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21화 (221/458)

222화 생매장 (2)

아이작을 팔라니.

“4로티!”

갑자기 나타난 붉은 머리 소년은 밑도 끝도 없이 4로티를 외친다.

“그 정도면 적절한 가격 같은데.

팔아 주지 않을래?”

소년이 워낙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일까.

한순간이지만 정말 확 팔아 버릴까싶은 마음이 떠오른다.

애초에 저번에는, 메달에 봉인된아이작을 T&T 마법사에게 공짜로 넘기지 않았나?

눈과 입가에 검은 점이 찍힌 마법사는 아이작을 넘겨받아서 연구에 즐겁게 사용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4로티든4??세이론이건, 벨’호멧 아이작을 팔아넘기는 건 무리다.

온갖 저주를 다 받았다는 녀석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사실정도 많이 들었다.

위기에 빠뜨린 적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좋게 풀렸다.

딱히 배신한 적도 없고.

아직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방금 전에도 아이작 덕분에 원활히 성문 통과를 해내지 않았던가?

<야! 뭘 그렇게 멈칫거리고 있어?

당연히 바로 안 된다고 딱 잘라서 거절해야지!>

‘안 그래도 거절할 거다. 겁먹지마라.’

<겁은 누가 무슨 겁을.!>

“.정중히 거절하지.”

소년이 인상을 찡그린다.

“정말? 정말 그럴 거야? 안 되는거야?”

“비매품이 다.”

“헤에, 너무한걸. 기계장치에 뭐가 깃들어 있는 거야? 안을 꼭 한번뜯어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소년이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호기심 넘치는 눈동자다.

안 판다고 쉽게 물러날까?

기척조차 탐지하지 못한 실력자다.

옅은 붉은색 머리카락에, 커다란맑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

외모는 m대 중반의 인간이지만

정체가 뭔지는 짐작되지 않는다.

‘아이작, 저 친구는 아무래도 널원하는 거 같은데? 네가 쫓아내지그래?’

<후. 안 먹힌다.>

아이작이 착 가라앉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삭월湖셔의 정령광음이 녀석을 보호하고 있다. 낮에도 이 정도인데 밤에는 더 곤란하겠군.>

‘달에 보호받는다고?’

<그래. 꼬락서니를 보니 푸른 늑대의 직계 같다. 무척 정순한 힘을 가진 녀석이라. 나와 상극이다. 주술이 잘 먹히지 않아.>

‘흠.

<두들겨 패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마라. 네가 처맞을 거다.>

웨어울프라는 건가.

수도 안에 제대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 녀석과 조우라니 당황스럽다.

소년이 이번에는 날 자세히 보면서 말을 이었다.

“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뭐냐?”

“당신. 널 가지고 싶어!”

당황스러웠다.

“아니, 돈이 급하진 않아서. 이만가 주지 그러나?”

- 짤그랑!

나는 예메라의 신전에서 가지고 온금화 주머니를 슬쩍 만지작거렸다.

“헤에. 하긴, 까마귀한테도 보석잔뜩 달아 놨으니까. 그래도 갖고싶다. 내가 아는 누나한테. 너를 가져다주면 참 어울릴 텐데.”

“이보세요! 그게 무슨 소리죠?”

루비아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으윽. 엄청 약한 인간인데 살기가 느껴졌어. 하지만 이 해골도, 최고의 네크로멘서에게 부려지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누나도 좋아할 거야.”

소년은 내 정체를 단번에 꿰뚫어봤다.

통찰력이나 짐작 따위는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설마 수도에는 이런 녀석을 심심치않게 만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나저나.

<최고의 네크로멘서>라니.

머리에 딱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우린 부리는 관계 따위 아니에요.

초면에 이거 팔아라, 저거 내놔라.

정말 실례예요.”

소년이 머리를 긁적였다.

<잘한다! 재보고 싸우라고 해라!>

‘뭔 헛소리지.’

투기關氣를 발산하지는 않았지만, 루비아가 뭐라고 소년을 비난하건그녀에게 전투력 따위는 전혀 없다.

<낮에도 정령광음精靈光陰에 의해정신이 보호되는 녀석이다.>

‘?"그래서?’

<늑대는 고위 혈통에 가까울수록여성 개체가 극히 부족하지. 강한 녀석일수록. 여자에 쩔쩔맨다.>

그렇다고 루비아에게 맡겨 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을 소년에게 물었다.

“혹시 네가 말하는 네크로멘서가 기스-제-라이인가.”

“어?”

