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83화 (283/458)

298화 Unearth (18)

“왜 그러지?”

“그게,워낙 제멋대로인 분이라. 제게는 연락도 안 주고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건지 생각하니 답답해져 그렇습니다.”

숨을 가다듬은 선장이 말을 이었다. “바르보아 형님입니다.”

선장은 나에게라면 말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듯 입을 열었다.

“저와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친한 선배이자, 비밀 조직에서 저보다

한 계급 높은 분이죠. 저희도 무척 만나기 어려운데,알고 계시다니 역시 대단하군요.”

우연히 던져 봤을 뿐인데 굉장히 잘 아는 사이인 듯했다.

“글쎄. 딱히. 그냥 다른 상대와 거래할 때 본 적이 있을 뿐이니까.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 거야.”

하지만 그 말에 넥스몬드 선장은 한층 더 감탄하고 있었다.

“그분은 특명전권공사. 은밀하고 가장 중요한 고객만 골라 상대하는 분입니다. ‘다른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거래 현장에까지 계셨다니 역시 제가 귀인을 뵈었군요.”

착각이라고 수정해 줘야 할까.

어쨌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암살교단(레드 플레이크) 소명수녀 否命修女,엘윈 에사우. 코드네임 별빛청여우.

황제 암살의 입회자인 여우 가면이 보여 준 힘을 생각했다.

검고 얇은 장갑에서 사르록 빼진 하얀 손은 분명히 레안드로 후작을 ‘한 번’ 살해했다.

심장이 깨진 상태에서 놈을 살린 엘릭서의 효능이 터무니없었을 뿐.

유산이라는一 터무니없는 기술의 총체까지 가지고 있는 여자.

그런 존재와 거래하려면,사소한 심부름이라도 격을 맞춰서 고위급 녀석이 나오는 게 당연하겠지.

“이제 정회원 자격을 얻는다면, 그와도 거래를 할 수 있나?”

넥스몬드가 살짝 곤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저희 모두가 독립된 기관이기는 하지만. 카드를 보이면 대부분은 반가워하며 거래에 응할 겁니다. 회원인 만큼,탁월한 거래처인 건 이미 중명되었으니까요.”

저희는 서로의 감정 능력을 굳게 믿습니다,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바르보아 형님은 성격이 제멋대로라. 원하지 않는 상대는 절대 자기 배에 태우지 않습니다.”

“으음.”

“위협을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상관없다 생각하고 반항하겠지요. 혹 만나면 부디 잘 구슬려 주시기를. 저에게 연락 좀 하라고 말씀해 주시면 거듭 감사하겠습니다.”

“•••그 정도는 해 주지.”

딱히 요청할 사안은 없다.

어떻게 보면,나 때문에 후작에게 살해당한 인간의 정체가 궁금했을 뿐이다.

“더 궁금한 건 없으십니까?”

굳이 따지면 하나 더.

“그도 당신처럼 몸을..

미처 끝내지도 않은 질문이었지만 선장은 빠르게 알아들었다.

“아닙니다. 조금도 개조하지 않은

신체. 금속이라고는 귀걸이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몸입니다.”

“ ᄋ ,,

ᄑ....

그럼에도 혼자 커다란 배의 닻을 올리고 돛을 폈다는 이야기인가.

그것만 봐도 범상치 않다.

고객을 고를 자부심이야 충분히 가질 수 있겠지.

- 철썩...

뱃전에 거품이 부서지는 동시에 그 위로 다시 파도가 온다.

푸른 파도 위로 하얀 새들이 비죽 솟았다. 날개 큰 새들은 하늘로도 물 위로도 자유롭게 움직이며 붉게 눈을 빛냈다.

한 번의 낙하마다 긴 부리 끝에 물린 은빛 물고기가 펄떡이며 몸을

비틀었다.

단단한 부리의 각질은 물고기의 비늘을 사정없이 뜯어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바탕의 살육을 바라보며 선장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말해라.”

“황실을 적대하려고 하신다는 거, 자세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뚜렷한 계획은 없다.

