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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61화 (261/458)

262화 너희는 모래처럼 (3)

포위망은 완벽했다.

몇 합도 버티지 못하고 끝날 걸 각오했지만 녀석들은 동시에 달려들지 않았다.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후작의 얼굴 어딘가에 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희미하게 남은 인격의 편린이, 내게 동시에 달려드는 걸 억지로 막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녀석이 혼자서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낡은 칼을 내리쳤다. 칼은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는데,내리치는 속도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빨랐다.

피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칼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위로 올려쳐 막았다.

낡은 검으로 행하는 그저 한 번의 내려치기였는데 땅이 꺼질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공격해 들어오는 녀석은 단순히 말 위의 레안드로뿐이 아니었다.

녀석을 태우고 있는 커다란 검은 말은 제 무게까지 그대로 실어서,

칼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 히히힝.!

타고 있는 희귀급 해골마도 힘을 냈지만,어쩔 수 없이 휘청거리며 슬쩍 무릎을 꿇어야 했다.

녀석을 다독여 간신히 물러났다.

끈적거리는 후작에게 전투 의지가 없어 보이는 덕분에 그나마 뒤로 후퇴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있을까?

한 번의 격돌에서 회의가 들었다.

이길 수 없다.

결론은 사실 처음부터 내려져 있었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런 자가 서른이나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는 다른 이야기로 하고,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 철퍽.

발굽에 밟히는 시체를 보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고작 탑주 두 명이 11만의 군대를

농락할 수 있었던 건.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포스 실드.’

실드를 전개해서 밟으며 허공에 떠올랐다.

강제로 간격을 만든다.

- 히히힝!

[해골마가 하늘에 발을 디디면서

몹시 흥분합니다.]

[조련 특성이 발휘됩니다. 홍분한 해골마가 침착하게 허공을 달릴 수 있게 해 줍니다.]

[해골마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해골마의 경험치가 크게 상승했 습니다.]

됐다.

말발굽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디뎠다.

공중에서 일방적으로 마법 공격을 퍼붓는다면.

저런 것 서른이 모여 있더라도,

이 방법이라면

그리고,

- 히히히힘!

내가 전개한 실드 옆에 미유들이 신난다는 듯이 마구 뛰어올랐다.

“이런 미친.

이걸 느끼고 곧바로 뛰어올랐단 말인가?

계단처럼 차례로 전개한 실드를 귀신처럼 감지하고 뛰어올라 나를 쫓아왔다.

이게 가능한 건가 싶을 때였다.

미처 올라오지 못한 레안드로들이 전장에 깔린 수많은 무기를 하나씩 손에 쥐고 나를 향해 던졌다.

- 파츠옷!

창이나 칼을 던진다고는 믿을 수 없는 기괴한 파공성이 울려 퍼지며 다섯 자루가 넘는 무기가 일제히 날아왔다.

포스 실드가 장난처럼 부서졌다.

- 콰직!

- 빠각!

- 빠가각!

그리고 무기는 남은 힘으로 내가 일으킨 해골마를 공격했다.

실드를 다시 칠 힘도,다른 곳으로 피하게 할 시간도 없었다.

비행 마법도 아니다.

마법사를 흉내 내어,임기응변으로 실드를 밟은 것에 불과하다.

운신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은 건 당연한 일.

땅을 향했다면,자루가 안 보일 정도로 깊이 들어갔을 터무니없이

강렬한 투척의 향연.

그 흉악한 폭력에,한때 제국군 기병대장을 태웠던 해골마는 몸의 반 이상이 가루처럼 부서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 띠링!

내 기분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효과음과 함께,반투명한 상태창이 떠올랐다.

[해골마가 소멸되었습니다.]

[코어가 완전히 손상되었습니다.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축적한 충성도가 사라집니다.] [해제된 특성이 사라집니다.]

상공 50미터.

실드를 밟고 한차례 도약했다.

- 째애앵!

무기들이 다시 한차례 거세게 날아 왔다.

이번에는 스무 자루.

해골마를 한 번에 소멸시킨 것의

무려 네 배다.

건방지게 하늘에서 노는 것만큼은 결코 용서치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 순간, 나를 따라온 놈과 칼을 맞부딪쳤다.

- 까앙!

‘흡착.’

그리고,

〈바람 발톱〉

하피에게 흡수한 스킬이다.

공중에 머무르는 적에게 공격이 적중했을 때,끌어당기는 능력.

