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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18화 (218/458)

219화 9:1 (14)

일단 아이작을 따라 ‘와들루스’의 거대한 몸을 빙 돌아갔다.

묻고 싶은 건 많지만.

하나하나 따질 때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저 거대한 S마이너랭크 보스에게 무슨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분명 임시방편으로 보이니까.

신전으로 들어가야, 오래 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도 그렇고.

- 파드득!

날아가는 아이작이 말을 건다.

<멋지지 않았느냐?>

급하다면서.

자랑할 때가 아니라면서.

“아, 그렇지. 정말 대단했다. 역시 수준이 다르다고 느꼈어. 최고였다.”

듣고 싶은 대답을 빨리 던져 줬다.

<???흥. 얼른 따라오기나 해라.>

아이작이 한차례 저 높이 솟구쳐 올랐다.

- 팟!

‘사막 적응’ 스킬 덕분인지 모래를 디뎌도 질주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와아.

루비아의 머리칼이 바람에 빠르게 휘날린다.

잠든 와들루스의 몸은 생물학보다지리학이 적용되어야 할 정도였다.

꼬리 부분에 도착하는 데만 무려일 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여기겠지.”

“지도를 봐도 여기 맞네요. 정확히 이 지점이에요.”

우리는 고풍스럽다기보다 황량한 회색의 신전 앞에 섰다.

“참회와. 속죄의 전당.

루비아가 신전 앞에 구불구불하게 새겨진 글씨를 읽었다.

“예메라의 신전이군.”

문도 없이 뚫린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신전에는 조각 한 점 없다.

일부러 장식을 배제한 듯한 신전은 황량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듯했다.

그저 가학적인 엄격함을 유지하는 표정의 동상이, 신도들이 걸어올 길을 매섭게 내려다볼 뿐.

조각 대신 다른 것들이 보인다.

살을 뜯는 채찍.

거꾸로 매달고, 몸을 네모난 좁은 칸에 가두고, 무릎 꿇리고 무거운돌을 올리는 고문 기구들.

“이게. 다 뭐죠?”

말도 안 되는 수수께끼를 아무렇지 않게 풀어 버리는 루비아가 여기서는 모르겠다는 모습을 보인다.

“예메라의 신도들은, 여신 앞에서자기 죄악을 떠올리며 육체에 벌을 내린다는군.”

예메라의 교리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른다.

예전에 근위 기사단에게 흡수했던 능력 가운데 하나다.

“이것들이 전부 자기를 고문하는 기구라는 건가요?”

“그렇지.

참회는 오직 고통으로만 증명된다.

스스로가 충분히 정화할 때까지, 여신 앞에서 무절제하게 살아왔던 자신의 육체를 학대한다.

알고 있는 교리를 루비아에게 짧게 설명했다.

“아, 저건 뭔지 모르겠는데.”

동상 가장 가까이에 세워진 열린 관 하나는 안쪽에 빼곡한 못이 꽂혀있다.

인간이 들어간 채 닫으면 그대로 쇠못꼬챙이가 되어 버릴 물건.

안에 넣으면,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죽어 버릴 것 같은데.

관에서는 묘하게도 실제 사용감이 느껴진다.

“으으.”

루비아가 무섭다는 듯이 내 옆에 붙을 때였다.

- 쌔애앵!

<야! 니들 거기서 뭐 하냐?>

수직으로 직하해 내려온 아이작이 소리쳤다.

<왜 맘대로 거기부터 들어가?>

“네가 여기로 인도한 거 아닌가?

딱 봐도 저 동상에 루-륨이 담겨있는 것 같은데.”

- 딱딱!

아이작이 부리를 부딪쳤다.

<흥. 그건 맞다. 하지만 건드리면 안 돼. 이 ‘아래’가 무너져 엉망으로 섞여 버리거든. 밖이다!>

“밖.?”

엉겁결에 녀석을 따라 신전 외부로 나왔다.

<거북이 꼬리 쪽을 잘 봐라.>

신전 아래, 그늘진 곳.

거대한 뒷발과 긴 꼬리 사이에는, 거북이가 일어나며 만들어진 음푹한 골짜기가 있었다.

일어나면서 꼬리 부분이 치워지자 미묘하게 슬쩍 드러나 보인 공간.

<내려가라.>

깊이 파인 모래 골짜기 안쪽에는 직경 1미터 정도의 새까만 암석이 있었다.

경계가 부드럽게 깎인 암석이었다.

“여기에. 뭐가 있는 거지?”

<저게 예메라의 ‘뒷면’이다. 돌을 치우면 재밌는 걸 볼 수 있지.>

≪으.≫

- 쿠궁.

