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시작의 끝 (4)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1월 20일이라고?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인벤토리에서 금은보화를 보이며,병사들을 현혹해 얻으려는 원래의 의도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어떻게……?
이어 가야 할 다음 질문이 않았다.
꺼내어 정보를 까맣게
나오지
침묵이 길어지고 황금의 마력이 사라졌다.
응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뭇거리며 막 무슨 말이든 뱉어 내려고 할 때였다.
“모두! 사특한 언데드 따위에게 흔들리지 마라……! 우리의 신성한 임무를 잊었나?”
“그렇지.”
“으음.”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저런 더러운 황금 따위에 현혹되지 마라! 나 샤피로는 황제 폐하의 충실한 검이다!”
가짜 보석이 아니냐고 의심하던 병사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오늘이 1월 20일이라는 말을 듣고 머뭇거린 탓에 더 여지를 준 것 같았지만, 투구 사이로 내비치는 병사의 안광은 굳건하고 흉흉했다.
샤피로는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금괴에 눈길도 주지 않고 날카롭게 철검을 휘둘렀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이러면,보물을 더 소환할 수一!”
- 과직!
미처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칼이 옆구리에 꽂혔다.
피하고 어쩌고 할 새조차 없었다. 달려든 병사는 투구로 금화를 받던 녀석보다 훨씬 강하고 빨랐다.
옆구리에 들어와서 즉시 위쪽으로 쳐올리는 철검을 손으로 잡았지만, 갈비뼈가 손과 함께 한심할 정도로 우수수 부서져 나갔다.
황당했다.
이런 시골 무덤이나 도는 병사가 무슨 긍지가 이렇게 높단 말인가?
봉급의 수십 배는 될 금화.
위험도 대가도 없는 공짜 금화의
유혹을 뿌리친 시골 경비병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 달… 그락!
필사적으로 남은 금화를 향해서 바닥을 기어갔다. 인벤토리 전개 능력도 떨어진 탓에 금화 근처에서 공간을 열어야 했다.
‘다시 줍는다.’
한 푼 한 푼이 아까웠다.
이대로 인벤토리에서 꺼내진 채 소모되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더… 소환……
투구에 금화를 담던 병사가 나를 붙잡았다.
녀석만큼은 아직도 금화에 미련이 남아 있는 듯했다.
“어서 금화를 더 소환해!”
도움도 안 된 주제에.
마지막 힘으로 손목을 깨물었다. 치악력은 남았는지,아니면 깜짝 놀라서인지 녀석이 흠칫하며 금화 몇 개가 떨어졌다. 떨어진 금화를 빠르게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 금화! 내 금화!”
- 콰직! 콰직!
우람한 녀석에게 짓밟히다 보니 의식이 어두워졌다.
1월 20일이라는 말.
날짜를 알고 너무 혼들렸다.
말이 끊겼다.
다음에는… 반드시……!
* * *
- 띠링!
[계승…….]
“나는 황제 폐하의 충실한
* * *
- 띠링!
[계…….]
“명예는 영원하다!”
* * *
- 띠링!
“질베르, 무슨 헛짓거리야? 지금 동료를 배반할 셈이야?”
“그건 아니……
“죽어라,언데드!”
* * *
一 띠링!
“뭐? 날씨……? 어제 비가 왔잖아.
정말 그것만 말하면 금괴를 나한테
주는 거 맞지?”
“질베르,정신 차려! 임무 중에
어떤 사소한 정보도 누설하지 마라!”
“아… 으응……
“황제 폐하 만세!”
* * *
一 띠링!
할 말을 잃었다.
몇 번을 연속해서 죽으며 알아낸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병사들의 신상명세 일부.
항상 셋이 다닌다는 것.
압도적으로 힘이 부족한 상태라 곧바로 죽다 보니 대화가 제대로 통하지도 않았다.
대화로 상황을 타개해 보려는 건 완전히 실패였다.
매번 애써 회수한다고 회수했지만, 인벤토리에 있던 금화는 절반이나 줄어들어 있었다.
투구에 금화를 담던 질베르라는 병사에게 희망을 걸었다.
