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36화 (336/458)

380화 트로이카 (2)

“어째서 그런 결론이 나는 거지?”

“그거야, 좋아하는 거 같아서야. 그 인간들의 이야기를 할 때 너는 말투가 말랑말랑해지더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맞잖아. 그동안 함께 지냈다면서, 이 몸이 언데드의 감정도 읽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해?”

기스-제-라이에게 그런 권능까지 있었나?

‘기억 추출은 안 된다고 했는데.’

감정을 엿보는 건 가능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위로 확 올라온다.

“개인적으로도,너 같은 기괴한 녀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간들이 궁금한데?”

어쩐지 키득거리는 표정이다.

젠장.

말문이 막힌다.

기스-제-라이는 오래 비웃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물론,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들과

만나야 해. 네 말에 따르면……

빠르게 웃음기는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이다.

“그녀들의 변화는 회귀 이후에도 함께 유지된다. 능력과 감정까지. 기억도 꿈의 형태로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변화가 확실해져.”

“배반의 가능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항구적인 아군인 거지.”

기스-제-라이가 말을 이었다.

“그녀들은 네가 이 세계에 박는 쐐기야. 네가 발견한 세계의 틈에

박아 넣어,벌리고 고정하는 거다. 쐐기를 깊숙이 박을수록 틈은 더 벌어질 거고.”

M | W

“네가 회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항구적인 변화를 고정할 수 있는 존재들이야. 돕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들이야말로 너를 영원히 도와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으음……

“진작 이야기해야 하지 않았느냐? 저번부터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기스-제-라이의 타박에 머쏙해져 할 말을 잃었다.

‘왜 이야기를 안 했더라……

그녀들의 이름을 꺼내긴 했다.

〈꺼지지 않는 등불〉달리아크에 가서 정보를 알아내 달라고 이름도 적었지만.

그녀들의 존재감을 무의식적으로 희미하게 만들었다.

기스-제-라이에게 왠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죄책감인가? 아니면……

알 수 없었다.

“뭐,그랬어도 사실 저번 삶에는 지하 통로로 똑같이 움직였겠지만. 괜한 소리였다.”

하지만 기스-제-라이야말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뭔가를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다.

“당신 역시 시나리오의 대상이야. 기스-제-라이 당신은,몸 절반에 폭탄을 지고 사는 것 아닌가?”

바싸고의 위협을 생각해 본다면.

그 악의를,권능을 생각한다면.

“이거야말로 위험해. 어떻게 빨리 조치를 취해야……!”

“내가 죽으면,죽을 상황이 되면.” 네크로멘서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두어라.”

터무니없는 소리에 대답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한참 후에서야 간신히 대꾸한다.

“남의 시나리오는 집중하라면서…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죽는 게 아니다. 기억이 끊길 뿐.”

얼굴에 웃음이 만연하다.

그녀는 제가 죽는 이야기를 하며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나는 너를 중심으로 산다. 네 회귀에 의탁해서,내 연속성을 부여하기로 결심했으니까.”

알 것 같았다.

기스-제-라이와 저번 생에 했던 대화를 회상했다.

〈혼자서 약한 척은 다 하시더니, 위기에 던져 넣어야 숨긴 실력이 나와 주시네.〉

〈어차피 죽어도 다시 돌아오잖아? 그렇지?〉

〈네가 죽은 뒤 생겨나는 세계에 내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그렇다.

기스-제-라이의 사생관은.

정보의 격차는 있었지만,저번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확신하는 거요? 다음의 당신이 지금 당신과 같다고?”

그녀가 잠시 웃다 말했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문득 뜨끔해진다.

“하루에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두 번씩 바뀌는 열다섯 소년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미안하군.”

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수백 년간 무수한 죽음을 집행해 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수한 죽음의 값을 재었고.

값을 치른 뒤 일으켜 군단이 되게 이끌었다.

누구나 삶을 제 선택으로 가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타인의 죽음을 지정하고, 다시 그것에게 삶을 지정해 왔다.