슬라임에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은 일단 루비0■[를 도와달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넥스몬드는 슬라임과 달리 별다른 의문조차 표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라는 듯 순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 말씀하신 의뢰보다야 훨씬 간단한 일입니다. 그분께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지요.”

- 똑똑.

선장실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지휘가 필요한 시점인 모양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간 선장은 돛을 조금씩 접었다.

쾌속 항진하던 무역선은 그 묵직한 적재를 반영하듯 조금씩 느려졌다.

어느새 수평선은 사라지고 해안에 있는 작은 항구가 보였다.

저곳인가.

구불구불한 해안선에서도 안으로 특히 움푹 들어간 곳이었는데,좋은 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선박을 넣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갑판에 올라간 선장은 잠시 지휘를 내리다가 직접 키를 잡았다.

정밀한 제어 장치와 구동 장치.

기계로 갈아 끼운 몸이기 때문일까.

묘기에 가까운 정묘한 조타술 덕에, 배는 두 절벽 사이의 완벽한 중앙을 안정적으로 통과하며 정박했다.

양쪽에 있는 높은 절벽 안쪽으로 모래사장에 몇 대의 작은 어선이 보였다.

큰 선박이라고는 한 척도 없었지만, 정박할 수 있는 공간만큼은 의외로 넉넉했고,창고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은 커다란 회관도 보였다.

배에서 내린 선장이 항구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키니스 만. 키니스 항구입니다.

유사시 저희가 은신처로 활용하는 곳이죠.”

“그런 것까지 말해 줘도 되나?”

그 물음에 선장이 피식 웃었다.

“물론. 여기는 황실의 감시로부터 숨기 위한 장소입니다. 바로 황실의 병사들에게서 저희를 구해 주셨는데 말씀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넥스몬드의 눈이 흔들림 없는 굳은 신뢰로 반짝였다.

나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물건과 인간을 접하며 쌓아 온 자신의 안목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그러면 일단 연합에 전파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카드를 보이신다면 대부분 통할 겁니다.”

“이름 같은 건 말하지 않아도 상관 없다는 건가.”

“제가 아직 존함을 들을 자격까지 되지는 않는 것 같군요. 루-륨부터 구해 온 뒤 생각하겠습니다.”

황실에 저항한다는 나에 대한 선장 나름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말해 줄 이름도 없지만.

물건은 진네이 유베를 접촉점으로 삼아서 받겠다고 이야기를 끝낸 뒤, 선장은 나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일정이 없다면 함께 가셔도 좋겠습니다만. 제가 거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

꽤나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다. 목숨을 구해 줬다는 건가.

따라가면 확실히 이것저것 배울 게 생길지도 모른다.

저런 첨단 의체를 누가 전달받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슬라임에게 받은 지도를 떠올렸다. 멀지 않은 곳에 네크론 신사회에게 착취당하는 녀석들의 부락이 있다.

넥스몬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배낭에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여비로라도 써 주십시오.”

한눈에 보기에도 두둑한 녀석이다. 받아 든 채 인벤토리를 열어 넣었다.

선장은 아무리 봐도 적응되지 않는 모습인 둣 입술을 핥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놀랍군요..

〈뭐 하냐. 서커스냐? 네 서커스는 저것보단 비싸게 받아야지.〉

아까부터 계속 침묵하던 아이작이

문득 말을 걸었다.

어찐지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선장을 놓아두고,지도를 따라 육지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동부 산맥 아래의 해안에서 시작한 여정이라서 숲길은 어둡고 백빽했다.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여러 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솟아 있고,길은 숲이다가도 곳곳이 바닥으로 꺼지는 절벽들이 곳곳에 나타났다.

어둡고 조용한 길을 걷다가 까마귀

인형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이작?”

선장과 헤어질 때 한 마디.

그 외에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녀석이 불안했다.

“괜찮은. 거냐?”

〈눈 큰 고블린. 그놈 기억을 바꿔 끼울 때 좀 무리를 했다.〉

까마귀 인형이 힘겹게 눈꺼풀을 올리다 다시 감았다.

