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31화 (331/458)

374화 틈 (6)

“최후의 12인이 살아남는 전장! 출정하십시오!”

- 쿠구구구궁!

단단한 땅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찢어지고, 주변 건물들이 먼지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높이 솟았던 에라스트의 탑들이 유리창에 맺혔던 이슬처럼 시커먼 바닥으로 홀러내려 간다.

반경 10미터에서 시작한 붕괴가 에라스트 전체로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까만 어둠이 어둠 위를 누더기처럼 기워대며 내 존재를 깊은 곳 어딘 가로 처넣으려는 것 같았다.

- 광!

허공에 전개한 인벤토리를 밟고, 사방을 둥그런 구 형태로 감싼 채 버렸다.

무너져 날리는 도시의 건물들이 잔해가 되어 인벤토리를 때렸다.

제대로 된 기준점도,균형도 잡기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버려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못 하고 순순히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촉수로 루비아의 얼굴을 얽은 채 허공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을 참을 수 없었다.

루비아의 입이 열렸다.

“으읍……. 괜한 반항입니다. 그냥 얌전하게 가시라니까요?”

입 안쪽에서 수십 개의 가느다란 촉수가 동시에 꿈틀거린다.

“감히 그따위 모습으로 나에게

지껄이지 마라.”

마왕에게 먹힌다는 힘이다.

‘용의 힘이 새겨진 단검……

눈앞에서 지껄이는 녀석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최소한 한 방 정도는 어떻게든 먹여 주고 싶었다.

- 스윽!

인벤토리에서 칠흑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칼날 색과 대비되는 은빛 가죽으로 싸인 자루가 마치 달라붙듯 손에 잡혔다. 한 손으로

잡고,그 위를 다시 다른 손으로 덮어 잡았다.

- 우우우웅!

스스로 위기를 감지했는지 칠흑 단검이 울부짖었다.

‘역시……

후작에게 추적당할 때와 정확히 같은 현상이다.

내 뜻대로 발동하는 건 아니지만.

주인이 위기에 처하면 어떻게든 움직여는 준다는 건가.

검은 날에 떠돌던 하얀 글자들이

저절로 흘러나오며 인벤토리 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 파직! 파지지직!

인벤토리 표면을 춤추는 새하얀 글자들이 나에게 힘을 요구하고 있었다.

‘개방.’

예전과는 다르다.

황실 비역에 있던 루-륨을 대체 어떻게 흡수된 건지도 모를 만큼 아득하게 많이 빨아들였다.

몸에 곤히 잠들어 있던 루-륨이

비로소 쓰임새를 얻은 듯 회로를 미친 듯 돌았다.

소모조차 없다.

그저 도는 것만으로도.

칠혹 단검의 제대로 된〈발동>이 가능하다.

- 화악!

질질 흘러내리는 무거운 어둠을 새하얀 빛살이 찔러 갔다.

힘이 홀러들어 간다.

단검에 새겨진 새하얀 글자들이 신명 난다는 듯 팽창하며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이거 참… 대단하시군요……. 너무 잘 버티시는데요. 주머니에 그런 걸 넣어 두셨을 줄이야……

루비아가 촉수로 만들어진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살기를 품고 단검에 힘을 더욱 불어넣었다. 몸집을 키운 새하얀 글자들이 허기지다는 듯 주위의 어둠을 환하게 살라 먹었다. 차지할 공간을 잃은 어둠들이 사선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예전에 후작에게 죽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힘이 글자를 뒷받침했다.

- 화르르르!

활동성도,뿜어내는 빛도,부풀어 오르는 크기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타오르는 글자들이 씌워진 인벤토리는 공간을 계속 환하게 밀어내어 갔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인벤토리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검술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1,012크루나를 획득했습니다!]

무언가를 살해하는 과정으로라도 판단하는지, 허공에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효과가 있다! 이대로라면……!’

빛으로 채워진 공간은 점점 커져, 금방 허공에 떠 있는 루비아까지 닿아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글자를 씌운 인벤토리를 계속 부풀려,반경 십여 미터까지 만들었을 때였다.

- 과아아아아앙!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뒤쪽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순식간에 인벤토리가 절반으로 구겨져 쪼그라들고,하얀 글자들은 파직거리며 흔들렸다.

