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89화 (289/458)

308화 Unearth (28)

〈•••그래도 너무 위험했어.〉

상황은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경기에 직접 나서는 루비아에게 말 을 걸었지만,루비아가 자신을 믿어 달라고 하는 까닭에 군중속에 숨어 바라보기만 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지?〉

루비아가 싱긋 웃었다.

= 방금도 위험하다고 하셨잖아요. 혼날까 봐,말리실까 봐 알려드리지 않았어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녀가 눈치를 보둣 살짝 고개를 숙이고 나를 힐끔거렸다.

〈아니,내가 뭐라고...>

어차피 결정은 루비아의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노심초사 마음 졸였던 건 사실.

혹시라도 루비아의 몸에 위해가 발생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관중석 가운데 숨어 있으며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는 되어 있었다.

커크의 목이 두 번 연속 부러지는 순간에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벌어진 일에 대해 천천히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알았다.

에라스트에서 입지를 다진 이후, 그녀의 정치력은 감탄할 만한 데가 있었다.

몇 번씩 거듭 살해당하던 루비아.

하지만 빛나는 재능에 비해 처한 상황이 너무 안 좋았을 뿐이다.

= 화. 나신 건 아니죠?

잘됐으니 할 말은 없다만.

발생 가능한 모든 위험은 어차피 그녀가 감수했던 것이기도 하고.

〈.그럴 리가. 아주 멋지더군.〉

“정말요?!”

가벼운 칭찬이었지만, 루비아는

머릿속으로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기뻐하며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될 둣 좋아했다.

〈정말로.〉

단순한 맞장구에 불과한데,정말 기분이 좋았는지 온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후후훗..!”

이게 저렇게까지 반응할 일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때 였다.

- 똑똑.

귀빈실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루비아가 황급히 목을 다듬었다. “크흠! 네,들어오세요.”

문밖에 선 시녀가 천천히 방문을 열고 말했다.

“루비아 님,이제 연회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죽음을 애도한다는 명목으로 훨씬 축소되어 열렸지만,주최 측에서는 이미 예상한 대로라는 둣 자연스레 연회를 진행했다.

참석자가 도합 열 명이 넘지 않는 소규모 연회.

그 면면은 말할 것도 없이 주최자 그라스미어 부자,배불뚝이 유블람 영주의 연기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슬라임.

그리고 넥스몬드와 유베의 소개로 왔다는 상인 연합의 몇몇 간부와 루비아다.

나 역시 그라스미어의 귀빈이라는 명목으로 슬쩍 끼어든 상태.

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상인들의 관심은 영주로 즉위한 챔들러가 아니라 온통 나에게 쏠려 있었다.

“저..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대는 상인들에게,상대하기 귀찮아 그냥 루비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이자를 통해서 해라.”

그러자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새 영주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영주님.” 상인들의 인사는,어처구니없게도

주인공인 챈들러가 아닌 루비아를 향하고 있었다.

루비아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내저었다.

“갑자기 그런 말씀들을 하시면..

전임 그라스미어 영주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유일한 계승자시니 당연하지요. 게다가 그동안 실질적인 업무들을 맡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원래 영주나 다름없으셨죠.”

한동안 인사치레가 이어졌다.

오가는 대화를 들어 보면 역시나 커크를 애도하기 위해 작게 연회를

연 게 아니라는 건 명백해진다.

오히려 놈의 죽음을 적극적으로 축하하는 쪽.

“에라스트의 새 영주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상인들마저도 이런 사태를 완벽히 예측한 건지,자잘한 호의가 계속 이어진다.

“이런,자네들. 내 들에게 주는 선물은 없나?”

“하핫,그쪽 선물은 이미 앞서서 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농담 속에 시선이 맞춰진다.

있었다.

루비아에게 전해지는 자잘한 선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나와 루비아를 번갈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루비아 님은..

챈들러는 궁금해 도무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어떻게 그분과 그렇게 친해지신 겁니까?”

- 바사삭.

루비아가 선물받아 맛보고 있던

특제 쿠키가 입안에서 부서졌다.

“하핫. 부러우신가요?”

챈들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군요. 영주의 짐을 메고 있지만,한 사람의 검사로서 저분에게 매료되어 말입니다.”

여기서 저렇게 진지한 분위기로 엉뚱한 소릴 하다니.

