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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13화 (313/458)

335화 환영 (15)

“동감입니다. 일단 떨거지들부터 처리하죠.”

대검을 든 타이탄이 아래로 칼을 휘둘렀다.

- 광!

가까스로 피했지만,웬만큼 강한 인간이라도 앞으로 휘말려 들어갈 만큼 강력한 풍압이었다.

하지만 내리친 칼은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뭐 해?”

“이게. 이게..

거대한 두 발도 바닥에 붙은 채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발과 다리뿐 아니라 손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듯 제대로 무기도 휘두르지 못했다.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지.〉

“아이작,네가 한 거냐?”

〈의견대로 내뱉는 것도 얼마든지 자유지. 그리고,누군가 그 발언을 박해하기도 하겠지.〉

“좋아!”

상황을 알아챈 나냐우가 아이작의 힘에 묶인 녀석의 목에 낫을 걸고 바닥에 찍었다.

- 끼긱! 끼기기긱!

어지간히 단단하게 제작했는지, 전투낫에 끌려가면서도 장갑은 버티고 있었지만 표면이 점점 빨리 파이는 건 분명했다.

“이런. 속박의 사슬이군요. 하지만 우리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겠죠. 제가 신호를 보내면 모두 한 번에 움직여서 벗어나십시오.”

“힘을 모으고. 지금입니다.”

- 콰드득!

하지만 움직이는 동시에,거대한 타이탄들의 몸 곳곳이 삐걱거리며

매끈한 표면이 조금씩 구겨졌다.

당황한 타이탄들이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속박의 주술은 그걸 깨려 할 때, 깨려고 하는 힘을 되돌려 내부에서 타격으로 바꿔 주는 게 기본이다.〉

그게 기본인 걸까.

〈젠장,생각해 보니 너무 아까운걸. 이 정도만 해 주마. 빨리 저것들을 처리해라. 지금이 기회다.〉

“.알겠다.”

- 끼긱! 끼기기긱!

나냐우는 그 와중에도 한 녀석을 집중해서 낫으로 내리쳤다. 목은 이미 반쯤 잘려 나가고 있었다. 뒤쳐질 수는 없었다.

[시간 가속 Lv.2를 발동합니다.] [Lv.2: 3초 간격으로,1초 동안 시간이 1.5배로 늘어납니다.]

방금 흡수한 스킬.

눈앞의 싸움을 넋 놓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늘 구멍 찌르기 Lv.3을 발동 합니다!]

[정확한 국소를 향해...]

[고정된 대상에 대한 관통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막 풀려나는 녀석을 향해 칼끝을 찔러 넣었다.

마법으로 코팅된 특수 합금임에도 불구하고 육중한 대검 끝은 기묘할 정도로 쑥 깊게 들어갔다.

타이탄은 팔이 깊게 찔리고,내가 칼을 뺀 다음에야 반격으로 번개를 뿜어냈다.

몸은 묶였지만 마법으로 공격은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버틸 만한 충격.

다시 한 번.

[시간 가속 Lv.2가 발동 중...] [구멍 찌르기 Lv.3을 발동합니다!]

- 파앗!

다시 같은 감각으로 몸을 박찼다.

[까스라기 - 운동성 씨앗 Lv.5를 발동합니다!]

[몸에 묻어 있던 가르베라 씨앗이 스킬에 응답합니다.]

[흡습 변형을 통해...]

[식물이 아닙니다.]

[적용 효과 - 씨앗 수명 단축] [적용 효과 - 파괴력 중가]

- 끄득! 끄드득!

타이탄의 두꺼운 장갑에 무언가가 생겨났다.

검기로도 긁힌 상처 정도만 냈던 특수 처리된 장갑이.

아이작의 주술과 내 스킬에 의해 조금씩 어긋났다.

소녀 공작과 가르베라에게 흡수한 스킬은 놀라울 정도로 타이탄에게 효과적이었다.

어쩌면,공작이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향으로 검술을 연마하고, 가르베라를 기르고 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만큼.

