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오래된 친구 (16)
[심안心眼 (C플러스)]
[탐지 Lv.7을 발동합니다!]
나는 아주 적은 체력 소모만으로, 멀리 산길의 정보를 샅샅이 훌어내면서 파악할 수 있다.
길이 점점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 탑승한 마차로도 지나갈 수 없는 너비였다.
“저 앞에 공터가 있다. 그쯤에서 마차를 돌리고 돌아가라.”
나는 마부에게 말했다.
“공터 말씀이십니까?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앞에 나올 공터를 당신이 어떻게 벌써 아냐는 의아함이 더 담겨 있는 이중 질문이었다.
“물론이지.”
당연하게도, 곧 마차를 돌릴 만한 공터가 나왔다.
마부가 움찔 놀라며 마차에서 말한 마리를 떼었다.
루비아가 곁에서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 파드득!
- 어울리지 않게 웬 신비주의냐?
아이작이 시비를 걸어왔다. 나는 녀석의 시비를 무시한 채, 주머니에서 은화 서너 개를 꺼내 마부에게 건넸다.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마부가 은화를 거절했다.
“정말 안 받는 건가?”
“예.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마부가 마차에서 말 한 필을 떼어냈다. 그리고 새롭게 커다란 안장을 등에 장착했다.
“영주님이 이런 경우는 말 한 필놓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꽤 강인한 녀석이니 두 분이 타셔도 됩니다.”
- 당연히 두 필 다 떼 놓고 가야지.
건방지게 어디서 감히 마차를 다시 몰고 가려고 해?
“고맙다.”
“저희 영주께 말씀 전하겠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마부는 말안장에 이런저런 것들을 살짝 매달았다. 말린 육포나 과일, 바람막이 같은 것들이다.
[승마 Lv.2를 발동합니다!]
가볍게 말 위에 올라 루비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 흥.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는 몰라도, 나뭇가지 위에 앉은 아이작이 기분나쁜 소리를 냈다.
루비아도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아 살짝 들어, 말안장뒤쪽에 앉혔다.
“전 말 탈 줄 모르는데.
“붙잡을 줄은 알겠지.”
“네.
“꽉 잡아.”
- 꼴같잖은 짓들을 하는구나. 길을 서두르기나 하여라.
- 다그닥! 다그닥!
말 한 마리가 둘을 태웠지만, 덩치좋은 준마는 가뿐하다는 둣 산길을 내달렸다.
콧김도 별로 뿜어내지 않고 발이 보이지 않게 빠르게 달렸다.
오히려 아이작이 힘겹게 파득파득우리를 따라와야 했다.
등 뒤에 붙은 루비아의 숨소리가 조금씩 떨려 왔다.
겨울 산이 조금도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네요.”
“그만 탈까?”
“아니요 허벅지 근육이랑. 기분 좋게 욱신거려서 좋아요. 나중에.
나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나중에, 말을 잘 타게 되더라도 계속 이렇게 뒤에서 타고 싶네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왜 그렇지?”
루비아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바람을 다 막아 주시잖아요.”
뒤에 닿은 그녀의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곳곳에 눈 덮인 하얀 산은 말이 움직일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였다.
- 야! 같이 안 가? 이것들이 진짜??.!
“먼 길을 가는 게 힘들지 않나?
그냥 성에 남아 있었으면.
“좋았겠죠?”
“.역시 좋았겠지.”
놓고 왔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루비아가 무언가 즐거운 듯이 말을 이었다.
“그때 억지로라도 쫓아가야 했을 거라고 잠도 못 자고 뒤척일 거고, 밥도 안 넘어갔겠죠. 그렇게 시름시름앓다가 죽을 테니 좋았겠죠?”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잠깐 고민한 끝에 그녀가 특이한 화법을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반어법인가.”
“글쎄요.”
어째서인지, 호감도가 1 올랐다는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냥 숫자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한차례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말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 파드득!
뒤쪽에서 힘겹게 우리를 쫓아오던 아이작이 다시 멀어졌다.
달리는 말의 속도를 조금 늦췄다.
교단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작은 마을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글로 향했다.
- 정말 여기 와 본 거냐?
‘그렇다니까.’
정글 사이로 말을 천천히 몰았다.
아이작은 한층 침울하게 날갯짓을하며 내 주위를 날았다.
조용하다.
처음 여기 올 때가 생각난다.
제 교도들이 결계를 유지하면서, 번성하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던 아이작이 괴로워하던 게 떠오른다.
무너진 결계의 실체를 보고.
하지만 이번에는 내 말을 확실히 믿고 있었는지, 저번과 같은 충격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축 가라앉긴 했다.
- 이제 물어봐야겠군. 내 교단이.
멸망한 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이야기해 봐라.
‘그건 내가 캐빈 애슈턴에 관해서 알아내고 나서 말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작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건방지다고 중얼거릴 줄 알았는데, 망가진 교단을 살펴보느라 그럴정신은 없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파닥거리며 날아가는 녀석의 뒤를 쫓았다.
곧 ‘조슈아’의 머리 위에 우두커니앉아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시커떻게 그을리고, 날개가 모두 부서진 채 얼굴도 속도 파내진 돌토템을 보고 루비아가 흠칫했다.
아이작은 토템 위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잠시 녀석을 기다려 줬다.
저번 생에서. 개가 살아 있을 때 밤톨이 정도 크기라고 했던가?
밤톨이는 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번 구해 줬으니까, 이제 웬만한 덫 따위에는 안 걸리겠지.
이 앞으로는 더 이상 말을 타고 가는 게 무리였다.
말에서 내려 토템 근처에 섰다.
슬퍼하는 아이작을 향해 루비아가 말을 걸었다.
