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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27화 (227/458)

228화 생매장 (8)

종종 느끼고 있지만,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하다.

눈치가 이 정도로 빨라도 되나.

한때 제국 남부 전체를 지배한

녀석다웠다.

저 눈치에 힘까지 모두 회복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녀석이 되겠지.

확실히 여신의 저주를 받는 건,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무것도 말 못 하는 상황 때문에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이 정도면 뭘말할 필요도 없다.

트로핀 나냐우가 구해 왔다는 주술서약서도 대단하다.

아이작의 날카로운 예측에 아예 ‘반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흠칫거리는 것조차도.

그저 침묵과 무반응만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아이작은 이미확신을 얻은 것 같다.

- 딱딱!

녀석이 아래위로 부리를 두 번

세게 부딪쳤다.

그리고 조금 뜬금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의 계획을 믿을 수 없다.>

아니, 단순히 짐작만 하고 있는 단계잖아?

그런데 저런 말을 하는 건가.

하지만 주술에 의해 구속된 탓에, 가타부타 뭐라고 말을 할 수조차 없었다.

다행인지.

반응할 것도 없었다.

<내가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

녀석이 말을 이었다.

<내가 들여다볼 수 없는 계획은 믿지 않아.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다.>

“항상 의심하면서 산다는 거냐?”

<그렇달까.>

놈이 미묘하게 부리를 저었다.

<그냥 안 돼. 뭔가 할 수가 없어.

뭐라고 해야 되나. 남들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흔쾌하게 잘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세상에 생각이라고는 자기 혼자 할 줄 안다고 믿다니.

중증의 심리 장애다.

<그리고 이건 한층 더 거부감이 느껴져. 내가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의 결계를 친 황실이, 그대로 사도의 피를 간단하게 펫겨 줄까?

뭔가 있을 거야.>

하지만 펜던트는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

로랑스라고 했나?

기괴한 ‘소녀’ 공작이 찾아왔을 때 펜던트가 터졌던 것을 생각하면, 펜던트의 능력을 뛰어넘는 위협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뭐. 그래도 한번 잘해 봐라.

성공하면 얼마나 좋아. 난 그동안 수도 관광이나 하련다.>

“수도 관광?”

<어. 그 짓을 지금 당장 하는 건 아니지? 나한테 또 애 보기 맡기려들지 말고.>

- 파드득!

<데려왔으면 네가 잘 책임져라! 이뼈다귀 새끼야!>

뭐라고 반박할 사이도 없었다.

아이작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때 였다.

창문을 통해 흑 끼친 차가운 새벽바람 탓일까.

“으응.

루비아가 천천히 실눈을 떴다.

하얀 비단 이불에 몸을 비비면서 몸을 꼼지락거리던 루비아가 눈을 몇 번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무슨 꿈을 꿨는지, 그녀의 양쪽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눈가에는 작은 물방울까지 맺힌 상태.

“홋. 흐어엇.?”

막 잠에서 깬 맑고 커다란 눈에 내가 비춰진다.

- 드르륵!

다시 창문을 닫았다.

“일어났나?”

“네.!”

“이건 신분증.”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그라티아 백작 영애’의 신분증을 건넸다.

이렇게 금방 만들어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느니, 너무 고맙고 어쩌고 한 반응에서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민망했으니까.

완벽한 위장을 위해서, 그라티아백작가에 대해 전부 공부하겠다는 루비아의 각오가 대단했다.

이걸로 티 파티도 그럭저럭 안심.

“그런데 해골님은 어떤 신분으로 활동하시나요?”

‘기사 아메리타트’라고 새겨진 신분증을 꺼내어 보여 줬다.

“적당히 호위 기사 흉내를 내면 될 거 같다.”

“제 호위 기사요? 기뻐요! 그런 역할로 다니신다고 생각하니 무척설레네요.”

사실 지금도 지켜 주시고 있지만, 이라 말하며 루비아는 잠깐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떠올린 듯한 그녀가 달뜬느낌으로 입술을 열었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나?”

“아니요, 그냥 이름에 담긴 뜻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메리타트.

레나가 지은 이름이다.

무슨 뜻이 있다고?

괜한 말실수를 하는 대신 잠자코기다리는 편이 낫겠지.

“좋아하는 꽃이거든요. 까만 잎을 가졌는데도 정말 예뻐요.”

그런 게 있었나.

“꽃말이. 당신과 함께 첫눈을, 이잖아요. 아직 봄이니까. 저랑그때까지는 같이 있어 주신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겠죠?”