〈속박. 속박...〉

아이작은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속박에서 벗어난 뒤,내 쪽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타이탄들의 발이 다시 묶였다. 무게를 측량하기도 어려운 거인들의 걸음이 한순간 헝클어졌다.

까마귀가 빠르게 속삭였다.

〈뚫은 곳에 인벤토리를 집어넣고 확장시켜라. 일단은. 인도해 주지. 이렇게 하는 거다.〉

타이탄의 장갑이 비틀어졌다. 태엽이 망가진 난쟁이 인형처럼, 햇볕에 마른 식물처럼,제멋대로 불길하게 비틀어졌다.

인벤토리의 껍질 역할을 아이작이 해 주고 있었기에 나는 아무렇게나 힘만 주면 그만이었다.

천사들을 밀어내고.

동굴에서 잔해를 밀었던 때처럼.

타이탄들은 무슨 공격에 당하는지 몰라 당황하며 주위를 마구잡이로 내려쳤지만,팔의 장갑까지 조금씩 어긋나 점차 힘을 잃고 있었다.

형세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 끼기기긱! 콰득!

계속해서 공격하던 타이탄의 목을 뜯어낸 트로핀 나냐우의 표정이 문득 일그러졌다.

그녀는 뜯어낸 타이탄의 쇳덩어리

목을 멀리 걷어차고,몸통 부분에 가볍게 5연발로 탄환을 먹였다.

은빛 마탄에 맞은 거체는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잠깐.”

“뭐지?”

“이거. 비어 있어.”

다른 타이탄의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 가속으로 빠르게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잘려 나간 타이탄의 목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녀 공작처럼 진한 초록빛은커녕 아무 빛도 없이 새까떴다.

정수 흡수도 되지 않는다.

“타는” 것.

혹은 “입는” 것의 개념에 가까운 타이탄.

그러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마약으로 감각이 확장된 나냐우는 타이탄의 공격을 거의 보지도 않고 피하고 막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낫을 휘둘렀고, 한 기의 타이탄을 다시 베어 냈다.

목의 이음새가 부서지면서 투구를 닮은 타이탄의 머리가 넓은 바닥을 굴러갔다.

“여기도 텅 비었어!”

마치 나냐우의 외침에 반응하듯, 세 기의 타이탄이 크게 뒤로 뛰어 물러났다.

여유가 생긴 탓에 후작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보티스의 대리자, 비브리오까지 섞인 여섯 기나 되는 타이탄임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접전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죽음을 독촉하는 위태로운 모양새였지만,레안드로는 아직까지 완고하게 모든 독촉장을 찢어 버리고 있었다.

이게 맞을까?

의문이 짙어졌다.

황실의 비역 2층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수준은,4층에서 만난 천사들이 오히려 더 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좀 이상한데.”

〈수상하지. 그래서 내가 인과율을 최대한 아끼는 거야. 절대로,뭐, 너 말고 다른 놈들을 도와주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때 였다.

끼이익

등 뒤에 찬란한 오각 방패가 붙은 거대 타이탄의 머리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가청영역에 아슬아슬하게 잡히는 고주파.

〈신호다! 저것들을 잘 봐라.〉

- 쿵! 쿵! 쿵!

후작을 둘러싼 타이탄들이 싸움을 계속하며, 은근히 위치를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작이 조급한 둣 말을 이었다.

〈조용히,티 내지 말고 왼쪽으로 30도, 40미터 앞쪽을 봐라. 어딘가 했더니 저기였군. 아까부터 계속 찾았는데...〉

= 왼쪽?

30 도.

60미터 앞.

타이탄들이 그곳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전술(지상) Lv.9가 발동됩니다!]

기체의 움직임과 속도를 동시에 고려하면...

= 저 지점을 중첩해서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당연하지. 신성神性이 느껴진다. 가장 뾰족한 것,가장 날카로운 것,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치명적인, 신.을. 죽.이.는. 창.을 상상해라.〉

갑자기 그런 걸 상상하라고 해도 무리지만.