뒤에는 하나의 성보다도 훨씬 더 거대해진 레나가 있었다.

부서진 수레로 만들어졌던 레나는, 무너지고 갈라진 도시의 잔해가 계속 이어져서 꽉 쥔 주먹 크기만 이십 미터가 넘게 변해 있었다.

가슴 위쪽은 까마득해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좌르르르륵!

쪼그라든 인벤토리에 루비아의 촉수가 직접 감기기 시작했다.

촉수 위로 붉은 기운이 피처럼 서리며 수백 번의 번개와 폭발이 글자들 위로 겹쳐졌다.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인벤토리는 쪼그라들고,글자는 흔들렸다.

가장 안쪽에 있는 몸도 충격을 받아 떨리고 있었다.

‘마왕도 아닌데… 이 정도라니. 마계는 역시 차원이 다른 건가.’

이런 녀석의 존재는 아예 마왕 강림 때 들은 적조차도 없다.

여기서 죽는 건가 싶을 때였다.

一 퍼억!

루-름을 잔뜩 홉수한 하얀 글자 하나가 부풀어 오르다가,풍선처럼 터지며 인벤토리를 휘감은 촉수를 한 조각 잘라 냈다.

[낮은 레벨의 검술로 진역穆域의 일부를 훼손했습니다.]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검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검술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번에 두 단계의 검술 레벨이 올라가며,검은 피안개가 허공에 맴돌았다.

수백,수천 가닥에 가깝게 분열한 촉수 중에 고작 하나지만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굳어 버렸다.

“아니,아깝게……! 그만합시다……!”

- 부응!

그사이에도 점점 크기를 더해 간 레나가 손을 위로 올렸다.

그 모습을 보자 더 이상 저항할 의욕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쪽이 본체인지도 모르니……

“그만합시다! 솔직히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까우니 그만합시다!”

루비아가 외쳤다.

“어떻습니까. 그 단검을

저에게

내어 주시는 건요?

그것만 주시면,

뭐라고 했죠? 아, 그래요.

각인을

역전시켜 거는 저주에 대해 알려

드리지요.”

이게 마음에 든 건가.

“•••싫다.”

녀석이 알려 준다는 정보.

애초에 내가 무리해서 마계까지 들어온 목표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는 환상 속.

이미 한 번 나를 농락한 녀석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최소한 모습부터 바꾸든가.

“어휴… 거절이라고요?”

루비아가 머뭇거리다 선심 쓰듯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제 쪽으로 들어온다면… 당신이 가진 ‘주머니’ 말입니다만, 그 사용법에 대해서 도와드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이걸……?”

“네. 그 휴대용 진역穆域 말이죠. 물건 보관용으로 쓰고 계시던데 아니면 지금처럼… 흐흐… 거칠게 사용하는 것도 멋지긴 합니다만……

녀석은 분명히 인밴토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세심한 발전 가능성은 많이 있습니다. 그건 저 같은 존재가 아니라면 알 수 없죠……

인벤토리의 발전 방법을 이자가 알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큭큭…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당신이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지금 이 공간이 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그사이 잊으신 겁니까?”

이 장소 전체가 녀석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

이쪽 전문가라는 거다.

어떡할까.

인벤토리에 대해서 알려 준다는 사실에 혹한다.

‘못 이기겠지.’

어차피, 죽음을 각오해도 단검의 문자를 전부 소모해 상처나 조금 입히는 게 전부일 것 같다.

그 뒤에는 끝이다.

어쩌면 자살도 성공하지 못하고 영원히 구속될 가능성이 있다.

믿고 단검을 줘 볼까?

하지만 이걸 순순히 넘기는 순간 내 협상력은 급격히 낮아진다.

‘이 단검… 아니,새겨진 문자가 소중한 거야.’

애초에 녀석이 대화를 시도한 건 단검 위의 글자 하나가 폭발해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하얀 편지 봉투가 허공을 가르고 나를 향해 갑자기 날아들었다.

복잡한 문양으로 단단히 봉해진 편지였다.

‘나한테 무슨 편지가……

- 좌르륵!

하지만 똑바로 날아오던 편지는 루비아가 뻗은 촉수에 감겨 위로 멀리 을라갔다.

