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96화 (296/458)

315화 제국의 칼 (3)

3년이 지났다.

“27년. 남았나.”

열아홉 살의 레안드로는 옆에 선 미유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이 내는 콧소리가 미유우,하고 우는 것처럼 들렸다.

남아도는 돈으로 구입한 최고급 여물을 우물우물 씹어 먹을 때도 녀석은 비슷한 소리를 냈다.

갈기를 쓰다듬는 게 기분 좋은지, 녀석의 갈기가 위로 뻗었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30년만 살아라.”

미유가 눈을 껌떡였다.

그들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세 살 먹은 미유는 한 번 광야를 달리기 시작하면 자기 그림자조차 따돌릴 만큼 빨랐고,달리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저 입만 벌리고 감탄할 정도였다.

말로 유명한 지역에도 가 보았지만 미유를 따라잡는 녀석은 없었다.

갓 태어날 때부터 마물을 잡으러 움직여서 그런지 지금처럼 산까지

잘 탔다.

눈치가 빠르고 전투력도 대단해서 몰래 접근한 말 도둑을 발로 밟아 반쯤 죽여 버리고,웬만한 마물은 혼자 앞발로 두드려 잡았다.

열아흡의 레안드로도 슬슬 기량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지냈지만,좋은 여물을 사고 이곳저곳 전전하며 여관에서 지내기에 충분한 돈을 모은 뒤에는 현상금에 집착하지 않았다.

마물을 처리하고도 굳이 시체를 가지고 현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갈기를 쓰다듬어지는 미유가 문득

눈을 번쩍 떴다. 산속 공기 중에 흉흉한 살기가 얽혀 들었다.

“거의 다 왔는데. 편하게 됐군. 저쪽에서 먼저 오다니.”

여행자를 백 명을 넘게 죽였다는 ‘블러드 아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림자 속으로 숨어 다니는 거대한 쥐 형태의 마물이었는데,새빨간 눈을 반짝이며 인간을 사냥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레안드로는 일어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쥐가 달려왔고,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3년 전에 히포그리프를 죽일 때는 한 번의 잔상에 다리가 세 조각이 났지만,지금은 같은 시간 동안 휘두른 세 번의 칼질에 식인 쥐가 열두 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기 사까지 넷이나 잡아먹 었다는 괴물을 쉽게 벤 레안드로는 자신의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9년 반을 기다렸다.

이제 6개월 후면 어머니를 죽인 가르베라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

지금 내 실력이 과연 그 마물을 죽이기에 충분한 걸까?

최대한 확실히 검증받고 싶었다.

레안드로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인간을 상대로 싸우기에 너무 강해졌다고 생각한 건,아예 방어용 발리스타까지 쓰던 산채를 혼자 처리한 다음부터였다.

〈괴. 괴물..!>

악력으로 인간의 머리를 부수고 피를 마신다던 두목을 살해할 때, 녀석이 보이던 공포에 질린 눈이 신경 쓰였다.

납치당한 인질들을 풀어 줄 때도

그들은 사방에 널린 시체를 보고 흠칫거렸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아래로 급히 내리깔았고, 얼굴을 돌렸다.

혐오와 공포가 생생하게 떠오른 얼굴들은 떠올릴수록 꺼림칙했다.

그 후로 2년.

인간들은 한구석에 미뤄 둔 채, 혼자 마물을 찾아 움직이는 일만 계속했다.

레안드로는 자신의 실력을 좀 더 객관적으로 점검해 보고 싶었다.

자신은 정말 사람들이 공포에 떨 정도로 강한 걸까?

사실 제대로 검을 쓰는 부류라면 나 정도는 하지 않을까?

레안드로는 어머니가 죽은 동부 산맥의 깊은 숲에 들어가기 전에, 인간들을 좀 더 만나 보기로 했다.

이름난 정예 기사단이라면 하나의 기준은 되어 줄 것 같았다.

