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아무 대가 없이 (17)
뱀을 딱히 아름다운 생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작은 비늘들이 조직적으로 엮여 현란한 색상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가리에 삼켜져,통째로 형체가 뭉그러지며 삭아 가는 안쪽 사냥감들을 생각하면 묘하게 불안, 불쾌해지는 데가 있다.
리드바렌의 목을 뒤덮으며 일어난 뱀 문신은 그런 어슴푸레한 불쾌를
아득히 넘어설 정도로 혐오스럽다. 뱀의 머리에 뿔이 생겼다.
긴 두 개의 어금니가 생겼다.
이 녀석의 정체는.
네크론 신사회.
즉,16 마왕 보티스의 노예다.
종교 재판관이라던 녀석이 마왕의 종복이다.
농담치고는 꽤나 진부하다.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마법사가 네크론의 핵심이라도 되는 걸까?
거대해진 문신은 이번에는 놈의 목을 조르지도 않았다.
흡수되는 것처럼 빠르게 피부로 번지듯 스며들었다.
“끄,히,히이익!”
비명 소리가 배에서부터 거듭해서 올라왔다.
몸에 있는 모든 신경이 찢기는 듯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끄하아아아아악!”
기괴했다.
마치 무언가를 안에서 뿜어내야 할 것처럼,종교 재판관은 온몸을 바르 르 떨었다.
“히끄육,그그으웃!”
- 구드드득!
아무런 능력도 없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한 중년 남자의 몸이 갑자기 기괴하게 ‘열렸’다.
- 좌아악!
팔꿈치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하지만 그건 눈속임일 뿐이었다.
열린 팔꿈치에서 비틀어진 뼈와 근육 전부가,수백 마리의 새까만 뱀이 되어 이쪽으로 쏘아졌다.
- 좌르르록!
소리가 더 늦을 정도의 빠르기.
‘격발. 질풍.’
이제는 익숙해진 2중 영창으로, 칼을 휘둘렀다.
불과 바람으로 강화된 암흑검기가 종교 재판관의 몸에 잠들어 있었던 수백 마리의 뱀을 태우며 막았다.
검붉은 기운이 녀석의 몸을 뒤로 붕 띄웠고,그 과정에서 인간 남자 였던一 것의 몸에 성한 구석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성대가 타 버린 상태에서 지르는 비명이었기 때문인지,뭔가 울리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거기까지였다.
본래의 ‘자아’가 있던 부분은 방금 완전히 무너져 버린 건지, 화염에 거의 녹아내린 흰자위가 새까맣게 물든 채 나를 노려봤다.
망가진 입가에 걸려 있는 건,
비뚜름한 웃음.
어느새 배에 조금씩 돋아난 검은 비늘로 흙바닥을 느릿하게 기며, ‘그것’은 주위를 맴돌았다.
뱀들을 사용한 첫 기습이 그다지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눈앞의 상대는 그건 단순한 인사였다고 생각한 모양인지,좌절감이라고는 조금도 표시하지 않는다.
- 그극. 그그극_
양팔의 뼈와,피와,살이 뱀으로 변해 ‘사출’된 종교 재판관은 구겨진 몸을 기괴하게 비틀며 유희하듯이 바닥을 기었다.
그때마다 몸이 구겨지며 살점과
뼈가 사방에 흐트러진다.
몸 안에서 곧 다시 새까만 뱀의 무리가 쏟아져 사방으로 쇄도.
‘산성.’
- 치이익!
‘뇌격.’
이어 번개의 기운까지도 칼날에 불어넣어 베어 나갔다.
“히. 히이익.
퍼져 가는 경악이 사방을 차갑게 얼어붙인다.
낭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 짓을 하는 누군가는,철저히 자신의 노예 한 마리를 낭비하면서 상황을 즐기고 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다른 인간들은 연합군,제국군을 막론하고 일제히 얼어붙어 몸을 사렸다.
눈앞에서 동족을 죽이고,그 더운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광란조차 잠시 식어 버렸다.
팔다리는 모두 구겨지며 재료로 떨어져 나가,몸뚱이만 남은 놈이 배와 등에 빼곡히 비늘이 돋은 채
내 쪽으로 꿈틀거리며 기어 왔다.
〈까마귀의. 진동이라. 하하.
어딜 기어 오느냐. 다 끝났다.>
성대가 다 타 버렸을 터다.
그러나 싁싁거리는 소리가 직접 머릿속에 전해지고 있었다.
