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50화 (250/458)

251화 아무 대가 없이 (15)

수도 방향으로 잘 깔린 가도 위를 걸었다.

행군은 모든 게 순조로웠다.

좁은 협곡을 지나가는 연합군에 불을 질러 방해하려는 소규모 부대도 있었지만,미리 정찰하며 기름과 불씨 냄새를 맡은 브로디 발도프에 의해 갈가리 찢겨 나갔다.

제국 수도 앞인 붉은 여우 평원.

황궁과 너무 가까워 황제의 정원 이라고도 불리는 곳.

여기만 점령하면 수도까지 바로 진격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아쥬라의 마법사들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이 싸움은 루비아를 구하기 위한 몹시 주요한 기점인 셈이다.

평원에는 제국군 보병 11만,8개 사단이 참호를 파 놓고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 위치는 여우의 코 부분.

기병 1만은 두 부대로 나눠져 그 양익에 배치된다.

볼 쪽,평야의 양옆에 수심 깊은

강이 흐른다.

넓은 귀 부분에는 연합군 9만이 뒤늦게 자리를 잡아 갔다.

“도착이군.”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브로디 발도프를 필두로 정찰조가 이미 상세하게 전해 온 바였다.

수많은 포로를 심문해서 얻어 낸 정보도 풍부하다.

두 지휘관에 의해 통솔되는 12만 병력.

지휘관 한 명은 리드바렌 후작.

이보트 같은 기존의 가문이 숙청된 뒤 한차례 작위 상승이 있었던 모양이다.

종교재판관이랬나?

시셀이라는 아이의 아비.

루비아를 악마숭배의 혐의로 넣은 녀석이라고 했었다.

따지고 보면 루비아를 마법사의 실험체로 만드는 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자다.

‘사람,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루비아가 떠오른다.

고작 그 정도의 별거 아닌 발언 때문에.

종교가 제물을 필요로 한다면, 누구보다 산 제물로 적합한 것은 저자일 터다.

여기서 마주치니 묘하다.

그 가문에게 복수할 기회 따위를 상상한 적은 없는데.

예상치 못한 선물이 입에 처박힌 기분이다.

나는 오랜 관습처럼 칼자루를 꾹 쥐었다.

다른 한 명은. 아네 달 오스칼. 오스칼 백작이다.

전원이 길이 4미터가 넘는 랜스를 사용하는 부대,장창기병 헬타바샤

연대를 이끄는 노장.

양익 1만 명 기병을 그와 부관이 각각 지휘한다.

〈창기병이라. 만 명 단위라니 볼만하겠군.〉

“괜찮겠냐?”

〈설마 걱정하는 거냐? 앞일이나 생각해라. 여길 뚫는 데 성공하면 수도까지 탄탄대로야. 들어가면.〉

안다.

그런 만큼 꼭 이겨야 한다.

아이작을 믿지만 녀석의 작전이 꼭 들어맞아야 했다.

나도 뛰어들 생각이지만,혼자서 수십만 단위의 대세를 뒤엎을 수는 없으니까.

- 똑똑.

흑발 흑안의 여자가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왔다.

연합의 의원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눈앞에 상자를 내려놨다.

“이게 뭐지?”

“지금까지 부서진 철인들에서 빼 모은 루-륨이에요. 다른 의원들을 어르고 달래서 모았어요. 수도에 들어가면 당연히 전력으로 수색해 드릴 거지만.

여자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먼저 조금이라도 안 드리면 제가 서운해서요.”

찰랑거리는 반병의 은빛 마력액을 별 감흥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제국의 이름 높은 명장이셨겠죠? 정체를 숨기고서,계급제의 폭압에 저항하고 계신.

“아닌데.”

한 번에 잘랐지만 조금도 당황한 기색은 아니다.

두 달간 함께 지내 본 바,그녀는 지나치게 친화력이 좋았다.

“그럼,당신 같은 분을 몰라보고 중용하지 않았던 황실은 진심으로 아둔하네요. 저와 함께해 주신 걸 영광으로 생각해요.”

“글쎄. 언제 적이 될지 모르지.”

거칠게 쳐내도 사근사근한 기색이 전혀 줄어들지 않고,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는다.

“전 당신을 절대 적대하지 않을

거예요. 부디,당신이 저를 적으로 고르지 않으시길 바랄게요. 그래야 할 때가 되면 꼭 좀 알려 주세요. 제 처신을 바꿀 테니까.”

어지간히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이작이 지금까지 올린 전과가 터무니없긴 하다.

내가 혼자 움직이던 때와 9만 명을 통솔하는 것.

전선이 움직이는 스케일이 후자가 말도 안 되게 다르고 빨랐다.

나는 의원이 가져온 루-륨 병을 옆에 놓아두며 말했다.

“작전이나 제대로 전달해 둬라.

반발이 만만찮을 테니까.”

“물론이에요.”

이 녀석은 곧 자유 연합의 전쟁 영웅이 될 거다.

