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93화 (293/458)

312화 Unearth (32)

“함정을 경계하지는 않던가?”

“그만큼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는 녀석이니까요.”

“서둘러야겠군.”

노을이 조용히 날개를 말았다.

수도 교외의 제7 무연고 묘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별도 달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날벌레 우는 소리만 들려왔다. 앙상한 묘비에 매달린 마지막 불빛까지 날벌레들이 갉아 먹은 것 같았다.

“나는 매복해 있지.”

얇은 가면을 쓴 트로핀 나냐우는 묘지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나무의 기척,돌의 기척,낙엽의 기척은 느껴졌지만 그녀의 기척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다.

나도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후작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 없다.

아쥬라의 마법사들을 데려올지, 푸른 사자 기사단이 대거 나타날지 모를 일이었다.

최대한 은폐하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울던 벌레들마저 지쳤는지 입을 다문 채 망자들의 곁에 누워 있었다.

묘지는 고요했다.

그 고요함을 따라 한 명의 인간이 천천히 약속 장소로 걸어왔다.

허리에 칼만 차고 투구도,갑옷도 없는 평상복 차림의 남자였다.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기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한 발자국씩 가까이 올 때마다 묘지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 같았다.

만나자고 불러냈으면서도, 정작 눈앞에서 똑바로 걸어오자 괜스레

불안해졌다.

도착하기 전부터 활성화하고 있던 탐지 스킬로 주위를 훑었다.

남자 외에 다른 기척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였다.

마법사를 데려오지도,푸른 사자 기사단과 동행하지도 않았다.

척 보기에 수상한 낌새는 없다.

남자는 약속 장소인 묘지 가운데 공터에 섰다.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바라봤고, 칼은 완전히 칼집 안에 수납되어 있는 채였다.

순간 세찬 바람이 일면서 수풀과 남자의 외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은신을 풀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역시 아직 안 되는 건지, 스무 걸음 안쪽으로 다가가기도 전에 남자는 빤히 내 쪽을 바라봤다.

우연이라고 착각하래야 착각할 수 없는 고정된 시선이었다.

남자는 팔짱을 풀고 살짝 아래로 손을 내렸다.

“나를 뒤에서 조종하려고 한 게. 네놈인가? 언데드라니.”

않은 건조한 어조였다.

일부러 딱딱하게 굴거나 높낮이를 없앤 건 아니다.

그런 말투가 평생 해 온 것처럼 자연스럽다.

배 위에서 나를 쫓아올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이게 원래의 성격인지도 모른다.

나른하게까지 느껴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가 나를 바라봤다.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줄 말이 있다.”

인간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고도 후작은 칼은 뽑지 않고 있다.

“얘기나 한번 들어 보지.”

살기도,압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대화가 통할지도 모른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레안드로 후작,황실이 일으키는 전쟁을 막아라.”

“.흐음.”

그가 목을 살짝 돌렸다.

반역을 하라는 이야기로 해석되기 충분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격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에 짚이는 게 있나? 제국의 4검주.

감찰을 맡은 녀석인 만큼,황실의 이면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랑스 공작의 유령들이. 전쟁 반대파를 암살하는 건 알고 있나?”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권력 다툼이지. 전쟁으로 이어지더라도 개입할 이유는 없다. 나는 제국의 칼일 뿐.”

기묘하다.

정작 전쟁을 일으키려는 황제, 클레멘스 2세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일단 녀석의 말을 그대로 받았다.

모르겠지만,놈들이 마왕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뭐?”

그가 흠칫 눈썹을 치켜들었다.

“소녀 공작은 보티스의 대리자, 비브리오의 가호를 받고 있다.”

무심코 별칭으로 말해 버렸지만, 상대는 곧바로 이해한 듯했다.

“로랑스 공작이. 마왕의 가호를 받는다고?”

먹히고 있다.

그는 수도의 어둠을 없애기 위해 보티스의 대리자를 추적하고 있다.

세력일 터.

내친김이다 싶어 끝까지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금이야 공작이 당신 편인 것 같겠지만,결국 공작이 아끼는 건 자기 자신일 뿐이다. 당신도 그걸 잘 알고 있을 텐데?”

후작의 입술이 비틀린다.

