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38화 (238/458)

239화 아무 대가 없이 (3)

철판을 뚫고 칼로 4미터에 가까운 기계인형의 팔을 잘랐다.

- 쿵!

두꺼운 팔이 바닥에 떨어졌다.

- 끼기긱.

잘린 관절 안쪽에 있는 철갑을

뚫고 칼을 박아 넣었다.

“끄아아악!”

음성진동판을 통해 탁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이걸로 마지막이었다.

칼날을 꽂은 부위를 발로 밟고, 지렛대처럼 칼을 움직여서 철갑을 뜯어냈다.

반쯤 잘린 허리에서 흘러나오는 내장을 손에 쥐고,눈을 커다랗게 부릅뜬 마지막 파일럿이 바깥으로 떨어졌다.

- 서걱!

나는 다시 한 번 칼날을 철인의 가슴팍에 쑤셔 넣었다.

파일럿은 죽었어도,동력 엔진은 가장 장갑이 두꺼운 부분에 있다.

- 파삭.

검기를 불어넣은 칼이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반으로 갈라졌다.

나는 칼을 놓아 버리고 맨손으로 철인의 장갑을 뜯어냈다.

뼈에도 금이 가 있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흡수.’

- 우우우웅.!

부서진 엔진에서 루-륨이 흘러서 내게 들어왔다.

직업 설명창을 열었다.

[루-룸이 부족합니다.]

열 명의 철인에게서 루-름을 모두 홉수했지만,아직도 전직 요구량은 만족시키지 못했다.

- 달그락.

나는 방금 전 부서진 칼날 근처에 그대로 쓰러졌다.

서른 번째로 바꾼 무기인지,마흔 번째로 바꾼 무기인지 알 수 없는 장검을 흘끗 바라보다 고개를 위로 들었다.

- 파드드득!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철인 밖으로 흘러나온 마지막 파일럿의 시체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툭툭 눈알을 쪼는 시늉을 시작했다.

〈까악. 까악.〉

“뭐 하는 짓이냐.”

〈까마귀 울음소린데?〉

까마■귀는 마지막 파일럿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제 부리로 두어 번 두드렸다.

〈순금이네.〉

까마귀는 목걸이를 빼앗아 들어 제 목에 걸었다.

시체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곧바로 빼앗아 들었다.

녀석의 목에 걸린 장신구는 이제 다섯 개째였다.

나는 주위를 흘끗 둘러봤다.

잘리거나 뭉개진 시체들이 주변을 가득히 메우고 있었지만,까마귀는 한 마리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은 시체들이 먹기 좋게 썩지 않아서인지,지금 허공을 배회하는 까마귀가 이곳을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떨어진 내장과 분리되어 굴러다니는 머리들이 크게 볼만한 광경은 아니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 파드득!

다시 날아온 까마귀가 살짝 금이 간 팔뼈에 내려앉았다.

〈양쪽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는데. 다 이렇게 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녀석이 부리로 부서진 철인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기체도 분명히 가지고 있을 테니까.〉

“제대로 된 기체.?”

〈봐 봐. 동력 엔진에 루-륨도 거의 보급되지 않은 채거든. 진짜는 다 따로 있다는 소리지.〉

“네가 타이탄이라고 말했던 것들 말이냐?”

아이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그때 그 기계 혹시.〉

녀석이 뭘 말하는지 알고 있다. “.결계에서 사라졌다.”

그라스미어 창고에서 가져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타이탄 저격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재료만 있으만 다시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가.”

〈그래도 확실히 대단하더군. 감을 이렇게 잘 잡을 줄은 몰랐는데. 양쪽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잘해 냈다. 감이 좋은데?〉

별로 그렇지도 않다.

아이작이 중간에 계속해서 조언해 주지 않았으면 처음 공격했던 대로 연합군만 전부 다 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녀석의 예상보다는 잘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Lv.41(239)] (new!) [체력: 86](new!) [힘: 97] (new!)

[민첩: 89] (new!) [지혜: 75] (new!)

직접 베어 넘긴 숫자는 네 자리에 가깝다.

천 명.

그 숫자의 인간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경험치는 대략 이 정도다.

이제 지금부터는 훨씬 더 더디게 올라가겠지.

중요한 건 따로 있다.

- 띠링!

[‘천 명 베기’를 달성했습니다.] [모두 직접 도륙한 싱싱한 제물들 입니다.]

[말파스가 당신의 활약을 보며 진한 만족감에 젖어 있습니다.]

[말파스의 행복도가 10을 초과했습 니다.]

[특전: ‘암흑’을 획득했습니다.] [특전: ‘매료’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설명을 자세히 확인했다.

[특전: 암흑]

[특전 레벨: 1]

- 절반에 가까운 마왕들이 가지는 공통 특전입니다. 말파스의 암흑은 가볍고 날카로운 속성을 지닙니다.

- 마왕의 행복도가 유지되는 한, 당신은 아무 대가 없이 암暗 속성을 모든 공격에 부여할 수 있습니다.

- 공격력이 25% 상승합니다.

- 암년 속성 공격은 상대의 의지와 인지 능력을 감소시킴니다.

근처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칼 한 자루를 주워 들었다.

‘암흑.”

- 파지직!

칼끝에 어둠의 기운이 서린다.

- 끼긱!

검기를 사용하지 않은 채 그대로 쓰러진 철인의 가슴팍에 칼을 박아 버렸다.

그대로 부러져 나가야 할 칼날이 의외로 얕은 생채기를 내며 철판을

파고든다.

— y人 O O O «

게다가 주변을 타락시키는 듯한 검은 기운을 주위로 내뿜는다.

검기도 쓰지 않은 채 그냥 곧바로 내질렀는데도 이 정도다.

