에 있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다.
“루비아.”
“네?”
“나는. 당분간 여행을 떠날 거다.”
몇 개월이 될지, 일 년이 될지 모른다.
그라스미어에 위험이 닥치기 전에 루비아를 빼낼 생각이기는 하지만.
여행 중에 내가 죽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쩌면 지금 여기가, 이번 생에서 마지막 만남일지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같이 갈 텐가, 아니면 이 성에 남아있을 건가?”
당연히 여기 있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 적어도 황실이 벌레를 보내기 전까지는 그렇다.
루비아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나에게 말했다.
“제가 결정하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서는 일종의 결기마저느껴졌다.
“그래.”
“정말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비아는 작고 하얀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 나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그럼, 전 함께 갈 거예요! 책 속세상이 아니라. 제 눈으로 현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요.”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폐가 되겠죠? 하지만 저도 어딘가 쓸모 있을지 모르잖아요?
어. 배워 놓은 언어도 많은데.
나중에 동방에 가게 된다면 제가 번역도 할 수 있어요! 통역은 잘될지 모르겠지 만요.”
- 호오. 동방어를 한다고?
루비아를 피해 가 있던 아이작은 살짝 놀라는 듯했다.
‘왜 그러지?’
- 클클. 원해遠海가 막히고 나서 어차피 그쪽에 갈 수 있는 방법도 전혀 없는데 동방어를 해서 무슨쓸모란 말이냐.
‘아예 없다고?’
의아했다. 기스-제-라이는 자신이 동방에서 왔다고 했고, 첸들러 남작은 동방에서 무사수행을 했다고 들었다.
아이작은 차갑게 대꾸했다.
- 본토에는 갈 수 없다. 경험할 수 있는 건 작은 섬 하나뿐이지. 동방의 작은 ‘복제품(레플리카)’. 놀이공원같은 거다.
‘그게 무슨_
하지만 내 의문에도 불구하고 아이 작은 더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루비아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레이 루비아]
[사령술사 Lv.l]
[체력-9 힘-7 민첩-8 지혜-14]
[호감도: 35]
- 루비아는 당신을 몹시 신뢰하며, 높은 결속력과 친근함을 느껍니다.
[기본 스킬]
- 책 찾기 Lv.10
- 책 읽기 Lv.10
- 고대어 Lv.3
- 룬어 Lv.3
- 독도법 Lv.3
- 예법 Lv.2
- 동방어 Lv.3 (new!)
- Ill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 ???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특전]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칭히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예전에 봤을 때는 ???로 표시된스킬 중 하나가 동방어로 변경되어 있었다.
루비아가 말해 줘서 새롭게 나타난건지, 아니면 원래 저런 게 있었는지는 모른다.
‘흐음.’
물론 그런 스킬이 아니라도 폐가 될 일은 없다.
오히려 서번트 시스템의 영향으로, 루비아 근처에만 있어도 내가 훨씬이득을 취하는 입장이다.
마음에 걸리는 건.
확실히 지켜 주지도 못할 주제에 그녀를 이용하게 되는 것.
- 파득! 파드득!
문득 허공을 날고 있는 아이작이 신경 쓰인다.
녀석 입장에서는 인질이니 당연히 데리고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별말이 없다.
혹시. 루비아가 껄끄러운 건가?
생각이 더 깊어진다.
루비아를 놓고 가면 1년간은 정말 안전할까.
‘너는 왜 아무 말이 없지.’
- 흥. 그런 건 알아서 하도록 해라.
왜 내게 물어보느냐? 저 여자애가 변사체가 되면 내 탓을 하려느냐?
아이작의 핀잔이 뜨끔하다.
결국 내가 결정할 문제고,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
여기에 내버려 두는 건.
그라스미어 영주에게 루비아의 보호책임을 유기하는 짓이다.
게다가 영주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기 어려운 일.
아이작에게 꾸준히 생명을 빨아먹혀오던 그는 굴레에서 해방되자마자 온천 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삶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모른다.
예전처럼 황실의 비합리적인 요구들을 순종적으로 수용할까?
챈들러가 더 빨리 영주가 되지는 않을까.
조금이라도 뻗댄다면, <유령>들이 벌레를 가지고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루비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같이 가자.”
“정말요.!?”
잔뜩 긴장해 있던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 띠링!
[루비아의 호감도가 3 올랐습니다!]
허공에 뜬 반투명한 상태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티 없는 눈동자가 촉촉하게 반짝거린다.
눈빛이 흔들린다.
의외의 대답이었던 걸까.
“걸리적거릴 텐데.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승낙해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