그러나 비웃음을 품는 게 아니라 고민에 빠진 표정.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

녀석도 짚이는 구석이 있겠지.

유령들의 활동을 감지할 수 없지 않았나? 마왕이 내린 은폐의 가호 덕분이지.”

“비브리오가. 공작과 유령들에게 내린 가호를 거둔다고 협박하면, 공작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너를 살해할 거다.”

공작이 레안드로에 대해 한탄하던 모습이 떠올랐지만,사정이 어쨌건 죽였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그런 건 정황일 뿐이지. 증거도 하나 들고 오지 않은 주제에 공작 각하를 적대하라는 거냐?”

싸늘하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지만... 침착하자.

준비했던 걸 보여 주면 된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예언자?”

“비슷하지. 회귀자다.”

후작이 침묵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지만,적어도 내 말을 들어 주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의외로 들을 줄 아는 녀석일지도. 흐름을 타고 말을 이었다.

“네가 실력에 걸맞지 않게 허무한 죽음을 맞는 모습을 여러 번 봤지. 나와 손을 잡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거다. 일단..

좀 빈약하긴 해도.

“증거부터 보여 주겠다.”

준비해 온 철사를 열두 방향으로 꼬아서 후작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전할 게 있다면 이사벨에게 이걸 보여 주기로 했었지?”

둘만 아는 증표.

거칠게 흔들리는 눈빛이 닿는다. 그가 내 쪽으로 한 걸음 가까이

내디뎠다.

“정말인가 보군.”

“괜히 만나자고 했겠어?”

일단 순풍을 탔다.

“그래, 로랑스 공작을 이제부터 어떻게 적대하면 되지?”

그가 가까이 한 걸음을 걸어오며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었다.

“로랑스 공작 외에 마왕을 섬기는 무리는 또 누가 있지? 궁금하군.”

대화가 잘되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말해 줘야 할까.

먼저 푸르손을 섬기는 무리를 떠올렸다.

사슴이나 뱀,하피 같은 녀석들. 하지만 T&T에서 지금은 정리된 게 아닐까?

나냐우에게 물어봐야 할까?

“그건..

막 말해 주려고 할 때,다섯 걸음 앞까지 다가온 후작이 무표정하게 칼을 휘둘렀다.

아무런 준비 동작이나 도움닫기도 없었고,살기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공격이었다.

칼을 뽑는 소리도,바람을 가르는 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칼은 바로

머리 옆에 다가와 있었다.

칼날을 대상으로 전이 마법이라도 쓴 것처럼 황당한 광경이었다.

칼을 들어 막기에도,머리를 숙여 피하기에도 이미 늦어 있었다.

투구와 함께 두개골이 절반으로 갈리기 직전이었다. 그저 멍청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까강!

그 순간 탄환 두 발이 정확하게 후작의 검 끝을 때렸다.

간격 없는 두 소리는 공기 중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어디서 발사했건 휘두르는 것보다 먼저 쏘아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속도였다.

“거 기였나.”

후작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아까와 달리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비스듬히 아래로 내려쳤다.

위치를 파악한 사수射手의 탄환은 얼마가 날아오든 영향을 받지 않고 벨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첫 번째가 튕겨 나갈 것을 이미 계산한 연계 공격이었다.

고작 날 길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칼이었지만,주위의 하늘 전체를 덮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압박감이 나 하나에게 집중되었다. 아무것도 못 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을 만한 압박감이 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한 번쯤은..

탄환이 날아오지 않아도 막을 수 있다. 칼이 아래로 내려오는 길이, 힘의 배분이 보였다.

당황해야 할 쪽은 기습이 무위로 돌아간 후작 쪽.

잡다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순수한 검술만으로 한 번쯤은...

더 이상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멸어지는 공격을 그대로 칼을 뽑아 막았다. 부딪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강한 충격이 손목에서 몸 전체를 한순간 뒤덮었다.

한 번.

공격을 막아 내는 순간.

주위는 교외의 조용한 공동묘지가 아니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원해로 느껴졌다.

온몸의 뼈 사이사이를 바닷물이 흠백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칼날은 다시 빠르게 옆을,아래를, 가운데를 거의 동시에 찔러 왔다.

그 전부를 막아 냈다.

무력하게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던 그때와는 다르다.