삶과 죽음을 수도 없이 선택하고 부려 온 그녀에게.

‘확신하느냐’ 같은 질문은 무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생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온전히 그녀가 헤아리고.

온전히 그녀가 판단한다.

“일정한 시기마다 기억이 끊기는 상태로 생각하면 어렵지도 않지.”

물론 그녀는 조금도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후후. 후후후……. 이처럼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느냐? 나 역시 너와 함께 회귀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바싸고의 각인을 봉인한다거나, 뭐 그런 선택지는 없는 거요?”

“힘 낭비지.”

기스-제-라이가 피식 웃었다.

“녀석에게 받은 힘을 못 쓰는 건

당연할 뿐더러,그 힘을 봉인하기 위해서,내 힘까지 끌어 써야 하지. 그런 상태를 유지할 생각은 없어.”

“으음……

그녀가 부연했다.

“너무 걱정할 거 없다. 사실 무척 부담되는 일이야. 계약의 각인을 뒤집는 건,최소한 두 배는 되는 부담을 자기가 진다는 얘기거든. 게다가 나 하나를 저주하기 위해 여러 마왕이 동원되지 않았느냐? 침식이 일어나기 전에, 인간계에서 마왕이 직접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그만큼이나 제약이 심한 것이다.”

“그렇군.”

마계의 영역이 아니라면.

각인을 그대로 놓아둬도 그녀가 바싸고에게 살해당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꺼림칙한 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마왕 강림을 저지해야 하는 건가?”

강림과 함께.

마계는 곧 인간계를 침식한다.

본신의 힘을 발휘하는 제3좌라면, 혼자서도 기스-제-라이를 죽일 수 있겠지.

굳이 각인을 역전시킬 것까지도 없지 않을까.

“하핫… 내가 바싸고를 죽이고 그 왕좌를 차지하지 않는 이상은, 단기적으로는 그래.”

“린트부름의 꿈은 어떻게 된 거지? 처음부터 마왕을 칠 생각이었나?”

그녀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그냥 전형적인 의도였다. 용은 사라졌다. 죽었겠지.”

“그래서?”

“시체가 있다면,되살리고 싶었다. 숨결만으로 마력의 근원이 되고, 무수한 아종이 그것을 모방하고, 문장과 기호로 삼고,환상의 영역, 초상 자체인 용을 살리고 싶었다.

정점에 선 린트부름을 사역하기를 꿈꿨어.”

“하지만 두 대륙을 헤매어 봐도 더 이상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 비교도 안 되게 한심한 타협으로 받아들인 게 용사의 묘역이었다.”

“으음……

이야기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린트부름보다 네 녀석이 흥미롭지만. 우후후홋… 처음으로 용의 혼적을 발견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끓어오른다.”

그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본다.

어딘가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슬쩍 말을 돌렸다.

“다른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마왕 강림을 막아 봐야겠군. 그럼 같이 루비아와 레나를……

“아니,그건 일단 내가 준비할게. 당장 레드 플레이크 회의를 소집해 주요 안건으로 다루는 게 좋겠군. 통과된 사항은 그들 전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훨씬 수월할 거다. 하지만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지. 잠시 떨어지자고.”

“함께 가면 안 되나?”

“너는 다른 할 일이 있어.”

그녀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내가 모든 걸 준비하는 동안에, 강해져라. 루비아든,레나든. 네게 비하면 모두 부차적인 거니까.”

“•••좋다.”

기스-저卜라이가 준비하고.

거기에 암살교단 레드 플레이크 전체가 함께한다.

이 이상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더없이 든든한 동아줄이다.

‘강해지는 거야 쉽지.’

기다리던 말이었다.

남부의 던전,강도단, 괴물은 모두 다 꿰고 있었다.

♦ ♦ ♦

항 달 뒤. 달리아크에서 보자.’

기스-제-라이의 그 말을 기억하며 나는 황야로 달렸다.

