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03화 (203/458)

204화 오래된 친구 (20)

아이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5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였다.

몸이 거대해지며 새까만 눈썹과 머리칼이 길게 자라났다.

털은 불에 탄 것처럼 지저분하고 길었다.

이마와 배, 등 부위에 붙어 있던 검은 뚜껑 같은 것에서 우둘투둘한 칠흑의 갑각이 솟아나서 갑주처럼 전신을 뒤덮었다.

주변 공기마저 일렁이면서 까닿게 물들었는데, 마치 공기의 질량마저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정말 녀석의 몸을 둘러싸고 만져질것 같은 검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피어올랐다.

계속해서 거대해지는 녀석을 따라고개를 위로 들어야 했다.

녀석의 모습을 끝까지 인식하는 순간.

[동화율이 떨어집니다.]

[70.9%.]

[출력 코드를 인식합니다.]

세계가 출렁거렸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아지랑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이했다.

녀석의 존재감은 조금 전과 비교할수 없이 압도적이었지만, 두렵다는 생각이나 싸워서 내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자신감이 올라왔다.

놈이 아이 형태일 때 일방적으로 당하며 아래로 처박혔던 자신감이, 다시 위로 올라온 기분이다.

[크하하하하.]

놈은 자신의 힘에 도취된 둣 꿈틀거리며 웃고 있었다.

부스러기 주제에.

대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진짜 일 났네. 일 났어. 대체 뭘가만히 보고만 있었냐?

아이작은 파드득거리며 뒤로 다시 물러갔다.

여차하면 도망갈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약하다.”

[뭐라고?]

구부정한 자세를 취한 녀석은 곧내 앞에 뛰어들었다.

- 쿠궁!

돌 파편이 부서져 사방에 튀면서 진동이 신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감히 나에게 뭐라고 하였느냐? 이미천한 벌레가!]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시선이 조금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읽힌. 다?’

그 약점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하면 되는지.

상대가 어떻게 이쪽을 공격해 올것인지.

- 광!

거대한 손이 뻗어 와 바로 옆에 꽂혔다. 다크엘프들을 몰살한 바로 그 공격이었다.

공격은 처음부터 완전히 읽혔다.

느리다.

한심할 정도로 느리게 느껴졌다.

놈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놈을 보자마자 뭔가 나를 억제하는 장치가 하나하나 풀리는 기분마저들었다.

나는.

누군가 날 조종하는 것처럼 이미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연속해 들어오는 공격을 피한 뒤손목에 칼을 휘둘렀다.

아이 형태일 때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칼이었지만, 이번에는 단한 번으로 신전 기둥만 한 놈의 손목이 너덜거렸다.

[어? 어어.?]

내가 가진 힘 자체가 놈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자를 정도로 강해진건 아니었다.

기억이다.

정신 깊숙한 곳 어딘가에서 아주 익숙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다.

덧씌워진 ‘기억’으로 곧바로 놈의 어깨에 올라탔다.

마치 환각에 빠진 것처럼 녀석의 약점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거기에 칼만 가져다 대면 가볍게 일이 끝날 것 같았다.

- 서걱!

선을 따라 그대로 대검을 그었다.

갑각이 돋아나기 전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던 칼날이 아예 어깨를 끝까지 베어 냈다.

그은 대로 어깨가 잘려 나갔다.

- 쿵!

검은 연기에 쌓인 거대한 팔뚝이 거짓말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놈의 비명이 신전 안에 가득찼다.

이렇게 쉬운데.

아까보다 강해진 게 맞는 건가?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몸은 마치 폭주하는 것처럼 칼을 휘둘렀다.

대검을 ‘선’에 찔러 넣고 내려치고 돌리고 휘둘렀다.

옆으로, 아래로, 위로, 사선으로 베었다.

놈이 뿜어내는 검은 연기 위에서 파도를 타는 것처럼 움직였다.

흩어진 연기 속에서 마주한 놈의 눈동자는 공포로 질려 있었다.

[끼, 끼히이익-!]

[이런 말도 안 되는.!]

