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15화 (315/458)

337화 환영 (17)

- 울컥. 울컥. 울컥...

유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끊임없이 변하는 색채 같기도 한 무언가가 조금씩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건 사방에 점점 적체되어 갔다. 거대한 생물의 해체된 몸 같기도 했고,금뜨게 스멀거리는 연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작하자 기사는 믿을 수 없게도 몸을 흠칫 떨었다.

- 끄. 기잇‘

허공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잿빛 기사는 망설이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격은 우리를 향하지도, 사방에 깔리는 무언가를 향하지도 않았다.

칼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기운이 텅 빈 허공을 베었고, 젓빛 기사는 잘린 단면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으로 작게 파문이 일었다.

“지금,재 도망친 거야?”

나냐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마,방금 타이탄들이 조종이 전부 끊긴 것도..

그들이 공포에 빠진 건 잿빛 기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섯 문양이 융합한 흘로그램.

그걸 지키려 방진을 짠 타이탄들. 문양에서 나타난 젓빛 기사.

같은 편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두를 도망가게 만든 저것은....

- 꾸록. 투둑...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아무 데도 아닌 곳으로 진흙이 떨어졌다.

- 꾸르륵...

[부. 쉈. 구. 나.....]

진흙이 말을 건넸다.

투명한 문양을 아이작이 알아채 부숴 낸 걸 말하는 걸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건 마치 신의 복음처럼 정신에 직접 울려 퍼졌다.

순수한 뜻의 전달.

형태를 가지지 않는 의사 전달을, 구태여 언어로 알아듣는 스스로가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저게. 대체 뭐지?”

나냐우가 낫을 들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진흙이 하는 말은 오직 나에게만

닿는 듯했다.

“슬라. 임? 아니. 너무 크고. 저런 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다물었다. 낫자루를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아주. 잘. 왔. 다...]

들리냐고 물을 여유도 없었다.

불길함이 주흥색 윤곽처럼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던 아이작을

빼냈다.

“.아이작.”

〈뭐야,왜 끄집어냈어? 해 줄 게 없다고. 아까 격렬하게 인과율를 소모했거든. 저거라도 또 제물로 바치면 모를...〉

까마귀는 나냐우를 부리로 홀끗 가리키다 천천히 멈췄다.

〈저건 또 뭐야..?>

아이작의 부리도,언어도,세계를

번뜩이는 눈으로 주시하던 시선도 한순간 얼어붙었다.

모든 걸 조목조목 짚어 설명하던 까마귀가 침묵하자 마치 관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갑갑해졌다.

- 꾸록. 꾸르륵...

“.나냐우.”

다행히 침묵은 길지 않았다. 까마귀는 멈춰 선 채 말을 이었다. “탄환을 쏴 봐라. 주술을 씌우마.” 나냐우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낫날은 지지대,자루는 포신.

자루에 장착된 커다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 철컥.

은빛의 마탄이 장착됐다.

〈타고,〉

진흙처럼 빚어지려는 상대를 향해 그녀가 탄환을 겨눴다.

〈흩어지고,〉

마탄의 사수는 거대한 방아쇠를 손으로 잡았다.

〈얼어라.〉

방금 전 무리한 탓일까.

세 가지 주술로도 아이작은 힘이 부친 둣,새까만 깃털 몇 가닥이 눈송이처럼 하얗게 색이 바랬다.

- 탕!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듯한 속도로 쏘아진 탄환은 유체가 뭉치는 곳에 정확히 적중.

하지만 나선으로 회전하는 탄환도, 그 끝에서 맹렬히 타오르는 저주도 꿈틀거리는 그것에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고 투과해 사라졌다.

- 콰과과광!

탄환은 동굴 벽에 닿아 폭발했다. 특별한 탄을 썼는지 벽이 10미터

가까이 파였고,내부가 그을리고 무너지고 얼었다.

“이건..!”

무너진 벽면으로 기시감이 쌓아 올려졌다.

경험했던 일.

황급히 사라진,젓빛 기사가 나를 공격할 때 일어났던 것과 정확히 같은 현상이다.

[드디어. 여기까지. 우리는...]

지직거리는 문양을 중심으로 새어 나오는 유체가 짙어지고,흐르는

수렁이 부피를 늘릴수록 그 뜻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점액은 새파랗게 보이기도 했고, 다시 진녹색으로 보이기도 했으며, 문득 시선을 고정하자 주흥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짓물러 스멀거리고 진득거렸지만 삶의 욕구만은 무엇보다 강렬한 것 같았다.