한 달.

너무 오래 떨어져 있는지도.

레나와 루비아가 어떻게 됐을지 생각하면 길게 느껴지는 기간이.

하지만 암살 첩보가 들어간 이상,

황제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는 잠잠하게 준비하고 있는 게 좋다는 네크로멘서의 의견은 타당했다.

결국.

시간은 충분하다.

전직할 시간도,전직 뒤 또다시 레벨을 올릴 시간도.

‘일단 거미다.’

지금은 마스커레이드도.

은신 스킬도 없는 상태.

일단 인간들과 떨어진 상황에서 활동하는 편이 좋다.

- 파앗!

말라 죽은 나무들을 지나 거미굴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변하지 않았군.’

나냐우나 아이작이 없다고 해서 던전까지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익숙한 풍경은 내게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오랜만이니 천천히 가 볼까.’

느긋하게 진행하며 동굴 곳곳의 구멍을 살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디에도 인간의 시체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유블람 경비대처럼… 주기적으로 시체를 공급하는 녀석들이 없나?’

어쩌면 세계선의 변경 때문에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허탕을 칠지도 모르겠군.’

- 달그락.

반쯤 마음을 비우고 좁은 통로를 아래로 계속 걸어갔다.

‘탐지.’

걸어도,걸어도 기척은 없다.

사위가 조용하다.

一 저벅… 저벅..

뭐라도 나오라는 듯이 시끄럽게 움직이는 내 발걸음 소리만 동굴에 울리고.

어둠은 몇 번씩 튕기는 그 소리의 움직임만 좇고 있었다.

그렇게,

- 끼이이익.

철문을 막 열었을 때였다.

[축복받은 쉐리티티의 볼트]

[던전 랭크: B]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J

‘뭐라고?’

- 끼기기이이익!

어마어마한 숫자의 거미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물론,기괴한 용모의 그것들을 거미라고 칭함은 명백히

어폐가 있었다.

‘진화… 했나?’

거미들이 바깥에 없었던 이유는.

'구멍’으로 들락날락할 만큼 몸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一 끼리이이이익!

나는 2미터 정도로 영역을 전개해 녀석들을 살폈다.

여덟 개의 다리 끝에는 적을 잡고 찢을 수 있도록 갈고리 같은 손이 붙어 있고.

팔과 몸에 새겨진 무늬는 단순한

곤충의 보호색이 아니다.

‘대마법… 문양?’

한 번에 태워 버릴 수 없도록.

기초적인 대마법 문양까지 갖춘 녀석들이라니.

짧은 비행까지 가능하게 함인지, 가장 굵은 다리 두 개에는 널따란 피막마저 붙어 있다.

‘미치겠군.’

- 쿠궁! 쿠구궁궁! 쿠쿠궁!

서른. 마혼. 쉰. 예순.

사방을 둘러싸고 덤비는 숫자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인벤토리로 그대로 튕겨내며 걷는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축복받은 쉐레티티의 볼트라니……

누구에게 축복을 받았단 말인가.

말할 것도 없다.

강림이 이제 곧으로 당겨진 마왕.

제 1좌.

바알이 겠지.

- 키기기기긱!

- 키이이이익

‘뇌전.’

- 퍼격! 쾅! 퍽 퍼격! 파치칙!

강화되었다고 한들.

기초적인 대마법 문양이 체외에 돋아났다고 한들.

수십 마리 거미가 반구 위에서 증발한다. 평생 무언가의 액즙을 빨아먹으며 살던 그들은 단말마의 체액조차 내게 튀기지 못하고 그저 무력화된다.

공간 전체를 튀기는 발전發電에.

이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작은 증명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1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이 요란하게 소리친다.

기이하게도.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광경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바닥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요란한 메시지와.

익숙한 양쪽의 조각들 위쪽으로.

[추가 능력치 100을 소모합니다.]

[에픽 전직 프로세스 시작…….]

[종족 확인 중… 유효…….]

