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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60화 (260/458)

261화 너희는 모래처럼 (2)

저 말들은 다 뭐지?

당연하게도,완전히 똑같이 생긴 말이 저렇게 많을 리가 없었다. 환각이거나,아니면.

다가오는 말의 모습에서,어딘가 끈적거리는 느낌이 났다.

깊고 어두운 곳에서 미끌거리는 비열한 악의와 가학심이 느껴졌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머릿속에 붉고 축축하게 질척이던

한 마디 말이 떠올랐다.

〈오셨. 습. 니까,은. 공.〉

그라스미어 남작,챈들러를 잡아먹은 뒤 얼굴을 복사하던 애벌레의 모습이 겹쳐진다.

미유는 하나일 터.

시체 하나로 미유를 저렇게 많이 복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저 복제된 흑마 위에 올라타 있는 서른 명의 인간은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하는 기분이었지만,그 외에

다른 상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말 머리를 돌려 도망치는 게 옳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니면 다시 언제,이렇게 제국 수도가 ‘텅 비어’ 있을까?

엠버메어가,자유연합이.

자기희생이라는 터무니없는 인과로 잠시 강림한 아이작이 장애물들을 치워 주었다.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게 비극이든 희극이든,무대의 막은 걷어내야 했다.

- 다그닥! 다그닥!

나는 둘러싸이지 않게 외곽으로 말을 몰았다.

아이작에게 전술 지식을 홉수하지 않았더라도 몰리면 불리하다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전술 지식들은,1 대 30의 싸움에 불과한데도 상황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느끼게 하고 있었다.

네오 피델리티의 각개 격파.

전투력은 어차피 적과 격돌하는 그 순간에만 중요하다.

기동성으로 1:1을 강요한다.

오른쪽 외곽,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는 녀석을 목표로 삼았다.

저 위에 있는 게 정말.

‘포스 실드.’

앞이 아닌 바닥에 비스듬히 포스 실드를 세웠다.

- 히히힝!

제국군 기병대장, 오스칼의 말이 다시 한 번 전장을 누비겠다는 둣

강하게 발굽을 내박찼다.

땅이 아닌 허공을 내디딘 덕분에, 흙먼지는 한 톨도 일지 않았지만 그 속도에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희귀 등급에 달한 승마술.

조련(리의 특전.

창술 시현으로 인해 막 올라갔던 해골마의 충성도.

거기에,

[질풍 Lv.5를.]

[이중영창.]

[질풍 Lv.5를.]

[중첩 증폭 Lv.2가 적용됩니다!]

탑주들에게 흡수한 스킬.

검기를 최대로 뽑아낸 칼을 마치 스태프처럼 사용해,검기와 바람을 하나로 집중해 공격했다.

말 위에 있는 인간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자라면,구사일생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

이 일격에서 그 진위가 갈린다.

간절함이 담긴 탓일까.

모두 갓 얻은 스킬들만 사용해서, 초심자의 행운이 중첩으로 작용한 덕분일까.

오직 자신의 싸움만을 돕기 위해 일으킨 해골마에 대한 책임감이, 지금의 일격에 고요하게 집중하게 해 준 건지도 모른다.

겹쳐진 바람은 드워프가 벼려 낸 명검의 날을 타고.

칼끝 한 점으로 선명하게 쏘아져 나갔다.

칼이,휘둘러졌다.

- 스숙!

마찰 소리는 크지 않았다.

만에 한 번이나 있을 법한 깔끔한

마치 원래 그쪽으로 불어야 할 바람이 분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더없이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당연하다는 둣 검기는 칼 길이를 벗어나 바람을 타고 늘어졌다.

지금까지 칼로 한 공격 중에 가장 완벽에 가까운 공격이었다.

스스로 ‘유령’이라 칭하는 황실의 수구들도 이 일격이면 곧바로 목이 날아가겠지.

그런 확신이 드는 공격이었다.

[완벽한 일격을 성공시켰습니다.]

[마법과 검술을 조화시켰습니다.] [조화도 - 97% 이상.]