아예 보석까지 쥐여 주며 동료를 배반하라고 주문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아까운 보석만 허무하게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고, 병사들은 말도 거의 섞지 않고 나를 계속 죽였다.
‘그나마 하나.’
유의미한 정보가 하나 있었다.
오늘이 1월 20일이라는 사실.
곧 죽일 언데드에게 날짜를 갖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날짜를 말했다 치더라도,세 명이 전부 다 같은
날짜를 말할 확률은 극히 낮았다.
몇 번을 반복해서 물어봐도,묻는 순서를 바꿔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1월 20일. 연도는 1147년.
'바로 그날이다.’
그러나 무덤에는 레이 루비아도, 네크론의 졸개들도,폭우도 없고 처음 보는 제국의 병사들만 순찰을 돌고 있을 따름이었다.
‘폭우는… 있긴 했지.’
간신히 얻어낸 정보였다.
하지만 폭풍우가 왔던 건 오늘이 아니라 어제라고 했다.
날씨가 하루씩 앞당겨진 셈인데,
그렇게 바뀌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물론 병사들에게 물어본다고 답이 나올 리는 없었다.
‘적어도… 그날 전후로 날씨가 바뀌는 건 같나.’
〈1월 20일은 날씨가 항상 전날과 달라요. 다음 날과도 다르죠. 혼자 돋보여요.〉
〈날씨가 다르다고?〉
〈맑다가 눈이 오고,눈이 오다가 맑고,비가 오다가 눈이 오죠.〉
루비아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언제쯤 다시 루비아 시나리오를 진행할 수 있을까?
언제쯤 평화로운 세계선에 그녀를 안착시킬 수 있을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수없이 죽게 만들었으면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태연히 떠올리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마음이 술렁거렸다.
고요한 달빛까지 괜히 애틋하고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 달그락.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그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하루를 더 살아남느냐 아니냐가 당장의 문제다.
‘뭐 없나.’
나는 인밴토리에 가득 찬 것들을 훑어보다가,뭔가를 꺼낼 생각을 멈췄다.
‘이게 아니지.’
지금 같은 진도라면,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 전에 자원을 지나치게 소모할 가능성이 컸다.
상인연합처럼 제대로 값을 쳐주는
상대만 만나면 훨썬 더 보람차게 쓸 수 있는 금은보화를 낭비하기는 싫었다.
더 이상 인벤토리에서 뭘 빼는 건 관두자.
‘그 반대는 어떨까.’
이제부터 넣어 보자.
내가 녀석들에게 빼앗는다면.
칼만 빼앗아도 경비병의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무덤가를 수색하는 병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 있을지도.
‘오른쪽.’
- 저벅.
발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환청인지 모른다.
아직 기척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높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훤하다.
몇 번이나 반복했다.
병사 질베르는 항상 커다란 바위 오른쪽으로 다가온다.
‘망할 새끼.’
머리에서 욕설이 맴돌았다.
탐욕스럽게 금화는 급히 주워 가는
주제에 정보는 주지 않는 놈이다.
물론 대화 자체를 완강히 거부해, 오늘이 1월 20일이라는 말조차도 한참이나 나중에야 한 샤피로라는 녀석보다는 훨씬 쓸모 있었지만.
- 달그락.
나는 바위 뒤로 걸어가 숨었다. 어차피 기척을 죽이려고 해 봤자 죽여지는 것도 아니었다.
셋. 여섯,아홉.
지금이다.
손목만 쳐서 칼을 떨어트리자.
공격해 오는 방향도,속도도 전부 알고 있다.
- 부응!
뒤로 한 발자국 피하고,
왼쪽 앞으로.
그다음은…….
- 퍽!
* ♦ ♦
一 띠링!
[계숭……J
움직임을 전부 외우고 있었는데도 실패했다.
‘내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예상했다는 것처럼 왼쪽 앞으로 너무 빨리 나가면 녀석의 움직임이 변한다.
여기서는 잠깐 지체를 하고…….
질베르가 어깨를 살짝 움츠릴 때 옆으로 굴러서!
- 과직!
