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9:1 (13)
<1분이 지났네요.>
루비아가 내 손을 잡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도 조마조마해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못 맞춰도 된다는 걸까?
금방 생각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걸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런 퀴즈라는 건 맞추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닐까.
자기만의 억지 장난을 구성해 놓고 그걸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이 지난 거예요.>
거대한 거북이가 시간을 알렸다.
답을 알 수 없었다.
떠오르는 것 자체가 없다.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이 거대한 녀석 앞에서 두 번 연속틀리면 죽는다는 압박을 받으면서 제대로 문제를 풀 수 있을 리가 없다.
<2분 30초 지났네요 답이 꼭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닌 거예요. 만들어서 설득시키면 되는 거예요. 아아, 그래도 모르는 고야요?>
슬쩍 열이 받기 시작했다. 녀석의 수수께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해치우고 지나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워 보인다.
상태창에서 나타나는 S마이너랭크라는 표시가 아니라도, 강렬한 압박감이 아니더라도.
일단 뭘 어떻게 공격해 들어가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크기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데가 있다. 지형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작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들었지만, 잡념을 지우고 다시 문제에 집중했다.
진실이나 거짓을 담고 있는 것.
아니, 그런 것들이 담길 수나 있는 물건인가?
<3분 지났어요. 탈락인 거예요.>
“.답이 뭐냐?”
<아아, 이 쉬운 답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닥치고 알려 주면 안 될까? 이미문제는 끝났잖아.”
<수수께끼는 만들기 어려운 거예요.
답은 유출하지 않는다구요.>
“정답은 말이에요.”
말.?w
“네. 진실도 거짓도 담고, 무엇보다아프게 상대를 찌를 수 있죠. 발도 날개도 없지만 순식간에 대륙 끝에서 끝까지 가곤 하지요.”
<정답! 하지만 문제 푸는 도중에는 가르쳐 주면 안 되는 고야요. 주의 하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버려요!>
녀석의 어조는 우스꽝스러웠지만, 말하면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듯이 집채만 한 발을 루비아 쪽으로 슬쩍움찔거렸다. 혹시 이번 생은 여기서 끝나 버리는 게 아닐까?
뒤쪽으로 도망갈 생각도 해 봤지만, 녀석이 아까 일으키려고 했던 모래폭풍보다 빨리 도망갈 자신은 전혀없었다.
무엇보다 저 거대한 몸으로 몇 발디뎌 후려치면 그대로 끝이다.
신전에 그냥 들어갔으면 루-륨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작은 무슨생각으로 이걸 깨운 걸까?
분명히 이놈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루비아를 믿은 걸까?
<기회는 한 번 남은 거예요.!>
_ ㅇ ㅇ ㅇ ㅇ O ?
기 I I r .
거대한 거북이의 주위에서 새까만 룬어들이 떠올랐다.
한눈에 봐도 무시무시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 여자분.! 인생에서 마지막수수께끼가 될지도 모르는 거야요.
각오는 되신 건가요?>
“네. 풀께요.”
<필요할 때는 버려요! 하지만 필요없을 때는 다시 줍는 것은? 이건 뭘까요? 와들루스는 공정하게 3분드리는 거예요. 모래만 튕겨도 죽는 약한 인간 암컷이라고 해서 특별히 5분 주거나 하지 않는 거예요.>
거대한 머리가 앞으로 나왔다.
사막의 빛에 적응하기라도 한 듯, 그 푸른 눈이 조금 더 크게 떠지며 루비아를 슬쩍 바라봤다.
그녀는 반대로 집중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 맞출 수 있을까?
아이작은 대체 뭘 하는 거지?
대책 없이 이런 상황에 던져 놓고 정말 우리가 퀴즈를 해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첫 퀴즈는 루비아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갔다.
‘말’이라는 정답.
맞출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퀴즈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거다.
필요할 때는 버리고, 필요 없을 때 줍는다.
그런 게 대체 뭐란 말인가.
루비아가 눈을 떴다. 역시 문제가 말도 안 된다고 따지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녀는 확신에 찬 듯 살짝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답은 닻이에요. 항구에 정박할때는 아래로 던지고, 출발할 때는
다시 위로 감아올리니까요J
<아아, 정답인 거예요.".! 와들루스는 흐뭇해져요.>
허공에 떠올라서 나를 겨누고 있던 새까만 글자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이걸 어떻게 맞춘 거지?”
“평소에 수수께끼를 좋아하거든요.
수수께끼의 논리라는 게 사실은 꽤 비슷해서. 부끄럽네요. 별거 아닌걸로 칭찬해 주셔서 기뻐요.”
“별거 아닌 게 아닌데.
허공의 빼곡한 글자들은, 루비아가 틀렸으면 곧바로 우리를 향해 쏘아졌을 거다.
<그럼 다음 질문인 거예요.>
거대한 거북이는 질문을 반복했다.
루비아가 맞추고 내가 못 맞추는 패턴이 몇 번이고 반복됐다.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럼 저는 사라질 터이니! 이건 뭘까요?>
“침묵이죠.”
루비아는 채 십 초도 걸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정답! 수수께끼를 이렇게 잘 푸는 당신은 소중해요! 수수께끼가 마구풀리며 와들루스 기분 좋아져요.!>
“휴우.
루비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긴장이 거의 풀린 듯, 답을 맞추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그럼 다른 분에게 질문인 거예요.
