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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06화 (206/458)

207화 9:1 (2)

문이 열렸다, 닫히면서 오두막은 조금 전보다 훨씬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들어온 여자 때문이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몇 겹의 가면을 겹쳐 쓰고 두꺼운 옷으로 가리더라도 절대로 몰라볼 수 없는 인간이었다.

기억을 한껏 지우고 웅크리더라도 끝까지 남아 있을 상대.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곁에서 함께했던 여자였다.

“레나?”

그녀는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표범처럼 내게 다가왔다.

- 콰직!

그리고 어깨를 빼낼 기세로 목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칠흑의 벨벳 장갑 너머로 강력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벨벳은 얇고 손가락은 가늘었지만 가해지는 힘은 진짜였다.

정말 많이 강해졌다는 걸 한 번의 멱살잡이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뭐야. 이 리치 녀석, 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레나가 다른 손으로 검은 가면을 벗었다.

두 눈과 입이 뚫린 가면을 벗자 분명한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익숙한 검은색 머리카락이 살짝풀어지며 홀러내렸다.

예전보다 조금 짧아진 단발이다.

그녀가 검은 단발을 귀 뒤로 넘기며 어둠 속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 달그락.

나는 묶인 손목을 아래로 가만히 늘어뜨렸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냐고, 어떤 현재와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 너무궁금하다고 묻고 싶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슬라임은, T&T와는 어떻게 된 거냐고 하나씩 자세히 묻고 싶었다.

밤새도록 묻고 들어도 부족하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건 건조한 대답뿐이었다.

“리치 같은 건 아니다. 마법이나 주술에 별다른 조예는 없어서.”

“이 자식이.

레나라는 걸 알아차리자, 뒤쪽에 서 있는 두 여자도 그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가면으로도 감출 수 없는, 백색에 가까운 긴 은발은 T&T 시조始祖, 트로핀 나냐우의 특색이다.

넓은 후드 뒤쪽에는, 낫 형태의 병기가 숨겨져 있겠지.

푸르손 교도들의 거대 포위망에서 단신으로 나를 구해 준 녀석이다.

이렇게 강한 것도 이해하기 쉽다.

다른 한 명은 조금 덜 확실하다.

하지만 역시 T&T의 고위 간부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예언대로네요. 날짜와 시간도 정확히 맞춰 주셨어요.”

“흐흥. 이걸 예측하는 데 상당히 힘을 썼어. 어휴. 한동안 관절이 잔뜩 쑤실 것 같아.”

레나를 자기 지부에 넣겠다면서 우겨 댔던 묘족 예언자인가.

특유의 앙칼진 말투가 틀림없다.

샤루니안이라고 했었다.

“예언과 관절이 무슨 상관이냐.”

“시조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막말하지 마시죠.”

“나한테도 힘을 받아 썼으면서.

어쨌거나. 이 녀석이 확실한가?”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틀림없어요. 눈앞에서 보니 훨씬더 확실해지네요.”

“정체를 알 것 같나.”

“글쎄요. 감이 안 잡히네요.”

“이게, 우리 레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날카롭게 갸르릉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면 뒤눈동자가 노랗게 물들면서 세로로 길게 찢어졌다.

“음. 여러분, 잠시 저 혼자 여기 있어도 될까요?”

“나가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샤루니안이 투덜거렸다.

“만만한 녀석은 아니다.”

트로핀 나냐우의 허스키 보이스가 들렸다.

“그래. 괜히 시조까지 데려온 게 아니라고.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몰라. 어떻게 널 혼자 남기니.”

“<활짝 핀 시스피리의 마비>까지 거셨잖아요. 해 봐야 뭘 하겠어요.”

내가 밟아서 터진 게 그건가.

예언의 능력 외에 그런 것도 가능하다니 다재다능한 고양이로군.

“하지만 잘못해서 마법이 풀리면 어떡해.”

“저항할 생각은 전혀 없소.”

참다못해 내가 끼어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레나를 공격할생각은 조금도 없다.

게다가 나를 죽이려는 것도 아닌것 같다.

그랬다면 트로핀 나나우가 당장 나를 해치우지 않았을까.

“너 같은 걸 어떻게 믿고!”

“휴우. 과잉보호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겠네요.”

둘은 못 이기겠다는 듯이 문밖으로 나갔다.