[함께. 해야. 한다...]

- 철컹,철컹,철컹

탄이 쏘아지고, 탄피가 날아가는 소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

오직 나와 저 앞에서 끈적거리는 점액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하나...]

[나는. 영원히. 위대해져야...]

진흙은 나냐우와 아이작의 공격에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새어 나온 점액이 점점 모였다.

- 화르륵!

푸른 저주,붉은 저주가 연속해서 탄환에 덧씌워졌다.

까마귀의 깃털이 과로로 반 이상 하얗게 물들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조금씩 모인 덩어리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로 왔다.

나냐우가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건. 캐빈 애슈턴이 썼던 책 기억나? 지하에 숨은 괴물 말이야. 마치 그거 같은데..!”

틀림없다.

하지만 떠올리지 못했다.

점점 거대화하는 진흙이 기괴할 정도로 친숙한 탓이었을까.

캐빈 애슈턴의 책에 쓰인 것처럼 상대가 ‘두려운 무엇’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은빛 루-륨을 흡수하던 책의 삽화를 떠올리자 문득 정신이 들었다.

“도망. 너희들부터 도망쳐..!”

수렁이 가까워지는 순간.

진흙에 파묻히는 순간.

모든 게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야? 너는?”

- 달그락.

나냐우가 내 어깨를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순간 부화하듯 꿈틀대던 점액이 나냐우에게 진득한 시선을 던졌다.

“신경. 쓰지. 마. 나냐우. 너는 빨리. 도망쳐라. 부탁이다.”

멈칫하는 나냐우에게 소리쳤다.

“도움이. 안 돼!”

인벤토리로도 그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진심을 담아 강하게 외친 탓인지 나냐우가 멈칫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까마귀가 날개를 치며 유체를 멍하니 바라봤다.

“멎지 않는다. .없어. 줄이 없다. 줄이. 없어야 가능한 반응인데... 처음과 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줄을 감시하는 여신들도 이런 건 불가능..

“너도 뒤로 빠져..!”

그때 였다.

허공에서 뚝뚝 흘러나와 부피를 불린 점액이 앞쪽에서 물컹거리며

거대하게 뭉쳤다. 공기도,시간도, 그곳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나’는 무언가에 흘린 둣 점액을 향해 걸어갔다.

몸에서 싹이 돋아 오른다.

겨우내 숨죽이던 나무의 갈라진 밑동에서처럼,무덤가에 핀 붉은 목련꽃처럼,폭설로 덮인 고원에서 파릇하게 움트는 히비스커스처럼...

몸이 뒤죽박죽 가려웠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끈적한 점액이 공간을 전이하는 것처럼 내 몸에서 솟아났다.

진흙은 텅 빈 뼈에 달라붙어 점점

부피를 늘렸다.

마음이 멀고도 가까워졌다.

원근을 가늠할 수 없었다.

진흙이 불어나는 순간 난폭하게 기억이 날뛰었다. 새로운 정보는 원래 자리 잡은 곳에 있던 것처럼 기억에 달라붙었다.

세상이 갉아먹어야 할 풀잎처럼 느껴졌고 그 뒤를 잇는 만억조경과 해자양구,간정재극의 거미줄들이 보였다.

이것이 항하사抗#絲.

감추어 숨기는 실.

기억이 떠올랐다. 문득 배가 고팠다.

약간이지만,옆에 마실 것이 있다. 모든 루-륨은 나의 것.

엉뚱한 곳에서 도는 것을 빼앗아 조금이라도 배를 채워야 한다.

낫을 든 먹이를 바라보자 진득한 군침이 돌았다.

300년을 살아온 먹이.

혈관까지 쪽쪽 빨아낸다면. 좋은 식사가 되겠지.

잡아 으깨려 할 때 진실의 파편을 보는 하찮은 까마귀가 뭔가 입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짜릿한 기억이 뒤덮여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울부짖고 있었다.

검은 산에 가득한 시체들이 우는 진득한 피울음이었다.

별은 아무 데도 떠 있지 않은지, 그조차 사도들에게 잡아먹혔는지, 아직 도착하지 못한 건지 아무 데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다.

어둠 속에서 인간은 잡아먹히고, 잘리고, 벗겨지고,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별빛이 달려온다면,닿을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왕은 기다리지 않았다.