어차피 틀릴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규칙이니까 물어 주는 거야요.>
녀석은 점점 루비아에게는 호감을, 나에게는 노골적인 무시를 보이고 있었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루비아는 다섯 퀴즈를 모두 맞췄고 나는 다섯 개를 모두 틀렸으니까.
이게 여섯 번째 수수께끼였다.
<나를 만든 자, 나를 원하지 않는다.
나를 사는 자, 내가 필요치 않다.
나를 쓰는 자, 나를 모른다. 나는 누구인가? 수수께끼가 어려운가요?
어렵겠지요. 어차피 쉬운 걸 내도 틀리니까 어렵게 냈어요.>
이 새끼가.
후작은 왜 이놈을 토벌하지 않고 바실리스크를 토벌하러 갔을까.
심히 유감이었다.
훨씬 가까이에 이런 S급 사냥감이 있는데 대체 뭘 하는 건지.
혹시 놈의 존재를 몰랐던 거라면, 다음 생에는 투서라도 해 볼까.
정답를 고민하는 사이 이미 시간은 모두 지나갔다.
<3분 지난 거야요. 끝!>
- 달그락.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루비아에게 놈이 다시 퀴즈를 낼까 싶었지만, ‘거북이’는 앞발을 살짝 꼼지락거리더니 말했다.
<음??. 아무래도 여러분은 일행으로 취급할 수 없겠네요. 인간 여자분혼자만 신전으로 들어가서 여신의 축복을 받으셔야 해요. 다른 분은 출입 금지인 거예요.>
“저 혼자서요? 그건 곤란할 거같은데요.
- 쿠구구구궁!
<곤란하다구요? 들어갈 생각이니까와들루스에게 이렇게 문제를 많이 내게 만든 거 아니었나요? 설마와들루스를 가지고 장난쳤다고 하는 걸까요? 사실인가요?>
‘석상’ 와들루스가 거대한 육체를 서서히 일으키고 있었다.
모래로 된 산이 솟구치는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S마이너랭크<존재감>광역 발동!]
[스탯 총합과 스킬, 종족값에 따라광역 압박에 저항합니다.]
[스탯 총합: 32到
[심안心眼 (C플러스) 보유.]
[명경지수明鏡止水 경험 확인.]
[일부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행위가 가능합니다.: 도주]
- 팟!
나는 루비아를 안아 들고 그대로 뒤로 몸을 튕겨냈다.
거대한 모래언덕이던 부분은 사실등껍질의 일부에 불과했다.
녀석이 네발로 일어서며 아래로 파묻혀 있던 부분이 드러났다.
사막이 물처럼 출렁거렸다.
<어딜 가는 고야요.?>
목이 우리 쪽으로 쭉 뻗어 오자,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이 가려지고 새까만 그림자가 사막을 뒤덮었다.
루비아는 놈의 존재감에 질린 듯 숨만 겨우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녀석이 루비아를 데려가려해서 힘을 크게 쓰지 않는 것이지, 기세를 뿜어내려 했다면 루비아는 이미 놈의 위압만으로 심장이 및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문제를 잘 풀어 놓고는 신전에 안 들어가겠다는 건가요?>
연푸른색이던 와들루스의 두 눈에 피처럼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갈색이던 등껍질을 포함한 전신이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거북이’가 네발로 막 일어선 순간이었다.
<이게. 무엇이냐.?>
모래가 춤을 추며, 놈의 양옆에서 묘한 글씨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쌔애애앵!
그림자보다 까만 점 하나가 정면에 서부터, 막 드러난 와들루스의 배아래로 날았다.
- 매니 히포니스, 리히스테오. 페타오 라타 프라그마타 사스. 니오 톤엑사파니 페르 테오.
(잠에 빠져들어라. 미끄러져라. 모든 짐을 내려놓아라. 사라진 신의 감촉을 느껴라.)- 니오 톤 엑사파니 페르 테오.
오른쪽 모래 위에 떠 있는 글자들이
‘까만 점’에 끌려 그물처럼 거북의 배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차토 우 페네브마 소 이치오 토텔라치니.
(마지막 눈 쌓이는 소리에 스스르정신을 잃어라.)와들루스가 일어서며, 놈의 왼쪽위에 솟은 글자들이 역시 까만 점에 끌려 바늘에 꿰인 실처럼 배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파테 토 리체 포뇨르!
(잠의 벼랑에 부서져라!)
글자들이 자욱한 회색 연기가 되어
‘거북’의 배 가운데를 타격했다.
마법과 주술의 이론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마력을 다루며 어느 정도 힘의 흐름은 읽어 낼 수 있었다.
사방에 빼곡히 숨겨져 준비되었던 주술은 와들루스가 몸을 일으키는 바로 그 힘을 이용해서 발동되도록한 것 같았다.
배가 드러나는 바로 그 순간에.
<와들루스. 배 간지럽히면. 졸린 거예. 요.)- 쿠구궁!
거대한 거북이가 다시 사막에 배를 대고 엎드렸다.
반만 파묻힌 채였다.
새까만 점이 이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며 외쳤다.
- 하하하.! 시간을 잘 끌었구나!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다.
“.무슨 짓을 했던 거지? 이놈은 대체 왜 자극한 거냐.”
- 이 녀석이 일어나야 신전 내부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느니라.
“신전. 내부요?”
아직 파리한 낯빛을 띤 루비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그래. 서둘러라! 신전에 들어가<야 이놈을 오래 잠재울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