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9:1 (12)
퀴즈쇼라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 파드득!
알 수 없는 말을 남긴 아이작은 강한 날갯짓을 해서 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위로 올라갈수록 녀석이 점점 더속도를 높이는 것 같았다. 지금껏본 적 없는 높은 고도였다.
나는 사방을 돌아봤다.
하지만 어디에도, 아이작의 말대로
‘퀴즈’를 낼 만한 상대는 없었다.
탐지 스킬에도 살아 움직이는 것은 전갈 한 마리 뱀 한 마리 잡히지 않는다.
오로지 끝도 없이 이어진 거대한 모래언덕뿐이다.
“아이작 님은 언덕 쪽으로 가네요.
지도에 보면 저 언덕 너머 예메라의 신전이 있다는데.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하다는 거지? 신전이?”
“아니요. 모래언덕이요. 보세요.
지금껏 본 다른 모래언덕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것만 신전 앞에 정확히 그려져 있어요.”
루비아의 말대로였다.
앞쪽에 보이는 모래언덕이 확실히 눈에 될 정도로 거대하기는 했지만, 사구砂五는 모두 바람 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한다.
지도에 그릴 만큼 고정적으로 되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바람 부는 쪽으로 구부정히 생겨난 보통의 모래언덕과 눈앞의 사구는 그 모양마저 달랐다.
녀석은 하나의 높고, 둥글고, 굵은 산에 가까웠다.
“그리고.
루비아는 저 높이 나는 아이작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놈은 높은 고도를 유지하며 신전앞 거대한 모래언덕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뭐지?”
“아이작 님, 예메라에게 큰 저주를 받으신 거 아닌가요? 왜 제가 보면 신전 앞에서 일부러 저러는 것.!”
그때 였다.
- 쿠궁.
사막이 흔들렸다.
높이 20미터, 직경은 200미터도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 모래언덕이 위로 수십 미터를 치솟으며 모래를 폭포처럼 흩뿌렸다.
주변 수십 미터의 모래가 포악하게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 쿠구구궁!
고요한 사막이 거세게 진동했다.
루비아를 옆에 끼고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언덕 곳곳에 틈새가 벌어지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뒤로 훌쩍 물러서 멀리서 바라보니 갈라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모래로 잔뜩 ‘덮여 있던’ 무언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 파팡!
거대한 사구 앞쪽에서 오돌토돌한 까맣고 긴 언덕이 쑥 솟아났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마치 화살처럼 될 정도로 빠른 속도라고 느꼈지만, 그 거대한 크기를 놓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눈앞의 ‘언덕’은 귀찮아하며 몹시느릿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쪽이 옳았다.
위로 솟아난 까만 언덕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닫았다.
<와들루스 피곤해요.>
‘언덕’은 입을 벌리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천둥이 치는 것처럼 거대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전 수호자: ‘석상’ 와들루스]
[랭크: S마이너]
[숨겨진 크리쳐입니다. 상상할 수 없이 신성모독적인 존재를 감지하고 오랜 잠에서 억지로 깨어났습니다.]
“이게. 이게 대체 뭐야?”
나는 허공에 뜬 상태창을 확인하고 경악에 빠졌다.
상태창이 떴던 적들 가운데, 가장강한 녀석이 B더블 플러스 랭크의 애쉬웜이다.
레라지에의 성지에서 만난 녀석은 어째서인지 ‘상태창’이 뜨지 않았고, 내 힘으로 물리쳤다고 보기에 분명무리가 있기 때문에 일단 논외.
A랭크도 본 적 없는데, 난데없이 S마이너랭크라고 표시되는 녀석의 출현.
어쨌건, 상태창에 표시되는 랭크는 별개로 해도 눈앞에 솟아난 언덕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왠지. 저분이 아실 것 같네요.”
내 품에 자연스럽게 안긴 채, 뒤로 도망치고 있는 루비아가 손가락을 곧게 뻗었다.
그 손가락은 ‘언덕’ 위에서 날고 있는 아이작을 향해 있었다.
- 하하. 이 멍청한 거북이가 드디어 일어났구나. 400년 만이다!
거대한 언덕이 몸을 살짝 흔들자 굳어 있던 표면이 쩍쩍 갈라지며 모래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 촤아아악!
아직 ‘석상’은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았다.
몸의 반쯤은 모래에 파묻고 있는 상태다.
나는 아이작을 보며 진심으로 의문에 차서 물었다.
“설마. 이걸 상대로 싸우라는 건 아니겠지?”
- 할 수 있어! 힘내라! 성공하는자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저런 미친.
- 파드득!
뒤로 물러나며 다시 녀석이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높이 솟아오른다.
“아이작 님! 자기가 불러내고 지금무서워서 도망친 거죠? 우리한테 다떠넘기고 지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요?”
- 힘내라? 안 되면 되게 해라!
개소리다.
안 되면 안 해야 되는 거다.
아무래도 놈 또한 눈앞의 존재가 두려운 모양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와들루스 궁금해요. 이건 설마.
부패와 퇴폐. 금기와 모독의 기운인 건가요.‘?>
“아이작! 저게 지금 네 이야기를하는 것 같은데.”
뭔가 말투가 이상한 존재였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치고 있지만, 의사가 전달되며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머리’가 한 마디 한 마디 의사를 전달할 때마다 거대한 언덕 곳곳에 모래 폭풍이 생겨났다.
사막이 울고 있었다.