“엿들으시면 안 돼요”

“알았어. 알았다니까.”

오두막 안에 나와 레나만 남았다.

평평하게 긴장되는 공기가 뼈마디사이사이로 들어왔다.

레나의 침묵이 공기를 더 차갑게 식혔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다.

그녀의 과거는 분명 바뀌었다.

더 이상 노예 장부에 그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그녀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어떤 과거를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한 게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레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내 목을 계속 잡은 채, 의자에 묶인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수작은 무슨 수작.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 자식이 정말.

냉정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평소 톤을 잘 아는 나이기에 파악할 수 있는 미세한, 아주 미세한 떨림이었다.

나는 목이 쥐어진 채 고개를 올려그녀를 바라봤다.

동굴에서 시작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밑바닥을 구르며 한 명을 죽여서 한 끼를 해결하던 노곤한 느낌은 아니었다.

삶의 비열하고 어두운 면을 특히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럼으로써 가질 수 있는 기묘한 귀티 같은 게 그녀에게 흐르고 있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써도 전혀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흑적색 후드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감탄이 나올정도로 잘 어울렸다.

시체들이 쏟아지고 피가 솟구치는 골목을 눈 하나 깜빡 않고 막 걸어나온 느낌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 띠링!

허공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이미 완료한 시나리오입니다.]

[달성한 호감도(70)에 따른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달성한 레벨(60)에 따른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클리어 보정이 반영되었습니다.]

[현재 해당 시나리오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호감도가 최소화됩니다.]

[이름: 레나]

[호감도: 20]

[자객 Lv.34]

[트릭스터 Lv.2기

[유물 사냥꾼 Lv.22]

[어둠의 상인 Lv.7]

[모략가 Lv.9]

[체력: 50]

[힘: 43]

[민첩: 71]

[지혜: 47]

[기본 스킬]

???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특전]

???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칭히

???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지위]

T&T 제3본부장.

상세효과: ??? (호감:도기"

부족합니다.)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도 훨씬레벨이 올라가 있었다.

직업 레벨의 상승은 물론, 스랫이 전부 크게 높아졌다.

게다가 칭호까지.

T&T 지부장으로 만들고 끝난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녀가 가지고 있던 루-륨이 어떤 식으로든 그녀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상태창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뭘 그렇게 보는 거냐?”

“당연히 너를 보고 있었지.”

목을 죄는 악력이 더 강해졌다.

차가운 칼날이 정수리에 닿았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말해라.”

우습게도 그녀의 얼굴이 살며시붉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최소화되었다고 했지만, 20이라는 낮지 않은 호감도가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대체 뭘 말하라는 건지 모르겠군.”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정수리에 닿은 칼날이 한기寒氣를 계속 내뿜었다. 철 자체의 온도는 아닌 것 같았다.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검인가.

예리한 날이 아주 느리게 머리로 파고 들어왔다.

괜찮은 무기까지 습득했나 싶어, 그 칼날의 한기와 예기가 조금도 꺼림칙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대꾸하지 않자, 결국레나가 말을 이었다.

“왜.

무슨 말을 할까.

“내 꿈에 자꾸 나타나는 거냐.”

차갑게 가라앉은 오두막의 공기가 살며시 흔들렸다.

그녀가 그 말을 뱉어 낸 뒤 작게 한숨을 쉬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스타일인 레나의 짧은 흑색 머리칼이 살짝 올라갔다 다시 내려앉았다.

“꿈에. 나타난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짚이는 게 있었다.

<이상한. 꿈을 꿨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소들에서, 스승님과 함께하는 꿈을 꿨어요.>

세계선은 분명히 달라졌다.

레나의 현재는 물론, 그걸 뒷받침하는 과거까지 바뀐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기억은 희미한 꿈의 형태로 계승되는지도 모른다.

- 끼긱.

정수리를 파고든 차가운 칼날이 내상념을 깨트렸다.

“그래. 왜 내 꿈에 나타나서 신경쓰이게 하난 말이야. 네가 주술을건 게 아닌가?”

주술 따위는 없다.

함께했던 과거가 그녀의 마음에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계승은 얼마나 이어질까?

얼마나 세계가 바뀌면,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면 없었던 것처럼 모두 사라지게 될까?

