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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15화 (215/458)

216화 9:1 (11)

“제국 황실에 루-름의 9할이 모여있다는 건가? 다른 곳에 있는 걸 전부 합친 것의 9배라고?”

“물론이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아이작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흐흐흐. 당연한 이야기를 하며 무슨 대단한 정보라도 주는 것처럼 굴고 있구나. 내 말하지 않았느냐?

세이론이 사도를 찢으며 얻은 피다.

황실의 비역에 있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그 까마귀, 애완용이라고했지? 하나도 안 귀엽게 생겼는데 날기는 파닥파닥 잘 나네.”

레나가 흘끗 아이작을 바라봤다.

- 가슴도 없는 주제에. 황실을 몰라서 못 들어가느냐? 알아도 힘이 안 되서 못 들어가는 거지.

아이작의 반응이 격렬하다.

설마 안 귀엽다는 소리를 들어서 삐진 거라면 좀. 무섭다.

어쨌건 놈의 말이 옳다.

후작마저 살해당했다.

그 죽음을 파헤치려던 중, 최고의 추적술과 은신술을 가진 기사단원레일리도 벌레처럼 살해당했다.

지금 가 봤자 개죽음이다.

레나에게 물었다.

“황실의 비역을 털겠다는 거냐?”

레나는 한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스물셋은 자살하기에 좀애매한 나이잖아? 생각 없어.”

슬쩍 품에서 뭔가 꺼내 쥔 레나가 말을 이었다.

“굳이 비역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다른 방법이 있거든. 자세한 내용은 함께하게 되면 알려 줄게.”

- 휘익!

레나는 품에서 꺼낸 물건을 내게 던졌다.

무심코 손을 뻗어 잡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굉장히 익숙한 물건이었다.

긴 줄을 감아쥐어 든 순간.

- 띠링!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허공에 뜬 반투명한 푸른 창에

메시지가 빼곡히 떠올랐다.

[계승 아이템을 획득했습니다!]

[레나의 펜던트(new!)]

- 가짜 보석이 박힌, 레나가 건네준오래된 펜던트. 그녀가 무엇보다소중하게 간직하는 물건이다.

- 원래 상품으로써의 가치는 없었지만, 뒤쪽 세계에서 행운의 상징인흑색 산호로 줄갈이가 완료된 상태.

알아보는 자들만 알아보는 초승달모양의 세공이 붙어 있다.(new!)

[시나리오 클리어에 의해, 다음의 능력이 임의로 부여됨.]

- 히어로급 이하의 스킬 숙련이 15% 빠르게 상승합니다.

- 일주일에 한 번, 높은 확률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해 준다.

[특수 혜택 적용(new!)]

- 모든 종류의<범죄>가 발각될확률이 70% 감소합니다.

- 당신이 저지른<범죄의 증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질 확률이 15% 추가 생성됩니다.

“수도에 와서 이걸 보이면 된다.

그때 보자고!”

펜던트를 던진 뒤 외친 레나는

부끄러운 듯 말을 달려 사라졌다.

레나의 호감도가 한참 올라간 뒤나에게 건네줬던 펜던트.

‘꿈’에 의한 호감도의 효과인가?

그녀의 과거가 엮인 물건을 건네받을 줄은 몰랐다.

단순히 상징성만 있는 게 아니다.

이 펜던트는 나에게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살아 나갈 방법이 전혀 없을 때는 펜던트가 과부하로 깨져 버리지만, 그 전까지는 7일에 한 번 목숨을 구해 주는 놀라운 권능이 있다.

나는 익숙한 펜던트를 만지며 작게 중얼거렸다.

“판단을 시행한다.”

[현재 설정:<사망 및 그에 준하는 위기 시 자동 발동>]

[설정을 변경하시겠습니까?]

[발동 후 7일 동안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사용되는 능력:<위기회피(B)>]

- 어린 시절부터, 온갖 종류의

위험을 숨 쉬듯 피해 온 여자가 갖게 되는 수준의 특수 능력. 동물적인 직감에, 인간으로서의 배움과 궁리가 결합되어 있다.

“사용하지 않는다. 그대로 놔둬.”

[초기 설정을 유지합니다.]

- 팟.

상태창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해골님?”

“아. 아아.”

“굉장히 소중한 것처럼 쥐고 계시네요, 그 펜던트.”

“아니. 전혀. 그냥 징표 같은 건가본데?”

“징표, 네요.”

루비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더부드러웠지만, 그녀의 눈빛은 처음 보는 차가움을 담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서 돋아나려는 가시를 스스로 얇은 것까지 모두 뽑아낸, 너무 깔끔해서 섬뜩한 느낌이었다.

“별거 아니니까 처음 보는 나한테 줬겠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가듯대꾸했다.

“그렇군요. 납득이 되네요.”

루비아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말 납득을 하는 건지 어쩐지는 물어보기가 두려웠다.

“어이, 아이작.”

녀석이 필요했다.

- 시끄러. 생각 중이다.

“무슨 생각?”