루비아의 뺨이 다시 붉어졌다.

그런 뜻이었나.

당연히 알 리는 없다.

“아, 뭐. 그냥 어감이 좋잖아.”

레나에게 받은 거라고 말하기는 역시 곤란하다.

여러모로, 곤혹스러운 상황들에 계속끼어 있다.

차라리 작전이라도 빨리 실행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앗. 네! 들어오세요!”

다행히 루비아가 내 가명에 대한 질문을 멈췄다.

내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앞에 서 있던 인간 한 명이 꾸벅고개를 숙인다.

조식이라도 올려 주나 싶었는데, 식탁을 들고 있지는 않다.

옷을 전해 줬던 인간 중 하나.

블랙베리의 수하다.

“뭐지?”

“이보트 후작 영애께서 다시 연락하셨습니다.”

그 조그마한 곱슬머리 여자아이 말인가.

“티 파티에 참석하실 건지 다시 확인하고 싶다고. 꼭 와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이 편지를 전하셨습니다.”

성의가 있다.

루비아는 티 파티에 아직 한 번도 참석해 본 적 없는 입장.

처음 가는 거라면, 당연히 이런환대를 받으면서 가는 게 좋겠지.

근데 티 파티가 뭘까?

루비아에게 슬쩍 듣기는 했지만, 가서 정확히 뭘 하는 건지는 사실잘 모르겠다.

기뻐하는 루비아가 편지를 뜯게 둔채 곰곰이 생각했다.

티 파티.

가서 종류별로 차를 마시는 건가.

죽 늘어놓고?

차만 마시면 심심할 텐데.

잘 이해가 안 된다.

레나의 가게에서처럼 게임이라도하는 걸까.

도박이나 마약 같은 걸 은밀히?

혹시 문제가 될지도.

루비아가 펜을 든다.

편지에 답장 쓰는 소리가 가볍게 방에 울려 퍼진다.

역시.

혼자 보낼 생각은 없다.

티 파티 날 아침.

루비아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바네시 블랙베리는 첫날 드레스를 보낸 데 그치지 않았다.

“이보트 후작 집안도 저희 가게 특별 고객입니다. 그런 분이 초청하셨는데 제가 허술하게 해서 보내드릴 수는 없지요. 제 이익 때문에하는 일입니다.”

드레스 보는 눈이 수도에서 최고라는 블랙베리는, 아예 메이크업과 머리담당 직원까지 따로 불렀다.

새벽부터 셋이 합을 맞춰서 함께 루비아를 꾸미기 시작했다.

저러다 쓰러지지 싶었는데, 대체뭘로 버티는 건지 루비아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한 톨도 비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이렇게 화장이 잘 먹는 피부는 처음 봐요! 좋은 걸 바르는 보람이 정말 팍팍 느껴져요!”

화장을 담당하는 여자가 감탄을 거듭한다.

“다 됐습니다!”

블랙베리가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손보며 말했다.

루비아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놀라웠다.

물론 루비아를 미녀가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아우라를 뿜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런 매력을 감추고 있었나?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저, 너무 이상하지는. 않지요?”

거울이 있었어도 저런 반응일까.

조금 멍한 듯한 표정이 재미있다.

“무도회였다면 수도가 뒤집어졌을 텐데, 남자들이 없는 티 파티라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블랙베리가 작품을 완성했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재밌게 놀다 오십시오.”

블랙베리는 바깥에 마차를 대기시켜 놓고 물러갔다.

“이제. 이제 다녀올게요! 정말 감사해요!”

나한테 고마울 건 없는데.

루비아가 문밖으로 나갔다.

당연히 안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겠지.

티 파티는 남자는 못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안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다.

- 스스스숙

[은신 Lv.6을 활성화합니다!]

기척을 지워 버리고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최근 며칠이야 최고급 숙소에서 잘먹고 잘 살고 있지만, 루비아가 그동안 겪은 끔찍한 일들은 그녀자신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혼자 보내는 미친 짓을 할 이유는 없다.

따라간다고 미리 말하면, 성격상폐를 끼치기 싫다며 만류했겠지.

- 팟!

지붕과 지붕 사이를 뛰어 마차의 경로를 추적했다.

바퀴에 두껍게 고무를 씌운 데다, 도로의 정비 상태도 무척 좋았다.

마차는 조금도 덜컹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목적지를 향했다.

저긴가. 나는 조금 먼저 목적지를 살피기로 했다.