“흐음……

루비아는 봉인된 편지를 읽지도 않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구겨서 제 몸 안으로 집어넣었다.

뭘 하는 걸까?

마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다.

“방금 그 편지… 내 쪽으로 오는 것 같았는데?”

“아니요. 착각입니다. 제 껍니다.”

- 피잉!

- 피이잉!

연달아 편지 몇 개가 내 쪽으로 더 날아왔지만,루비아의 촉수는 모두 빠르게 잡아채서 몸 곳곳에 숨겨 놓았다.

루비아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으음……. 짜증 나게 됐군요……. 일단 가십시오! 제 제안에 대한 답은 살아남으면 듣도록 하죠!”

- 화•르르르르르!

무너진 에라스트를 거의 다 흡수한 레나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주변 공간 전체를 아래로 밀어붙였다.

만들어진 ‘땅’이 아니라 그 밑을 수천 겹으로 기운 끔찍한 어둠이 순식간에 짙어지며 덮쳐 왔다.

- 과•아아아아아아!

어둠의 폭류가 인벤토리로 막은 허공 자체를 흐르게 했다. 흐르는 공간이 빙글빙글 돌았다.

방향도 시간도 모조리 갉아먹힌 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어딘가로 휘말렸다.

제안을 더 빨리 받아들여야 했나 싶은 생각과 함께,몸이 원심력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며 새까맣게 정신이 흩어졌다.

* * *

어둠이 옅어졌다.

대신 몸을 스치는 바람의 울음과 은은한 달빛 조각들이 뼈 사이를 미끄러졌다. 올려다본 둥근 달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여기가… 마계?’

지상에서 보는 달과 무늬도 색도 전혀 달랐다.

처음 보는 녹색 달은 눈동자처럼

깜빡거리며 아래의 풍경을 차갑게 훑었다.

모든 걸 촘촘히 훑어보는 듯한 그 시선에 움찔하며 나도 주위를 둘러봤다.

一 =士己 2 2 2.

거대한 회오리들이 아주 천천히 허공에 떠 있는 건물들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검고 비틀어진 나무들은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려는 듯 뿌리와 가지를 조금씩 움직였으며,

제법 무성한 숲도 있었지만 주위 대부분은 풍화된 시체조차 드문 폐허 였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탑들의 반편이라도 되는 듯 부서진 돌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반짝이는 거대한 전광판이 보였다.

그 전광판은 존재만으로도 폐허 전체에 왜곡을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반짝거리는 전광판에 뜨는 글씨를 보며 칼을 꽉 쥐었다.

[투기장 규칙]

- 최후의 12인이 된다.

- 성배,금화,칼,도토리 네 장의 카드를 모두 모은다.

- 이상의 두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를 달성할 경우 승리.

- 대화는 불가능!

‘…서로 죽고 죽이라는 건가.’

최후의 12인이라.

더러워도 일단 여기는 룰을 따라 줘야 할 것 같다.

감옥의 주인에게 거짓 정보라도

얻어 낸다면,최소한 다음 생에서 참고 사항은 될 확률이 높았다.

지금까지 들은 정보도 있지만.

그걸로는 다시 회귀한다고 해도 기스-제-라이를 살리기는 어렵다.

일단.

‘이것도 환상일까……

인벤토리를 발동시켜 주위로 계속 돌리고,땅과 잔해들에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흙과 돌만 먼지가 되어 튀어오를 뿐,가짜 에라스트처럼 변화하는 느낌은 없었다.

실재하는 세계이거나.

최소한 인벤토리로 어떻게 할 수 있는 환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문득 발아래 이물감을 느꼈다.

딛고 있던 땅에서 발을 떼었다.

그곳에 도토리가 그려진 초록색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건가……

카드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대로라면 빼앗지 못하겠지.

어떤 녀석들이 을지 모르겠지만, 인벤토리가 없는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선 것이다.

카드를 빼앗길 걱정이야 없으니,

앞으로 세 종류만 더 모으면 된다.

느긋하게 해도 충분.

누가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는지도 전광판은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혹시 한 종류의 카드를 여러 장 습득한 녀석이 나머지를 바닥에 버려 주는 일은 없을까?

곳곳에 돌아다니다 보면,구태여 싸울 필요 없이 카드를 주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을 때였다.