보티스의 편린 같은 건가? 까마귀라니.
내가 가진 말파스의 힘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냄새로구나. 내. 종복이. 될 기회를 주마.〉
냄새라니.
〈이미. 이미 승리했다. 영광에 늦게나마 끼어들게 해 주마. 나를 받아들여라.〉
이미 승리했다고? 무슨 말을 더 지껄이나 싶어 가만히 있었다.
〈그래. 좋다.〉
- 화악!
무형의 검은 기운이 나를 감싸듯 리드바텐의 몸에서 뻗어 나오면서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완전히 정지된 몸.
[‘까마귀의 눈’이 발동합니다.]
몸을 뒤로 빼며 연기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결빙. 암흑.’
냉기 마법과 마왕 말파스의 힘을 동시에 사용했다.
직감에 가까운 행동.
방금 떠오른 스킬의 효과인 건지,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게 ‘보였’다.
- 아사삭!
효과는 적중했다.
냉기에 순식간에 느려진 뱀 모양 연기를,성질이 다른 암흑의 힘이 바사삭 부수고 있었다.
〈감히. 속임수를.!〉
속임수라고?
가만히 있으면 승낙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건가.
얼어붙은 연기가 허공에 굳은 채 희미해져 간다.
〈내 간택을 막아 내다니. 흐흐. 그놈만큼. 멍청한.!>
뭐 하자는 거지?
검은 연기가 시야에서 모조리 다
사라져 버렸을 때였다.
- 띠링!
[보티스의 구애를 몹시 강경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보티스의 편린에 미약하게나마
피해를 입혔습니다.]
[말파스가 당신을 총애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다음 특전이 강화되었습니다.]
- 특전: 매료(Lv.l — Lv.2)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마왕 말파스는 내게 꽤 호의적이다.
직접 말을 섞어 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뜨는 메시지가 내게 확신을 부여한다.
강화된 특전 내용을 확인했다.
매료 (Lv.2)
- Lv.l 의 모든 효과를 계승.
- 상대는 호감을 넘어 당신에게 경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 뭔가를 시키지 않아도,상대는 당신이 원하는 걸 미리 적극적으로 찾아서 행하고 싶어 합니다.
- 당신이 직접 지시를 내릴 때, 명령이 상대의 의지와 부합할 경우 피지시자의 잠재력이 발휘됩니다.
한층 역량이 발휘된다는 소린가. 좋은 특전이다.
가호의 이런 폭증도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간다.
사실 지금의 나 정도로 집중해서 제물을 바치고,그 효과를 사실상 혼자서 먹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도 좋겠지.
게다가 말파스의 대제사장이라는 녀석이 주선한 계약이니까.
완전히 망가지고 불에 탄 남자의 시체를 바라보다,반쯤 탄 수급을 잘라서 꽤나 담대해 보이는 연합군 병사에게 던져 줬다.
‘매료.’
“제국군 총사령관의 목이다. 이제 전투는 끝났다.”
“예!”
병사는 내 명령을 받았다는 것에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받은 목을 창끝에 꽂고,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대열에서 이탈해 앞으로 나가 소리쳤다.
마치 자신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듯한 태도로,병사는 배에서 올라오는 웅혼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국군! 전원 항복해라! 너희의 총사령관은 죽었다! 자유 시민으로 살고 싶다면 항복해라!”
명령을 받은 게 너무나도 기쁜지, 병사는 손을 덜덜 떨면서 흥분에 젖은 눈으로 외쳤다.
- 히히힝!
심지어 주인을 잃은 제국 기병의
말에 가볍게 올라탄다.
승마 기술은 처음부터 있던 걸까. 저것도 매료 스킬의 효과라면 꽤 놀라운 일이다.
“싸움은 끝났다! 이 수급을 보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이름 모를 병사는 높은 위치에서 창을 흔들며 연달아 외쳤다.
슬슬 빠져도 괜찮겠지.
외곽에서 항복하는 자들,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몰살당하는 자들을 천천히 바라봤다.
여기서 지면 자신들의 사회처럼,
노예로 살아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적당한 높이에 올라 정리되어 가는 전장을 바라볼 때였다.
멀리서 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기 라도 했는지,익숙한 까마귀가 크게 퍼덕거리면서 나에게 날아왔다.
〈멋지던데.〉
= 그런가.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자부심을 가져 봐라. 네가 없었으면 저기서
인간 3만 명은 더 죽었을 거야.〉
=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쓰는군. 어쨌거나.
