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00화 (300/458)

319화 제국의 칼 (7)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가 사냥한 건 12번 계승된 가르베라.

120년을 살아온 녀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금 죽인 건 신생.

‘계승’이 끊긴 다음 새로 태어난 어린 개체다.

기묘했다.

어머니의 검을 가져다준 특위가 가르베라를 완전히 소멸시켰다면, 아예 여기서 씨앗이 나오는 일도 없는 게 맞다.

추적하는 데 실패해서 소멸시키지

못했다면,여기서 나온 건 120년을 묵은 성체여야 한다.

어느 쪽이라도 맞지 않다.

찜껍한 기분이었다.

숲 전체를 다 뒤져도 역시 성체 가르베라는 등장하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몇 개월을 숲속에서 더 보내던 레안드로는 밖으로 나와 1년을 헤댔다. 다른 숲을 찾아도 답은 구할 수 없었고,레안드로는 결국 ‘로라’를 찾아갔다.

복수가 간단한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황실의 그림자 특위의 수장이며, 제국제일검이자 실세라는 사실은 파악한 뒤였다.

“이야. 드디어 제게 오셨군요!” 이름을 대자 ‘로라’를 만나는 일은 무척 간단했다. 미리 여기저기에 밑밥을 깔아 둔 것 같았다.

“예전의 제안,아직도 유효한가?”

“오호호. 그럼요! 탱탱하게 살아 있는 제안이랍니다. 혹시 생각해 두신 자리가 있나요?”

“글쎄. 근위 기사단은 어떨까.”

뭐든 승낙할 것 같던 로라의 표정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아. 그쪽은 조금. 황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녀의 입김이 아직

미치지 못해서요. 그쪽은 눈감아 주셔야겠어요.”

예상대로다.

황실을 암중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아무래도 자신의 핵심 영역에는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예 특위로 들어가고 싶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 번 거절했다.

이런 상황에서,10년 전의 일에 대해 다짜고짜 물을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다.

일단 근처에서 자리 잡고 정보를 모은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기 쉬운 쪽이 좋겠지.

“그럼 푸른 사자 기사단으로.”

로라가 눈을 크게 떴다.

의외의 표정.

거절하려는 느낌은 아니다.

“어머? 정말 그 녀석들로요?”

“곤란한가?”

“아니요,하지만 그 아이들을 맡아 주시면 부담이 좀 있으실 거예요. 재정 충당과 작위 수여용으로만 쓰고 있었거든요. 호호. 관상으로도?” “전권을 맡지.”

“좋아요. 밀어드릴게요!”

로라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기사단의 전권을 위임했다.

1년이 지났다.

레안드로는 푸른 사자 기사단을 완전히 갈아치웠다.

원래 있던 녀석들은 작위를 모두 박탈했다. 원하는 자에 한해 외부 교육생으로 바꾸는 대신, 원조하던 자금은 계속 뱉어 놓게 했다.

공식적인 반발도 있었지만 로라가 무마해 주었다. 비공식적인 암살 시도 따위는 어차피 아무 위협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청부 상대를 특정해 내서 레안드로의 입지만 굳게 만들었다.

2년이 지났다.

내부 청소가 깔끔히 끝난 후에는 그동안 모은 막대한 예산을 가지고 인재 육성에 집중했다.

출신은 묻지 않았다.

좋은 가문 출신은 넘치게 선택의 기회를 받고 있었다. 오히려 수도 빈민가를 찾았다. 커다란 도시에는 필연적으로 빈민가가 생길 수밖에 없고,수도 빈민가는 어떤 도시의 그것보다 거대한 마굴이었다.

제대로 된 기반 시설은 없었고, 치안마저 부재했다. 범죄와 질병과 두려움이 골목을 뒤덮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지만 국가는 그들을 위해 봉사하지 않았다.

레안드로가 지금 당장 그 장소를

책임질 방법은 없었다.

다만 그 가운데서 재능과 독기가 있어 보이는 아이를, 오직 자신의 목적과 부합하게 건져 내곤 했다.

3년이 지났다.

레안드로는 눈앞에 모인 인간들을 바라봤다.

빈민가에서 자신의 공고를 보고, 지금까지의 소문을 듣고 몰려든 자들의 숫자는 대략 300명이다.

물론 이들을 다 받을 수는 없다.

“.이야기는 들었을 거다. 나는 너희들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했다. 너희 대부분은 어떤 대가도 없이 여기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군중이 웅성거린다.

레안드로는 푸른 사자 기사단을 운영하며 자신 같은 재능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만 교육자라는 또 다른 재능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

그가 붙어 지도한 자들의 실력은 예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늘었다.

“이번 시험을 버티는 건 한 명이 될 수도 있고,한 명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너희 모두가 다시 한 번 귀족에게 속았다고 느끼고,피곤한 몸만 끌고 집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배급해 줄 예정이다.