-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사도의 피를 보관하는 비역은 하늘, 땅, 지하가 전부 막혀 있다. 외부반출은 아예 금지됐어. 한데 비역에 들어가지도 않고 루-륨을 얻을 수 있다고? 뭘 어쩌겠다는 건지 전혀모르겠지만.

아이작이 부리를 딱 부딪치며 말을 이었다.

- 하필이면 나냐우 그 꼬맹이와 아는 사이라니 완전히 무시하기도 뭣하군.

“그분은 어떤 분인데요?”

드디어 루비아가 다른 곳에 관심을 가져 주기 시작했다. 나는 레나의 펜던트를 슬쩍 다른 곳에 넣었다.

- 사도의 피에 관해서 좀 아는

녀석이다. 흠. 나중에. 한번 접촉은 해 보도록 해라. 무슨 계획인지나들어 보지.

“너도 비역은 못 뚫는 거냐?”

- 어. 못 뚫는다.

아이작은 고개도 안 까딱이고 바로 대답했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인정이다.

언제 아이작이 자기가 월 못 한다고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그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이야기인 거다.

황실의 비역에 들어가서 루-륨을 홈쳐서 나온다는 건.

“뚫기 어렵다면 엿보거나 할 방법도 없을까요?”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 어렵다. 나도 엿보지 못할 만큼강력한 주술이 쳐져 있지. 심지어내가 원래의 힘을 되찾더라도 당장 엿볼 자신은 없다. 하지만.

잠시 부리를 위로 쳐들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면 된다.

황실의 결계가 1/4 이상 무너지고, 내가 절반 이상 힘을 찾으면 엿보기 정도는 될 거다.

“원래 힘을 다 찾으시면요?”

아이작은 한껏 긴 부리를 더 위로 쳐들었다.

- 후후. 그러면 충분히 가능하지.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다.

놈의 입에서 무언가가 쉽지 않다는 말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황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느낌이다.

어쩌면 아이작은 인정할 건 모두 인정하는 성격인지도 모른다.

녀석이 말을 이었다.

- 일리엔과 예메라, 비르폰이 내게 서로 다른 저주를 가했거든. 힘을 회복하려면 이것들의 저주를 하나씩 전부 깨뜨려야 한다.

나도 들어 본 이름이었다.

루비아가 살짝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빛의 여신, 참회의 여신, 그리고 불의 여신 말인가요?”

- 그래.

“살아 있을 때 대체 무슨 짓들을하고 다닌 거냐?”

- 별건 아니야. 신전이란 게 괜히 쓸데없이 넓잖아. 매음굴은 다닥다닥붙어 있고.

“그래서?”

- 내 영토에서는 매춘은 신전에서 하게 만들었지. 아이작령令 8호인가 그랬을 거다.

“그럼 사제들은 어디서 살고요?”

- 어디 살긴, 계속 신전에서 살지.

매춘부들을 대신 수발들면서 섬기게했어. 보이지도 않는 여신보다 훨씬실체적이잖아. 숫자도 많고, 얼마나좋아.

- 기능적이라고. 일리엔 사제들은 치유 능력이 있는 거 알지? 성병치료 전담으로. 비르폰 애들은 또 중독 회복 능력이 있거든. 술 위에 몰비드를 태워 들이켜고 질척하게 즐긴 다음에.

“더 말 안 해도 된다. 저주 받은 이유는 아주 잘 알겠으니까.”

아이작이 어깨를 으쑥했다.

- 내가 뭘 어쨌다고. 신성력이 좀있으면 열심히 써야 될 거 아니야.

뭘 꿍쳐들 두고만 있냐. 좋은 데 쓰게 해 줬으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내려야지. 내가 억울해서 진짜.

“좋아요. 일단 아이작 님의 힘을 회복하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네요. 여신들이 여간 강력한 저주를 내린 게 아닐 테니까요.”

“동감이다.”

까마귀 인형 안에 있다고 하지만, 아이작과 함께 다니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지도 모른다.

놈이 땅 파는 광산노예로 삼았다는 다른 마왕의 추종자들.

게다가 무려 세 여신의 저주.

이게 끝일까?

인성을 보면 그럴 리가 없다.

제국 남부를 다 먹으며 무슨 짓을 해댔을지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저. 지금 가려는 곳이 예메라의 신전인 거죠?”

루비아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 그렇지.

“음. 아이작 님은 여신 예메라의 저주를 받았는데, 그 신전에 가면 혹시 문제는 없을까요?”

미처 생각 못 한 지점이다.

루비아가 정확하게 짚었다.

“괜히 너 때문에 못 들어가는 거아니냐?”

아이작이 부리를 옆으로 돌렸다.

- 흥! 그 미친년의 신전은 오히려

‘들어가는’ 게 문제다.

“들어가는 게 문제라고?”

- 참회의 여신은 무슨 얼어 죽을.

원한다면 근처에서 떨어져 주마. 아까개한테 찾아가서 황실 창고나 털어보든지.

녀석은 기분이 조금 상한 듯했다.

어쩌면 제 감정에 민감할수록, 남의 기분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성격이 되어 버리는지도 모른다.