빛이 묻지 않은 세상은 한층 더 또렷해진다.

“왕이시여..

팔다리가 잘린 예언자가 배낭에서 속삭였다.

앞날을 누설하는 대가로,신경이 망가진 그녀는 차가움 외에 다른

감각은 느낄 수 없다.

세상은 그녀에게 춥고,출고,다시 추울 것이다.

예언자가 입을 열자 배낭을 메고 있는 소년이 긴장해서 움찔거렸다. 소년은 벙어리였다.

“적이 많습니다.”

“많다.”

왕은 말을 받아 읊조렸다.

쾌감이 다시 손끝에 돋았다.

끝나지 않는 사냥은 절망은커녕,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아득한 쾌감만 주었다.

“많다.”

수천 도시 가 무너 지 고.

수억 명의 인간이 사육당했던 세계를 내려다보며 언덕 위에 선 왕이 다시 읊조렸다.

적은 죽이고 죽여도 끝이 없었다. 뻗은 손에 닿는 피바람이 환하고 상쾌하다. 예언자만이 왕의 마음을 읽고 추위 속에서 눈을 감았다.

긁어모은 사천의 인간.

손에 든 것은 무기라기보다 희망. 사도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왕 하나뿐이다.

옥좌 위의 영웅.

오직 고고하고,처음부터 정해져

존재하는 왕.

어떤 별빛도 구하지 않고.

신들의 양해도 구하지 않는,홀로 탄생한 균열.

딸려 있는 사천은 심사위원이나 구경꾼조차 아니다.

세계라는 출입구를 봉쇄당해서, 피난조차 가지 못하는 노리개들.

목격과 전승, 찬양과 갈채를 위한 무대 위의 액스트라.

배낭 속에 담긴 예언자는 좀처럼 적응할 수 없는 추위를 느꼈다.

얼마 남지 않은 귓바퀴로 한기가 스며들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왕이시여,적의 종류는.. 예언자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다.

울고 싶을 정도의 누림.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아득한 쾌감을 누릴 차례...

- 까악! 까악!

새하얀 까마귀가 날카롭게 울며 주위를 날아다녔다.

- 까악! 까아악!

온통 검은 산에서 홀로 새하얗게 탈색된 까마귀가 왕을 노려보면서 필사적으로 울었다.

하얀 까마귀가 한 번 울 때마다 부리가 쩍쩍 갈라졌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불쾌한 까마귀를 바라봤다.

“감히 누굴 보는 것이냐?”

“.왕이시여?”

주변의 인간들이 그를 의아한 둣 바라봤다. 부리가 갈라지기 직전, 왕은 울부짖는 까마귀에게 빈손을

뻗었다. 어둠이 일그러지며 파동이 일어났다.

움직임을 멈췄다.

“너..? 끄흐흑. 쿨럭. 정신이 드는 거냐?”

나냐우의 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풀리며 흘러들어 왔던 기억이 분리됐다.

- 꾸르륵. 꾸르륵-

진흙이 몸에 달라붙지 못한 채로 허공에 꾸물거리고 있었다.

[어째. 서..?]

- 치직..!

[61.71%...]

[동. 이... 니다.] [59.95%...]

[동화율.,.니다.] [동화율이 너무...]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동화율이 너무 낮습니다.] [동기화를 거절합니다.]

[어리. 석은...]

허공이 일그러졌다.

“.으로 •••해!”

까마귀가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탈색됐던 검은 깃털은 백색조차 넘어 안개처럼 희미했다. 까마귀의 부리가 얇은 수십 갈래로 갈라져 너덜거렸다.

아이작이 외쳤다.

“.으로 유도해! 깽판을 치고 보자! 여기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거다!”

“위층. 으로?”

“유도라니. 무슨 소리야! 저런 걸 상대로! 그냥 도망쳐!”

앞으로 달리는 나냐우의 외침이 들렸다.

동감이다.

길게 따질 시간도,그런 단어를 떠올릴 여유도 없다.

아마도 1층.

그곳에 저 녀석이 지켰을 루-룸이 있을 확률이 높다.

액체보다 기체에 가까운 상대. 어쩌면 ‘본체’는 아직 1층에 매여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진흙이 몸을 한 번 덮었던 순간. 기괴한 기억이 떠올랐던 순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래로 들어가기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역시 도망가는 게 먼저. 하지만 아이작은 어느 때보다도 흥분한 목소리로 눈을 빛냈다.