의미 있는 위로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소문은 이미 퍼졌다.

빨리 절차를 끝내고 빵만 달라는 표정을 짓는 소년도 보인다.

상관없었다. 빵이 유인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시험에서 볼 건 재능이지 태도가 아니다.

의식주도 해결되지 못하는 곳에서 구르다 보면 삶에 대한 태도야 어차피 엉망이 된다.

수도 중심부보다 빈민가의 유아 사망률이 열 배는 높다. 동생들의 시체를 보며 자란 소년에게 성실한 표정까지 바라는 건 학대였다.

“정신력 따위로 해낼 수 있다는 기만 따위는 하지 않겠다. 오로지 재능만 철저히 시험할 거다.”

기준은 높았다.

자선사업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수도 귀족들은 빈민을 중심으로 정규 기사를 모집하는 일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빈민 출신으로 주위를 설득하려면 진짜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눈앞의 수백 명을 다시 바라봤다.

여기서 한 명쯤은 해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선발과 교육을 거듭했다.

의외로 푸른 사자 기사단은 고위 귀족 자제 비중이 꽤 높았다.

다른 기사단원이나 검술의 소양을 높이 쌓은 귀족 청년들 가운데, 고작 열아홉에 제국제일검과 검을 겨뤘다던 레안드로의 소문에 혹해 오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겉으로나마 출신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에서 자유로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높은 신분을 가졌으면서도 기량으로 평가받고 싶은 이들이기에 재능도 뛰어났다.

내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찾아온 귀족 자제들과, 레안드로가 철저히 재능을 시험해 뽑은 빈민들이 푸른 사자 기사단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전자는 자신보다 몇 살 많지도 않은 레안드로를 흠모했고,후자는 자신의 생명줄인 그를 꽉 잡았다.

레안드로는 기사단을 움직이면서 마물 토벌에 전격적으로 투입했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딱 죽기 직전에만 끼어들었다.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도 매 순간 상황을 완벽하게 장악했고,거의 없다시피 한 인명 피해에 비해서 훈련 효율은 압도적이었다.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사이 수많은 비밀 임무들에서 전공을 세웠다.

단장을 맡은 지 5년째.

스물다섯의 어느 날.

레안드로는 황궁 주위를 지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건 작은 날개가 달린 뱀 같은 괴물이었다.

미유가 달리는 것만큼이나 속도가 빨랐고,눈앞에서 보고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환각으로 생각할 만큼 아무 기척이 없었다.

마침 혼자 있던 레안드로는 뱀이 사라진 방향을 쫓았다.

언뜻언뜻 보이고 기척마저 없어 제대로 쫓기 어려웠다.

거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직감에 기대 나아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히 황궁 쪽.

서북쪽으로 갈수록 인적도 불빛도 점점 더 드물어졌다.

'항상 이렇단 말이지..

황궁으로 향하는 거리는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었다.

안내를 받지 않으면 가기 어렵고, 위쪽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짙은 안개가 항상 떠 있다.

골목 곳곳에서 외궁外宮을 지키는 경비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혼자 평범한 장정 다섯 명은 쉽게 베어 넘길 만한 이들이지만 그를 감지할 만큼은 아니었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골목 곳곳을 돌아봐도 뱀은 없었다.

꼭 정해진 날에만 들어가 달라고 당부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아갈까..

하지만 그가 한 번 기척을 잡고 놓쳤던 상대는 자칭 로라,로랑스 타르티에 공작뿐이다.

- 팟!

잠깐 갈등하던 레안드로는 담과 담 위를 제비처럼 날아올랐다.

하지만 미로 골목을 지나,외궁에 진입한 뒤에도 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오래전부터 조성된 드넓은 수림과,진한 향을 풍귀는 제라늄,

잎이 넓고 화려한 벨라로 빼곡히 덮인 연못들만 있을 뿐이었다.

어찐지 초조해진 그가 허락받지 않은 자는 절대로 오를 수 없다는 일리엔의 신계神階를 지나서 내궁 입구로 들어섰을 때였다.

“멈추십시오.”

메마른 음색은 약간 톤이 높았다. 쇳소리가 섞인 차가운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막히지 않았던 후작은 당황해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기척을 찾을 정도라면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다.

“.누구냐?”

“당신이야말로 누구시죠? 기척을 숨긴 채 신계神階를 밟다니.”

레안드로는 발아래 계단과 단호한 음색의 상대를 번갈아 바라봤다.

“.빛의 신이 뭘. 어째? 그런 게 정말 날 발견했다는 거냐.”

- 스롱.

투구를 쓴 상대가 칼을 빼들었다.