“.마력을 넣어 주면 되나?”

얼마 전에도 넣었지만 효율이 점점 나빠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작이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를 간신히 들어 올렸다.

〈아니. 지금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조절하는 중이니까.〉

“루-륨은?”

〈전에 말했잖아. 너한테서 빼는 건 어떤 경우에도...〉

말을 이을 힘도 없다는 둣 녀석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아이작을 위해서라도 루-륨을 손에 넣어야 한다. 이대로는 그가 의식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인밴토리에 나를 넣어 둬라.〉

“인벤토리에 너를?”

까마귀 인형이 눈꺼풀을 작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나는 빛과 단절될 필요가 있어. 지금도 나를 깎아 낸다. 힘을 쓴 걸 일리엔이 알아채고. 어서.〉

나뭇잎 사이로 새들어오는 미세한 햇빛조차 힘겨웠던 것일까.

아니,그나마 숲속이라서 이만큼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 스록!

공간을 열고 아이작을 안쪽에 집어 넣었다. 몇 배로 작아진 모습이 잠시 비쳐 보이다가,공간을 닫자 그대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저 안쪽에 있으면 회복이 가능할까. 아이작을 넣고 닫은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다 목표를 향해 걸었다.

지금부터는. 가 보지 않았던 길들. 회귀를 거치면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경험이다.

붐텅을 만난 뒤 기억을 조작해서 인벤토리를 얻어 낸 것도 아이작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의 도움 없이 지금처럼 순탄하게 지나올 수 있을까?

길은 점점 더 좁고 험해졌다.

제대로 발을 내디딜 만한 장소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기이하게도 햇빛은 더 내리됐다. 숲을 구성하는 나무들이 온통 말라비틀어져 햇빛을 가릴 만한 잎들이 모두 하얗게 죽은 까닭이었다.

고블린 부락과 달리 비릿한 냄새나 쌓여 있는 시체는 한 구도 없었지만, 걸을수록 숲 전체가 점점 시체로 변해 갔다.

지도를 다시 떠올렸다.

이곳에 있는 건...

끄로뜨 부락.

복슬복슬한 원통형 몸을 가지고, 땅을 파고 사는 마물들이다.

그리 위협이 되지 않는 녀석들.

이들을 착취하는 네크론 신사회의 수준도 깊게 생각할 게 없다.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다가,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을 간단히 살육하고 부락을 해방시켜 슬라임의 호감을 사면 끝날 일이었다.

지금 내 수준에서 위협이 될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혼자

생각해서 일을 처리한다는 것만으로 슬며시 긴장감이 올라왔다.

나도 모르는 새 아이작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네 생각은 어떤데?]

[지금까지 네가 말한 일을 열 번도 넘게 죽으며 직접 겪었잖아?] [스스로 생각해 봐. 나보다는 훨씬 좋은 답을 내놓을 텐데?]

녀석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일단은...

나는 어둠 속에 숨어들었다.

적을 발견할 때까지 완전한 은신을 유지하는 게 낫다.

아무리 약한 적이라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내 탐지에 잡히지 않는 유령들이 언제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고.

완벽하게 적과 상황을 파악하고一 이후에 움직인다.

만에 하나.

그 가능성마저 없애 버리자. 돌다리도 두드리고 싶은 심정.

인벤토리 속에 잠든 녀석은 쓰러질 정도로 나를 도왔다.

여기까지 끌고 온 상황을 허무하게 처음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그러면...

‘집중.’ ‘명상.’ ‘탐지.’

[활성 상태로 전환합니다.]

[스킬 효율 400% 증가...]

[탐지 범위가 추가 증폭됩니다.] [탐지 정확도가 추가 증폭됩니다.]

‘추적..

[추적 Lv.15 발동!]

[심안心眼(C플러스) 적용.]

[특수 상태: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도달...]

공략 대상의 수준을 아득히 웃도는, 최고위 스킬들이 연달아 땅 아래와 위를 완벽하게 장악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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