〈저 녀석은 네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반대로 네가 저걸 먹어 버릴 수 있을지 몰라.〉

뭐가 그리 좋은지 흥분해서 웃는 아이작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야..?”

〈너는 이미 한 번. 아니,어쩌면 두 번. 저것에게서 벗어났으니까. 다음은 점점 더 쉬워질 거다.〉

아이작이 큭큭대며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물어볼 시간 따윈 없었다.

[먹어라...]

진흙이 말을 이어 갔다.

욕망이 공유된다.

앞쪽으로 달리는 나냐우의 몸을 뒤쫓아 잡아 짓누르고,목에 이를 박고 피를 마시고 싶다.

과연 도망칠 수 있을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수준의 불안이

아니다.

영혼 전체가 침식될지 모르겠다는 얼어붙는 감정이었다.

기억을.

모든 부분을.

저건 대체 뭘까?

나와 어떤 관계일까?

하지만 덮어쓰는 순간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건 분명하다.

한 번 벗어나긴 했지만 언제 다시 먹힐지 모르고.

접촉하더라도,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난 뒤의 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부르기 전 일단 떨어져야 한다.

목이 잘려 바닥에 쓰러진 미유를 바라봤다.

열성적으로 흔들리는 초록색 빛이 잘린 목에서 뿜어졌다.

가능할까?

[해골마 소환을 발동합니다!]

빠르게 정신을 집중했다.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진 말이 일어났다.

목이 사라진 해골마는 단 한 번도 휘청거리지 않고,균형을 잡더니 앞으로 달려와 섰다.

머리 부분에 검은 연기가 부정형으로 피어올랐다.

[영웅급 해골마입니다.]

[목과 함께 자의식의 상당 부분이 잘려 나갔습니다.]

[감정과 주체성이 사라집니다.]

[기능성이 극대화됩니다.] [독립 행동이 감소합니다.]

- 우드드득!

살을 뚫고 뼈와 관절이 변형되어 뾰족해지더니, 말발굽까지 도약에 유리한 형태로 길게 돋아났다.

[너는. 내 것. 아니,나다..!]

중얼거리며 주위를 감싸는 연기를 피해 빠르게 말 위로 올라갔다.

- 파앗!

말을 몰자 한 번에 이십 미터를 홀쩍 뛰어올랐다.

- 다그닥! 다그닥!

질주를 써서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빨랐고,도망이라면 말 위에 타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공간을 잠식하듯이 뒤를 쫓아오는 연기와의 거리가 흑 떨어졌다.

- 다그닥! 다그닥!

목 없는 해골마를 빠르게 몰았다. 몸을 바싹 낮춰야 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몸을 갈랐다.

〈이야,그런 걸 할 줄 알았다면 진작 좀 나한테 보여 주지 그랬어?〉

“여기야! 아직 공간이 열려 있어! 그냥 들어가면 돼!”

길을 낸 나냐우가 통로 앞에서 크게 소리쳤다.

끈적거리는 연기에 대해 아이작이 흥미를 가진 것과 달리 이 장소를 빠르게 벗어나려는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해골마를 몰아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가르베라와 공작의 존재를 신뢰한 탓인지, 이미 내부자들의 공간이라 상관없다는 것인지.

3층과 2층은 아래로 내려오는 걸 방해하는 어떤 장치도 없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뒤에서 다가오는 녀석을 막을 만한 방법도 없었다.

- 쿠궁. 쿠궁_

3층으로 나아갔음에도 끈적거리는 연기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 쿵. 쿵. 쿵..

크게 긴 진동이 울렸다.

연기가 내는 진동이었다.

마치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만나서 기쁜 듯 인간의 심장이 크게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소리는 계속 커지며 뒤의 공간을 다 잡아먹는 듯한 느낌을 줬다.

형체 없는 연기 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동굴이 무너져 길을 막았지만,목 없는 해골마는 단단한 부분을 찾아 딛고 빠르게 도약했다.

허공에 매달린 공작의 상반신이 바닥에 떨어졌고,죽어서 새까닿게 말라 있던 가르베라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좁아지는 동굴 통로를 지나 동굴 앞쪽으로 더 나아갔을 때였다.

한순간, 아찔할 정도로 끈적이는 연기의 심장 박동이 빠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 쿵! 쿵! 쿵!

[저기. 저기다.......]

