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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02화 (202/458)

203화 오래된 친구 (19)

방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져 있던 다크엘프가 눈을 뜨고 일어났다.

- 피릭!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칼이 동시에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 까앙!

급하게 대검을 들어 막았다. 전혀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에 놀라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지만, 가해진 공격자체도 범상치 않았다.

양손으로 대검을 잡은 손목에서 미미한 떨림이 느껴졌다.

[집중 Lv.2를 시전합니다!]

세계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쌍검을 든 하얀 머리칼의 엘프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탁한 은빛으로 눈을 빛내며 내게 칼을 휘둘렀다.

“엘프 눈 색이 원래 이러냐?”

- 다크엘프들이 그럴 리가 없지.

원래는 검은색이나 적갈색이다. 조종당하는 인형들이지.

- 시체를 부릴 줄 아는 적이다. 힘을 아껴라! 본체가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른다.

- 까강!

또다시 두 자루 시미터가 대검에 얽혀 들어왔다.

만만치 않았다.

한 자루가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몹시 위력적이고 변칙적인 공격이었다.

[쌍검술 Lv.2를 사용합니다!]

[전투 패턴 분석.]

방금 전, 바로 이 녀석으로부터 쌍검술 스킬을 흡수했던 게 그나마다행이었다.

검이 날아오는 루트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최소한에 불과하지만, 이게 아니었다면 대응이 더 어려웠겠지.

- 끼긱!

- 끼기긱!

춤추듯 휘어져 들어오는 두 자루시미터를 막는 대검에서 요란하게 쇠 긁는 소리가 났다.

“해골님!”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걱정 정도: 극상極上]

[방어력이 15% 상승합니다.]

이건 또 놀라운데.

걱정만으로 방어력 상승이라니.

확실히, 상대의 쌍검 공격이 훨씬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이 세계가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는 몰라도, 역시 내 쪽에서 루비아에게 함께 다녀 달라고 사정해야 할 듯하다.

사실은 창천의 구멍이니 뭐니 아이 작이 말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루비아가 특별해서 인지도 모른다.

결론은.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아이작! 뒤로 빠져라!”

- 당연하지. 이미 그러고 있다고.

- 파드득!

아이작은 어느새인가 기절시킨

루비아를 발톱으로 잡고 한참 뒤로 빠져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루틱의 인장’을 가진 다크엘프는 쌍검을 연달아 휘둘러들어왔다.

숨 한 번 쉴 사이에 다섯 번이나 공격이 이어졌다.

굳게 다문 입술이 살아 있을 때 단호한 성격이었음을 말해 주는 듯 하지만, 지금 녀석은 그저 자신을 잃은 인형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이런 인형을 상대로 길게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검기 Lv.3 최대출력.]

[홉착吸着 Lv.5를 발동합니다!]

- 화록!

두 자루 시미터가 그대로 대검에 달라붙었다.

검의 무게도. 크기도.

칼자루를 잡은 힘도 내 쪽이 압도적으로 우위다.

“크으어.

칼이 묶인 다크엘프가 발로 나를 걷어차려 했다.

- 덥석.

한 손으로 발을 잡아 그대로 빙그르르 돌렸다.

코드네임 별빛청여우, 소명수녀 엘윈에사우에게 체술을 괜히 홉수한 게 아니다.

푸른 검기가 어린 대검을 들어, 녀석이 잠깐 쓰러진 사이 그대로 위에서 내려쳤다.

퍽!

시체의 갑옷이 반으로 갈라졌다.

- 더 있다. 방심하지 마라.

물론 알고 있다.

긴장을 늦출 새도 없이 긴 창과 언월도가 날아들었다.

휘두르는 녀석들은.

아까 시체에서 정수를 흡수했던 녀석들이다.

곱게 묻어 주지는 못할망정, 착취하려고 해서 화가 났던 걸까.

- 깡!

내리치는 언월도를 위로 쳐냈다.

아래로 찔러 오는 창 자루는 끝을 두 동강 냈다.

[질주 Lv.5!]

[일도양단 Lv.l 발동!]

바닥을 박차고 달려갔다.

휘두르는 대검이 직선을 그리면서 둘의 몸을 그대로 잘라 냈다.

아름다운 엘프의 몸이 하반신은 아래로 주르르 밀리고, 상반신은 위로 강하게 날아갔다.

굳은 장기들이 아무렇게나 허공에 흩뿌려졌다.

그러나 셋이 끝이 아니었다.