[스킬 조합 특전이 발동합니다!] [‘홉착’ 스킬과 ‘바람 발톱’ 스킬을 조합합니다.]

[허공에서 무기를 부딪칠 때,서로 자리를 바골 수 있게 됩니다.]

칼이 레안드로를 내 쪽으로 끌어당

기며,내 몸이 녀석이 있던 곳에 대신 위치했다. 해골마의 죽음에 자극받은 탓일까. 계산하지 못했던 절묘한 우연의 일치.

- 퍼벅!

- 퍼버벅!

나라도 반응하지 못했을 거다.

레안드로의 복제품은 호신강기를 제대로 끌어올리지도 못했다.

이미 던져 버린 창칼에 눈이,끈이 달려 있을 리도 없다.

- 퍼버버버벅!

회수되지 못한 무수한 무기는 그대로 복제품의 전신을 꿰뚫었다.

함께 추락하며,꿈틀대는 녀석의 두개골을 칼로 관통했다.

꿰뚫려 터진 부위에서 붉은 피도, 회백색 뇌수도 아닌 초록 점액이 뿜어졌다.

하지만 그 진한 초록색이 반드시 점액 때문만은 아니었다.

추락하는 레안드로의 복제품이, 익숙하고 맑은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중력 조작 Lv.l을 발동합니다.]

또다시 날아오는 창칼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아래로 떨어졌지만, 생각과 다르게 더 날아오는 투척은 없었다.

대신 남은 스물아홉 가운데 다른 한 명이 천천히 땅에서 주운 칼을 뽑아 들었다.

칼 뽑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놈을 칼로 겨누며 슬쩍 포위망을 살폈다.

언제부터인지 스물아흡 복제품은 말에서 내린 상태였다.

내 말이 사라진 뒤에 훌쩍훌쩍 내리는 걸 본 것 같기도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슬쩍 옆을 바라봤다.

전신에서 초록빛을 내는 시체가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터무니없이 보이더라도, 이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정수 흡수.’

한 손으로 정수를 빨아들이다가, 천천히 두 손을 모아 칼을 쥐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흡수는 유지되고 있다.

- 우우우웅.!

뭘 얻어 내려 하는 걸까.

이미 100에 달한 스탯은 더 이상 흡수할 수 없다.

남은 건 스킬.

결국 검술에 관련된 것일 텐데, 집중해서 흡수할 수 없는 탓인지 좀처럼 스킬이 뜨지 않고 있다.

기묘한 일이었다.

복제품 가운데 한 명이 기적처럼 허공에서 꿰뚫려 죽고,바닥으로 몸을 던질 때 즉시 사방으로부터의 공격에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레안드로의 복제품들은 합공을 아직도 거부한 채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건 결투.

내가 결투를 원한다면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는 걸까.

지나칠 정도의 공명정대.

일대일 승부에 대한 집착.

사실은,애초에 힘들게 외곽으로 돌 필요조차 없었다는 거다.

결투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면.

복제품들은,결코 나를 한 번에 공격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애벌레에 먹혀 복제된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라는 인간의 자의식이 남아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첨예한 자의식은,그라스미어 남작 챈들러의 경우와 달리 완전히 먹히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어느 쪽이 드문 경우일까.

당연히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레안드로 쪽이겠지.

수십 갈래로 찢겨진 몸이 먹혀서 복제되고 나서도,자신의 원칙을 지킬 정도면 대체 얼마나 과잉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잠시 대치하던 상황에서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붉은 황혼이 너무 빨리 사라지나 싶더니,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여름 날씨 치고도 심한 변덕이었다.

- 쏴•아•아아«

다섯 걸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센 비가 갑작스레 쏟아졌다.

표면이 굳은 피에 비가 쏟아졌다. 안쪽의 아직 말랑한 것들이 비와 함께 흘러내렸다.

체온을 앗아 가는 빗줄기 때문에 살아 있는 인간이면 칼을 든 팔이 후들후들 멸릴 정도의 폭우였지만,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의 복제품들은 어디 이슬 한 방울 튀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허세가 아니었다.

애초에 비가 그들의 머리에 닿지 않고 살짝 위에서 튕겨 나갔다.

저 정도 수준의 호신강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발휘되는 것 같았다.

칼을 뽑아 내 앞에 다가온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라 머리 위쪽에 실드를 발동했다.

- 투두두두둑.

실드가 투명한 우산처럼 빗방울을

모두 튕겨 냈다.

복제품들의 호신강기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였다.

앞에 있던 복제품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어떤 준비 동작도 없이 바로 칼을 휘둘렀다.