소년이 눈이 살짝 풀린 듯 웃으며, 은근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기스 누나 유명하네- 그치.

네크로멘서라고 불리려면 사실 누나정도는 되어야지.”

그녀를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기스-제-라이와 아는 사이면서, 내 뒤에 몰래 다가올 정도라면.

상대의 정체는 좁혀진다.

“너는. 레드 플레이크냐?”

소년이 그제야 깜짝 놀라서 입을 벌린다.

놀라서 크게 뜬 눈을 깜빡거리며 날 바라봤다.

“어. 어떻게 알았지?”

아이작도, 루비아도 모두 나에게 놀란 기색이다.

<기스-제-라이가 레드 플레이크의 일원이었다니. 이야, 넌 보면 볼수록신기하단 말이야. 그런 것도 알고.>

아이작도 그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방금 벌어진 상황을 보고 확신한 듯하다.

암살교단 레드 플레이크의 멤버에 관한 정보다.

극비로 취급되는 게 당연하겠지.

“정체를 들키면 곤란한데.

소년의 몸에서 희미한 기운이 뿜어나는 게 느껴졌다.

붉은 머리칼이 끝에서부터 조금씩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온도가 어느새인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아, 재밌는 걸 알아낸 건 좋은데 상황 참 골 때리게 돼 버렸네. 이거어떡하냐?>

아이작은 이미 내 패배를 점치고 있는 것 같았다.

히히덕거리듯 말했지만, 재미있는 장난감을 여기서 잃어버린다는 데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소년의 머리카락이 올올이 서고, 커다란 눈에 푸른빛이 아래부터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몸에서 발산되는 투기가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백백한 투기에 밀려서 뚫고 들어갈틈 자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승산도 희박해 보였지만, 그보다도 루비아가 휘말린다면 곧 죽어 버릴것이다.

회귀의 지식으로 인해 내가 ‘만든’

상황이다.

다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여기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지.”

“응? 필요 없어. 우리 정체를 알면 죽여야 해.”

“네 친구들에 대한 비밀 이야기다.

듣지 않아도 괜찮겠어?”

“음. 그럼 조금만 듣고 죽일게.”

나는 소년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작게 말했다.

“날 죽이면 기스가 책망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나?”

“응? 너 같은 기사를 일으켰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없는걸. 아는 척하려는 거야?”

“길라우트. 오웨인. 안드레이.”

“어 엇?”

“펜리르. 하멜라인. 그녀가 데리고 있는 다섯 듀라한이지.”

“맞아!”

“그리고 내가 있다. 그녀가 어디도 공개하지 않은 비밀병기지.”

“그렇구나????"!”

소년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나는 기스-제-라이와 그녀의 다섯듀라한을 거리낌 없이 팔아먹었다.

눈앞의 늑대 소년을 딱히 등쳐 먹을 의사는 없다.

귀찮게 달라붙으니 그냥 떨어지게 할 생각이다.

설사 기스-제-라이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그때 가서 해명하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소년은 아직도 묘한 얼굴을하고 있었다.

“독립 행동이라니. 왜 옆에서 기스누나를 돕지 않는 거야? 중요한 일하고 있는 거 아니야?”

눈앞의 소년이 레드 플레이크라면.

한 가지 더 팔아먹을 사실이 있다.

“이것까지 내가 말해야 하나? 별빛청여우가 언제든지 조력자로 뛰어들상태로 입회 중이다. 사실 이대로도 전력은 충분해.”

“우와앗.! 정말이구나.!”

여우 가면을 쓴 수녀까지 언급하자, 소년은 크게 감탄을 내지르며 숫제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몇 차례 절레절레 흔들던 녀석은 의심을 완전히 버린 태도로 날 보며 물었다.

“수도는 왜 온 거야? 그 임무랑관련 있는 걸까?”

“뭐, 넓게 보면 그렇지. T&T 측과 접촉해서 할 일이 있다.”

“헤에. 나도 그런 거 하고 싶은데 섬세함이 부족하다고 안 된대.”

소년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까의 기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다들 재밌으니까 같이 있는 거지만. 기스 누나 만날 때 꼭전달해 줘. 나도 수도에서 비밀 임무하고 싶다고.”

“그녀는 정식 회원도 아니잖나.”

소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맞아! 맞아. 그런 것까지 말하다니 당신은 기스 누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구나. 하지만 다들 누나 눈치를 제일 많이 보거든. 헤헤.”

“꼭 전해 주지.”

“응! 그럼 고마우니까 수도는 내가 안내해 줄게.”