“친구였어요?”
아이작은 잠시 침묵했다.
- ???가자. 홈을 밟고 내려와라.
아이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암벽아래를 향해 날아갔다.
나는 깎아지른 암벽을 보고 루비아에게 물었다.
“같이 가고 싶다고 했지?”
루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꽉 잡고. 홋!”
혼자 내려가게 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위험해서.”
나는 낭창한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낚아채 들었다.
≪ㅇ , ,
"H*.
“숨 편하게 쉬어.”
고소공포증이 꽤 심한지, 루비아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다.
숨도 잘 쉬지 못하는 그녀를 살짝감은 채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따라오려고 했다니, 정말 모험을 하고 싶었던것 같다.
가볍게 반동을 줘서, 직경 2미터정도의 뻥 뚫린 구멍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인 채로 눈을 꼭 감고 있던 루비아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다 왔어.”
“와.!”
루비아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이게 정말. 모험. 이군요.
그녀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맞은편을 바라봤다.
우리는 잠시 맞은편의 눈 덮인
산봉우리를 보고,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베로라이트네요!”
“베로. 라이트?”
“네. 책에서만 보던 광석이거든요.
상징은. 악마로부터의 보호.”
“악마로부터의 보호라고?”
“네. 어둠의 악령들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는 돌이라고 해요. 스스로 빛을 내는 돌들 중에서도 꽤 특별한 녀석이니까요.”
- 흥! 별 쓸데없는 지식이 다 있군.
앞으로 가기나 해라.
아이작은 어쩐지 약간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았다.
교단이 보호받지 못했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쪽으로 십여 분을 더 들어가자, 예전처럼 거대한 바위들이 길을 꽉가로막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
진지한 내 말에 루비아는 아무 말않고 뒤로 훌쩍 물러섰고, - 자신 있냐?
아이작은 뒤로 파드드득 날아가며 시니컬하게 말했다.
나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 있었다.
저번 생에 같은 곳에서, 아이작이 한 조언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기를 써서. 조금씩 부수며 밀어내라고 했나.
게다가 요령도 붙었다.
- 콰지직!
연녹색 검기와 화염이 타오르며,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다.
아이작마저 놀라는 게 느껴진다.
뒤를 돌아봤다.
루비아는 한쪽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석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어.
“왜 그러지?”
“거대한 바위들이 이렇게 간단히 부서진다는 사실에. 제가 더 빨리적응했어야 하는 걸까요?”
농담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서번트 시스템]
[루비아가 당신의 힘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끝인가?
놀라고 그대로 끝이었다.
워낙 서번트 시스템이 퍼 주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체력 회복 상승같은 게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한 나자신이 우스웠다.
루비아를 너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괜히 찔려서 길을 재촉했다.
“가자고.”
손쉽게 퍼즐을 풀어내고, 계단을 자연스럽게 지나갔다.
“여기. 분위기가 조금 어둡네요.
무척 조용하구요.”
사원 건물들을 둘러보며 루비아가 사뭇 긴장된 태도로 말했다.
아이작은 이미 착 가라앉은 태도로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녀석을 따라서 사원 중심부에 도착했다.
삼십 미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사원의 중심부 탑.
‘안쪽을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는 하라고.’
- 알고 있다.
아이작의 고통 어린 비명이 밖으로 전해졌다.
루비아가 나를 바라봤다.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요.
안에 뭐가 있는 거죠?”
“녀석의 후손 수백이 매달려 있지.
들어가 볼 텐가?”
루비아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고 편한 것만 보려고 여기까지 따라온 건 아니니까요.”
- 달그락. 달그락.
의외였다. 루비아는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레나보다도 안 놀라는 모습에 무척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왜 안 놀라냐고 물어볼수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루비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해골이네요.
“안 놀라나?”
“저 사령술사예요.”
루비아가 새초롬하게 대답하면서 나를 빤히 바라봤다.
잊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나 하나만 일으킨 거아닌가.
하긴.
루비아는 말하고 움직이는 해골인나랑 하루 종일 바싹 붙어 있다.
그냥 매달려 있는 녀석들 정도는 별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 파드득!
아이작은 어느새인가 저 아래로 날아가 푸르손의 문양을 확인했고, 다시 한 번 분노했다.
혼에 각인을 새기는 제사가 지내진 흔적이 었다.
녀석이 저번에 설명해 준 바로는, 교도들이 살아 있는 채 고문당하면서 제물로 바쳐졌다던가.
힘들겠지.
아이작은 안쪽에 더 못 있겠는지, 바깥으로 나와 양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녀석의 곁에 루비아가 다가갔다.
“아이작 님?”
- 파드득
까마귀 인형은 부담스럽다는 듯이 날갯짓을 하며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날갯짓을 할 힘도 없는 것 같았다.
루비아는 까마귀 인형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가볍게 쓰다듬었다.
- 나보다 스무 배는 어린 인간에게 손이 얹히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다들 반짝이는 별이 됐을 거예요.
밤이 되면. 저 위에서 아이작 님을 보면서 반짝인다니까요. 아, 사실은 낮에도 별들이 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다들 아이작 님을 보고 힘내라고 하고 있어요.”
- 시끄럽게 구는군.
녀석은 투덜거리면서도 한참을 그자세로 있었다.
묵묵히 날개를 접은 채 루비아의 위로를 받던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 뭐라도 마셔야겠다. 탑 왼쪽으로가라.
예상했던 순간이다.
녀석은 루-룸을 숨긴 장소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손을 내밀어서.
이미 한 번 해 본 일.
익숙하게 벽에 손을 통과시켜 상자 하나를 쑥 빼냈을 때였다.
내 입에서 무심코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너무 가벼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