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53화 (253/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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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한 말투였다.

손짓을 해서 막사 안의 두 인간을 잠시 밖으로 내보냈다.

카린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곧바로 깨끗이 지워졌다.

능력을 보여 준 이후로,그녀는 내 앞에서 어떤 종류의 싫은 티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마음은 꼭 바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갖고 있던 유산의 ‘열쇠’는 그대로 테이블에 보란 듯이 놓아 두었다.

그 존재가 신경 쓰였다.

다시 가져가라는 말을 할 사이도 없이,카린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옆의 호위는 처음에 카린의 그런 태도에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곤 했지만,지금은 자신도 수긍하는 모습이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다 아이작의

성과가 만들어 낸 거다.

그런 녀석이 다급히 하는 말이니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 무슨 일이지?

〈마탑에 가는 건 지금은 안 된다. 너는 아직 약하다.〉

문득 유치한 오기가 솟았다.

- 화아아아악!

막사 안의 공기가 칼 안으로 빨려 드는 것처럼 집중됐다.

새까만 기운이 맺힌 칼날 끝부터 바람과 화염이 서로를 칭칭 휘감아 내려갔다.

높은 지혜 수치는 마법 컨트롤에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매질들이 더 말랑말랑하게 변하는 듯했다.

얼음이 불을 덮어 끄고,샛노란 번개의 힘이 칼날 주위의 공기로 지직거리고 있었다.

이 칼에 베이는 그 순간에 목숨 다섯 개쯤은 단번에 날아갈 듯한

강렬한 모습.

물론 그런 걸 보여 주려고 하는 건 아니었다.

꽤 넓은 막사 안이지만,원소의 힘은 단 한 톨도 안쪽을 어지르지 않는다.

주위에 얼음을 뿌리고,난잡하게 번개가 뻗어 나가게 하는 건 쉽다. 단순히 불을 지르는 것 따위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네 종류의 현란한 변화를 보이며 마법을 내가 원하는 범위로 제어하는 통제력.

게다가 전부 1〇〇을 찍은 스렛.

그 스텟을 전반적으로 중폭하고, 권능을 주는 말파스의 힘 덕분에 나는 어느 때보다 고조되었다.

“놈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몰라도 승산이 없지 않을 텐데?”

그 말 대로다.

확률이,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작은 고개를 저었다. 내 무력시위에 그다지 감명 받지는 않은 모양새다.

〈안 된다.〉

“안". 된다고?”

〈황실 비역에 루-륨은 물론이고, 어떤 아티팩트들이 있을지 몰라. 네 모든 걱정을 해결할 단 하나의 열쇠가 있을지도. 이거야말로 지금 아니면 언제 확인해 보겠어?〉

〈봐봐. 마법사들이 궁극적으로 왜 황실에 복종하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지 않냐? 다른 거랑 비교할 수가 없는 중요한 문제야! 비역 출입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순간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나에게 뭔가를 팔아치우려는 듯한 장사꾼의 말투다.

어쨌건 나는 고집을 꺾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비역도 개죽음이 될지 모르지.”

〈1차로 우리가 아니라 연합군이 들어가는 거잖아. 뭔가 이상한 게 있으면 수만 명의 인간 선발대들이 당하는 거지. 그 상황을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여기 있어야지. 함정은 남이,보물은 우리가. 좋잖아?〉

아이작이 말했다.

사실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어느새 녀석의 논리에 꽤 적응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유혹적이지만,다음 생에 해도 된다.

애초에 내게 ‘마지막 기회’ 따위는 없으니까.

아이작은 문구를 잘못 골랐다.

“글쎄. 시간을 끌었다간 싸움이 끝나고 마법사들이 금세 북쪽으로 돌아갈지 모르지. 무조건 갈 거다.”

탑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으면, 그 때 루-룸을 찾아도 늦지 않다.

아이작은 슬쩍 내 눈치를 본다. -퍼드득!

그러다 답답하다는 둣 막사 안을 여기저기 날며,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이작이 천천히 차분하게 음절을 끊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 말을. 받아들여라.〉

약간 나른해지는 기분이 들었을 때였다.

-띠링!

[당신은 매우 높은 지혜 수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 레벨의 같은 스킬을 사용한 경험이 있습니다. 높은 이해도를 보유합니다.]

[상태 이상: ‘최면’에 저항합니다.]

묘한 효과음이 울렸다.

동 레벨의 같은 스킬이라.

아이작이 내 몸에 빙의한 뒤 썼던 최면 스킬을 말하는 모양이다.