곤란한 녀석이다.

“뭐,제가 전생에 그만큼 큰 덕을 쌓았나 봐요.”

농담이라고 생각한 건지 챔들러의 얼굴이 잠깐 굳어졌다.

.사실인데.

= 저분,질투하시나 봐요.

질투는 무슨 질투.

〈황당한 소리...〉

= 저를 정말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어요. 해골님이 저분이랑 친하게 지내 주지 않으면 저한테도 귀찮게 굴 것 같은데요?

왠지 루비아가 비실비실 웃는 것 같았다.

자기가 말해 놓고도,시선이 모두 자기에게 쏠리자 챈들러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냥. 어떤 인연인지 궁금 했을 뿐입니다.”

첸들러가 머리를 긁적였다.

유치한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말했다.

“챈들러..

“예,옛!”

“그라스미어 영주가 된 걸 다시

축하한다. 잠깐 자리를 비우지.” “아. 어디 가십니까?”

= 어디 가시는 거예요?

“산책. 금방이다.”

두 영주의 물음에 가볍게 답하고 문을 나갔다. 추적을 걸어 놓고 있던 커크의 부하들이 점점 탐지 범위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도망가는 건지,에라스트 쪽에서 무언가 해 보려는 건지는 모른다.

어쨌건 화근을 남길 필요는 없다.

- 우두둑!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던 무리는 실제로 목뼈가 뒤로 꺾여 부러지는 순간에도 끔찍한 고통만 느낄 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죽어 갔다.

한 명 한 명에게 오래 쓸 시간은 없었고,시선을 피하기 위해 바로 하나씩 산에 깊이 파묻었다.

평평한 스무 구의 무덤은 산길 옆쪽에 금방 만들어졌다.

커크의 죽음 뒤 도망간 무리를 궁금해할 자는 아무도 없을 거다.

친족의 권한으로 그라스미어 근처 야산에 야생동물이 파헤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땅을 팠다.

꿈틀거리던 쓰레기도 움직임만 멈추면 평등한 고기가 된다.

매장 뒤 루비아는 에라스트로 떠났다.

챔들러는 좀 더 머무르기를 원하는 눈치였지만 루비아는 할 일이 많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은신을 유지한 채 루비아의 뒤에 계속 따라붙었다.

에라스트에 막 도착한 루비아에게 보고할 건이 있다는 듯 경비대장이 내성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무슨 일인가요?”

커크가 그라스미어에서 죽었다는 정보가 벌써 퍼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전혀 엉뚱한 말을 꺼냈다.

“루비아 님을 뵈러 왔다는. 크홈. 괴물. 이 있습니다.”

그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일단 감옥에 가둬 놨습니만.. 누군지 감이 잡혔다.

하필 그라스미어에 있을 시기에 여기 도착했다니.

운이 없는 셈이다.

내 손님이라고 전하자마자 그녀가 경비대장을 재촉했다.

“어디죠? 빨리 안내해 주세요.”

“앗,네! 네!”

경비대장이 안내한 지하 감옥에는 더러운 모포 위에서 끄로프 족장이 뒹굴거리고 있었다.

“이,이 녀석입니다만..

“안녕하십니까?”

= 귀여워요! 땅을 파고 다닌다는 끄로프잖아요?

〈아는 건가?〉

= 그럼요. 이런저런 책에서 종종 본 적이 있거든요.

루비아는 경비대장과 다른 간수를 자리에서 물리고,환하게 웃으며 족장의 묶인 손을 풀어 줬다.

“여기는 어떻게 오신 건가요?”

두 발로 직립한 족장은 한 손을 가슴에 대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까마귀와 함께하는 분께서 저를 여기로 보냈습니다. 농업과 광업 증진을 획기적으로 도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말인가요?”

= 아참,그 까마귀분은 어떻게 된 건가요?

〈사정이 있어. 잠시 쉬고 있다.〉

지하 던전 아래로 끄로프 부족의 존재가 느껴졌다.

네크론 신사회가 한 것처럼 계속 감시하고 있지 않은 이상,언제든 던전 아래로 굴을 파서 제 족장을 구출해 낼 수 있는 상태다.

족장이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를 자신 있게 끄덕였다.