- 투둑.

- 투두둑.

어느새 열 명이 넘는 엘프들이 탁한 은빛으로 눈을 빛내며 땅에서 일어나고 있다.

얼굴만 날아간 시체, 가슴이 활짝열린 시체들이 다시 일어나 내게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당신들, 왜 이렇게 된 거지?”

“으어. 으어어.

물론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마치 망령의 납골당에서 동료 해골병사들을 상대하던 느낌이다. 자기 자신으로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빨리 쓰러트려 주는 게 이들에게 자비로운 일이겠지.

- 파드득!

한층 위로 높이 올라간 아이작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눈가림이다. 본체를 조심해라.

“본체?”

-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저것들을 조종하는 본체가 있지. 위에서 관찰하다가. 나오면 알려 주마.

- 파득! 파드득!

녀석은 거대해진 날개를 쫙 펴고 유유히 뒤로 더 빠졌다.

기절시킨 루비아를 발톱으로 쥐고 있었지만, 인간 하나 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듯하다.

끼어들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완전히 3인칭 관찰자 시점인가.

힘을 아끼려는 건지는 몰라도.

뭐, 루비아만 잡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싶다.

“으어아

바닥에서 일어난 엘프들을 한 번쓱 둘러봤다.

아이작의 말대로 애초에 이들을 살해한 ‘본체’가 있을 게 분명하다.

- 팟!

칠흑 중갑을 입은 엘프 한 명이 방패를 들고 내 쪽으로 돌진했다.

한눈에 봐도 내가 입은 갑옷보다훨씬 좋아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머리가 세로로 반쯤 날아갔다.

다른 손의 도끼를 굳이 막을 것도 없었다. 앞에 내세운 방패를 칼로 강하게 올려쳤다.

[산성 Lv.5를 발동합니다!]

방패가 위로 튕겨지며 생긴 틈에 다시 칼을 가로로 휘둘렀다.

절단면이 녹아내리며 시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거의 동시에 네 명의 다크엘프가 사방에서 나를 공격했다.

그들 모두 강력한 힘에 몸이 찢겨죽은 녀석들이다.

그나마 이런 식으로. 동료에게 살해당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시체들이 일어난 건 방금 전 내가 들어온 뒤의 일이니까.

[체술 Lv.7이 보정됩니다.]

- 팟!

박차고 오른 바닥에서 돌먼지가 일었다. 3미터 가까이 뛰어올라서 포위망을 단숨에 넘었다.

- 퍼걱!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며 시체들을 베어 나갔다.

그들은 더 이상 엘프가 아니다.

마왕 레라지에의 추종자 따위도 아니다.

정체불명의 뭔가에 조종되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격발Blaze Lv.2를 발동합니다!]

칼에 불꽃을 실어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비명도, 고통스러워하는 표정도 전혀없었다.

타오르는 인형들을 향해 대검을 다시 휘둘러 힘을 뿜어냈다.

[냉기 폭풍 Lv.l 발동!]

[스킬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엘프들의 시체가 얼어붙으며 뒤로 쓸려 갔다.

시체 두엇은 그 와중에도 버티며 도끼를 내려치고 칼을 꽂았다.

미처 막지 못해 갑옷의 가슴팍이 움푹 파였다.

- 광!

반쯤 얼어붙은 녀석들을 주먹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시체에 붙은 얼음이 부서졌다.

두 녀석이 몇 바퀴를 구르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그 사이에 검기가 서린 칼을 들어 가로로 베어 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를 지키며 싸웠습니다.]

[홉착 Lv.5의 반복적인 사용으로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흡착 Lv.5 ? Lv.6]

[스킬 등급이 ‘희귀’로 조정됩니다.]

이것도 루비아 덕분인가.

한참을 반복하고야 신전은 침묵을 찾았다. 아이작이 루비아를 처음에 기절시켜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갑옷을 바라봤다.

곳곳이 우그러지고 뜯겨져 있다.

사방에는 마법과 폭력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몸보다도 정신이 더 지쳤을 때.

- 저벅.

신전 가운데의 커다란 구멍에서, 발가벗은 무성無性의 아이 하나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 아이?”

- 공격해라!

생식기가 없는 걸 제외한다면, 겉으로 보기에 그저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다.

이마와 배, 등 부위에 동그란 뚜껑같은 게 붙어 있는 아이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나이는 일곱 살에서 열 살 정도나되었을까. 제대로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아이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은 가만히 꾹 다물고 있었지만, 그 뜻이 머리로 직접 전해졌다.

