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안.
그 안에 갑자기 문신이 새겨지지 않는다면,비브리오 공작이 네크론 일당일 가능성은 없다.
희망이 생겨났다.
녀석에게 접근할까?
레안드로 후작과 부딪히지 않고도 루비아가 영주가 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뭐가 더 빠르고 안전할지 고민에 빠졌을 때,옆에 있던 랩탈리언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공작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종이를 쓱 훌었다.
“평판은 좋습니다. 이웃들에게도 친절하고,특히 아이들에게 인정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미지야 간단히 가장할 수 있다.
출입하지 않는 동안 일주일 내내 방 안에서 뭘 할까?
하지만 그건 T&T에서도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집에 잠금 마법이 걸렸습니다. 아이들을 아주 가끔 집 안에 초대 하는데, 그때 섞여 들어간 저희
요원도 별건 못 봤습니다.”
“외출은 일주일에 한 번. 게다가 가는 장소들은 다 정해져 있군.”
“정해진 가게에서,정해진 식사를 하고 시장을 둘러본 뒤 귀가하죠. 거기에 자선 활동이 섞이고요.”
제국 공작이 아니라 그냥 부유한 노인의 삶이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내가 관찰해 본다면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아보지.”
레나 부하들을 투입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낫다.
은신이나 유사시의 전투력 면에서
내 역량이 당연히 압도적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레나와 내가 엮일 고리도 끊고 싶었고.
“본부장님의 펜던트를 갖고 계신 분이니 믿겠습니다. 다른 도움은 필요 없으십니까?”
도움이라.
“수도에 국한되지 않아도 좋나?”
“물론입니다. 다만 자유 연합과 엠버메어 지역은 현재 임무 수행이 제한적입니다.”
제국 전체가 임무 범위라.
“남부 쪽 후계 분쟁에 도움을 좀 줬으면 하는데. 내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말이야.”
“에라스트 말씀이십니까?”
“알고 있군.”
“레이 백작 암살은 저희의 조사 범위이기도 합니다. 확실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거기까지 손을 뻗고 있는 건가. 황실에서 꺼림칙하게 여길 만한 녀석들이다.
“레이 루비아를 도와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적어도 다른 도시에 도망쳐서라도 살게 해 주고.”
“알겠습니다. 유사시 보호해야 할 인간은 레이 루비아 한 명입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의 기사가 있을 거다. 꽤 전력이 될 텐데. 가능하면 그 기사도 붙여서.”
랩탈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T&T 단원 일부가 루비아를 지원 하러 움직일 때.
지도를 챙기고 공작의 집 앞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제 나 혼자 있지.”
단둘이 왔던 묘족이 고양이로 변해 골목을 빠져나간다.
역시,보고서대로다.
매우 작은 집.
심지어 지키는 자들조차 없었다.
집 주위에 있는 나무들은 다 죽어 있고 앙상한 가지들이 휑한 풍경을 더 부각시켰다.
은둔자의 별장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필요한 가구 정도야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였지만,명예뿐 이라도 공작위를 가지고 있는 인간 이라기엔 지나치게 초라했다.
차갑다.
굳건히 쌓아올린 돌 사이사이로 낮은 온도가 느껴졌다.
저런 공간에서 혼자 사는 건가?
드나드는 사용인도 없고.
그 집에 관심을 보이는 자도 전혀 없다.
빼곡한 경비에,수많은 사용인이 있는 리드바렌 백작가와 무척이나 비교되어 보인다.
황실 실세인 네크론과 끈이 닿아 있으면 이럴 리 없겠지.
인간으로서의 온갖 호사는 전부 누리고 있어야 자연스럽지 않을까?
접촉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전쟁을 반대하던 이보트 후작처럼, 네크론 일당의 은밀한 견제 세력일 가능성도 있다.
집 앞에서 기다린 지 사흘째. 오늘인가.
- 끼이익.
초상화로 봤던 한 명의 인간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저게 비브리오 공작.
고운 인상의 노인이 보인다.
고매한 인품과 연륜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하얗게 센 머리칼에서 기품마저 느껴진다.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했다.
목에는 어떤 문신도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외출해서 들르는 장소들이 적힌 종이를 확인했다.
골목길을 걷는 비브리오 공작의 뒤를 밟았다.
단순한 미행.
하지만 내가 보는 그의 하루는 T&T의 다른 녀석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매주 방문한다는 가게에서 편지나
마법 따위를 쓰는 만남을 잡아낼 수도 있다.