[변환 불필요…….]

[특수 마력원 감지… 변화 가속.]

[1.3%…….]

- 우드득! 우드드득!

[20.1%…….]

골수 단위에서의 재결합에 이어.

[41.6%…….]

박명의 별들이 염원을.

가장 짙은 어둠 속의 불꽃이 내게 기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몸속에.

차가운 불이 타오른다.

[99.9%.]

[죽음의 기사 전직.]

어쨌거나.

고작 거미들이다.

그들을 사냥해서 떠오른 메시지를 상황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연히 예상했고.

당연히 얻어낼 예정이었어도.

당연히 내 것이란 무엇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역시,

홀린 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유치린의 후회가 개방됩니다.]

- 지금까지 찍었던 스랫을 모조리 재분배할 수 있습니다.

- 스랫 총합 100을 달성했을 때 1회 개방됩니다.

[죽음의 기사 특전 개방: 1/?]

[유치린의 후회: 개방 특전]

[추가 능력치가 200 주어집니다!]

[스탯을 다시 분배하십시오.]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또다시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봤다.

죽음의 기사.

이건 누군가를 위해서 ‘준비된’ 게 분명하다.

당연히 처음으로 얻을 유치린의 후회를 개방하면.

소모한 100의 능력치가 두 배로 되돌아온다.

두 배다.

인밴토리를 생각하지 않고.

스킬을 아예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건 스탯만으로도 압도적이다.

‘가장 초보적인 혜택일 텐데……

[체력: 135(new!)]

[힘: 145(new!)]

[민첩: 160(new!)]

[지혜: 45(new!)]

?

[스랫 배분을 완료했습니다.]

- 스탯 총합 666을 달성했을 때 추가 특전이 개방됩니다.

애슈턴의 책을 읽으면 언제든지 올릴 수 있는 지혜를 제외하고.

민첩과 힘,체력 순으로 중점을 두어 배분했다.

이미 스랫 총합은 500에 가깝다.

추가 특전이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 훌쩍!

몸이 가볍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라졌다.

‘되찾은 건가.’

이건 이미 아이작과 황실 비역에 침입할 때의 수준에 가깝다.

미개방 특전을 확인한다.

[잿더미의 무덤(미개방)]

- 무기에 업화를 담아…….

- 불이 태우는 것은 상대의…….

- 직업 레벨 5, 검술 레벨 15부터 개방됩니다.

[베스커리빌의 별(미개방)]

- 별들이 당신을…….

- 마왕의 교리를…….

- 습득한 교리 레벨 총합이 60에 도달한 시점에 개방됩니다.

[테트라비트의 논쟁(미개방)]

- 마계는…….

- 당신을 공격하는 마물들이…….

- 직업 레벨 5, 매혹 계열 스킬이

10이상 달성됐을 때…….

[베트라스의 차가운 달(미개방)]

- 다섯 가지 달의 비밀이…….

- 인력: 달의 인력이…….

- 궤도: 달은…….

- 당신이 지배하는 영토를 달에서 알아차렸을 때 특전이 개방됩니다. 영주 레벨 10이상.

이제부터 레벨이 오르면 주어질 특전들이 다.

당연하게도.

사냥 의지가 불타오른다.

‘이제 네 번째 만남인가?’

던전 보스는 익숙하다.

한층 더 강해졌다고 해도 조금도 긴장은 되지 않는다.

- 파앗!

사원을 벗어나 몸을 날렸다.

그리고 한때 화염과 선혈,절규로 가득했던 거대한 구덩이에는,

‘이상한데?’

아무것도 없었다.

‘탐지.’

느껴지지 않았고.

- 우우우웅…….

- 파직! 파치치치칙직!

가벼운 전격의 영역을 2◦미터까지 넓힌 채 돌아다녀도 아무 반응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살기도 시선도 없다.

이 구덩이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어쩐지 쓸쓸한 기분으로 구덩이 주위를 살피다,익숙한 거미 조각상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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