* ♦ *
- 띠링!
[계승……J
발을 잘 쓰는 놈이라는 걸 깜빡 잊었다. 발의 움직임까지 놓치지 말고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은 순조롭다.
한 번에 두 단계 이상은 나아가고 있으니까.
이렇게…….
- 퍽!
생각보다 더 발을 잘 쓴다.
- 띠링!
♦ ♦ ♦
- 띠링!
* * *
- 띠링!
- 부응!
질베르의 공격은 몸을 뒤로 돌린 상태에서 피할 정도로 익숙했다.
이제 볼 필요조차 없었다.
전부 외운 움직임이기에 이어지는 공격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전부 피해 냈다. 구부리고,살짝 멈추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뭐,뭐야?”
두 손으로 강하게 철검을 내리친 질베르가 당황했다. 공격이 연달아 실패로 돌아가자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는지 온 힘을 실어 묵직하게 휘둘렀는데,그것도 완벽히 피하자 녀석은 무방비 상태가 됐다.
‘지금이다.’
- 스륵!
이것 이상의 상황은 없었다.
하지만 질베르는 바로 눈앞에서 찌르는 칼날을 피하지 않았다.
“우호옷!”
- 캉!
곧바로 칼을 놓더니,손을 뻗어 얇은 칼날을 잡았다.
칼은 징이 박힌 장갑을 베어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놀랐잖아. 엄청 느리네.”
一 덥석!
그가 강한 힘으로 손목을 잡았다.
도저히 내가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손아귀에 가해지는 힘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했다.
- 우둑! 우두둑!
“이런 칼은 어디서 난 거야?”
한쪽 손목이 뼈째로 으스러졌다.
하지만,이런 상황이라도.
아직 목표는 달성할 수 있었다.
“뭐,죽어라.”
질베르는 손으로 내 목을 잡더니 다른 손으로 커다란 주먹을 뒤로 당겼다.
- 달그락!
그 순간 한쪽 손목을 포기하고 몸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우습게도,잡힌 손목이 너무 쉽게 부서져서 생긴 나조차 예상치 못한 효과였다.
“응?”
‘인벤토리.’
바닥으로 하나 남은 손을 뻗었다.
녀석이 놓은 철검을 잡고 곧바로 인밴토리를 전개했다.
- 스륵!
철검이 허공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앗!”
당황한 질베르가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나를 짓밟았다.
- 빠각! 빠각!
‘성공이다.’
철검은… 인벤토리에 넣었다.
병사 질베르.
그는… 더 이상 무덤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대 속에서 시야가 캄캄해졌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도 점차 흐려졌다.
♦ ♦ *
一 띠링!
빠르게 인벤토리를 열었다.
‘있다 r
질베르의 철검이 들어 있었다.
모습은 그대로였다.
인벤토리의 보물들에 비하면 정말 하잘것없는 물건이었지만,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칼을 잃었으니 경비병 질베르는 완전히 사라졌을까?
평범한 여행자나 나무꾼으로 변해 있을까?
일어나서 상황을 확인하는 일이 자못 기대되기까지 했다.
- 팟!
경비병의 철검을 들고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철검을 뺏은 녀석이 다가오던 위치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우람한 덩치에,둥이 넓고 커다란 투구를 쓴 병사였다.
이제 꽤나 친숙한 녀석이었다.
- 부응!
질베르가 칼을 휘둘렀다.
칼을 빼앗더라도 아무 효과도 발휘 하지 못한다는 게 명백했다.
“어떻게……
인벤토리에서 칼을 꺼냈다.
질베르가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검집에 끈을 묶은 모양과 손잡이 가죽만 살짝 다르고 크기도 모양도 거의 비슷했다.
“칼이,있… 어?”
“뭐?”
그는 내 말을 무시하며 같은 칼을 휘둘렀다.
움직임은 다 파악하고 있었지만, 허무해서 힘이 빠진 탓에 고작해야 세 번도 피하지 못했다.
꺼내어 쥔 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엉켜서 흙에 쓰러졌다.
녀석은 내가 다시 일어나게 두지 않았다.
- 퍼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