‘포스 실드. 뇌전.’

[스킬 조합 특전이 발동합니다!]

[‘포스 실드’ 스킬과 ‘뇌전’ 스킬을 조합합니다.]

[번개 방패를 발동합니다!]

[‘대단히 유리한’ 기후의 보정을 받았습니다.]

[위력이 50% 상승합니다!]

- 파지직!

번개 더미에 칼을 휘두른 꼴이 된 레안드로의 복제품이 아주 잠깐 균형을 잃었다.

놓치지 않고 곧바로 공격해 들어갔 지만,복제품은 번개가 온몸에 흐르는 상태에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공격을 막아 냈다.

복제품은 조금 전의 내 기술을 따라 하듯,기를 운용해 칼을 칼로 붙잡았다.

나는 칼을 놓아 버렸다.

‘발도.’

허리에서 다른 칼을 뽑아 그대로 복제품을 아래에서 위로 베었다.

지형 보정까지 받은 뇌전 검기가 그대로 어깨를 한 움큼 베어 냈다.

너덜거리는 레안드로의 어깨에서 탁한 빛깔의 초록 점액이 허공으로 터져 나갔다.

비명은 없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놓인 것은 후작을 흉내 내는 꿈틀거리는 애벌레에 불과한데도,

마치 흥이 나는 기분이었다. 순식간에 오십 합이 지났다.

진짜 레안드로와 이렇게 싸울 수 있다면 대체 얼마나 즐거울까 싶은 터무니없는 생각이 스쳐 갔다.

- 퍼걱!

암흑의 가호를 담은 칼이 후작의 배를 찔렀다.

싸움에 완전히 빠져들어 몇 합이 지난 건지 측정할 수도 없었다.

뇌전이 터져 나가며 복제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미 열 군데가 넘는 자상을 입은 복제품은 뚫린 배로 울컥 점액을 쏟아 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철퍽,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록색 빛이 허공으로 뿜어졌다.

[검기劍氣 Lv.4를 홉수했습니다!]

쓰러트린 두 녀석에게서 초록빛 정수를 모조리 홉수한 뒤,검기는 비로소 4레벨로 올랐다.

- 파츠춧!

번개가 맺혀 있는 탓만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의,다른 소리를 내며 푸른 검기가 칼날 위에 피어올랐다.

一 저벅. 저벅.

빗속에서 다음 복제품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나는 흥분했다. 이대로라면!

어쩌면 이들 하나하나를 전부 다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싸움은 점점 더 쉬워지겠지.

혹시 서른 명을 전부 홉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애벌레에 먹힌 레안드로 후작이 나를 도와주는 건지도 모른다.

이건 마치,후작이 나를 속성으로 훈련시켜 주는 느낌이다.

언제 이런 수준의 적들과 하나씩 차례대로 싸워 보겠는가.

강해져라.

강해져서,바티엔느 폰 레안드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황실을 대신 짓밟아 달라는 그런 의지.

아직 벌레에게 먹히지 않은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응해 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음 녀석과 싸우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을 때였다.

- 꾸드드득.

무언가 새겨지는 소리가 났다.

다가오는 복제품의 눈동자에 글자 같은 붉은 표식이 떠올랐다.

후작이 붉은 눈물을 홀렸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황실의 흑막에 협조적인 태도로

나가지 않아 살해당해,그 드높은 실력과 긍지도 시체가 되어 기괴한 애벌레들에게 먹혀 복제된 제국의 검주는,다시 한 번 어떤 의지에 강제당했다.

애벌레에 먹혀 수십 마리 단위로 복제된 상태에서도,나 레안드로가 둘이 하나를 상대하는 일은 없다는 철저한 신념은,눈동자에 떠오른 붉은 표식에 잔혹하게 으스러졌다.

“싫.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중얼 거리던 애벌레의 대사와 달리.

이건 레안드로의 영혼이 울부짖는 단말마와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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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듯한 낡은 칼이 검기를 띠고 날아왔다.

아래에서,위에서,옆에서.

스물여덟 방향에서 칼이 뻗었다.

피할 만큼 느리거나 쳐낼 만큼 약한 칼은 한 자루도 없었다.

복제된 상태에,마지막 의지까지 강제로 꺾여 완전히 고기 인형으로 쓰는 까닭에,레안드로 본신 검기의 반에도 못 미치는 칼날들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 파사삭!

먼지가 된 두개골과 함께 의식이 완전히 스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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