“괜찮다. 도움은 필요 없어.”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은데 이변수까지 끼어들면 신경이 지나치게 복잡해진다.

나는 정중하게 손을 내저었다.

녀석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나는 루멘이야. 루멘발도프. 기억해 줘. 이건 뇌물이야!”

- 짤그랑!

소년은 주머니를 탈탈 털더니 은화네 개를 내 손에 올려 두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루멘이 라.

레드 플레이크 일원 중에 확실히 그런 이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발도프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

나를 기다리는 일행에게 돌아갔다.

잠시 구석에서 쑥덕거리고 소년을 쫓아낸 데다, 손에 4로티까지 쥐고 온 나를 보고 다들 놀란 기색이다.

<.애한테서 그 돈은 대체 왜 뜯어온 거냐?>

아니, 이건 좀 다른 의미인가.

나는 4로티를 적당히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절대 순순히 안 물러날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 소년이 전설의 암살교단인가요?”

<나랑 같이 여행까지 다니면서 뭘저런 거에 일일이 놀라고 그러느냐?

힘만 회복하면 저런 건 그냥 확.)

“상극이라고 하지 않았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순수한 힘의 총량으로 누르면 그만이다.>

“좋게 말하니까 순순히 가 주던데.

그건 그렇고. 아이작, 물어볼 게 있는데.”

<뭐냐.>

“웨어울프의 후각은 어느 정도지?”

<그야 활성화 정도에 따라 다르지.

그래도 늑대의 열 배에서 스무 배정도는 될 거다. 이제 우리 냄새를 확실히 기억하겠지.>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난 기스-제-라이의 두개골 일부를 이식 받았다.

<정수 흡수>를 얻은 과정이다.

그런데 소년이 그 두개골 냄새를 못 맡았다는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다.

‘루멘’이 웨어울프라면.

아이작이 주술을 부리는 걸 보고 접근한 게 아니라, 기스-제-라이의 냄새를 맡고 내게 접근했어야 한다.

하지만 루멘은 내 바로 옆에 서서, 그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아까 그 녀석, 분명히 웨어울프맞지?”

<당연하지.>

“제가 느끼기에도. 확실히 늑대느낌이 나는 소년이었어요.”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정수 흡수’ 스킬은 그대로 남지만, 기스-제-라이의 ‘흔적’은 나에게서 완전하게 사라진 것이다.

조금 씁쓸하고, 미안한 느낌이다.

회귀에 따라오는 물질이 ‘루-룸’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말파스의 인장이 몸에 남은 이유는 역시 그것 때문이고.

긴 성문 터널을 빠져나오자 빛의 평야가 그림처럼 펼쳐졌다.

대리석이 끝도 없이 깔린, 드넓은 백색의 공간.

“여기가 하얀 광장이군요.

<황실의 연병장이기도 하지. 오랜만에 봐도 반들반들 잘 닦여 있군.>

정오였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이리저리빛이 반사되어 시선을 어지럽혔다.

한 번의 구경이라면 몰라도, 평소걸어 다니는 데는 역시 불편할지도 모른다.

“방문객의 기를 죽이는 광장인가?

별로 기능적이지 못한 것 같은데.”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에 있는 다른 귀족들의 기를 죽이는 용도다. 하얀 광장을 눈부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거든. 빈틈없이 군대로 꽉채우면 돼. 그렇게 못 하면 개기지 말라는 거지.>

잠시 햇빛에 묻혀 걸었다.

“그런데. 보석 상점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

루비아의 말이 솔깃하다.

“동감이다.”

당장 돈이 급한 건 아니지만.

신전 지하에서 가지고 온 보석이 어느 정도 가치인지 궁금했다.

회계 Lv.l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보석을 감정할 능력까진 없다.

“제일 큰 데로 가 보자고. 아이작, 넌 어떻게 생각하냐?”

<나도 양보단 질이다. 주운 거가 취향에 안 맞는 것도 많아서. 다팔고 예쁜 거 있으면 하나 사야지.>

물어물어 간 가장 커다란 보석상.

긴 꽃길을 걸어가게 되어 있는데, 꽃길에 접어드는 관문 입장부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알아서 꺼지라는 듯, 긴 할버드를 교차해서 입구를 가로막은 대머리두 명이 눈에 보인다.

예약 따위를 꼭 해야 된다고 들은 적은 없는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놈들이 이쪽을 보며 눈에 힘을 준다.

슬쩍 입도 여는 거 같은데.

“꺼.