“뭐 하는 짓거리냐?”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날 통제하려고 한 건 명백하다.

방금은 가벼운 최면.

하지만 저번에 성공했듯이 아예 까마귀 인형을 버리고 내게 혼을 옮길지도 모른다.

물론 혼은 물과 같아,옮길수록 그 절대치가 줄어든다고 했었나.

아이작도 인정한 이야기.

녀석의 입장에서도 위험은 있다. 게다가 저번처럼 잘될지 아닐지도 확실히 모르는 법이다.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몸을 빼앗길 때와 비교해 나는 훨씬 강해졌다.

지혜 수치가 기준이라면.

100이라는 수치는 꽤 압도적이다.

아무리 작은 까마귀 인형에 담겨 약해졌다고 한들,전설적인 술사의 최면도 막아 낼 정도니까.

내 추궁에 아이작은 침묵하다가 입을 떼었다.

〈헌데 너 말이다. 지금 루비아를

위해 음직이는 거지?〉

“그야. 물론.”

당연한 소리다.

루비아가 아니면 뭘 위해 북쪽의 마탑 따위에 간단 말인가.

아이작은 고요하고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갈 필요 없겠네. 루비아는 이미 죽었거든.〉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죽었거든. 죽었거든. 죽었거든.

그 말이 메아리처럼 두개골에서 울려 퍼졌다.

잘 와 닿지 않았다.

단순한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정신이 드득대며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 그럴 리가 없다. 대체. 네가. 네가 어떻게 그걸 안다는 거야? 아이작,너는 나랑 계속 같이 있었잖나.” 농담에도 정도가 있지.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무척이나 태연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널 만나기 전 일이야. 내가 확실히 죽였다니까?〉

그건 강렬한 선언도 아닌 단순한 서술이었다. 감정 따위는 조금도 묻어 있지 않다. 어휘는 건조했고, 어조는 무심했다.

“죽였. 다고?”

아이작의 입에서 지금껏 한 번도 맡지 못했던 피 냄새가 났다.

지금껏 수만 명의 인간을 지휘로 죽여 온 녀석에게서 처음으로 맡는

피 냄새.

아이러니한 일이다.

〈구출은 무리였어. 올라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분명 나한테 고마워하고 있을 거다.〉

나는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잖아?

모두 다 루비아와 너를 위해서 한 일이야.

속여 널 여기까지 데려 왔지만. 결국 너한테 좋은 일인걸,이라며 이어지는 말들이 멍하게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녀석이 실제로 뱉고 있는 말인지, 환청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한데 모여 구더기처럼 우글거렸다.

아이작이 루비아를 죽였다.

그가 지금껏 나를 속여 왔다.

어느 쪽이 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까. 마비된 것처럼 나는 멍하니 그 둘을 저울질했다.

사실 명백히 한쪽일지 모르지만, 정신의 저울눈 자체가 상하좌우로 미친 듯 돌아가고 있었다.

〈고통은 없었거든. 내 능력 알지?

잠드는 것처럼 편하게 보내 줬다.〉

이 순간조차 자기 자랑을 하며, 이 정도면 이해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이,묘하게 태도를 바꾸어 가는 그를 바라봤다.

〈간만에 전술에 너무 심취해 버린 데다,적이 허수아비라서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올라와 버린 느낌은 좀 있지만. 일단 우리가 수도부터 점령해야 되는 이유를 알겠지? 자, 이제부터 움직이자고.>

“아. 이. 작.!”

검기도 없다.

마법도 씌우지 않았다.

좋은 타이밍을 노린 것도 아니다.

- 까앙!

그런 흐트러진 검격을 막는 건, 방금 몇 합에 쓰러트리고 온 제국 기병대장이라도 어렵지 않으리라.

오히려 녀석의 기백이라면 칼을 잘라 내고 단번에 반격을 해 대겠지.

아이작은 달리 놀라는 기색마저

없이,‘깃털’을 움직여서 올려치는 칼을 막았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평범한 재질의 까마귀가 아닌 건 당연했지만,드워프가 벼린 칼날의 일 검마저 깔끔히 막아 낸다.

잘리지 않는 강도만이 아니다.

아래에서 위라고 한들, 팔 전체를 써서 올려치는 검을 몇 배는 작은 까마귀가 가볍게 막아 낸다.

느껴지는 ‘완력.’

그동안 전선을 올라오며 강해진 존재가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오히려 제물을 바침으로서

정말 더 강해진 건 내 눈앞의 ‘대제사장’이었다는 명백한

진실이.