간단히 암석을 옆으로 밀었다.

거북이 꼬리와 뒷발로 가려져 있던 비밀스러운 공간.

애초에 ‘와들루스’를 처리할 만한 상대라면 이런 암석이 장애가 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아는지, 돌은 걸리는 것도 없이 옆으로 굴러갔다.

“날아드는 모래 정도나 막으려고 해 놓은 장치 같아요.

안쪽은 작고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위의 신전보다 훨씬 더 작은 공간에는, 반짝이는 보석과 금화가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게 다 뭐죠?”

<흐흐흐. 참회료지.>

“참회. 료?”

<피차 힘들게 흉흉한 고문 기구들을 쓰는 대신, ‘더러운’ 재물을 낸다면 그걸로 깨끗해지는 거지. 아까 동상발치에 있는 참회료 구멍 못 봤냐?>

주의 깊게 보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니 보석이나 금화 정도만 들어갈 작은 구멍이 있던 것 같기도하다.

그쪽에 보물을 떨어트리면 여기로 굴러와 모이는 구조일까.

“이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비공식적인 루트니 당연하지. 뭐, 신전도 먹고살아야 되니까.>

- 촤륵!

아이작은 양 발톱으로 가장 값비싸보이는 보석들만 잔뜩 음켜쥔 뒤, 나머지는 부리로 덥석덥석 삼키기 시작했다.

녀석이 사백 년 전에 특별 제작한 페티쉬이라고 했던가.

뜯어보면 볼수록 신기한 인형이다.

<뭐 하냐? 어서 주워 담아야지.>

“은화도 없어요! 모두 보석과 금화뿐이네요.”

<은화는 충분히 더럽지 않거든.

그런 걸 내면 괘씹죄로 여신이 벌을 내린다고?>

세상에서 괘씸죄를 가장 안 두려워할것 같은 태도로, 녀석은 부리로 천장을 쿡쿡 찍었다.

<요기야.>

천장에 작은 구멍 하나가 있는데, 그 밑이 보석과 금화가 가장 높게 쌓여 있던 곳이다.

“역시 이런 걸 가져가면 여신님의 저주를 받겠죠?”

“걱정하는 것치고 너무 거침없이 주워 담는데?”

루비아도 어느새 재빠르게 보석과 금화를 챙기고 있었다.

“음, 참회료는 냈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어디로 가는지는 별 상관없지 않을까요?”

루비아의 말을 들으며 나도 곁에서 여기저기 흩어진 보석들을 주웠다.

[회계 스킬을 발동합니다!]

가짜 따위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진짜 보석이다.

게다가 상당수가, 고작 1레벨의 회계스킬로도 상품上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녀석들이다.

유블람 경비대장이 세 곳에 분산해놓은 은괴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여기 있는 보석들은 얼추 그 가치가 열 배는 되어 보였다.

부피 자체는 얼마 되지 않음에도 하나하나가 가치 높은 것들.

대부분 다 챙겨 갈 때였다.

- 구구구.

“아이작! 바깥이 울리고 있다!”

녀석이 잠시 재웠던 거북이가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았다.

<어? 이제 위로 올라가자구.>

뒤쪽을 바라봤다.

잠이 완전히 깨지는 않은 듯 낮고 중후한 소리를 뱉어 내며 거북이가 몸을 움찔거렸다.

저 녀석이 깨어난다면 같은 공격이 두 번 다시 통할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일어나면 분명히 우리를 가만두지 않겠지.

그래도 아이작이 자신 있는 태도를 취하니, 뭔가 방법이 있을 거다.

녀석은 파드득 날아서 동상 위에 앉았다.

<이거다. 네가 찾는 사도의 피를 원동력으로, 이 동상이 감시 장치가 되어 작동하는 거다.>

“거북이도 이게 컨트롤하는 건가?

이게 망가지면.

<그래. 와들루스 녀석도 다시 잠에 빠져들겠지. 뜨거운 모래만 적당히 덮어 주면 쿨쿨 계속 잘 거다.>

그럼 이대로 부순다.

대검을 휘두르기 위해 뒤로 크게 당긴 순간이었다.

<아니. 여기는 내가 해결한다. 년얌전히 있어.>

녀석의 어조는 단호했다.

기세에 눌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가만히 바라봤다.

- 깡! 까앙!

아이작이 부리를 앞뒤로 리듬감넘치게 움직이면서 예메라의 눈을 쪼아 댔다.

- 까강!

신전에 강렬한 소리가 몇 번이고 거듭해서 울려 퍼졌다.