검은 연기가 나냐우에게 가졌던 관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괴성을 지르는 것처럼 강렬하게, 연기는 앞쪽에 놓여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연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지잉! 지이잉!

동굴이 무너져도 흠집 하나 없이 버틴 플라스크들이 얇은 유리병처럼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一 지이잉! 픽! 퍽! 퍽! 퍽...

나냐우가 연달아 탄환을 맞추고, 미친 것처럼 공격해 봐도 얇은 실금 정도가 끝이던 재질의 플라스크가 마치 한 장의 종이를 찢는 것만큼 아주 쉽게 깨져 나갔다.

플라스크는 단 몇 초도 저항하지

못하고 깨지고 찢어졌고,내부에 들어 있던 인간들은 투명한 액체와 함께 무력하게 바닥에 쏟아졌다.

- 투둑! 투두둑!

인간들의 몸 곳곳에 꽂힌 촉수가 뽑히며 안에 든 액체가 사방으로 과르르 쏟아졌다.

공기에 닿은 투명한 액체가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두 가지 색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한 종류는 새까만 검정.

다른 한 종류는 익숙한 은빛.

- 츄르릅. 퓨읍. 츄르릅•

연기는 엉망으로 망가진 경사에 바닥을 흘러가는 루-륨을 빠르게 핥아먹었다.

루-름을 핥아먹는 연기에서 정말 즐거운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연기가 멈췄고,

“아..

눈앞에 터지는 흥수에 나냐우도 걸음을 멈췄다.

아이작은 플라스크가 깨지는 순간 이미 허공에서 거꾸로 선회했다.

바닥에 내려앉아 연기가 놓치는 루-륨을 부리로 들이켰다.

〈이게 다 얼마야! 이 정도면 내가 평생 모았던 양의 수백 배,아니, 솔직히 그런 양이랑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나다구!〉

모두 한 번에 부서진 플라스크의 액체가 공기에 닿아 부풀며 발목이 잠길 정도로 흘러내렸다.

“굉장해... 이런 식으로 압축하는 조합은 상상도 못 했는데. 공기와

접촉하는 게 해체 조건이라나

- 까악!

〈내가 뭐라고 했냐? 분명히 뭔가 터질 거라고 했잖아!〉

까마귀가 사납게 울며 흘러내리는 루-륨을 마셨다.

나도 해골마를 멈추고 반사적으로 말에서 내렸다.

‘흡수.’

도망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모두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

되돌아선다.

순수한 힘 그 자체.

루-륨의 사용법을 충분히 파악한 이들에게 있어서는, 이곳이야말로 감동과 희열의 천국.

무엇보다도 나에게 있어.

이 신비한 액체는 바뀌는 세계의 이정표였다.

- 쉬이이이이이이익!

부서진 플라스크들에서 한꺼번에 은빛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빼곡히 놓인 플라스크에서 터진 액체가 터무니없는 속도로 온몸에 빨려 들어왔다.

몸 전체의 부피를 압도하는 양의 액체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회로로 폭주했다.

[동화율이 멸어집니다.]

[56.42%...]

[전직이 해제된 상태입니다.] [루-륨의 충분한 습득으로 인해서 전직 권한이 부여됩니다.]

[54.72%...]

[두 단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전직 특전은 누적 적용됩니다.] [다음으로의 전직이 가능합니다.] [죽음의 기사(Epic!)(New!)]

[에픽 직업입니다.]

[전직 해제 특전: 파멸의 숫자] [경험치가 666%로 적용됩니다.]

[레벨이 상승할 때마다 분배할 수 있는 능력치가 6씩 증가합니다.]

[검술 스킬의 경험치가 여섯 배 빠르게 증가합니다.]

[전투 및 비전투 스킬의 경험치가

[아직 전직하지 않았습니다.]

[추가 능력치 100을 달성할 경우, 능력치를 소모해서 죽음의 기사로 자동 전직합니다.]

[죽음의 기사는 홀로 만마萬魔를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잊힌 상징들은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을 부여합니다.] [특전: 잿더미의 무덤]

- 무기에 업화를 담아,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불타게 만듭니다.

- 불이 태우는 것은 상대의 과보果報

이기에,충분한 죄업을 가진 상대 에게만 사용 가능합니다.

- 직업 레벨 5, 검술 레벨 15부터 개방됩니다.

[특전: 베스커리빌의 별]

- 별들이 당신을 관찰합니다.