작은 모래바람이 일어나는 곳들은 심지어 부분적으로 어두워지기까지했다.
간신히 루비아를 데리고 움직일 수 있었다. 안색이 파리해진 루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이작 님이 뭔가를 도발한 거네요.
사막 전체가 응응거리는 느낌으로
‘석상’이 의식을 전해 왔다.
<저주받은 기운. 불결한 게 신전근처에 온 게 사실. 그럼 역시.
와들루스는 여기서 그걸 끝장내야하는 것이겠지요.?>
거대한 발 두 개가 꿈틀거리면서 모래 속에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것 하나하나가 삼 층 건물이
밀집한 골목만 한 크기였다.
발톱 끝에는 한눈에도 위협적으로 보이는 새까만 섬광이 뭉쳐져 있었고, 밖으로 드러난 열 개의 발톱은 그하나하나가 내가 들고 있는 양손검보다도 훨씬 더 컸다.
- 파지직.!
게다가 최대 출력 검기보다 진해보이는 새까만 섬광은 전혀 감당할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역시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공격해서 말살해야 하는 거예요.
마구마구. 엉망진창으로 울부짖게 만들어 줘야 하는 거예요.>
어미는 괴상하지만, 힘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존재다.
아이작은 무슨 미친 짓을 한 걸까.
사실 아이작 놈이 아니었다면 그냥얌전히 여길 지나, 원래 계획대로 평화롭게 루-름을 얻을 수 있던 게 아니었을까?
‘언덕’ 근처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글씨들이 떠올랐다.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된 흘려 쓴 글자들이었지만, 강력한 살의와 징벌의 의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작!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루비아를 뒤에 세우고 칼을 들어어떻게든 막을 준비를 했다.
새까만 글자들이 내 쪽을 향해서 막 쏘아지려고 할 때였다.
- 퀴즈를 풀겠다고 해라! 지금!
망설이거나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퀴즈를 풀겠다!”
녀석을 따라 크게 외쳤다.
‘석상’ 근처에서 일어나던 폭풍이 한순간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허공에 떠 있던 새까만 주술들이 보이지 않게 점점 투명해졌다.
갑자기 어두워졌던 하늘이 곧이어원래처럼 맑아졌다. 어느새 가까이 내려앉은 아이작을 보고 물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 원래 이놈 주인은 수수께끼의 신이었다.
“수수께끼의 신이라고? 예메라의 신전을 지키는 수호자가 아니라?”
- 그신은 인간에게 스무고개를
패하고 스스로를 봉인했다. 이름도 버리고. 그 뒤 이놈이 예메라에게 대충 맡겨지게 됐다. 예메라 그년성격상 애완동물과 놀아 줬을 리가 없으니. 수수께끼라면 환장하지.
“넌 그걸 어떻게 다 아는 거냐.”
아이작의 답변을 듣기 전 거대한 파장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퀴. 즈? 정말 퀴즈를 푸는 고야?
와들루스랑 옛날의 그 퀴즈 놀이를 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는 고야.?>
“그래. 퀴즈를 풀겠다!”
나는 앞을 향해 외치며 아이작에게 슬쩍 물었다.
“못 맞추면 어떻게 되는 거지?”
- 당연히 다시 공격을 받는 거지.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 힘내라!
터무니없이 거대한 사막 ‘거북’이 기괴한 어조로 의사를 전달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나와 루비아가 번갈아 가며 문제를 푸는 것이다.
<서로 알려 주는 건 금지인 고야*??.
그러면 수수께끼를 푸는 이유 따윈없는 거예요.)
“내가 먼저인가? 대신 이 까마귀가수수께끼에 도전하면 안 되나.”
거북이 거대한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고야요.
저 까마귀는 이미 와들루스 퀴즈를 겪은 기운이 느껴지는 고야. 게다가 까마귀는 수수께끼를 맞춰도 안으로 들여보낼 수 없는 거예요. 여신님의 신전이 더럽혀지는 거야요.!>
- 흐흐흐. 그래. 나는 안 된다니까.
너희끼리 해. 몰래 알려 주려고 해도 녀석이 전부 알아차릴 거다. 힘내!
<두 번 연속 실패하면 와들루스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이 모두 죽이는 고야요. 두 번 연속 맞추면 아마도 통과시켜 주지 않을까요?>
난데없는 퀴즈쇼다. 솔직히 맞출자신 따위는 전혀 없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 수 있을
거예요,
루비아가 나를 격려한다. 하지만 어쩌면 여기서 이대로 끝장일지도 모른다. 대체 무슨 문제를 낼까?
<그럼. 시작이에요.>
<손이 없지만 찔러요. 발이 없지만 멀리 가요. 진실을 담지만 거짓도 담아요. 이게 뭘까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사막 전체가 내게 묻는 듯한 강렬한 웅웅거림이 머릿속에 전해져 왔다.
찌르는 것? 멀리 가는 것? 손도 발도 없는 것? 독침일까? 화살?
하지만 진실과 거짓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손이 없는데 어떻게 찌르고, 발이 없는 데 어떻게 멀리 간다는 건가.
“힌트. 힌트는 없냐?”
거대한 거북이 고개를 아래로 푹숙였다.
<어휴. 너무 멍청해 보여서 제일쉬운 문제를 낸 거라고요. 이것도 못 맞춘다면. 역시 죽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이미 죽은 거라면 그만 심한 말을 해 버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