[‘스킬 조합’ 특전이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스킬 조합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레벨 - 1]

갑자기 떠오른 창을 얼떨떨하게 느끼는 순간,

- 파삿!

검기가 목표에 닿았다.

완벽하다고 평가된 공격은 상대의 목을 베어 내지 못했다.

간신히 눈구멍만 가리던 투구가 반으로 쪼개졌다.

상대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러자 왜 앞도 보이지 않을 만한 투구를 썼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4

그 얼굴은 완성되지 않았다. 여기저기가 끈적끈적하게 부풀어 오른 채,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얼굴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_

투구가 벗겨진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벌린 입술 사이로 초록빛 점액이 끈적거리며 흘러나왔다. 입 사이로 보이는 붉은 혀가 중심을 못 잡고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입이 닫혔다.

꿀렁거리는 하얀 촛농은 눈에서도 흘러나왔다.

이런 꼴로 전락해,의지의 편린이 내는 눈물인지도 모른다.

푸른 사자 기사단 총단장.

나를 죽음으로 두 번이나 몰아간 인간.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 후작이다.

최악의 추론은 그대로 적중했다.

내가 기스-제-라이의 황제 암살에 끼어들지 않아도,레안드로 후작이 죽는 미래는 변함없는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이런 애벌레가 되어 있을 줄이야.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 철컥. 철컥. 철컥. 철컥.

투구가 벗겨진다.

한 명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이제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어쩌면 이제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듯이.

서른 명의 레안드로는 차례대로 투구를 벗어서 미유의 안장에 걸어 놓았다.

하나둘 투구가 벗겨질 때마다, 그만큼 절망과 기괴함이 더해졌다.

서로 다른 부분들이 끈적거리며 움직이는 레안드로 후작 서른 명이 나를 마주했다.

그 풍경이 상식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첫 번째 공격이 투구를 잘랐지만. 실제 레안드로라면 여유를 두고 간단히 피했을 거다.

원한다면 가볍게 칼로 쳐냈겠지.

분명히 본신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망설인 순간.

서른 기의 기병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실력을 아무리 최소로 잡더라도, 포위되면 끝이다.

곧장 말 머리를 뒤로 돌렸다.

- 다그닥! 다그닥!

수만 마리 중에서 엄선했음에도 불구하고,말의 빠르기는 이쪽이. 미묘하게 느리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복제품은 높게 쳐 봐야 레안드로 후작의 반도 되지 않는 실력.

그의 말도 마찬가지일 터.

아끼는 걸 보긴 했지만,역시나 보통 말이 아니었던 듯하다.

물론 지금은,그런 놀란 마음은 접고 내가 탄 녀석에게 충실하자.

기수가 제 말을 최고라고 생각해 주지 않으면 말이 힘을 못 내는 게

당연하다.

‘포스 실드.’

- 히히히힘!

말발굽이 또다시 허공을 박찬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국군 기병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마.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 모른다.

- 히히힝!

오스칼의 해골마가 긴장이 된다는 듯이 울부짖는다.

[성공적인 교감 중.]

[해골마가 위기를 자각합니다.] [주변 말들의 속도에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특성 해제: 경쟁심]

[자기보다 빠른 말을 발견할 경우, 해당 말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놀라운 녀석.

역시 희귀 등급의 명마라는 건가. 다행히도,이제 속도가 맞춰졌다.

내 쪽이 더 빠를지도 몰랐다.

- 다그닥! 다그닥!

뒤로 후퇴하며,외곽을 돌며 혼자 떨어진 녀석을 노렸다.

서른 명이나 되는 무리에 맞서서 싸우려면 짧은 거리를 가진 검으로 뛰어드는 건 무리다.

게다가 한 명 한 명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면,의지나 오기 따위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수많은 마법사와,두 마탑주도 괜히 흡수한 게 아니다.

가장 느슨해 보이는 녀석를 향해 칼날을 겨눴다.

물론 거리는 30미터 이상 떨어진 상태였다.

[뇌전 Lv.5.]

[이중영창.]

[뇌전 Lv.5.]