인간들은 지금까지의 지휘를 모두 그녀가 했던 거라고 알겠지.

카린은 고마워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흡수.’

곧바로 병에 담긴 은빛 마력액이 흘러 들어왔다.

여전히 전직 요구량은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지만.

황실의 비역이 눈앞이다.

10분의 1이라도 빼낼 수 있다면. 전직 따위는 몇 번이고 반4해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넉넉잡아도 세 달 치 식량이라. 원정치고는 너무 호화로운데?

제국군을 완벽하게 격파,그들이 곳곳에 세운 보급 창고를 브로디 발도프가 전부 찾은 덕분이다.

웨어울프의 후각은 개의 수십 배.

9만이나 되는 연합 원정군은 보급 문제를 전혀 겪지 않고 풍족하게 지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r

저 아래에서 함성이 들려온다.

건너편의 절벽을 보는 아이작은 정작,자신의 명령에 따라 보내진 오백 명 정도 되는 병사의 운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5킬로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진지를 꾸린 뒤,연합군은 카린의 지시에 따라 소규모 부대를 계속 내보내 적을 도발하고 있었다.

사정거리가 긴 발리스타를 끌고 와서

몇 발씩 쏘아 낸다.

불화살을 쏘아 대고,바지를 까고 상대를 향해 길게 오줌을 싼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올라온 연합 군을 상대로 꼼짝하지 않으려는 제국군에게 가하는 모욕.

상대는 사기 관리 차원에서라도 도발 부대를 약간 상회하는 병력을 파견했고,파견된 연합군은 맞서 싸우다 우스꽝스럽게도 셋에 둘은 패배했다.

패배의 빈도는 곧 다섯에 넷으로 늘어났다.

아무리 허용되지 않은 약탈이나 강간 등으로 군율을 어긴 병사들을

차출한 징계성 공격이라고 해도, 출전한 아군이 연패를 거듭한다.

제국군의 사기는 높아지고 연합군 내부에는 원망이 일었다.

〈물감들이 굳이 큰 그림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아이작이 작전의 의미를 공개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카린 크렉소르가 연합군 내부의 불만은 부드럽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보다도 훨씬 철저히 잘해 주는 탓에 일단 거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언덕 위에 서서 아이작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도박의 기본이 뭔지 아냐?〉

“뭔데?”

〈상대를 판에 앉히는 거다. 일단 조금씩 잃어 줘야지. 자신감을 돋아 줘야. 판돈을 올려도 응한다.〉

잃어 주면서 판을 깐다는 이야기.

“먹힐까?”

〈1만의 창기병이다. 돌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돌격하지 않는 쪽이 머저리라고.〉

이러다 다 와서 지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생겨날 즈음이었다.

야간에 출진한 연합군 병사들이 조금씩 덜 돌아오기 시작했다.

밀명에 섞여 출진한 기계화 보병들이, 여우의 볼 부분에 하나둘씩 숨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몸 곳곳을 차가운 강철로 교체한 최정예 병사들이 강가 근처의 갈대 밭에 차곡차곡 깔리고 있었다.

〈제국군의 매복은 지금까지 전부 다 숲에서만 이뤄지더군. 평지에도 매복할 수 있다는 상상력이 너무 부족한 거지.〉

물론 거기 있다가 달려도 매복은 되지 않는다. 매복으로 기능하려면 적군이 나와야 한다.

아이작은 적이 군대를 진군시킬 거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양군,대치. 나흘째 아침.

〈온다.〉

제국군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진형을 유지한 채 기병과 보병이 동시에 거리를 좁혀 왔다. 소규모 싸옴의 연전연승으로 기세가 잔뜩 오른 게 느껴졌다.

녀석이 오늘이라더니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눈앞에서 작은 승리를 거듭하면 저 정도로 경계심이 마취되는 건가 싶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시작인가.

전장이 소리를 낸다.

〈좋아. 놈들이 올가미에 걸렸어. 머리를 내민 거북이는 마땅히 구워 먹어야지.〉

내려가서 싸우지.”

〈흐음,혹시 여기서 나랑 구경할 생각은 없냐? 돌아가는 상황 하나 하나씩 설명하면서 맞춤형 교습을 해 줄 수도 있는데.〉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빨리 루비아를 구하면 그만이다.

언덕 위에서 어울리지 않게 폼만 잡고 있는 것보다,한시라도 빨리 수도를 포위하고 마법사들을 끌어내야 했다.

무엇보다,팽팽하게 묶인 긴장을 칼이라도 휘두르며 풀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저기에- 루비아에게 죄를 덮어씌웠던 인간이 있다.

르노 리드바텐.

공동 지휘관이라고 했던가?

황실의 ‘진짜’에는 전혀 닿아 있지 않을 하찮은 녀석에 대한 차가운 멸시를,어쩔 수 없이 느끼는 격한 복수심이 누른다.

마음이 소음을 내며 끓어오르고 있다. 놓아 보낼 생각은 없다.