레안드로는 미유를 끌고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기사단으로 향했다.

서부에서는 무척 유명한,태양의 송곳니라는 이름의 기사단이었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티루치라팔리라는 도시에 들어가, 더운 햇빛을 맞으며 회화가 조각된

정문으로 향했다.

나란히 선 건장한 경비병 두 명이 레안드로를 아래위로 훑고 커다란 손바닥을 내밀며 막았다.

“입단 지원자요? 어디 추천서나 경력 중명서 같은 게 있다면 한번 봅시다.”

레안드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었다.

열일곱 때부터는 애초에 현상금이 걸렸는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않고 마물을 사냥하러 다녔다.

인간관계라고 해 봐야 제국 전역을 여행하며 묵었던 여관 주인들이나,

가끔 위기에 처한 걸 구해 준 자들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 건 없는데,여기에 입단할 생각도 없고.”

“엥? 그럼 뭐 하러..

“태양의 송곳니가 서부에서 가장 강한 기사단이라고 들어,실력을 시험해 보러 왔소.”

처음 말을 건 경비가 황당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거. 그냥 미친놈이네? 더위 먹었냐? 어이없을 만큼 당당하게 걸어오기에 어디 대단한 분이라도 되는 줄 알았지.”

옆에 있던 더 큰 덩치의 경비가 타이르듯 말했다.

“꼬마야,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기사단이 어딘 줄 아느냐?”

“은의 수호자,봄의 투구,새벽의 랜서,푸른 사자 기사단이 전부터 꼽히지 않았나?”

어릴 적 어머니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서부에서는 이곳이고.”

경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허허... 마물들을 잡느라 수도 토너먼트에 나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실전 실력은 우리 기사님들이 최고란다. 수도에 가서 딱 실력을 보여 주면! 제국 최고 기사단이라는 사실이 바로 증명될 거야. 그런데 감히 네가 덤비겠다고? 아이고.” 레안드로는 조용히 끄덕거렸다.

“잘됐군.”

“뭐? 뭐가 잘돼?”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면 수도로 갈 생각이었다. 당신들이 최고라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

“대체 어디서 이런 미친 새끼가 기어들어 와서..

넘어뜨리고, 레안드로는 안쪽에서 수련하던 기사들을 칼도 뽑지 않고 한꺼번에 두드려 됐다.

“.이 정도인가?”

괜찮게 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마물을 상대하는 것보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더 강했어도 좋았을 텐데.

갈증이 밀려왔다.

한 번으로 멈출 수는 없었다.

레안드로는 마른 입술을 할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수도로 향하며 세 기사단을 끝장냈을 때,추적이 붙기 시작했다.

스무 살도 안 되는 방랑자에게 철저하게 망신을 당한 기사단들은 값비싼 전문가들을 고용해서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기척을 숨기는 일은 온갖 마물과 싸우며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붙었던 녀석들은 꽤 대단한 실력이었는데, 오히려 기사들과 싸울 때보다 훨씬 즐거웠다.

시도 때도 없이 화살이 날아왔고, 갈 길에 함정을 깔아 놓는가 하면 폭탄과 연결된 투명한 철사를 길에 매달아 놓기도 했다.

레안드로의 ‘두 번째 영역’은 점점 더 넓어졌다.

제3의 눈이 열린 것처럼 지형을 훌을 수 있게 되었고,언제 어디서 날아오든 화살이 그 안에 있으면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추적으로부터 이 주가 지났을 때, 그는 거꾸로 암살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 서걱.

“맛있군.”

썰던 스테이크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스테이크를 잘 굽는 걸로 소문난 여관이었는데, 레안드로가 서부로 올 때는 방향이 달라 묵지 못했던 곳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취하는 제대로 된 휴식이었다.

음식이 나온 뒤 마지막 디저트와 함께 주방장이 인사를 나왔다.

윗부분이 뚫린 동그란 케이크는 한눈에 보기에도 폭신하고 맛있어 보였다.