암흑 특전은 검기나,다른 마법을 쓸 때와는 달리 나에게 가해지는 어떤 부담도 없었다.

힘의 출력을 내가 아닌 저13자가 감당하고 있는 느낌.

이게 마왕의 가호라는 거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당신은 암흑을 몸에 두를 수도 있습니다. 마왕의 행복도에 따라서 지원되는 방어력이 달라집니다.]

- 방어력이 40% 상승합니다.

- ‘까마귀의 날개’: 이동 속도가 15% 상승합니다.

어마어마한 증가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고작 특전 레벨 1에 불과하다.

계약 관계가 돈독해질수록 어떤 권능이 생겨날지 짐작하기 힘들다.

바알의 무수한 병사 하나로 있을 때에는 마왕과 이런 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계약을 맺고 힘을 퍼주는 상대들은 이렇게 따로 있었다.

- 스으으_

나는 부서진 갑옷 주위에 암흑을 일으켰다.

역시 어떤 부담도 없다.

보이지 않는 날개라도 달린 듯이 몸이 무척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영구적인 이동 속도 15% 증가.

그 하나만으로도 말파스와 계약을 맺은 보람은 충분했다.

이어서.

[특전: 매료]

[특전 레벨: 1]

- 말파스 전용 특전입니다. 탁월한 존재감의 과시로 상대를 매료시킬 수 있습니다.

- 종족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전부 적용되는 권능입니다.

- 레벨이 올라갈 경우,상대에게 영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 범위 안에 있는 적의 전투력이

저하됩니다.

광범위 약화 스킬이다.

“매료.”

- ᅀᅀᅀᅀ.

뼈에서 무형의 기운이 피어난다.

〈.으응?〉

아이작이 뭔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 멋진데?〉

시동을 중지했다.

아이작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장난이다,장난! 아무튼 제대로 못 할 줄 알았는데 여러모로 무척 인상적인걸.〉

“•••너도 뭔가 혜택을 받았나?”

〈그럼. 당연하지.〉

아이작이 몹시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더 강해진 느낌이다.

부서진 곳은 어느새인가 완전히 매끈하게 고쳐져 있었고,검은 깃 주위에는 은은한 검은 현기가 서려 있었다.

〈너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직접 천 명의 인간을 살해해 얻은 힘을 아이작도 중개자로 일정 부분 나눠 갖는 것 같았다.

녀석은 구체적으로 뭘 더 할 수 있게 됐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양쪽을 합하면 수천이 넘는 군대였다. 꼬여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하더군. 진심이다.〉

매료의 효과가 풀리지 않은 건가.

“제국군은 어디까지 진격했지?”

나는 말을 돌리며 천천히 시체의 바다를 걸어갔다.

묽은 묵처럼 굳은 인간들의 피가 발에 밟혀 철퍽거렸다.

〈말했잖아. 중립도시 엠버메어를 지금 한창 밀어붙이고 있지.〉

“연합 쪽으로는 아직?”

〈오히려 이쪽으로 밀렸다니까.〉

공격 순서는 역시 동일하다.

아이작은 내 생각이라도 읽은 둣 빠르게 말을 이었다.

〈엠버로 갈 생각은 하지 마라.〉

“어째서?”

〈강한 녀석들이 그 작은 섬 안에 전부 몰려 있거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기스-제-라이가 속한 암살교단, 레드 플레이크.

그 본거지도 엠버에 있다.

기스-제-라이 본인이나, 후작의

심장을 한 번 뜯어냈던 별빛청여우 같은 자들이 거주하는 곳.

하지만 지금 그 도시를 공격하는 자들은 그보다 더 강하다.

‘수천 개의 자치령’을 몰살시키고 그 거대한 섬을 잿더미와 시체로만 전부 메워 버렸으니까.

확실히 지금 내 수준으로는,거기 끼어들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당장 죽고 싶지 않다면.

〈시체에서 힘을 홉수할 수 있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이렇게 끊어 먹는 것부터 해라. 쉬운 것부터 해.〉

목이 베인 시체들은 아무런 말도 뱉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아주 미약하게나마 초록색 빛을 내뿜는 것도 있었다.

백 명 가운데 하나꼴.

나보다 훨씬 약해도,낮은 확률로 정수를 흡수할 수 있는 모양이다.

‘흡수.’

서른 명 정도의 자잘한 스킬들을 빨아들였을 때였다.

- 퍼드득! 퍼드드득!

조금 커다란 날갯소리가 빠르게 근처로 다가왔다.

〈즉즉즉.〉

물론 아이작은 아니다.

- 퍼득! 퍼드득!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 울긋불긋한 날개를 펼치고 있는, 반은 독수리고 반은 인간인 녀석이 나를 보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시. 신성 모독이다!”

- 좌르록! 좌르르록!

그 바로 옆에는 몸 곳곳에 비늘이 빼곡히 돋아난 여자가,십 미터에 가까운 길고 굵은 하반신을 땅에 비비며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감히.! 이런 미친 짓을.!” 검게 물든 눈동자.

〈킥킥.〉

아이작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즐거운 심정이 아니었다.

다시 보는 푸르손의 추종자들.

뱀과 하피 외에도,근육을 부풀린 인간들이 스무 명도 넘게 안개를 뚫고 나타나고 있었다.

“.이거 곤란한데.”

처음에는 나타나면 싸워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자만이었다.

어느 정도 성장했는지 실험해 볼 좋은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커다란 뱀 하나만으로도 상당히 만만치 않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경지가 올라가자 또 한 번 보이는 압박감이 있었다.

하피 하나 정도였다면 몰라도.

여기서 멀쩡히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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