- 과콰콰광!

굉음이 울렸다.

수증기가 수십 미터까지 치솟아 사방을 뒤덮었다.

‘뭐지?’

- 과쾅! 과광! 과쾅!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허공에서 일어나는 격돌을 바라봤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의 폭풍과 그보다 한참 위에서 일어난 얼음 폭풍이 부딪치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참가자들의 전투인 건가?’

차가운 긴장감이 몸을 얼려 왔다.

지금까지 본 아쥬라의 탑주들도 저런 출력은 꿈도 꿀 수 없었다.

- 콰과광!

얼음 폭풍은 응결되며 불을 역시 끝도 없이

허공에서 계속해서 덮쳤고,불의 폭풍 휘몰아쳤다.

양쪽 마법사 싸우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모두 허공에 떠서

‘저기는 절대 가면 안 되겠군

싸움은 절대 무리다.

끼는 것도 무리.

약한 녀석들을 찾자.

카드를 줍거나.

어디까지나 목표는 살아남기다.

나는 거대한 격돌이 일어나는 곳의 반대를 향해 조심스럽게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니……/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저런 격렬한 격돌이라면 한 명은 분명히 죽을 거다.

그리고 저 싸움의 패배자라면.

터무니없이 강하겠지.

주먹을 꽉 쥐고 생각했다.

흡수다.

빨아들인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정반대로 돌렸다.

아직 직접적으로 위협이 될 만한 거리는 아니다.

최소한 십여 킬로미터는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탐지.’

갑자기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을 가능성이 있다.

칠흑 단검은 다시 인벤토리 속에 곱게 집어넣고,다른 칼을 꺼내어 잡았다.

- 과과과광!

격돌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났다.

다가가는 도중에 탐지 범위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격돌 장소에서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돌무더기에 조심스레 몸을 숨겼다.

한참이 지났을 때.

서서히 승부가 기울기 시작했다.

- 과광! 과광! 과광!

허공에 응결되어 있던 빙판들이 연달아 부서진다.

빠직,빠지직 대는 얼음의 비명이 들린다.

곧 수증기가 걷히고,이글거리는 푸른 열기만이 느껴지다 그마저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상황 정리.

얼음 쪽이 진 것 같다.

서두르는 건 위험하다.

나처럼 홉수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면 카드만 가질 거고,구태여 시체에 손대지는 않겠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조심스럽게 그쪽으로 움직였다.

'뭐,인벤토리가 있으니까……

천사들까지 밀어냈던 힘.

환상감옥의 영주에게서도 어쨌든 버티긴 했던 힘이다.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방어만큼은 익숙하다.

지지는 않겠지.

격돌 장소로 향하는 숲의 절반 정도를 통과했을 때,바람이 불며 나뭇가지들이 움직였다. 수증기를 품은 바람이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온 곳과 반대

방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탐지 범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무언가의 ‘시선’이 멀지 않은 거리 에서 부딪쳐 온 느낌이었다.

실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시선만 보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탐지로 못 잡는 녀석인가.

하지만 반경 3미터로 전개해 둔 인벤토리가 있다.

‘방어’는 완벽.

버티면서 강한 시체를 흡수하고, 버려진 카드를 획득해 저주 해제에

대해 정보를 얻으면…….

그때 였다.

- 스윽!

숲 어딘가에 있는 ‘시선’을 의식하고 있을 때,반대쪽으로 갑자기 무언가 접근해 들어왔다.

돌아볼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는 인벤토리 안에 곧바로 파고들었다.

방어를 부수고 들어온 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지나 들어왔다.

어떤 저항도,반탄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인벤토리 영역을 지나친 상대는 내 등 뒤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덮어 씌운 다음 잡고 이동했다.

마치 땅이 접히는 듯이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 털썩!

뒤에서 나를 멀리 끌어낸 상대는 허공에 뜬 거대한 폐건물 주위에 눕혀 놓았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볼 수 있었다. 하얀 후드를 걸친 상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지. 오랜만일세.”

기도하듯 상하로 가로젓는 남자의 손에는, 내가 인벤토리에 분명히 넣어 놓았던 캐빈 애슈턴의 책이 들려 있었다.

손마다,여덟 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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