- 마왕의 교리를 선언할 때마다 해당하는 마왕의 힘을 강제로 끌어 쓸 수 있습니다.

- 습득한 교리 레벨 총합이 60에 도달한 시점에 개방됩니다.

[특전: 테트라비트의 논쟁]

- 마계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당신을 공격하는 마물들이 높은 확률로 분열됩니다.

- 지능이 뛰어난 마물일수록 상호 분열될 확률이 높습니다.

- 직업 레벨 5, 매혹 계열 스킬이 10이상 달성됐을 때 개방됩니다.

[특전: 유치린의 후회]

- 지금까지 찍었던 스탯을 모조리 재분배할 수 있습니다.

- 스탯 총합 100을 달성했을 때 1회 개방됩니다.

- 스탯 총합 666을 달성했을 때 추가 특전이 개방됩니다.

[특전: 베트라스의 차가운 달]

- 다섯 가지 달의 비밀이 당신을 향해 미소 짓습니다.

- 인력: 달의 인력이 당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인력이 극에 달하면 당신의 뜻에 따라 지진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 궤도: 달은 때로 더욱 커지고, 때로 밝아지고,때로 어둠 속으로 잠겨 버립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언제나 호의적입니다. 달과 관련된

스킬 및 아이템이 시기와 관계없이 가장 유리하게 발동됩니다.

- 당신이 지배하는 영토를 달에서 알아차렸을 때 특전이 개방됩니다. (영주 레벨 10이상)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의 특전이 펼쳐진다.

하지만,여섯 배를 훌쩍 뛰어넘는 경험치 상승률과 해골병사일 때의 6배나 되는 스랫 상승만 읽어 봐도 황당한 능력.

전직이 해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광포한 혜택.

사방에 쏟아지는 루-륨이 정말로 ‘힘’을 대변한다는 증거다.

추가 능력치 100을 바쳐야 한다는 조건도 너그럽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용사를 살해했습니다!]

[사전 저장된 용사 포인트를 강제 약탈합니다!]

[93,31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 구매력: 35.93%!]

[세계부정 Anti-World 을 선택한

상태입니다.]

[구매력 최대치에 도달할 때까지 상점 이용이 불가합니다.]

[용사를 살해했습니다!]

[강제 약탈...]

[120,39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 구매력: 47.96%!]

[용사를 살해했습니다!]

[76,03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현재 구매력: 55.56%!]

[강제 약탈...]

[용사를 살해했습니다!]

[94,313 포인트를...]

이것들이, ‘나의 살해’로 취급되고 있었다.

[현재 구매력: 84.23%]

[세계부정 Anti-World 을...]

나는 잡다한 세부 내용을 좀 더 훌어보다 아이작과 눈이 마주쳤다.

“이거..

〈정말 최고라고!〉

저 플라스크조차 한 번에 간단끼 부숴 버리는 새까만 연기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당장 죽어도 만족스러울 만큼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어냈다.

용사 상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간단한 혜택일 리가 없다.

〈좋아. 이런 힘을 갖게 된다면. 마왕이나 여신 따위의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리가..!〉

금빛으로 변한 아이작이 진흥의 마안을 반짝이며 가쁘게 외쳤다.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그는 어디까지 갔을까.

도약.

루-륨을 흡수하면서 인벤토리마저 거대하게 부풀었고,회로를 도는 마력이 폭주하며 몸속에서 온갖 곳을 두드려 날뛰며 스스로 길을 넓히고 있었다.

[더블 캐스팅. 더블 캐스팅...]

넘쳐흐르는 힘으로 마법을 겹쳐 발동하고,다시 겹쳐 발동했다.

내가 익힌 마법 정도는 그 무엇을 수천 번 발동해도 고갈되지 않을 만한 루-륨이 몸속에 있다.

- 지잉! 지이잉!

기괴한 소리가 울리며 플라스크의 마지막 먹이들이 두 눈의 즙까지 빨린 미라가 되었을 때.

어느 때보다 찬란한 금빛 날개를 반짝이며 아이작이 말했다.

루-륨을 한껏 들이견 그 존재는

더 이상 주술로 작동하는 까마귀 인형 따위가 아니다.

주술 그 자체...

세계를 둘러싼 거미줄을 속여서, 포상은 자신에게, 징벌은 남에게.

은혜는 절반으로,복수는 천배로 하는 유아독존推我獨聲이 그곳에 날갯짓도 없이 떠 있었다.

주술사가 말했다.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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