“루비아, 어떻게 생각하지?”

“일단 예메라의 신전에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도를 가더라도.

일단 얻을 건 얻자고요.”

루-륨이 있는 곳까지는 지도에서 손가락 한 마디였지만, 속도 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 파바밧!

모래 아래 숨어 있던 열 마리의 전갈이 일제히 나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녀석들의 존재는 모두 파악한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 서걱!

칼날에 검기가 서린 대검을 횡으로 크게 한 번 휘둘렀다.

1미터가 넘는 꼬리침과 날카로운집게발이 푸른 검기에 터져 나갔다.

독을 머금은 탓에 앞 집게와 긴꼬리침이 끝만 새까만, 붉은 사막전갈들이 었다.

잘린 독주머니들이 조각난 채로 허공에 치솟았다.

닿는 순간 운동신경을 마비시키고, 감각만 증폭시키는 극독 ‘그릴린’이 모래 위에 허무하게 뿌려졌다.

하나도 놓칠 수 없었다.

2미터가 넘는 사막 전갈들은 내주위로 오면 즉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모두 죽었다.

[경험치가 138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근처에는 유사까지 있는 까다로운지형이었다.

심지어 전갈을 싸워 이길 수 있는 녀석이라도, 유사에 빠진 뒤 쏘이면 끝이다. 그렇게 죽은 시체들이 이미몇 보인다.

“이쪽으로 오지 마라! 내가 다시 돌아간다.”

극독이 방금 전 흩뿌려졌으니 조금돌아가는 게 낫다.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에게 안전한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지형 난이도: 중상]

[‘패스파인더’ 칭호가 강화됩니다.]

[마스터와 함께 이동할 때 시야가 15% 증가합니다(new!)]

[위험을 발견할 확률이 10% 상승합니다 (new!)]

뭔가 날로 먹는 기분이다.

‘사막의 신’에게 흡수한 5레벨의 <지형 적응>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강력했다.

죽은 전갈들을 슬쩍 바라봤다.

어쩌면 내 사막 적응력은 저 전갈녀석들보다 상위일지도 모른다.

사막 전갈들과 마주치는 것도 벌써 세 번째다.

독 능력을 흡수하면 쓸모 있으리라생각했지만, 전력 차이가 압도적인 탓에 경험치만 약간 오를 뿐이다.

아무래도 전갈 왕 정도는 처리해야 뭐가 나올 것 같다.

만나고 싶다는 건 전혀 아니지만.

루비아와 아이작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뭔가 사막을. 엄청 편하게 가는것 같아요.”

“그래?”

“네. 책에서 보면 사막은 정말로 힘든 곳이라던데, 우리는 한 번도안 헤매고 오아시스를 바로 갔고요.

해골님이 마법을 쓰신 거죠?!”

가까운 오아시스에서 적신 물기가 몸에 남은 루비아가 젖은 하얀 천을 얼굴에 두르고 말했다.

양손으로는 커다란 야자나무 잎을 쥐고 햇빛을 가린 채였다.

“뭐. 글쎄.”

다시 말 위에 오른 뒤 루비아를 잡고 뒤에 앉혔다.

그 뒤를 낙타들이 따랐다.

상단이 놓고 도망친 낙타들은 그리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녀석들 옆에는 식량과 음료가 무척풍족하게 매달려 있다.

“어이, 아이작.”

- 뭐냐? 사막의 안내자여. 크크크.

워낙 길을 잘 찾는 탓인지, 녀석도 어느새 나를 그렇게 부르고 있다.

“.왜 이렇게 많냐?”

앞에서 위험 요소를 찾고 제거하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게 있었다.

- 뭐, 그래도 너한테 부담은 안 될 수준이잖아?

“아는 게 있으면 제대로 말해라.”

전갈 무리만 세 번째 조우다.

사막 원숭이, 독사 떼까지 합하면 다섯 번째.

싸울 것들을 찾아다닌 게 아님에도 이러하다.

“이 정도면 인간들이 쓸어도 진작쓸었을 텐데.”

- 별거 아니야. 그냥 미끼가 막뿌려졌으니 그렇다.

“미끼? 설마 우릴 말하는 거냐.”

- 아니. 숨어 있는 마물들을 강제로 끌어당기는 주술의 덫이다. 곳곳에 더럽게도 많이 쳐 놨구나.

레나가 준 정보가 떠올랐다.

도적단에게 ‘피리’를 건네주고 떠난잿빛 추기경 그레이시엄.

자극할 수 있는 마물들을 모조리자극해 출현시키고, 그 핑계로 군을 일으키는 황실의 계획.

이것도 그 일환일 게 뻔하다.

“진작 이야기를 했어야지.”

- 너무 걱정하지 마라. 여기 끌릴정도면 아주 약한 것들뿐이니까. 신전앞에서 기다릴 놈만 경계하면 된다.

- 파드득!

순간 높이 날아오른 녀석이 하늘위에서 큰 모래언덕 너머를 보며 말했다.

- 저~ 기 보이네. 퀴즈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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