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76화 (276/458)

빛의 방패를 들고 있던 왼팔이 반 이상 잘려 나갔다.

방패가 바닥에 떨어질 때 반걸음 앞에서 칼을 휘둘렀다.

두 칼이 서너 번 엇갈렸다.

한쪽 팔에 철철 피를 흘리면서도 레일리는 비범하게 견디고 있었다. 물론 거기 맞춰 줄 필요는 없었다.

한 자루 칼을 더 뽑아 비어 있는 레일리의 배에 박았다.

레일리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은 흔들렸다.

- 퍽!

가슴팍을 발로 밟은 채 배에 꽂힌

칼을 천천히 뽑아냈다.

칼을 위로 당기는 순간순간마다, 눈부신 재능을 가진 인간이 무엇도 꽃피우지 못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 가는 비참함이 느껴졌다.

어딘가 맺혔던 진한 갈중이 몸을 떨며 부르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레일리는 남은 팔로 억지로 칼을 휘둘러 보려 했다.

배에서 천천히 뺀 칼로 레일리의 남은 손목을 자르고,슬며시 목을 베었다.

레일리의 목에서 피가 흘렀다.

잠시 목덜미를 짚으려던 레일리는

아무 손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눈빛이 흔들렸다.

- 툭.

과다한 출혈로 그의 몸이 완전히 퍼졌다.

원래라면 레안드로가 양지에 끌어 올렸을 한 인간이 지하 세계에서 양손이 잘려 죽었다.

발로 시체를 치우고,땅에 떨어진 ‘빛의 유물’을 주웠다.

[일리엔의 눈을 습득했습니다!]

[반경 10미터 내에서 마왕의 권능 상당수가 무력화됩니다.]

[일리엔의 호감을 살 경우,방패의 크기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며 다양한 추가 효과가 발생합니다.] [현재 호감도: 최제 [다음 사항이 반영되었습니다.]

- 보티스의 계약자.

- 종족: 언데드

[음습한 마왕들이 이 유물을 무척 싫어합니다.]

확실히,지켜보고 있다는 건가.

보티스가 느끼는 불쾌감이 내게도 닿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레일리에게 손을 뻗었다.

‘정수 흡수.’

[무기 적응 Lv.l을 홉수했습니다!]

- 손에 든 무기가 어떤 것이라도 금세 적응해서 사용합니다. 모든 종류의 무기에 최소 숙련도 200이 추가됩니다.

일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Lv.2 정도는 무슨 무기를 들든지

적용된다는 이야기.

확실히 다재다능한 녀석이다.

초록색 빛은 거기까지.

흡수는 빠르게 끝났다.

- 쾅! 쾅! 쾅!

미로를 부수는 소리가 저쪽 절반 이상 왔다는 게 느껴졌다.

속보로 걷는 속도만큼 빠르다. 불안감이 퍼진다.

빛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이상... 보티스의 가호는 먹히지 않는다.

은폐 불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나아가야 할 앞쪽 미로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고문이나 공포의 비명은 아니다.

생명이 빠져나가며 나는 짤막한 단말마였다.

‘탐지.’

수십 미터 앞에서 기척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대편 출구를 일렬로 막은 푸른 갑옷의 기사들은 도망가는 자들을 한두 합에 살해하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흰 사제복을 입은 인간들이 끼어 있었다.

귀중한 장부도,그동안 소중하게 모아 왔던 재물도 허무하게 핏물과 함께 바닥에 뿌려졌다.

레안드로 후작은 분명히 저들의 합류를 거절했던 것 같은데.

과잉 충성인지,레안드로가 그때

지켜보는 시선을 의식해서 연기한 것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어쨌건 여기서 아무도 도망갈 수 없다는 게 중요했다.

사제복을 입은 인간들은 쓰러진 시체를 계속 뒤졌다.

“없다.”

“여기도 없어요.”

하양 일색의 사제복.

뭘 찾고 있는지,누구인지는 몹시 명백하다.

후작의 푸른 사자들은 일리엔의 교단과 손을 잡은 것이다.

최정예만 뽑아서 온 건지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

- 툭.

나는 바닥에 빛의 유물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한참을 걸어간 뒤, 복도의 어둠에 몸을 숨겼다.

[진실의 빛에서 멀어졌습니다.]

[은폐의 다시 가호가 적용됩니다!]

- 광! 광!

레안드로 후작이 미로를 부수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시간이 없었다.

“어,저기 뭔가 반짝이는 게..!” 하나,둘.

둘의 목을 두 자루의 칼이 뚫고 튀어나왔다.

깜짝 놀라는 순간에 다시 한 명의 목을 베어 냈다.

기습의 효과는 거기까지였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었는데도 푸른 사자 기사단은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반격했다. 순식간에 네 명으로

이루어진 포위망에 갇혔다.

방금,이 정도 수준의 기사들을 암살했다는 게 정말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흡착.’

미처 뒤로 빠지지 못한 한 명의 신관을 슬쩍 끌어당겨 앞에 강제로 세웠다.

찔러 오던 푸른 사자의 칼이 남자 신관의 배를 찔렀다.

내장이 아래로 쏟아지자 기묘한 상쾌함이 느껴졌다.

뒤에서 비명을 질러 대고,제대로 칼질을 하지 않냐고 꽥꽥거리는

신관들이 군처럼 느껴졌다.

칼을 내민 푸른 사자는 미세하게 흔들렸고,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어깨에 칼을 찔렀다.

세 명이 동시에 합공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물러나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으면...

- 광! 광!

후작은 거의 도둑 길드 사무실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여기서 그곳까지는 아무런 함정도

- 광!

벽을 연달아 통째로 무너뜨리는 소리를 들은 푸른 사자들이 일제히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

칼끝 위에 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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