“신분을 밝히십시오. 입궁 예정인 대신은 없었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상대도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으음?”

칼자루에 손도 가져가지 않은 채 무심코 상대를 바라보다,그제야

상대가 입고 있는 갑옷의 문양이 무척 익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셋을 셀 동안 신분을 대지 않으면 제압하겠습니다.”

상대가 입은 건 황실 근위기사단 고유의 문양.

뱀을 쫓는 사이 녀석들이 지키는 영역까지 와 버린 모양이다.

“네가 이 계단을 지키는 자인가?”

“하나.”

차가운 음성이 그를 향했다.

“여길 지나면 그게 뭐든지 기척이 발각되는 거냐?”

어쩐지 레안드로는 앞에 서 있는 근위대를 상대로 말이 많아진다고

느꼈다.

“혹시. 뱀을 보지 못했나?”

“셋.”

계단 위에 선 자는 한 호흡에 거리를 좁히며 레안드로에게 칼을 찔렀다.

목숨을 노린 건 아닌 듯 칼날은 어깨를 향했고,레안드로는 슬쩍 피하며 칼등을 손으로 쳐냈다.

하지만 상대는 꽤 강한 타격에도 칼을 놓치지 않고 두 손으로 꽉 쥔 칼을 다시 찔러 넣었다. 예상하지 못한 힘이었을 텐데 그대로 흘리고 최선의 대처를 해낸 것이었다.

레안드로는 어쩔 수 없이 두 걸음 계단을 내려가며 피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본 적 없는 뛰어난 센스였다.

이름이라도 물어보려고 했을 때, 근위대는 쫓아오는 대신 품에 넣은 휘슬을 꺼내 세게 불었다.

- 휘이익!

비상을 알리는 소리.

사방에서 온 근위기사들이 동시에 레안드로를 에워쌌다.

“아. 대상조 각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달려온 기사 가운데 한 명이 그를 알아봤다.

“대상조라니. 혹시. 그..

그를 계단 아래로 물린 문지기의 차가운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렇다. 이곳을 향하는 수상한. 자가 있어 쫓았다.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건가?”

달려온 모두의 시선이 휘슬을 분 문지기를 향했다.

문지기는 투구를 벗었다.

짧은 순간 레안드로와 부딪치면서 심력을 쏟은 탓인지,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 순간 레안드로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순간 자신과 공터에서 놀아주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럴 리가.’

얇고 서늘한 상아빛 얼굴을 다시 찬찬히 뜯어봤지만,다시 보자 전혀 닮지 않았다.

어머니의 환상은 곧 사라졌다.

닮은 건 없다.

잠깐 스친 착각일 뿐이다.

제법 뛰어난 검객이라고 해 봤자 역대 근위단장 중에서도 뛰어났던 어머니와 비교할 실력은 아니다. 소중한 추억과 겹칠 수는 없다. 어머니라면.

그를 막지도 않았겠지.

오히려 그가 기척을 놓친 마물을 대신 잡아 줬을 거다.

하지만 그녀에게 고정된 시선은

어쩐지 쉽게 떼기 힘들었다.

짧은 머리의 여자는 무척 상기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보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사벨,제대로 지키고 있던 거 맞아?”

상관으로 보이는 자가 문지기를 질책했다.

로랑스 공작과 함께 있는 모습을 몇 번 봤던 남자였다.

“지켰습니다.”

“대상조께서 뭔가 느끼셨다잖아. 그러면 네가 잘못한 거겠지.”

그때 였다.

“어머!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 딸랑!

안개 속에 부딪치는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아갈 듯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허리까지 찰랑이는 긴 머리를 한 남자가 멀리서 걸어왔다.

“어찜,이런 데서 보니까 왠지 막 두근거리고. 색다르고 그렇다?”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

긴 머리끝에 붙은 작은 방울들이 서로 부딪쳤다.

모두가 공작에게 목례를 했다.

“혹시 안쪽으로 마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레안드로는 수도에서 일하기로 한 이후부터 로랑스 공작에게 존대를 썼다. 공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그거 방금 제가 잡고 오는 길이에요. 호호. 역시 대단하셔. 기척도 찾기 힘드셨을 텐데.”

미묘하다.

5년 전,초년생 가르베라를 죽인 이후 느꼈던 것과 비슷한 위화감이 살갗 위를 흘렀다.

하지만 공작이 처리했다는데 굳이 대놓고 따지는 건 어리석다.

막아 주고 있는 상대다.

그가 없었다면 여기서 발각된 후, 수도 전체를 상대해야 했을 거다.

“.알았습니다.”

후작은 칼을 꽂은 문지기를 흘끗 보고 돌아섰다. 저 여자는 이 문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자기 자신조차도 지키기 어려울지 모른다.

어째서인지,다시 한 번 어머니의 기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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