여기서 크게 뭘 할 생각은 없다.

[공포 Lv.l을 발동합니다!]

본인이나, 주위에서 너무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발동.

공포는 참 편리한 스킬이다.

놈들이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며 할버드가 멀찌감치 치워진다.

자연스럽게 루비아가 가드 사이로 걸어간다.

“친절한 분들이네요.”

“뭐, 그럭저럭.”

곧 오 층 전체가 보석 상점으로 된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어머! 고객님! 어서 오십.

여기서도 그다지 반갑게 맞아 주지 않는다.

앞에서 인사하는 여자가 루비아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곧 말꼬리를 얼버무린다.

“으흠.

“밖에서 왜 통과시킨 거죠?”

귓속말로 하는 거 같은데 당연히 전부 다 들린다.

아니, 아예 들리라는 듯한 태도.

검은색 가죽옷을 입은 남자 둘이 슬쩍 우리 눈치를 보면서 뒤로 바짝따라붙는다.

밖으로 얼른 모시겠다는 걸까.

슬쩍 공포 스킬을 쓰자, 가드들도안색이 질린 채로 연달아 헛기침을하며 물러난다.

최대로 약하게 쓴 건데.

그동안 밖에서 험하게 살긴 한 것같다.

“뭐 해요?”

“그게. 어.

보석을 안내하는 점원에게는 공포스킬을 쓰지 않았다.

가드들의 기분은 당연히 전혀 이해할수 없을 거다. 루비아가 천천히 진열대를 둘러봤다.

그때 였다.

tt저, 이런 건 밖에 두고 오셔야죠.”

드디어 점원이 이마를 찌푸린 채, 내 어깨에 앉은 아이작을 가리킨다.

뭘 어쩌라는 걸까?

공포를 쓰기도 애매하다.

가드들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 가날픈 인간에게 잘못 쓰면 곧바로 시체 하나 치우지 않을까?

최소한 기절은 할 텐데.

너무 시선을 끈다.

‘아이작, 너 놓고 오라는데?’

<흐흐. 칼 말하는 거다. 이미 나는 재네한테 안 보이게 해 놨거든.>

어느새 그런 짓을.

“.그건 좀 곤란한데.”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녀석들도 허리에 칼을 찬 채 잘만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상점을 지키는 녀석뿐만 아니라, 화려하게 꾸민 여자들에게는 간간이 호위 기사들이 하나씩 붙어 있다.

칼이 커서 그런가.

점원이 한숨을 푹 쉰다.

“어휴, 가드들 진짜 뭐 하는 거야.

월급 괜히 준다니까.

“내가 소개제로 하라고 했지? 완전소개제로 하라고 했잖아.”

호위를 네 명이나 붙인 한 여자가, 루비아를 아래위로 쓱 훌어보고는 부채로 바람을 휘휘 일으킨다.

“아무 손때나 타는 거 싫은데.

드레스를 입은 다른 여자도 눈을 가늘게 뜨며 작게 한숨을 쉰다.

“플레이트 갑옷만 입으면 아무나기사인 줄 아나. 메이커도 아닌 걸 가지고.

“막 상경한 시골 아씨겠죠. 사지도 않을 거면서 보여 주고 만지게 하고 그러면. 결국은 다른 손님들한테 폐를 끼치는 거라니까.”

다들 뭘 하는 걸까.

“여기가 가장 큰 상점 맞죠?”

루비아가 웃으며 말했다.

“아, 네. 어머, 아가씨. 이거 보시는구나! 안목 있으시다.”

점원은 루비아에게는 홀려 가듯답변하고, 말도 안 건 다른 손님에게 달려가듯 다가가 곁에 붙는다.

이 정도면 쫓아내자는 거다.

혹시 옷차림 때문일까?

루비아가 입은 건, 무려 두 시간에 걸쳐 고른 옷인데.

여행 중에 모래바람에 낡아서 그런건가?

그렇다고 보석 상점에서 확 뒤집어엎을 수도 없다.

후작은 다른 데 갔다고 치더라도, 검주가 셋이나 주둔하는 도시다.

게다가 아쥬라의 마법사들까지.

“저.

루비아가 진열장 앞으로 다가갔다.

“다 구경했어요? 이제 가셔야죠?”

점원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내뱉는다.

그때 였다.

- 픽!

<께핵!>

루비아의 손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아이작의 뒤통수를.

- 좌르르!

상황을 보면서 키득거리기만 하던 아이작의 부리에서 온갖 보석이 다쏟아졌다.

유리 진열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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