커다란 저택 외관은 언뜻 보기에 낡아 있었지만,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며 점점 더 ‘진짜 귀족 저택’

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정원은 물론이고 건물 외벽 하나하나에 꼼꼼한 손길이 있었다.

숙성된 우아함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불결하거나 부실하게 관리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무수히 깔린 경비들을 스쳐 지나내부 정원 쪽으로 바로 들어갔다.

‘후작가인데. 너무 쉽군.’

건물 안은 어떨지 몰라도.

오늘 당장이라도, 밖에 모여 있는 인간의 많은 귀족 영애들을 모조리학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이 저택이 아니라 내가 너무 강한 거겠지만.

정원에 먼저 도착한 다른 인간의 면면을 살폈다.

“어머, 이보트가의 장미 정원에 초대받아서 정말 영광이어요!”

눈가에 작은 점이 있는 흑발 여자 아이였다. 웃을 때 살며시 덧니가 드러났다.

인간들은 크게 두 부류다.

흑발 아이처럼 무해함을 보이려고 애쓰는 부류.

그런 부류들은 대체로 ‘남작’가의 영애들이 다.

다른 하나는, 자신은 쉽게 보이지 않겠다는 듯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입가에 살짝 건조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다들 영 어색하군.’

아직 여물지 않은 무리들이다.

이런저런 대화와 소개가 오갔다.

그 커다란 테이블에서 한발 비켜서서, 마지막까지 비스듬한 태도로 사람들을 보고 있던 붉은 머리칼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시셀 리드바렌입니다.

리드바렌 백작이 제 아버님이죠.”

한순간 그 여자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아, ‘진실의 르노’ 님!”

“그래요.”

여자가 건조하게 슬쩍 웃었다.

마치 여기 있는 너희들은 모두 내아래라는 듯한 모습이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정중앙에 놓인 주최자 자리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다른 여자들이 아직 서서 환담을 나누는 것과 대비되는 태도였다.

꽤나 권세 있는 가문인 모양이다.

또 다른 백작가의 여식 한 명이 메이드를 향해 물었다.

“자리 배치는 언제 확정되지?”

“그게, 막판에 바뀌어. 시녀장이 스콘을 가져오면서 곧바로 안내해드릴 겁니다. 아, 이보트 영애께서 오십니다!”

혼자 앉아 있던 시셀 리드바텐도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보석점에서 봤던, 금발 곱슬머리소녀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원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다.

언제 만났는지는 몰라도 소녀의 곁에는 루비아가 있었다.

그런데.

원래 저런 적극적인 성격이었나?

조금 쑥스러워하는 루비아의 팔을, 금발 소녀가 옆에서 두 손으로 꼭잡고 걸어오고 있다.

팔짱이라도 낀 느낌이다.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루비아를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저분이 영애께서 초대했다는.?”

색색의 장미를 지나며 걸어오는 루비아의 아름다음은 몇몇 소녀들마저아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물론 적의와 경계를 띠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웬 아가씨도 초대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들어 보지도 못한 가문이긴 하죠.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태어나서 스트레스를 안 받았나? 예쁘기는.

하네요.”

걸어오는 이보트 영애의 곁에서 시녀장이 뭔가를 물었고, 이보트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장의 손짓과 함께.

메이드들이 조금씩 걸음을 빠르게 해서, 인원에 딱 맞춰 다기 세트를 준비했다.

의자 앞 테이블마다 이름이 쓰인팻말이 하나씩 놓였다.

영애들은 자연스럽게 제 펫말이 놓인테이블 위치로 이동했다.

- 달각.

어중간한 자리들이 빠르게 채워져갔다.

남은 자리는 서넛.

- 달그락.

주최자의 왼쪽 자리.

‘리드바렌 백작 영애’가 느슨히 서 있는 자리와, 식탁 끝이 살짝 깨진 끝자리 둘만 남기고 펫말이 모두 놓였다.

깨진 자리 옆은 장미도 피어 있지 않고 가시덩굴만 무성했다.

심지어 햇빛을 가리는 나무조차 없었다.

“실례합니다만.

주최자 자리 앞에 선 금발 곱슬의 여자아이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시셀 리드바렌 앞에서 치마를 살짝들고 인사한 뒤 말했다.

“여긴 예약석이네요.”

보석 상점 앞에서 말 더듬던 때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 달각.

메이드가 금발 여자아이의 자리 옆에 부드럽게 펫말을 놓았다.

싸늘하다.

뭔가. 잘못됐다.

꾹 주먹 쥐는 소리가 부담스러울정도로 선명히 들린다.

이건 나나 루비아가 생각했던

티 파티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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