[뭔가 꺼림칙해 숨어 있었는데.

느리네. 약하고. 괜히 겁먹었잖아?

네까짓 게 뭐라고 말이야.]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목소리가 신전 안에 기묘하게 울려퍼졌다.

얼핏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저런 작은 몸으로 엘프들을 모두 찢었단 말인가? 적어도 수 미터는 되는 괴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게 어디 숨은 건 아닐까?

그때 였다.

- 투둑.

이쪽으로 걸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서서해 변해 가기 시작했다.

팔은 몸통처럼 길고 두꺼워졌고, 그 끝에 달린 양손은 머리통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왜 내가 겁먹었지. 정말 기분이 나빠서 진짜.]

웅얼거리는 입이 일그러지며 점점거대해졌다.

깨끗했던 엉덩이 쪽에 가시 달린 두꺼운 꼬리가 길게 자라났다.

나는 아이작에게 물었다.

“저게. 네가 말한 사도의 부스러기냐?”

- 그래. 아직 자라지 않은 놈이다.

완전히 변할 때까지 가만히 두고 볼셈이냐?

하지만 아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일단 이 정도에서 싸워 볼까.?

충분할 것 같은데.]

‘아이’는 장난치는 것처럼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강할까?

강하다면 얼마나 강할까?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경계하며 대검으로 아이를 겨냥한 순간이었다.

- 쾅!

녀석의 머리통만 한 주먹이 빠르게 날아왔다.

칼로 막아 냈지만 순간적인 속도와 힘이 어마어마했다.

등이 바위에 부딪히며, 루비아가 사 준 갑옷이 뒤에서 한차례 더찌그러졌다.

억지로 대검을 잡고 있었다. 머리가 세차게 흔들린 탓인지 정신이 어지 러 웠다.

녀석은 뒤로 나가떨어진 날 보며 무표정하게 천천히 걸어왔다.

[집중 Lv.2를 발동합니다!]

[명상 Lv.2를 발동합니다!]

녀석의 등 뒤에 반투명한 촉수가 빼곡히 돋아 있는 게 보인다.

다크엘프들이 죽을 때마다 아래로 빠져나가던 촉수였다.

저걸로 시체들을 조종한 건가.

[검기 Lv.3 최대 출력!]

[산성 Lv.5 발동!]

죽은 뒤에도 이용당한 엘프들을 떠올리며 녀석에게 칼을 내리쳤다.

치직거리는 연푸른 검기가 칼날전체에 둘러졌다.

- 펑!

녀석이 팔을 교차해 칼을 막았다.

은빛 진물이 나오는 팔을 내려다보며

‘아이’가 슬쩍 인상을 썼다.

[흐음.]

하지만 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몸 전체를 자를 생각으로 강하게 내리친 검격이다.

검기를 둘렀는데.

이게 부스러기라는 말인가?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원래 이런 게 있었나?

- 꽝!

녀석이 강하게 꼬리를 내리쳤다.

대검을 들어 막았지만.

강한 힘에 손목 하나가 어긋난 것 같았다.

잡념에 빠져 있던 대가는 컸다.

[약하네.]

녀석은 다시 가까이 붙은 뒤 배를 주먹으로 올려쳤다. 갑옷이 부서져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가슴을 맞았으면 갈비뼈가 다 부러져 밸런스를 잃었을 게 분명했다.

[어디 더 피를 흘리게 해 봐라.

내 피를.]

- 광!

‘아이’는 장난치는 것처럼 다시 한 번내 배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치고 빠지지 못했다.

[어라?]

아이의 거대한 주먹을 배 부분의 갑옷에 붙인 뒤, 몸을 회전시키며 대검으로 목을 베었다.

먹혀들었다.

하지만 칼날은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뒤로 떨어져 나가 자세를 잡았다.

다음 공격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아이’는 목을 손으로 만져 보더니 흐르는 은빛 액체를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팔을 공격할 때에도 그랬지만.

루-륨이 몸에 흐르는 건가?

나냐우가 떠올랐다.

그녀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해줄까?

계속 떠오르는 생각을 지워 내며 눈앞의 녀석에게 다시 집중했다.

손톱 길이 정도로 목에 칼이 들어갔지만,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것 같았다.

‘조금 더 커져야겠구나.”

- 투둑.

- 투두둑-

아이의 몸이 조금씩 더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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