하나하나가 간격도 호흡도 파악할 수 없는 공격이었지만 소리보다 반격의 움직임이 빨랐다.

〈안 돼. 안 돼...〉

풍뎅이의 수리를 포기한 수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갑판 위에서 거칠게 쏟아졌던 빗방울을 쳐내듯 후작의 공격을 하나하나 쳐냈다.

- 까가가가가강!

소리는 그제야 들렸다.

칼날에 희미하게 공기가 갈리는 소리,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참이나 늦게 울려퍼졌다.

공격도,반격도 음속보다 빨랐던 탓이었다.

- 달그락.

충격도 뒤늦게야 인식되는 건지, 공격을 쳐낸 뼈가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 사이를 채운 것은 후작의 놀란 표정이었다.

“내. 검술?”

- 파앗!

그사이에 빠르게 끼어든 새하얀 낫이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 냈다.

칼날에 맺힌 푸른 기운과 새하얀 낫의 기운이 충돌했고,충격파가 주위로 뻗어 나갔다.

폭발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위의 묘비가 쓰러졌고 깔려 있던 흙이 들썩거리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첫 번째 격돌 뒤 후작은 세 걸음, 나냐우는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옆에서 빠르게 달려온 도약력이 실려 있다는 걸 고려해도 나냐우의 실력은 놀라웠다.

후작은 칼을 뒤로 젖히고 자세를 천천히 낮췄다.

시위에 걸린 화살,아니 점화된 포신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슨. 짓이지?”

후작이 차갑게 대꾸했다.

“이사벨에게 알린 증표다. 감히 너희 따위가 내게 보일 게 아니야.

무슨 수작인지는 일단 죽인 다음 파악하겠다.”

“어휴.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됐어?”

후작은 나냐우를 바라보면서 말을 받았다.

“탄환과 낫이라. 몇몇 부하가 증언한 괴인이로군. 레나에게 붙인 미행들이 모두 기절한 채 버려져 있었다는 게.”

“.그러니까 왜 불안하게 여자를 쫓아다니고 그래?”

레안드로는 피식 웃으며 어쩐지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직접 너를 찾아갔을 것이다. 실력을 보고 싶었으니까. 여기까지 온 김에 끝장을 보지.”

“하하하.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네. 하지만 고백은 정중히 거절하겠어. 너는 지금까지 굉장히 잘해 주고 있다고.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왜 끝장을 봐?”

후작은 대답도 없이 아래로 내린 칼날을 위로 칼을 강하게 쳐올리며 거리를 좁혔다.

하지만 나냐우가 사이에 끼어들어 있자 이상하게도 후작과의 거리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후작을 겨누며 나를 잡아챘다.

- 파아앙!

공기가 강한 파열음을 냈다.

낫 끝에서는 탄환 대신 처음 보는 강렬한 불꽃이 터져 나왔고,나와 나냐우는 반대편으로 한순간 멀리 튕겨 나갔다.

[체력이 3.8% 감소했습니다.]

터무니없을 만큼 과격했던 순간의 움직임에 체력마저 깎여 나갔지만,

정작 낫에서 뿜어낸 불꽃에 휩싸인 후작은 표정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쫓아왔다.

나냐우가 기가 막히는 듯 어깨를 으쪽하며 낫 손잡이를 가로로 철컥 잡아당겼다.

“독한 놈이네.”

- 화르르!

불타는 은빛 섬광이 후작을 향해 쏟아졌다.

“후. 힘들었다.”

트로핀 나냐우는 피곤한 기색으로 벽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구해 줘서. 고맙다.”

도망치긴 했지만,짧은 격돌에서 나냐우는 후작에게 한 합도 밀리지 않았다. 그녀가 없었으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끝났을 거다.

제국의 검주에 밀리지 않다니. 생각보다도 대단한 경지다.

“아니,뭐. 너야말로 대단하던걸. 레안드로 녀석이 깜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니까?”

“그리고 구해 준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 오늘은 도망쳤다고 해도, 저렇게 독하게 쫓아오는 남자라면 하루로 안 끝날 거야. 그놈 말대로 언젠가 끝을 봐야겠지. 설득하거나, 죽이거나.”

억지로 후작을 만난 걸까?