아이작의 말대로일지도 모른다.
지휘관을 빠르게 죽여서 항복을 유도하지 않았다면.
지금 북쪽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연합군 철인들이 밀집된 제국군을 절구에 담긴 곡식처럼 분쇄하느라 더 오래 끌었을 테니까.
녀석은 내 핀잔을 적당히 홀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흐.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기분이 어떠냐?〉
= 다 네 덕분이지.
진심이었다.
아이작이 아니면 이런 상황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설사 가능했다고 해도,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
연합군의 전선 자체를 순식간에 제국 수도까지 끌어다 놓다니.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역량이다.
300년 전,아이작의 행보가 제국 남부를 지배하는 것에서 그쳤던 이유가 문득 떠올랐다.
회전에서 패배해서가 아니다.
빛의 여신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했었나.
〈뭐. 그거야.〉
녀석답지 않게,머쑥한 둣 부리를 돌린다.
그리고 전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참 아쉽군. 여기가 여신의 영향 아래 있는 곳이라서 결계를 칠 수 없다는 게.〉
= 역시 인도주의적인 관점 따위가 아니군. 제단을 안 그리고 있던 게 이상하다 했다.
제국군이 지키고 있어서 애초에 시작하기도 힘들었겠지만.
〈그래. 제단만 그릴 수 있다면 다 말파스의 제물로 바치는 건데.
지금보다도 얻는 가호가 훨씬 더 강해졌을 거다. 굉장한 낭비라고. 기왕 죽을 거면,제물로 바쳐지면 좀 좋을까? 네가 살해하는 효과도 여기서는 확 줄어든다고.〉
하긴,언덕 위에서 돌아가는 꼴 구경이나 하자고 한 게 이상하다 싶었다.
내가 직접 살해한 만큼,그에게도 마왕의 가호가 일정 비율로 들어갈 테니.
〈빛을 담당하는 일리엔의 결계다. 요망한 년이지. 수도에 들어가면
일단 그년의 신전들부터 다 부수라 명령해라.〉
= 수도를 점령한 연합군에 그런. 일을 시키라는 건가?
〈당연하지. 저주도 나눠 먹어야 낫다고,혼자 당하려니 영 기분이 더러워.〉
수도에도 무력 집단은 있다.
재의 수도회 같은 사제 집단은,
참전하지 않고 신전에 남아 있을 확률도 클 거다.
하지만 이 정도의 병력이 신전을 부순다면.
인간 상대에 그리 특화되지 못한 사제 무리는 어쩔 수 없이 당해 버리겠지.
몇 가지 궁금증이 있었지만,일단 앞으로 가는 것이 급했다.
지금 당장 묻지 않아도 좋았다. 이제 수도까지 곧이다.
내 막사로 들어가자 연합군 의원 카린이 서 있었다.
홀로 선 그녀가 나를 빤한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이지? 당신은 승전으로 한창 바쁠 때 아닌가.”
“.이걸 받아 주세요.”
만들어진 전쟁 영웅은 내게 작은 벌레 모형을 건넸다.
“이건.
동그란 형태의 황금 벌레.
주먹만 한 크기의 녀석이다.
순금은 아니지만,넓은 등껍질에 금박이 두껍게 입혀져 있다.
하지만 오히려 등껍질에 입혀진 황금이 위장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
섬뜩할 정도로 세밀하고 차가운 결을 더듬는 느낌이다.
이런 걸 어디서 느꼈더라?
손을 대고 집중한다.
- 끼긱.
아주 작은 진동.
바로 앞에 있음에도,탐지 스킬이
없었다면 놓쳤을 법한 진동. 곧바로 활성화해 내부를 느낀다.
- 끽. 끼긱. 끼기긱. 끼기기긱••••
빠르다.
규칙적이다.
반복되지 않는다.
얼마나 복잡하고 큰 패턴을 가진 규칙인지 가늠할 수 없다.
안의 무언가가 흔들리고,맞물려 서로 돌아간다.
한참을 집중한 순간.
어둠 속에서 울리던 수없이 많은 금속음이 떠올랐다.
별빛청여우와 동시에 제국의 어느 황야를 걷던 기억이 떠올랐다.
[B마이너14 지역. 보다시피 황량한 평야지만,우리끼린 ‘붉은 늪’이라고 부르지. 이곳을 맴도는 기계 부유물 들이야.]