아이작이 인벤토리에 붙인 껍질은 이미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방진이 완성되기 전, 그 뜻을 읽고 보호하려는 핵심을 인벤토리로 타격.

아이작이 비역에 들어오고 나서 가장 집중력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천사들을 상대할 때보다도 더. 신성을 느끼고,신을 죽이는 창을 상상하라고 했다.

“무언가”를 느낀 것이 틀림없다.

전신전령으로 녀석의 인도를 따른 전력투척.

천국에서 접한 경험이 있기에一

“신”을 상상하는 건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콰광,과광 콰과광...

어마어마한 데미지가.

격렬한 진동과 폭음이 몸에 직접 전해졌다.

“그..!”

“미친놈들이!”

타이탄들은 놀람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말이 아니라 몸까지 함께 더듬거리고는 구죽하려던 진형을 빠르게 포기했다.

- 피칫!

- 피치치칫!

타이탄의 거대한 투구에서 전기가 튀었다. 타닥,타타닥 하는 소리와 함께 급격히 빠른 속도로 점멸하던 회로들이 곧 꺼졌다.

열은 계곡처럼 음각된 회로들은 곧 까맣게 그늘졌다.

그들은 자신이 회로였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 쿠궁.

마침 큰 움직임을 보이던 한 기의 타이탄이 바닥에 쓰러지고,나머지는 적막 속에 그대로 서 있었다.

“.너희들,뭘 한 거냐?”

마치 거석처럼 꼼짝 않고 서 있는 타이탄들 속에서,푸른 그림자가 나타났다.

타고 있는 애마도,남자 자신도 몸 곳곳에 피를 홀리고 있었지만 치명적인 상처는 아닌 듯했다.

- 파드득!

까마귀가 직접 앞으로 나섰다.

“어허,참. 눈에 힘 좀 풀거라. 너 같은 애들 내가 한두 번 본 게

아니야. 제명을 사는 놈이 하나도 없다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후작은 굳어 있던 미간을 천천히 풀고 물었다.

“책사의 냄새가 나는군. 너에게 설명을 요구하겠다.”

후작은 한층 더 가라앉은 태도로 아이작에게 말을 걸었다.

까마귀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곤 입을 열었다.

“문으로 보이는 걸 두드렸느니라.

여기 있는 것들은,의식만 아래로 내려보내서 타이탄을 조종하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이제. 이놈들이 의식마저 위로 보낼 정도로 두려워하는 걸 찾아서 아래로 내려갈 일만 남은 거지.”

아이작이 고개를 돌렸다.

“걱정하지 마. 쓰러진 타이탄에서 루-륨은 전부 빼먹고 갈 거니까. 플라스크와..

그때 였다.

인밴토리를 창으로 만들어一 전력으로 타격한 곳에서 희미한 문양이 떠올랐다.

“모습을 드러내셨군.”

- 지직. 지지직...

타격을 받은 탓일까.

다섯 개의 문양이 융합한 것 같은 홀로그램은 구조 신호라도 보내는 것처럼 희미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후작에게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좋아. 열혈 청년,거기 쓰여 있는 글씨 좀 읽어 보겠어?”

후작은 까마귀에게 묘할 정도로 협조적인 태도로 허공에 눈을 계속 고정시켰다.

“.프로젝트 오차율 10.4931%. 시급한 개정이 필요. 현재 위치. 추적 중. 추적. 완료?”

그때 였다.

- 우우우응!

공간이 찢어지자,문양은 서로가 서로에게 몸을 넣고 휘젓는 듯한 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내축에서 혐오스러울 만큼 익숙한 진동이 전해졌다.

- 우우우우우..!

레안드로 근처에서 질척하게 입을 벌리는 허공...

“안 돼..!”

뭐가 튀어나올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허무하게 끝날 수는 없었다.

- 딱딱.

어깨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문득 투구를 두드렸다.

“아이작,바로 저놈이..!” 까마귀가 붉은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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