뒤늦게 생생하게 다가왔다.

-까앙!

위에서 아래로.

다른 칼을 휘둘렀다.

검기를 3레벨이나 달성한 자가 휘두른다고 보기는,농담으로밖에 치부되지 않을 조악한 이도류.

상대를 베기보다,울며 투정하는 듯한 검격은 역시 위로 든 까마귀의

다른 깃털에 칼날이 막혔다.

아이작은,

이 정도로 강해졌다는 건가.

나는 일그러진 정신을 가까스로 되잡고 말했다.

“너를. 너를 신뢰했다.”

까마귀 인형의 무기질 눈이 잠시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북쪽에 가 봐야 루비아 비슷한 것도 없어. 별 가치도 없는 시체는 몇 번 들여다보다 버린다. 키메라 같은 것도 기대하지 마.〉

“너는. 너는.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작이 하는 말 한 마디,한 마디를 이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죽었다고 해도 사실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 해도 죽었을지 모른다.

혼란스러웠다.

〈루비아가,북쪽 늙은 거미들에게 끌려가면 무슨 꼴 당하는지 하나씩 죄다 말해 줄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루비아가 죽은 거라면.

그것도 아이작이 죽였던 거라면, 내가 여기까지 수천 명을 학살하며 올라올 필요는 전혀 없었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시체를 쌓으며 올라왔다.

베고,베고,베고.

팔자에도 없는,연합군의 배후에 있는 전쟁 영웅 따위를 연극하면서 수많은 시체를 쌓아 올렸다.

아무런 악의도 없는 그 살해는, 모두 한 명을 구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교환비.

그런데- 아이작은 지극히 무거운,

절댓값에 가까운 한쪽을 전부 0으로 이미 만들어 버렸다.

뭐라고 생각하는 것도 허망했다.

막히고,무겁고,반대로 허공에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부터. 그를 신뢰하고 함께 따라온 자신이 한심해졌다.

“꺼져라.”

충격을 억지로 밀어내려 애쓰며 한마디 말을 뱉었다.

〈이게 네가 화를 낼 일이야? 이해할 수 있잖.〉

-부응!

무심코 검기를 실어 눈앞의 놈을 베었다.

정말 베어 버릴지도 모른다,하는 걱정이 실려 있는 탓일까.

검기는 날카로움을 잃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 까강!

내가 뿜어내던 힘보다- 훨씬 더 짙은 강렬한 무형의 어둠이 녀석의

부리에 맺혀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말파스의 힘으로 나를 공격하지 마라. 마왕의 가호는 상위의 계약자에게 어쩔 수 없이 먹혀. 피라미드 구조라는 거지.〉

이 순간에마저 훈수라니.

물론 제대로 검기를 일으킨다면 베지 못할 것 같지도 않았다.

실제로 녀석은 물리적인 충격은 조금 힘겨워하고 있는 느낌이니까.

아니면. 아직도 나를 회유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걸지도.

아직까지도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먹잇감이라 이건가.

“그냥 나도 죽었으면 됐을 거야. 다시 시작하는 편이 좋았을 거다.” 불가항력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루비아가 죽었다고 말했다면.

이렇게 많은 피를 마왕 따위에게 바칠 일은 없었겠지.

아이작의 의도가 무엇인지.

선의로 루비아를 죽였는지.

아니면 나를 이용해 마왕을 강림시키려는 큰 그림이었는지.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결론은 하나다.

녀석과는 함께할 수 없다. 그때 였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아이작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놈이 처음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검은 눈알이 빠르게 굴러간다.

〈다시. 시작? 그런 게. 가능. 하다고? 너. 너는.! 그때.)

“꺼져라.”

〈어이,진심이야? 나 없이 네가 어떻게.! 다시 시작한다는 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더 나눠 보자구, 이봐! 이 친구야!〉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항상 놈에게 휘말린 기분이었다.

모든 게 의심스럽다.

“지금 꺼지면,지금까지.

나는 씹어 뱉듯이 말을 이었다.

“.를 생각해 죽이지는 않겠다.”

검기를 일으킨 채 진지하게 다시 칼을 겨눴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면 이번엔 정말 벨 생각이었다.

〈.알았다고.〉

-파드득.

점차 멀어지는 까마귀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나는 멍하니 겨눈 칼끝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날카롭게 벼린 명검은,왠지 아무것도 벨 수 없을 정도로 무디고 무겁게 느껴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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