“음식은 어떠셨습니까?”

“아주 좋았소.”

“두 손으로 잡고 드셔야 합니다.” 흰머리의 주방장은 모범을 보여 주듯 케이크 아래쪽을 살짝 받쳐 들었다. 그리고 케이크로 덮여 있던 고리 형태의 칼을 잡고 팔만 곧장 펴서 레안드로의 목을 찔렀다.

힘도 주지 않았고,소리도 없었다. 성실한 표정은 아직까지도 손님의 반응을 살피는 요리사 그대로였다. 20센티도 되지 않는 거리인 터라 몸을 틀거나 젖힐 시간도 없었다.

- 쿵!

그 순간 칼끝을 손에 들고 있던 포크로 휘감아 테이블에 꽂았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주방장은 눈을 감았다.

자세히 보면 칼을 쥔 그의 손에선 요리사의 것과 다른 굳은살이 너무 많이 박혀 있었다.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군.”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던데. 그쪽으로 나가보지 그랬나?”

“당신 같은 재능을 가진 청년이 나올 줄 알았다면. 암살 따위는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거요.”

“스테이크는 정말 괜찮았다.”

레안드로는 포크를 놓고,의자에 기댄 칼을 빼 그대로 휘둘렀다.

노인은 마지막 시야에 아름다운 푸른 섬광을 담고 죽었다.

독을 썼으면 어차피 바로 알았을 텐데,잠시나마 좋은 식사로 긴장을 풀게 해 준 노인에 대한 답례였다.

그렇게 ‘환영 환상’이라고 불리던 암살자가 대륙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암살자까지 사냥한 이후, 레안드로는 망설일 것 없이 수도로 들어갔다.

목표는 하나였다.

푸른 사자 기사단.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말해 줬던 이름 높은 기사단이었다.

기사단 건물을 찾는 건 쉬웠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정교한 사자 조각상에다,황금으로 치장한 영롱한 방패와 칼이 높다란 벽에 붙어 있었다.

건물 크기만으로 기사단의 강함을 판정한다면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레안드로는 이번에도 정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입구를 지키는 경비들은 아예 입장부터 철저하게 막아섰다.

추천서나 경력을 묻는 절차조차 없었다.

다른 곳은 경비병이 어디 한번 신나게 얻어터져 보라고 들어가게 놔두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정문에 접근하자 다짜고짜 열 명의 경비병이 모여 창부터 겨눴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버티자 다시 열 명이 모여들었고,높다란 담장 위에서 활을 겨누는 자도 있었다.

암살자들과 몇 주를 어울린 탓에, 자신에 대한 소문이 이미 여기까지 퍼졌나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누구냐고 묻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너희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기사단 책임자에게 말해서 대련을 준비하라고 해라.”

물론 지금까지의 경험에 미루어 큰 기대는 없었다.

“꺼져. 비렁뱅이 새끼가 미쳤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경비병 하나가 뒤에서 다리를 향해 창을 찔렀다.

다른 경비들도 레안드로가 피하는 공간을 향해 창을 찌를 듯이 뒤로 당겼다.

“평소에도 아무나 막 찌르나?”

그가 사방으로 살기를 뿜어내자, 창을 찌르던 경비병은 그 자리에서 손이 굳은 채 무기를 떨어트리며 주저앉았다.

“흐,흐어억!”

다른 녀석들도 움직임이 몇은 채 비틀거리며 쓰러졌고,어떤 놈은 바닥에 아예 엎드리기까지 했다.

- 핑! 피잉! 핑!

담장 위에서 활을 겨누던 자들도 손이 풀려 멋대로 허공으로 화살을 놓아 버렸다.

“비켜라.”

“아. 네! 네!”

경비병들은 공포에 질려 무작정 고개만 끄덕였다.

크고 화려한 건물 안으로 한참을 들어가고 난 후 비로소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사단이. 맞는 건가?’

칼이 부딪치는 소리, 기합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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