쿵! 쿵! 쿵!

제국군 보병이 차곡차곡 앞으로 나아갔다. 대열을 맞춘 수만 명의 발소리는 땅의 박동 같았다.

연합군 진형이,초승달 모양으로 부풀어 있는 부분에 공격하게 유도 한다고 했던가?

일단은 아이작의 의도대로 되고 있는 것 같다.

‘질주.’

더 이상 보지 않고 인간이 가장 많이 몰린 곳으로 몸을 던졌다.

- 뿌우우우우!

어디선가 들리는 나팔소리.

- 콰과과과과광!

평지에 잠복한 기계화 보병들이 몰래 매설한 폭탄이 터지는 소리.

땅 그 자체가 양익의 1만 기병을 향해 발밑에서 대포를 쏘는 장면이 연출될 터였다.

- 쾅! 콰광! 콰과과광!

아이작과 함께 있던 곳을 내려와 보병의 높이를 갖자 전략적인 시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으, 어어.

적당히 싸우다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텐데.

앞으로 불룩 튀어나온 진형.

가운데 있는 늙은 남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다.

주위에서 소리쳐도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적인 청력 상실.

전쟁터의 인간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주위 녀석들은 딱히 나은 사정이 아니었다.

제국군의 첫 돌격을 받는 곳에는, 소모되어도 상관없는 자들을 배치 한다더니.

“멍청한 놈들! 대충 싸우다 뒤로 튀라는 명령도 못 수행하냐!”

지역대장의 날카로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명심해라! 양옆으로 도망가라! 뒤가 아니라 양옆이다!”

아이작의 지휘를 수행하고 있는

녀석을 흘끗 바라보고,짓쳐 들고 있는 제국군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좀 날된다고 녀석이 계획한 대세에 별 영향은 없을 거다.

사방은 고함과 광기뿐이었다.

그 와중에도,제국군 보병은 상호 간격이 점점 좁아지며 칼도 제대로 못 휘두를 정도로 서로를 밀어 대고 있었다.

적군이 서로를 중앙으로 밀어 대, 간격과 대열을 무너뜨려서 군대가 아닌 군중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직 포위 단계는 아니겠지.

단순한 결과였지만,군대에 대해

지극히 치밀한 통찰을 하고 있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작전이다.

제대로 병력과 병력이 부딪치지도 않았는데,제국군의 진형은 이미 망가진 듯했다.

총대장을 찾아 앞쪽으로 인간들을 계속 베어 나갔다.

피바람이 일어나자 보병들은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이미 그들은 자루에 완벽하게 갇혀 서로가 서로 에게 그물이 된 것 같았다.

백 명 정도는 죽인 것 같았는데 별로 나아간 기분도 들지 않았다.

- 팟!

뛰어올라 주위를 돌아보니 포위가 완성되는 것 같았다.

방패와 검을 든 제국군을 상대로, 진영 가운데 대기하고 있다 나타난 연합 장창병 부대가 일선에서 찔러 가며 안쪽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허물어진 제국군 보병을 유린하고 있을 때였다.

연합군 장창병의 조여 오는 벽을 향해,부하를 밀어붙이는 발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뚫어! 뚫으라니까! 이 오우거야!

너 따월 써먹어 준 나를 어떻게든 빠져나가게 하란 말이다!”

먼 거리임에도 유독 꽂힌다.

어디선가 들어 본 난폭하고 얇은 목소리.

문득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에 꽂혀 펄럭이는,에라스트의 문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레이. 커크?”

잊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 까앙!

놈의 앞에 억지로 떠밀린 거구의

기사가,대검을 휘둘러서 혈로를 뚫는다.

- 서걱!

기사의 비범한 용맹이 빛을 발해, 몇 자루의 장창이 잘려 나간다.

멈칫하는 연합군 병사들의 머리를 향해 대검이 떨어지고,두 병사의 몸이 으깨진다.

“저건.

하지만 이미 무리한 듯한 기사의 힘겨운 몸짓은,곧바로 찔러 오는 2진의 장창을 검면으로 그저 막아

내는 데 그친다.

다시 한 번 뒤로 칼을 끌어당겨, 재촉하는 ‘주군’을 위해 180도로 대검을 휘두르자 연합군 병사 셋이 뒤로 자빠지며 공백이 생겨난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끈 분투는 오래가지 못했다.

곳곳에 섞여 있는 연합군의 정예-기계화 보병들이 곧장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사방에서 가해지는,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해 온 달인들의 합동 공격.

- 철컥! 퍼억!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가는 사이, 안쪽에 프레스 장치가 된 차크람이 기사의 목에 걸렸다.

단 한순간이었다.

둥근 투구를 쓴 기사의 목이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잘린 목이 길게 피를 흩날리며, 이미 붉게 칠해진 내 칼날 위에도 한 방울을 떨어트렸다.

털썩.

익숙한 얼굴이 잘린 투구 속에서 굴러 나왔다.

“크리. 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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