눈의 칠이 막 벗겨진 때였다.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상태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참회의 여신, 예메라의 동상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동상의 신성력: C플러스랭크]

[주의: 공격자에게 여신의 강렬한 저주가 스며듭니다!]

? 화르르!

동상의 눈을 부리로 찍을 때마다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며 까마귀의 몸을 감쌌다.

처음은 실오라기처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회색연기가, 나중에는 촘촘한 그물처럼 변해 까마귀를 몇 겹으로 조였다.

저주받는다는 상태창이 아니라도 좋게 보이지는 않는 현상.

- 까앙!

그러나 아이작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속 동상을 쪼았다.

“어이, 괜찮은 거냐? 연기가.

입에 잔뜩 보석을 머금은 아이작이 날개를 살짝 파닥였다.

<어. 저주야.>

녀석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저주라구요?”

<후후, 귀여운 것들. 저주는 이미많이 받았다. 이 정도 더 받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 깡!

동상의 눈을 찍는 소리가 더 높이 울려 퍼졌다.

분명한 악의가 느껴지는 회색 연기 따위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모양새.

대체 얼마나 원한을 사고 저주를 받고 다녔길래.

녀석과 같이 다니면 나까지 함께 도매금으로 넘겨지는 게 아닐까?

조금 섬뜩하다고 생각할 때였다.

- 주특.

동상의 한쪽 눈에서 은빛 액체가 한 방울 홀러나왔다.

곧이어 다른 눈에도 맺힌 은빛의 마력액은 곧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담아야 하는 거죠?”

루비아가 어느새 빈 병을 동상

아래에 대고 루-륨을 담고 있었다.

한 병이 채워질 때 즈음, 잠에서 다시 깨어나려던 거북이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췄다.

“.조용해졌어요!”

“이 신전 구조는 어떻게 다 알고 있던 거지?”

아이작이 부리를 쳐들고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너야 모르겠지만, 이 몸이 신전하루 이틀 터는 줄 아느냐?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당연히 다 알지>

- 주르륵.

두 병을 거의 다 채우는 마지막

‘눈물’이 떨어질 무렵.

아이작이 하도 쪼아 댄 덕분인지, 뜯겨지다시피 한 예메라의 두 눈은 기어코 바닥에 떨어졌다.

- 닥다르르르.!

바닥에 떨어진 두 눈은, 곧 지하와 이어진 ‘참회료’ 납부 통로로 굴러들어갔다.

“.이걸로 된 거냐?”

나는 움직이지 않는 거북이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물었다.

<어. 바깥에 있는 녀석은 한동안 잠이나 처자고 있을 거다. 공격할생각 없지?>

“전혀.”

어떻게 상대할지 감도 안 잡히는 녀석이다.

그때 였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말해.>

“그냥 이 신전 동상에서 지금처럼 루-륨만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저 거북이 녀석이 계속 잠든 상태인 거 맞지?”

<어. 그렇지.>

“그럼. 몰살당할 뻔한 위험을.

고작 보석들 때문에 감수한 거냐?”

<‘고작 보석’ 때문이라니. 세상에 그런 말은 없어.>

<다 잘됐는데 뭐가 불만? 얼른사도의 피나 홉수해 봐라. 저주도 내가 받아 줬는데 쓸데없이 우울해하지 말고.>

그건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보석 때문에 우리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지만, 동상을 파괴하며 대신저주 받아 준 걸로 메꾸기로 했다.

“어휴. 해골님. 여기 가져왔어요.”

루비아가 가져온 투명한 병.

그곳에 담긴 루-룸에 손을 뻗었다.

- 쉬이이이익.!

병에 모여 있던 액체가 증발하면서 은은한 은색 빛이 몸에 스며든다.

레라지에의 성지에서 ‘부스러기’를 잡고 난 뒤로 이런 방식이 자연스레느껴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루비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내 모습을 바라본다.

[서번트 시스템]

[마스터가 당신을 신비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신비도神秘度가 약간 오릅니다.]

[해당 수치가 올라갈수록, 상식의 궤執를 벗어나는 존재들에 대한 대항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런 것도 있었나.

<다시 봐도 기이한 광경이군.>

<이런 방식으로 사도의 피를 흡수하는 건 이 몸마저 처음 구경한다.

뭐 떠오르고 보이는 건 없느냐?>

물론.

눈앞에서 상태창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루-륨 흡수에 익숙해집니다.]

[종족 판명.]

[전직이 해제된 상태.]

레라지에의 성지에서 봤던 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현재 클래스.]

[추가 루-룸을 습득하여 기본적인 전직 정보가 해제됩니다.]

[다음 직업의 특전/페널티 정보가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해골 검사

해골 기사

해골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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