- 파직! 파지직!

중첩으로 위력이 증폭된 번개가 마른 허공을 깨물며 터져 나갔다. 천둥의 탑주에게 흡수한 스킬. 위력이 여간할 리 없다.

마비,연쇄,마력 파괴 특성까지 지닌 샛노란 채찍이 내려쳐질 때.

- 퍼엉!

허공을 가른 채찍은,끈적거리는 애벌레 후작이 만든 푸른 기운에 그대로 튕겨 나갔다.

저건, 틀림없는一 레안드로 후작의 호신강기.

분명히 후작이 크라켄의 뱃속에서 썼던 푸른 강기였다.

비록 그때와 달리 색이 흐릿하긴 해도 전신은 제대로 감싸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스킬.

정수 흡수로도 빼앗을 수 없었던 고위 스킬이,서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복제품에 의해 생생히 발현 되고 있었다.

황실의 애벌레라는 건 능력조차도 저 정도로 복제할 수 있는 건가?

물론 느긋하게 경악에 빠져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잠시 멈칫한 사이를 놓치지 않고 둘러싸려는 녀석들 사이로 빠르게 말을 달렸다.

- 다그닥! 다그닥!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했다.

복제품 서른 마리와의 추격전은 어느새 백색 가루에 발작한 집단 자해극의 현장까지 이어졌다.

시체들은 서로 뒤엉켜 질척하게 제 안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고통의 원인이 내부에 있기라도 한 둣, 다들 피부 안을 열어젖히기 위해 발작한 흔적들이 보였다.

철인에 밟혀 뼈마디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터진 시체도 많았다.

그것만 놓고 보면 경쾌했던 말발굽 소리마저도 섬뜩하게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벌레가 꼬이거나 부패가 시작되는 흔적은 없다.

붉은 황혼과 대조적으로 공기가 서늘하게 식어 갔다. 부패에 하룻밤 유예가 주어진 것이다.

뒤를 돌아봤다.

정말 호신강기를 발휘한다면 이런 식으로 해서 승산은 없다. 한 번에 전부 상대할 수 없다면. 기동력을 분리해야 한다.

공격 목표를 바꿨다.

- 휘이이이잉!

두 줄기 차가운 바람이 날카롭게 뻗어 나갔다.

바람이 지나는 반경 십여 미터 안의 시체들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냉기 폭풍.

반경을 줄여서. 날카롭게 만들어

쏘아 냈다.

가장 많이 썼던 공격 마법이었고, 그만큼 자신 있고 익숙했다.

타깃은,일단 말 한 마리.

- 콰앙!

하지만 공격이 흑마에게 향하자, 주변의 두 복제품이 빠르게 말을 몰아 다가오더니 검기가 서린 칼로 마법을 쳐냈다.

흑마는 털 한 올 다치지 않았다. 얼음 바람이 지나며 얼린 시체들만 흑마의 말발굽에 바사삭 부서졌다.

인간을 공격하면 강기에 막히고, 말을 공격하면 주위에서 적극 달려와 지원한다.

그럼에도, 공격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걸까.

- 히히힘!

하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열 마리의 흑마는 각성한 듯 숨을 몰아쉬며 눈을 붉게 물들였다.

- 퍽!

달려오는 흑마가 앞발로 얼어붙은 시체 조각을 걷어찼다.

빠르게 날아오는 조각이 쏘아 낸 화살 같았다.

흑마는 그런 발차기를 하면서도 조금도 달리기에 지장을 받지 않고 있었다.

괜한 자극만 해 버렸다.

새까만 갈기가 곤두서기 시작하며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 다그닥. 다그닥.

단 한 명도 탈락시키지 못한 채,

나는 열 명의 선두에게 포위당했다.

‘망했구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열 명으로 만들어진 포위는 곧장 스물,서른 명의 포위가 되었다.

포위망에 맞춰서 천천히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곧 서른한 기의 말이 제자리에 멈췄다.

기수와 말의 수준을 반영하는 듯 조금의 소음조차 나지 않았다.

레안드로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 어딘가 물컹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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