네크론 신사회를 견제하는 조직과 만날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그때가 접촉 기회일지도.
하지만 공작은 예상대로 걸어가지 않았다.
항상 방문한다는 곳과 전혀 다른 엉뚱한 장소로 걸었다. 뒤를 돌아 보거나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미행을 눈치챈 걸까?
아니, 그 반대일 확률이 높다.
지금껏 T&T는 비브리오 공작에게 간헐적으로 미행을 붙여 왔다.
그 결과로 얻은 게 내 손에 있는 방문 지점 리스트고.
레일리에게 홉수한 은신 스킬은 웬만한 T&T 단원들을 압도하겠지.
손에 든 종이를 대충 구겨 품에 넣었다.
이 종이는 미행을 의식한 가짜.
지금 비브리오 공작이 가고 있는 장소가,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진짜’다.
공작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수도 가운데 뒷골목으로 향했다.
제국 수도의 빈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었다.
제대로 된 배수 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아 위생은 엉망이었고,치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뒷골목에 쌓이는 쓰레기의 절반이 시체처럼 보였다.
비브리오는 그 사이를 수십 번은 들러 본 익숙한 길처럼 걸었다.
대체.
꼬이고 꼬인 갈림길에서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고 스스럼없이 발을 떼었다.
도대체 저 공작의 정체는 뭘까?
워낙 익숙하고 단호한 걸음걸이 때문인지 기이하게도 녀석을 잡는
부랑자 한 명 없었다.
곧 그는 아무런 기능도 하지 않는 하수도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상체를 구부려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품에 손을 넣었다.
비브리오 공작에 대한 보고서를 다시 펴서 살폈다.
당연하게도 하수도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마법 간파 Lv.3를 발동합니다!]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반응은 없다.
지금까지는 고민 없이 정체불명의 공작을 따라왔다.
하지만 여기서는 쉽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저 만들다 만 하수도 안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일지 아예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갈 것인가,아닌가.
내 역량으로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레나의 펜던트를 손안에 쥐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 주는 펜던트가 침묵한다.
수백 번의 위기를 겪고 살아남은 인간의 직감.
탁월한 육감을 갖고 태어난 데다, 거듭 단련된 레나의 직감이 물화한 계승 아이템.
다른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여기서 그냥 돌아갈 수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공작의 뒤를 밟을 수 있을지 모른다.
최악의 경우.
여기서 죽더라도 이번 미행에서 비브리오 공작이라는 자의 정체와 성향을 알아내야 한다.
레이 루비아를 영주로 만드는 데 직결되는 중요한 정보니까.
게다가 에라스트 영주위位 분쟁 판결이 얼마 남지도 않은 지금.
찬찬히 다른 기회를 노릴 여유도 없다.
깜깜한 길을 한동안 수그린 채로
걷자 천장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저 뚫다 만 하수도가 아니었다.
왜 활용하지 않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자세히 보니 바깥에서 짓던 것과 하수도의 건축 양식이 달랐다.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된 배수 시설임이 느껴졌다.
수도 아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나냐우가 안내해 준 수도의 고대 통로도 가 봤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놀라웠다.
다만 훨씬 음습한 느낌.
아무 반응 없는 펜던트를 한 번 흘끗 바라봤다.
소녀공작에게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처럼 극복할 수 없는 위기라면 그대로 터져 버리기라도 할 텐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위기는 아니라는 이야기.
- 저벅.
한참을 아래로 더 걸어갔다.
지하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천장이 한층 더 높아졌다.
지름 3, 4미터에 높이가 20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열주 아래 깊고 어두운 구멍들이 쑥 뚫려 있었다. 탐지 스킬을 최대로 활성화했다. 숨어 있는 인간은커녕 쥐 한 마리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거대한 열주들을 따라서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위쪽을 홀어봤다.
간격을 두고 선 거대한 열주들은 하나같이 매끈했는데,칼과 정으로 이토록 매끈하게 깎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가 한참을 휘감고 비빈 결과물 같았다.
하지만 20미터나 되는 높이까지?
그걸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기둥을 위에서 아래로 더듬어 볼 때였다.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뱀.
크기는. 전혀 맞지 않지만.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게 아닐까? 이미 노인의 기척은 놓쳐 버린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내려온 통로를 가만히 되뇌 볼 때였다.
- 쉬이이익..! 쉬이익..!