“너, 정체가 대체 뭐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어차피 사실을 말할 수는 없다. 이번생에는 레나와 엮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설익은 거짓말을 내밀었다.

“<등불>달리아크까지 찾아왔다.

T&T 길드 유명인사의 이름을 내가 모를까.”

이 정도면, 크게 파고들 구석은 없는 거짓말이다.

“그럼 나 말고 밖에 서 있는 다른 둘의 이름은 뭐지?”

이번에는 쉽다.

“트로핀 나냐우. 샤루니안. 여기서 전부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 덜컥!

문이 열렸다.

“뭐야? 얘, 왜 우리를 다 알아?”

“안 엿듣는다면서요. 내 이럴 줄알고 이름 말해 보라고 했어.”

“엿들은 거 아니야. 그냥 들렸어.”

조용하던 트로핀 나냐우가 살짝고개를 갸웃했다.

“신경 쓰이면 그냥 없앨까?”

나냐우의 로브에서 앞쪽 날 길이만 1미터가 넘는 낫이 튀어나왔다.

낫날은 지지대, 자루는 포신.

자루에 장착된 커다란 손잡이를 그녀가 손가락 하나로 잡아당겼다.

- 철컥.

강철 방패를 든 전사를 흔적 없이 날린 은빛의 마탄魔彈이 장착되는 소리였다.

레나가 손을 내저었다.

“어휴. 신경 쓰이니까 못 없애는거죠. 뭘 하시려는 거예요.”

“너, 어떻게 우리를 다 알지?”

나냐우가 가면을 벗었다.

가면을 벗으며 변조된 목소리가 다시 되돌아왔다.

“시조, 얘 그냥 떠보는 걸 수도 있는데 꼭 그렇게 벗어야겠어요?”

“넌 눈만 봐도 죄다 티 나거든. 그냥벗어. 이거 아직 시제품이라 그런지 성능이 마음에 안 드네.”

나냐우가 손을 뻗어서 샤루니안의 가면을 벗겼다.

“어차피 다 알고 있는 녀석이야.

레나 꿈에 나타난 거 봐 봐. 지금일부러 잡혀 준 건 아니야? 몸수색제대로 했었나?”

레나가 손을 뻗어 몸 구석구석을 살살이 뒤적이기 시작했다.

- 투둑.

갑옷을 벗기고, 뼈를 살짝 벌리고 안쪽까지 전부 훌고 있었다.

마른 숨이 살짝 닿았다.

좀 곤란한 기분이지만.

손목 발목에 전부 재질을 알 수 없는 특수한 족쇄가 차인 데다가, 나냐우가 바로 옆에서 내 머리를 언제든 날려 버릴 수 있게 겨누고 있는 상태다.

저항은커녕 사실 움찔거리며 몸을 돌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한참 여기저기를 뒤적이던 레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수상한 건 없어요.”

“푸르손 끄나풀은 아닌 듯한데. 뭐하는 녀석인지 모르겠군.”

T&T 내부에서 푸르손 추종자들과 적대하는 상황은 여전한가 싶다.

다만 분명한 차이점도 있다.

예전에는 나나우가 가게에서 날 보고 슬쩍 지나쳤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아크 내에서 수배령까지 내리고, 마음대로 나를 납치한다.

행사하는 영향력을 보자니 그들의 상황이 훨씬 좋아진 듯하다.

“내가 T&T에 관심이 좀 많아서.”

“하아, 길드가 이렇게 허술한 줄몰랐는데요.”

“아무튼 꿈이고 뭐고 모르겠으니 슬슬 풀어 주지 그러나? 수배령도 해제해 줬으면 좋겠는데.”

마음 같아서야 레나와 밤새도록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래 봐야 더 수상해 보일 뿐이다.

이제는 그녀의 삶에 더 끼어들지 않기로 했었고.

물론. 나를 이대로 풀어 준다는 가정하의 말이지만.

“뭘 믿고 내가 널 풀어 줄 거라고 생각하지?”

“글쎄. 꿈에서 본 정이라든가.”

내가 말해 놓고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레나는 의외로 흔쾌하게 대답했다.

“그래. 좋아.”

좋. 다고?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얘를 풀어 줘? 최고 마법사한테 보내서 제대로 조사해 봐야지.”

“본부장, 진심인가?”

나냐우와 샤루니안이 동시에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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