팔이 잘린 놈이 몸을 뒤로 솟구쳐 도망갔다.

- 콰광!

거대한 발로 강하게 내딛는 탓에 바위가 부서져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길게 자란 녀석의 머리칼을 잡고 다시 보이는 검은 선을 따라연속해서 칼을 찔러 넣었다.

- 퍼걱!

잘리는 느낌, 부서지는 느낌이 말할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손에 회전을 주며 칼을 휘저었다.

등부터 머리까지 계속 그어 대자 순식간에 놈의 몸이 터져 나갔다.

일방적인 학살.

그러나 경비대 같은 약한 것들을 한 번에 처리할 때의 느낌과 전혀달랐다.

정신적인 쾌감이었다.

해야 할 최적의 행동을 하는 듯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느낌.

기이할 정도로.

익숙한 쾌감이었다.

몸이 너덜너덜해진 녀석이 처음 나왔던 구멍으로 몸을 던지려 할 때였다.

“주술사! 놈을 저지해라!”

‘내’ 입에서 아이작을 향해 강렬한 명령이 터져 나왔다.

- 어, 어어. 토 에이나이 보모스프로스카미야 사스 텔레스 에도 (이곳이 제단이니 그대의 순례는 여기에서 끝나리라). 멈춰라.

사념居>念 영역에서의 고속 영창.

주술의 발휘에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발작적으로 도망치던 ‘부스러기’가 짧은 시간 멈칫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눈에 훤히 들어오는 ‘선’을 따라이루어진 공격이 놈의 몸 전체를 갈라냈다.

[안 돼! 안 돼! 살려만, 살려만 줘!

계속할 거야.]

“뭘 계속한다는 거냐.”

머리 옆에 다가가 물었다.

이미 반으로 갈라진 채로 녀석이 중얼거렸다.

[살더_?]:??? 살더_?]:??? ?우나] 살까서:

하는데.]

녀석이 마지막 반격인 듯 이빨을 들어 나를 깨물었다. 이빨째 놈의 머리를 싹둑 베어 버렸다.

은빛 액체가 사방에 튀었다.

녀석의 몸을 둘러싼 검은 연기가 사방에 먼지처럼 흩어졌다.

아이작이 파드득거리며 내 곁으로 날아왔다.

- 너. 방금 나한테 감히 ‘명령’을 했었던 거냐? 나는 그걸 들었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 이건 대체 어떻게 이렇게 쉽게 잡았어? 어? 이야기 좀 해 봐라.

하지만 녀석의 말에 대꾸할 힘은 없었다.

- 털썩!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리 훤히 보이는<선>을 따라움직였다고 해도.

어떻게 된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기억>에 따라서 움직였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을 한 부담이 몸에 그대로 가해진 것 같았다.

맞은 충격보다도, 내 역량을 훨씬뛰어넘어서 움직인 탓에 온몸의 뼈가 실금으로 가득했다.

쓰러진 채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 대체 어떻게 된 거냐니까? 혹시뭔가 보이기라도 했냐?

선이 보였다.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이.

[동화율 동결.]

[하락 방지.]

[이 노예를 세계에 고정시깁니다.]

[기억의 천막天幕을 삭제.]

눈앞이 붉었다가, 하얗다가, 다시 새까매졌다.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다.

두 쌍의 시선이 누워 있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일어났느냐?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요?”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의 걱정을 받고 있습니다.]

[걱정 강도: 매우 높음]

[마스터의 체력과 정신력이 초당

0.0017%씩 소모됩니다.]

[서번트의 체력과 정신력이 30%빠르게 회복됩니다.]

이건 또 뭘까.

루비아 덕분에 빠르게 깨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좀 늦게 깨어나는 게 낫지, 그녀의 정신이 소모되는 건전혀 내키지 않는데.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한참 이나 기절해 계셨다고요.”

왜 기절을 한 걸까?

당황스러웠다.

머리를 맞은 적은 없는데.

지나치게 무리한 탓에 두개골까지 금이 간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시야가 흔들렸다. 뭔가가 정신의 영역에서 나를 강하게 억제하면서 충격을 가했다.