더 굵고 높은 기둥들이 어둠 속에 나란히 서 있는 안쪽 깊은 곳에서, 폐하수도를 울리는 메아리가 점점 기어 올라왔다.
[〈새벽을 잡아먹는 뱀〉의 권역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경험한 광역 제압입니다.] [지혜 수치가 높습니다.]
[힘겹게 저항합니다.]
[이동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공격 속도가 50% 감소합니다.]
[전능全能 35% 하락.]
[일부 스킬이 봉인됩니다.]
‘이건..!,
펜던트 발동에 의해.
죽은 척으로 위기를 넘긴 그때와 정확히 같은 상대.
황궁. 네크론. 애벌레. 보티스. 빠르게 머릿속에 밀려드는 정보를 미처 처리하기에 앞서,
- 피이익!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부딪쳐 왔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몸을 옆으로 내던졌다.
- 쾅!
검은 물체가 바닥을 십여 미터나 깨부쉈다. 옆 바닥을 그것이 부순 그 순간에도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 끼이이익!
날카로운 꼬리가 방금 만들어진 구멍을 안쪽에서부터 길게 천천히 긁고 지나갔다.
빗나간 걸까?
고개를 저었다.
맞출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가지고 노는 먹잇감.
농락당했다.
힘의 차이는 이미 극명하다.
[더 가까이 와라.]
어둠 속에서 긴 주둥이가 옆으로
찢어지며 중얼거렸다. 사실은 그게 주둥이인지 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계화된 어둠인지,아예 만져질 정도로 짙은 축축한 암흑이 시야를 가득 먹어 치웠다.
게다가 상대는 전신이 검었다.
공격이 이어졌다.
맞춰 부수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앞쪽으로 오라고 장난치는 것처럼 몰아대는 공격이었다.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그쪽을 피했다.
거대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슬쩍 뛰어들었다.
상대가 기둥을 치면, 나도 기둥을 쳐서 쓰러트려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자세를 잡기도 전 무언가가 순식간에 기둥을 감더니, 공격이 아예 위에서 날아들었다.
- 콰직!
갑옷이 우그러지고 단번에 쇄골이 으스러졌다.
포스 실드니 뭐니 발동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빠르고 무거운 타격 이었다.
두 번.
이런 공격을 두 번만 더 당하면 전신이 으깨질 것이다.
[다 와서 주저하느냐?]
바로 옆의 어둠 속에서 희마하게 불빛이 비쳤다.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너는..!”
사흘 전 레나의 가게에서 보았던 블랙 오크였다. 펜던트를 바치고 나에게 충성을 맹세한 블랙 오크가 잔혹한 표정으로 씩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꿈틀거리더니,곧바로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묘족의 얼굴로 변했다.
양쪽 입꼬리만 억지로 들어 올려 웃는 묘족의 얼굴이 우둘투둘하게 변이했다. 레나의 가게에서 봤던 두 랩틸리언이 차례로 지나갔다.
얼굴들의 높이는 그들의 신장보다 대여섯 배는 높았다.
무심코 앞으로 한 발을 내딛다, 흠칫하며 다섯 걸음 물러났다.
변화하며 빛이 나는 얼굴 아래에 몸 따위는 없었다.
새까만 본체의 긴 촉수 끝에 달린 덩어리가 꾸물거리던 것일 뿐.
하지만 대체 저 얼굴들을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지?
긴 꼬리가 기둥을 돌았다.
바닥 전체가 진동하며 그 움직임 자체로 부스러기가 튀었다.
- 쿠르르르..
어둠 속에 몸을 담근 이 상대는 저 나름대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뒤늦게 그것을 깨닫자 칼자루를 쥔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도망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모든 힘을 칼에 집중했다.
말파스의 가호를 빌릴 수 없는 게 안타깝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 파앗!
한칼이라도 먹이기 위해 앞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백백한 어둠 속에서 급격히 커져 가는 덩어리의 존재를 느끼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만난 두 명의 검주와는 다른 종류의 압박감.
어깨 위에 얹힌 순간 뼈가 그대로 바스러질 것 같은 실제적인 무게가 느껴졌다.
앞에 그런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어서 오거라. 사흘이나 기다렸으니 뭐가 있는지 전부 다 보고 가야 하지 ^겠느냐?]
어둠 속에서 더 짙은 녹색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돌기둥 사이를 날카롭게 통과한 짙은 독안개가 갑옷을 녹였다. 공격이라기보다는 가볍게 입김을 뿜는 것 같았는데 빠르게 친 포스 실드가 단번에 녹아내렸다.