“물론이죠.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자원을 탐색하는 데 저희 종족만큼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이는 다시 없지요.”

채굴은 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땅은 그냥 파고 놀아야 즐거운 거 아닌가요?”

정중하게 인사하던 끄로프 족장이 순간 당황한 기색이 되어 물었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신 겁니까?”

“에이,겉핥기 정도죠.”

“그래도 놀랍습니다. 저희 부족을 구원한 분의 부탁이라서. 굉장히 악독한 인간이라도 도와드리려고 했습니다만,저희를 알아봐 주실 정도의 분이라니! 이럴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일단 밖으로 좀 나가 주시겠습니까?”

루비아와 감옥 밖으로 나갔을 때, 암반이 아닌 흙 부분으로 끄로프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밖에서부터 들어올 수 있는 굴을 파고 온 것이었다.

끄로프는 뒷발로 잡고 있던 작은 묘목 한 그루를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굴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어,이게 뭐죠?”

“후후. 인간님도 이건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태양덩굴입니다. 거의 아는 사람이 없지요.”

“태양. 덩굴?”

곡식에 미치는 안 좋은 영향들을 흡수하는 마법 같은 품종이죠.”

무척 뿌듯한 표정을 짓는 족장을 보며 루비아에게 물었다.

〈너도 몰랐다니,무척 안 알려진 품목인가 보군.〉

루비아가 웃음기를 띠고 대답했다.

= 아뇨,식물학 책에서 몇 번이나 읽었어요. 하지만 고생해서 가지고 왔는데 설명하는 보람도 있어야죠. 다 알면 기운 빠져 할걸요? 으흠,

일할 의욕도 좀 사라질지도.

<...〉

- 투둑!

흙을 뚫고,다른 끄로프가 뒷발로 또 하나의 묘목을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이건,히비스커스라는..!”

어쩌면 루비아는 끄로프 족장이 상상한 것보다 ‘악독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에라스트에 커크의 죽음을 알리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었다.

슬퍼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통곡과 비명 대신 개운한 환호가 도시와 내성을 가득 메웠다.

거의 남아 있지도 않던 잔당은 소식이 들리자마자 급히 도망가려 했지만,경비대에게 체포당해 지하 감옥에 갇혔다.

모두의 찬성과 환호 속에,유일한 혈족이자 ‘정당한 계승자’ 루비아의 영주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총관,부상당한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크리스티나,무덤까지 그녀를 수행했던 시녀장,그리고 성안의 다른 중역들이 뿌듯한 얼굴을 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자마자 하루 만에 커크를 죽이고,루비아를 무리하게 영주로 만들었던 그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그때 감금되어 고문당하던 루비아 지지파들이 격정에 차 있었다면, 지금의 이들은 편안해 보인다.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느낌.

그렇게 되어야 할 대로 자연히 이루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게,

- 띠링!

기괴한 효과음이 울리며, 눈앞에 푸른 상태창이 길게 펼쳐졌다.

그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단어로 도배된 상세한 말의 파도였다.

파도는 내 인식의 수위를 아무렇지 않게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S급 시나리오, ‘레이 루비아’가 진행 중입니다.]

[시나리오가 분기를 넘어섭니다.]

[‘보잘것없는 쓰레기에게 사망’ 분기의 인과가 시나리오 개축으로 인해 소멸됩니다.]

[‘마녀재판魔女裁判’ 시나리오의

인과가 추가로 중가합니다.]

[통치(假) Lv.2가 계승됩니다.]

[통치(眞) Lv.2.]

[루비아의 호감도가 6 올랐습니다!] [통치,외교 판정을 시작합니다.]

- 그라스미어와 매우 높은 우호 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 유블람과 매우 높은...

- 특수: 상인 연합과 매우 높은 우호 관계를...

[외교 판정으로 인해 통치 수준이 매우 크게 올라갑니다.]

- 띠링!

[통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통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통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통치 레벨 옆에 있는 하얀 칸이 세 번을 가득 채워지고,옆에 새로 떠오른 칸을 반쯤 채워 갈 때였다.

[추가 농업 판정]

[희귀 묘목을 보유 중입니다.]

- 태양 덩굴,히비스커스,절벽 마늘, 마운드 스니움, 밀 쐐기풀.

[통치 수준이 크게 올라갑니다.] [통치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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