내 곁에서, 거의 독수리만큼이나 거대해진 아이작이 말을 걸었다.

- 깨우는 데 엄청 비싸게 들었다.

몸을 좀 보지 그래?

고개를 들어 팔을 내려다봤다.

갑옷이 벗겨진 몸 곳곳이 은은히 빛나고 있다.

“이건.!”

- 온몸에 여기저기 실금이 잔뜩갔더라고. 루-륨도 잔뜩 남았겠다.

그런 김에 회로를 제대로 넓혔지.

검기 한번 써 봐라.

녀석의 말을 듣고 대검에 검기를 발현시켰다.

[검기 Lv.3 최대출력.]

- 우우우옹!

대검 전체를 푸른 기운이 덮었다.

하지만 검기가 칼 위로 몇 센티씩 솟는다거나, 빛깔이 더 진해지거나하는 건 없었다.

“강해진. 건가?”

- 이 멍청한 놈! 계속해 봐라.

검기를 몇 분간 계속 유지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실은 그게 무척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런 부담이 가해지지 않는 것.

지금까지는 무리하게 마력을 쓰면 회로가 뜨겁게 달궈지면서 무리가갔다.

온몸에서 힘이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 이제 칼날에. 불꽃과 얼음을 동시에 만들어 봐라.

의아했다.

그런 짓을 해 봐야 마력 소모만 극심하고 좋을 일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녀석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 치이이이익!

불과 얼음이 동시에 솟아나면서 당연히도 서로를 계속 상쇄했다.

터무니없는 마력의 낭비.

그럼에도.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루-륨을 나한테 주입한 거냐.”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이 녀석이 고생했다. 단검어디 있어?

아이작이 고개를 돌려 루비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작은 단검을 손으로 살짝주워 들었다.

“이분이 부리로 쪼는 대로 회로를 새겼어요. 그럼 빨리 일어나실 거라고 해서요.”

- 흠흠. 주술을 써서 사도의 피가 네 몸에 스며들도록 했느니라.

자세히 몸을 내려다봤다.

아예 활짝 열어 놓고 작업한 둣, 천천히 아무는 뼈가 보였다.

루비아의 존재 덕분일까.

그런 실금들이, 혼자 있을 때보다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 그나저나.

아이작이 주위를 성큼성큼 돌며 물었다.

- 어떻게 그렇게 잘 해치웠지?

“나도 모른다.”

정말이다.

검기를 둘러서 썰어 봤자 칼날이 한 치도 안 들어가는 강력한 적이었는데, 그런 놈을 상대로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음직임을 행했다.

덕분에 뼈 곳곳에 금까지 갔고.

- 투자 가치가 있는 모습이었다.

아주 대단했느니라.

“.그러냐.”

아이작이 자기가 아닌 남을 보고 대단하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다.

그 대상이 내가 될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는데.

어떻게 움직인 걸까?

무언가에 씌인 듯한 느낌.

잠깐 동안 몸을 지배하던 감각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려 했다.

눈앞의 적이 한심하고, 미숙하고, 우습게 느껴졌던 감각.

도망치는 녀석을 잡으라고 아이작에게 명령을 내렸던 감각.

조금 전 일어난 일임에도,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환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을 내게 알려 주는 이 뚜렷한 물증이 없다^?.

은은한 빛이 아이작과 루비아의 뒤편에서 비쳐 온다.

거대한 부스러기의 사체가 내는 은색빛이다.

- 달그락.

몸을 일으켰다.

기스-제-라이의 정수 흡수 스킬로 적의 능력을 얻을 수 있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초록이 아닌 은빛이지만.

홉수할 수 있다는 게 직관적으로 느껴지고 있다.

녀석을 흡수하면.

뭘 받게 될까?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된 두 명은 나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이 형태일 때도 나를 구석으로 쉽게 몰아붙이던 힘인데.

손을 뻗었을 때였다.

- 쉬이이이이익!

은은한 은빛이 내게 스며들면서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전직 권한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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