뒤로 훌쩍 물러났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독을 적어도 열 배는 진하게 능축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독연을 막을 정도의 실드를 자유롭게 쓰다니. 역시 재미있는 녀석이로구나.]
안쪽에 있는 거대한 뭔가가 다시 한 번 웃으며 빠르게 독을 쁨었다. 같은 공격임을 알고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범위가 너무 넓었다.
포스 실드 위쪽이 먼저 뚫리면서 독안개가 투구를 스쳤다.
투구의 절반이 한 번에 부식되며 하얀 두개골이 드러났다.
두개골에도 약간 독이 닿으면서 체력이 떨어졌다.
상대는 이미 내 정체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둣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압도적인 정보의 불균형.
괜히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대체 년 누구냐?”
[이것도 받아 보거라.]
- 화르르!
허공에 하얀 불꽃이 솟아올랐다. 주문이나 영창은 물론,지팡이에 기운이 맺히는 것 따위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하얀 불꽃이 굽이굽이 좌리를 풀며 나를 쫓아왔다. ‘마법 간파.’
얼개가 보였다.
굽이진 불꽃은 하나가 터지고, 그다음 매듭,다음 매듭 순으로 이어서 터질 것이 느껴졌다.
한 번 맞는 순간 끝.
‘냉기 폭풍..
- 휘이이잉!
두 칼을 대각선으로 겹쳐 앞으로 휘둘렀다.
좌리를 튼 불꽃의 처음 두 마디는 얼어붙었지만,그다음 세 마디가 연속으로 터졌고,그로 인해 공기가 폭발하며 뒤로 튕겨났다.
몸이 열주에 부딪쳤고,양옆으로 불길이 화르르 터졌다. 검에 서려 있던 한기가 모조리 증발했다.
뜨거운 불꽃이 칼에서부터 전신을 훑으며 옮겨붙었지만, 나자빠질 정도는 아니었다.
‘질주.’
불꽃이 터지는 순간 어둠이 살짝 물러가며 적이 드러났다.
검기를 뽑아 앞으로 달렸다.
앞에 나타난 거대한 하체를 중력 조작으로 잡아내고,아직 달아오른 돌을 디딘 채 육중한 고깃덩이를 왼쪽 아래부터 오른쪽 위까지 크게
[하하하. 다재다능하구나.]
아랫부분을 보호하려는 둣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앞발이 튀어나왔다.
- 쾅!
휘두른 앞발에 옆으로부터 맞아 날아갔다.
공중에서 포스 실드를 밟고 버텨 도약해서 몸 사이로 뛰어들었다.
튀어나온 발톱에 칼이 걸렸다.
진녹색 기운이 모인 발톱은 무척 날카롭고 단단했다.
뭐든 벨 수 있는 검기에도 뚫리지 않았고,머리 위에서 누르는 힘은 잠시도 버틸 수 없었다.
빠르게 자루 끝을 잡자 칼이 조금 더 길어졌다. 비스듬히 자세를 틀며 발톱 사이를 강하게 찔렀다.
‘흡착.’
빨려 들 듯 찌르자 거대한 앞발이 흠칫하며 몸체를 뒤로 물렸다.
그러나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상대도
진심으로 응하고 있지 않았다. 다시 도약해 칼을 휘둘렀다.
[좋구나!]
녀석에게 장난감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군중 제압에 당해서 모든 능력치가 하락된 상태.
한계가 명백했다.
최대한으로 뽑아낸 검기는 원래 길이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앞발의 궤적에 불안정한 전하들이 생기며 번개가 긴 선처럼 몰아쳤다.
‘뇌전.’
같은 뇌전을 쏘아 막아 냈다. 번개와 번개가 부딪쳤다.
가까스로 상쇄하긴 했지만,근처까지 밀린 탓에 뼈를 타고 누전이 흘렀다. 잠깐 동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감전이 심했다.
소모전이라면.
질 수밖에 없다.
도망칠 수도 없고,점점 앞으로 끌려가기만 하고 있었지만 뾰족한 타개책이 없었다.
[역시. 훌륭해.]
- 철픽.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기분 나쁜 축축함이 느껴졌다. 뭐지?
나는 상황 파악을 위해 불꽃을
- 치직. 치지직.
하지만 칼끝에서 불꽃이 일어나지 않았다.
[패턴이 다릅니다.]
[허가되지 않은 마력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 덥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