[훨씬 작고. 폭발하는 대신 전부 갉아먹거든? 돌이든 뼈든. 만나면 굉장히 힘들 거야.]
그 녀석들을 멀리서 탐지할 때와 비슷한 파장이다.
그냥 거기 있던 기계 부유물 중에 하나인 걸까?
하지만 있는 건 느낌뿐,힌트가 너무 부족하다.
레드 플레이크의 별빛청여우.
그녀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엠버에서 싸우고 있겠지.
아니면, 기스-제-라이의 죽음을 조사하다가 휘말려서 그대로 죽어 버렸을지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아이작이 말을 걸었다.
= 이거. 뭔지 알 것 같나?
녀석이 즉답으로 부정했다.
〈아니. 나도 알아보지 못하겠군. 굉장한 걸 받은 거 같은데.〉
솔직히 바로 인정하는 녀석.
동요를 곧바로 읽은 둣,카린이
기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고대의 유산을 여는 열쇠 라고 해요. 진짜인지는 저도 모르겠 지만,가문에서 대대로 소중하게 내려오는 보물 중 하나예요.”
〈정말이겠는데?〉
“3대조께서 평생 연합 전 국토를 뒤지셨지만 결국 ‘문’은 찾지 못하 셨어요. 저희 쪽에 없다면,분명히 제국에 있지 않을까 해서 참전하며 갖고 온 거예요.”
“그런 걸 줘도 되는 건가.”
카린이 웃었다.
“처음에 영입을 시도할 때는 뭐든 해 드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여태 그랬으니까요. 돈,지위,만들어진 명예든. 멋진 여자라든지요.”
〈재,저거 지금 자기 얘기냐?〉
“하지만 뭐에도 흥미가 없어 보이 셔서요. 혹시 이런 건 어떨까 싶어 가져왔는데,다행히 관심을 끈 것 같네요!”
유산의 열쇠라.
암살교단의 소명수녀, 코드네임
별빛청여우.
그녀와의 대화를 다시 회상했다.
[1 만. 배?]
[지금까지 발견된 유산 중에 가장 강력한 파장보다,수치가 1만 배 강하거든.]
게다가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던 탑승용 기계와 비교한다면 3만 배라고 했던가.
말보다 열 배는 빠르고,날개를 펼쳐서 하늘을 활공하는 것도 가능 했던 녀석.
이게 정말 별빛청여우가 말했던 ‘유산’과 관련이 있는 거라면,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놀라운 걸 손에 넣은 셈이다.
“고맙게 받아 두지.”
그때 였다.
펄럭!
“의원님!”
막사 천이 거칠게 걷히며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첩보 활동까지도 담당하고 있는 푸른 머리칼의 호위였다.
카린 앞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 몹시 다급해 보였다.
“루이! 왔구나. 무슨 일이지?”
“아쥬라의 마법사들이 지금 수도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라고?”
“북쪽 탑에서 수십 명이 남하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고작 수십 명.
그 정도 숫자로 ‘남하’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 자들이 다가온다.
하지만 긴장 따위는 조금도 되지
않는다.
드디어 된 건가.
수도 위협이 북쪽 탑의 놈들에게 자극을 가했다.
드디어 그놈들이 움직일 수준의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문제는 내가 아직 약하다는 것. 평범한 마법사들이라면 몰라도, 한 명의 탑주라도 내 검기로 쓰러트릴 수 있을까?
분명히,성급하다.
하지만 더 이상 스탯 흡수가 되는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고 수천을 더 죽이더라도, 여기서 레벨을 올리기는 어렵다.
말파스의 가호도 방금 전 한 단계 성장했다.
다른 마왕의 편린을 찾아 그들만 학살하는 쪽은 기약도 전혀 없고 현실성도 떨어진다.
무엇보다, 지금 아니면 아쥬라의 마탑들이 언제 비어 있을까.
5년 뒤?
10년 뒤?
가야 한다.
이 순간도 루비아는 고문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이 최적이다.
“.당장은 못 받겠군.”
나는 ‘열쇠’를 그녀에게 돌려줬다. 앞으로의 일을 잘 부탁하며 주는 선물이 분명하다.
마법사들과의 가장 위험한 싸움에 참가하지 않을 생각이면서 받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네.? 갑자기.
“혼자 여기서 빠지겠다. 지금은 가야 할 곳이 있어서.”
카린의 안색이 파랗게 변한 순간. 아이작이 다급히 소리쳤다.
〈야! 잠깐 기다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