괜히 녀석을 자극한 탓에 어디로 튕길지 모르게 됐으니까.

곳곳에 쳐 둔 결계들까지 이용해 후작을 뿌리친 우리는 레나와의 접선 장소로 향했다.

기대어 기다리던 레나의 얼굴에서 안도의 표정이 느껴졌다.

“어떻게 됐어요?”

“실패다. 내가. 제대로 녀석을 설득하지 못했어.”

“안타깝네요.”

하지만 말과 달리 표정에는 전혀 아쉬움이 묻어 있지 않았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희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어.”

레나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놈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흔들어 놓은 걸로 효과는 충분할 거예요. 그리고. 어차피

비브리오를 끝장낼 때까지 녀석이 우리한테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죠. 하룻밤이면 많이 쓴 거예요.”

레나가 하늘을 바라봤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아침을 알리는 푸른 새소리가 어스름한 새벽을 쪼아 먹었다.

그녀가 말한 장소에 가만히 숨은 뒤 하루가 지났다.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전해 주기로 했지만 근처로 오는 심부름꾼도 없었다.

어쩌면 레나 말대로 하룻밤이면 비브리오를 쫓는 후작 입장에서는 충분히 시간을 썼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설득해 봐야 할까?

하지만 뭘 가지고?

조언이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에 흘끗 인벤토리를 열어 봤지만,역시 아이작은 잠든 채였다.

[몰입 연산...]

[영자靈구 변환 중...]

[측정 중...]

다만 새롭게 떠오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공간 분산처리에 들어갑니다...]

여전히 의미는 알 수 없다.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였다.

후작을 ‘흔들어’ 놓은 것의 여파는 생각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_ 쿠르릉....

레나가 지하 통로를 열고 머리를 들어 올렸다.

얼굴에 한껏 피곤한 기색이 어린 그녀가 입부터 열었다.

“이제 나오셔도 좋아요.”

“후작은? 어떻게 됐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게 무슨 소린가?”

나는 설명을 요구했다.

레나가 머리를 옆으로 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녀석이. 공작에게 공개적으로 수사 협조를 요청했어요.”

반가운 이야기다.

레안드로는 생각보다 내 얘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내 말에 근거해서 돌이켜 봤다면 분명히 공작에게 수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었을 테니까.

잘된 거 아닌가,라고 레나에게 물으려 할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러자 공작은 녀석에게 결투를 요청했고. 그놈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죠.”

성격다운 일이다.

수십 마리의 애벌레로 복제되어 있을 때조차,결투를 요청했더니 한 번에 하나씩만 덤볐으니까.

“결투라고? 어디서?”

레나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그게 문제예요. 바깥에서 싸우면 수도에 피해가 갈 테니 지하에서

싸우자면서 황실 비역으로 후작을 불렀거든요.”

“황실 비역이라니..

“멍청하게 죽으러 간 거죠. 목줄 없는 사냥개는,겹겹이 판 함정을 향해 제 발로 걸어가 버렸답니다.” “.쫓아가자.”

“네?”

레나는 어이없어 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후작을 구하러 간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레나가 당황한 얼굴로 문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안 돼요. 너무 위험하다고요.”

“그를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어. 게다가,공작이 초대했다면 지금은 비역의 결계가 열려 있을지도 모를 노릇 아닌가?”

솔직히 레안드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황실 비역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비역.

에라스트에 나타난 유령들의 말, 아이작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황실 비역에 적혀 있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니 황당한데요.〉

〈내 말하지 않았느냐? 세이론이 사도를 찢으며 얻은 피다. 황실의 비역에 있는 게 당연하지.〉

힘으로 뚫는 일은 묘연하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공작이 잠시나마 황실 비역으로 누군가를 초대했다면, 불청객이 들어갈 틈도 어딘가에 있을 거다.

“동감이다.”

아래쪽에서 레나를 따라 들어온

트로핀 나냐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조!”

“쉽게 오는 기회는 아니야. 분명 비역을 닫고 있던 결계가 열렸다. 언제 닫힐지 몰라. 같이 가지.”

“그럼 저도..

“아니.”

“안 돼.”

나냐우와 내가 동시에 말했다.

“뭐예요?”

“본부장은 여기 남아 줘. 아래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동안 길드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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